• 기자명 하원준 시나리오 작가/감독
  • 문화
  • 입력 2023.03.08 13:02
  • 수정 2023.03.09 15:13

위대한 유튜버③ 프랑스 여성 '사라' 이야기

[하원준의 구독한 미식가]
유튜브 채널 '김치와 바게뜨'
프랑스 백인 여성의 좌충우돌
한국서 외국인노동자 삶 보여줘
그녀의 '세계 시민'다운 모습에 공감

“안녕하세요. 저희는 한국, 프랑스 국제부부 '대한'과 '사라'라고 합니다. 저희는 여행을 좋아해서 여행비 마련과 먼 훗날, 40세가 넘어가기 이전에 저희가 운영하는 게스트하우스를 만들고 싶어 화성시에 있는 박스 공장에서 일하며 저축을 열심히 하는 부부입니다. 저희가 만들어가는 저희의 인생을 하나하나 기록으로 남겨보고자 부족하지만, 첫 영상을 만들어봤어요.”(유튜브 '김치와 바게뜨' 첫 번째 영상 중에서)

믹스커피를 사랑하는 프랑스 외노자의 하루

아침 8시. 화성의 박스 공장에 출근한 프랑스 백인 여성 ‘사라’는 작업용 깔깔이를 입고, 차디찬 공장 안으로 들어간다. 그리고 믹스커피를 타던 그녀는 한국 커피와 프랑스 커피 중에 어떤 커피를 좋아하냐며 촬영하는 남편 ‘대한’의 질문에 천연덕스럽게 한국어로 답한다.

“이거 노가다야. 아침엔 믹스커피지.”

그렇다. 노가다로 표현되는 육체노동의 현장에서 익숙한 그 한마디가 어린 백인 여성의 입에서 불쑥 나오니, 남편인 대한마저 참지 못해 웃음을 터트린다. 그리고 이어진 영상은 사라가 박스를 만들 골판지를 계속 인쇄기에 투입하는 노동 장면을 보여주다가 백반이 담긴 식판을 앞에 두고, 손으로 김에 밥을 싸 먹는 모습을 보여준다.

못하는 게 없는 사라. 소주병 딸 때도 유감없이 실력을 발휘한다.
못하는 게 없는 사라. 소주병 딸 때도 유감없이 실력을 발휘한다.

사라는 못 하는 일이 없다. 그녀는 지게차를 몰고 완성된 박스를 운반하기도 한다. 그리고 오후 6시부터 야근을 한다. 또다시 끝없이 골판지를 인쇄기에 투입하는 일이 그녀에게 주어졌다. 골판지를 넣고, 넣고, 또 넣고.... 하루의 길었던 노동을 끝낸 사라는 대한이 모는 경차에 올라타선, 이내 쏟아지는 졸음을 참기 어렵다. 운전석의 대한은 잠든 사라를 힐끔 쳐다본다. 먼 타국에 와서 노가다를 하는 사라에 대한 대한의 감정은 나이에 비해 한없이 성숙하고, 깊다.

“3시간의 야근이 끝나고 오후 9시에 귀가를 합니다. 운전대를 잡을 때마다 자신은 운전할 줄 몰라, 매일 편하게 가는 게 미안하다며 항상 뜬 눈으로 조수석을 지키는 사라인데... 오늘은 유독 피곤했나 봅니다. 먼 타지에서 저 하나만 보고 날아와 아무것도 가진 게 없는 저의 짐을 같이 짊어져 주는 사라에게 항상 미안하고, 고마울 따름입니다.”

지게차도 능숙하게 몰줄 아는 사라.
지게차도 능숙하게 몰줄 아는 사라.

여담의 영상에서 두 사람은 매주 월요일 퇴근길에 로또 한 장을 사며, 당첨의 행복한 꿈을 꾸며 일주일을 살아간다. 그리고, 사라는 기도한다.

“로또 신이여... 한번만. 한 번만.”

사라는 완벽한 겉프속한(겉은 프랑스, 속은 한국인)이다.

단 여덟 개의 영상으로 구독자 급증

필자가 대한과 사라가 만들어가는 유튜브 콘텐츠 채널 <김치와 바게뜨>를 발견했을 때, 업로드된 채널의 영상은 고작 3개였다. 첫 번째 영상은 ‘믹스커피를 사랑하는 프랑스 외노자의 하루’, 두 번째 영상은 ‘소주를 사랑하는 프랑스 외노자의 주말’, 그리고 세 번째 영상은 ‘프랑스 사람인 내가 한국에서 외노자가 된 이유’. 

그리고 이들의 채널은 노동자인 국제부부의 일기에 가까운 일상 에세이 영상 채널이었다. 즉 수익을 발생하기 위한 스토리텔링을 가미한 채널과는 거리가 멀었다. 유튜브 채널마다 전략이 다르겠지만, 일반적으로 유튜브를 통해 수익을 발생시키겠다는 유튜버들의 경우 짧게는 6개월, 길게는 2년 정도의 성장기를 거쳐야 수익이 발생할 수 있다. 이 성장의 핵심 키워드가 ‘구독’과 ‘좋아요’이기에 유튜버들은 앵무새처럼 구독과 좋아요를 눌러달라고 애원하는 것이다.

유튜브 채널 '김치와 바게트'

그에 비해 <김치와 바게뜨>는 수익은 커녕 채널의 정체성과 캐릭터 공유도 잘 이뤄지지 않는 등 일반적 경우를 벗어나 있었다. 심지어 '구독'과 '좋아요'도 요구하지 않았다. 그런데도 필자는 이 아마추어 채널을 통해 최근에 본 어떤 채널의 영상보다 강렬한 충격을 받았다. 충격의 원인 분석을 해보자면,

첫째, 선진국 프랑스에서 온 백인 여성이 이주노동자들에게도 3D업종인 종이 박스 공장에서 매일 박스를 접는 노동자로 일한다. 그것도 손놀림이 달인의 수준으로. 이를 통해 한국에서 일하는 이주 노동자들의 노동 유형에 대한 고정관념을 깨준다.

두 번째, 이들 어린 국제부부는 먹방과 사랑 표현, 선물, 일상의 여유와 한국 관광 등으로 일반화된 유튜브의 국제부부 콘텐츠의 달콤한 유형을 완전히 벗어난 쓰디쓴 ‘노동’이 영상의 핵심이다. 국제 MZ 부부에게서 가장 먼 단어라고 할 수 있는 아날로그 노동의 힘겨움과 가치를 말해준다.

세 번째, 대한과 사라는 열악한 이주노동자들의 거주지에서 월세를 내며 살고 있지만, 두 사람은 게스트하우스를 만들겠다는 확실한 삶의 목표를 향해 도전하는 진정한 '세계 시민의 모범'을 보여준다. 자극적이고, 일회성의 이벤트가 난무하는 유튜브에서 자신들의 목표를 선언하고 그것을 지켜나가는 것, 그것이 청년 정신이다. 물론 <김치와 바게뜨>의 대한과 사라는 그런 것을 생각하고 영상을 만드는 것은 아니다. 그저 필자의 꼰대 해석일 수 있다.

필자만 <김치와 바게뜨> 채널에 열광한 것이 아니었다. 단 세 개의 동영상이 업로드되었음에도 많은 유튜브 시청자들은 대한과 사라의 노동에 폭발적으로 열광했다. 수치로 살펴보면, 2023년 1월 18일 <김치와 바게뜨>의 첫 번째 영상이 업로드 직후, 구독자는 불과 1280명이었다. 이어서 1월 20일에 두 번째 영상이 업로드 되었을 때는 구독자가 2830명이었다. 이때까지는 채널에 대한 관심이 아직 상승하지 않는 시기였다. 그러나, 세 번째 영상이 업로드되기 하루 전인 1월 26일. 구독자는 3만6천명을 뛰어넘었다. 불과 열흘 만에 3만 6천명이라...

이것이 바로 구독자의 폭발적 증가를 말하는 피버타임(Fever Time)인 것이다. 그리고, 현재 필자가 이 글을 쓰고 있는 지금, <김치와 바게뜨>의 구독자 수는 8만 9천명이다. 불과 40일 만에 유튜브 실버버튼이라는 10만 명에 육박하는 구독자를 확보한다는 것은 대단히 어렵다. 참고로 미국 IT매체 비즈니스인사이더에 따르면, 유튜브 채널 중에 10만 구독자에 도달한 채널이 불과 전체 채널에서 0.4%에 불과하다고 한다.

현재 <김치와 바게뜨>는 8개의 영상만 업로드된 상태이다. 2월 24일에 ‘프랑스 외노자의 집을 소개합니다’ 편이 올라왔고, 최근 한 편을 더 올렸다. 현재 필자와 구독자들은 마치 넷플릭스의 시리즈 드라마를 기다리는 심정으로 대한과 사라의 이야기를 기다린다. 

“대한님! 사라님! 제발 빨리 올려주세요! 허기진단 말이에요!”

박스를 만들 골판지를 인쇄기에 투입하는 작업을 하는 사라.
박스를 만들 골판지를 인쇄기에 투입하는 작업을 하는 사라.

한국에서 프랑스 '외노자'로 산다는 것

법무부의 자료에 의하면, 2021년 말 기준 국내 체류 외국인은 195만6781명이다. 체류 외국인을 국적별로 살펴보면 중국이 84만193명, 베트남 20만8740명, 태국 17만1800명, 미국 14만672명, 우즈베키스탄 6만6677명 순이었다. 대체적으로 국내 체류 외국인들 중에서 동남아, 중앙아시아 이주 노동자들은 1, 2차 산업 현장에 종사하고, 미국과 유럽의 체류 외국인들은 외국어 학원과 학교, IT산업 등의 3차 산업에 종사하는 비율이 높은 것은 사실이다. 그런데, 사라처럼 프랑스 백인 여성이 3D 업종인 종이박스 공장에서 일하는 경우는 거의 없을 것이다.

그렇다면, 사라는 왜 화성의 종이박스 공장에서 일을 하게 되었을까? 그녀는 ‘프랑스 사람인 내가 한국에서 외노자가 된 이유’ 편에서 이렇게 말해준다.

“많은 분들이 프랑스에서 일하면 안되냐? 불어 선생으로 일하면 되지 않나? 라고 조언하시는데, 프랑스가 노동자, 노후복지가 좋은 건 맞지만, 돈을 모으기 좋은 나라는 아니에요. 집값, 월세가 어마어마하고, 세금도 어마어마하니까요. 불어 선생님의 경우 불어를 배우고 싶은 한국 분도 많이 없을뿐더러, 예전과 다르게 한국에 외국 선생님들이 많이 있다 보니 생각보다 많은 자격증을 요구해요. 생각보다 페이도 높지 않고, 최저시급을 맞춰주는 수준이었답니다. 가끔 귀한 프랑스인이 어떻게? 여자가 어떻게 공장에...? 라는 댓글을 보는데 전혀 그렇지 않아요. 힘든 일을 하는데 국적과 성별이 뭐가 중요하겠어요."

사라는 지금은 남편 대한과 함께 멋진 게스트하우스를 만들기 위한 과정이라고 힘주어 말한다. 사라는 힘들고 어려운 건 사실이지만, 그럼에도 남편인 대한과 함께 일하는 것만으로도 행복하고, 즐겁다고 한다. 그리고 그 즐거움의 극치가 달달한 믹스커피인 것이다. 대한 씨와 함께 공장 앞에서 휴식을 하며 홀짝거리는 믹스커피! 필자는 사라가 3D 업종에서 일하는 프랑스 백인 여성이라서 보다는 젊은 그녀가 가진 생각과 가치관에 반한 구독자이다.

유튜브 채널 '김치와 바게뜨'의 주인공이자 제작자인 사라와 대한.
유튜브 채널 '김치와 바게뜨'의 주인공이자 제작자인 사라와 대한.

필자뿐만 아니라, 많은 구독자 역시 그 지점에서 공감했다. 한국의 아이돌 그룹을 좋아했다는 계기로 한국에서 노동하며 미래를 그리는 사라는 유튜브 구독자들에게 아이돌이 된 것이다. 훗날 노년이 될 필자에게 새롭게 생긴 한가지 버킷리스트는 대한과 사라가 만든 게스트하우스에서 두 사람과 함께 소주를 마시는 것이다. 세계 시민 정신과 국제적 사랑을 떠들며!

콘텐츠 채널 별점(별 5개 만점)

주제 ★★★★☆
가치 ★★★★☆
재미 ★★★★☆
완성도 ★★★☆☆
흥행성 ★★★★☆

※글쓴이 하원준

-추계예술대학교 영상시나리오 석사(MA)
상명대학교 글로벌콘텐츠학 박사 수료
현 한국영화감독조합 감독
-현 한국영화시나리오작가협회 작가
현 허바허바픽처스 ㈜ 콘텐츠 개발 이사
현 건국대학교 문화콘텐츠학과 겸임교수
(경력)-2015년 ~ 현재 기획개발지원사업 심사(영화진흥위원회)
2010년 ~ 현재 영상저작물 감정심사관(한국저작권위원회)
2015년~  현재 한국국학진흥원 대학생 창작 공모전 피칭/팀 멘토(한국국학진흥원)

(작품) 영화 <난폭한 기록> 각본 연출/ <아이 캔 스피크> 각색/ <들개들> 각본 연출 /<뜨거운 안녕> 각색 /<렛미아웃> 각색 / <네이키드 런> 각본/ <그녀를 모르면 간첩> 각본/ <두사부일체> 각색 / <페닝> 애니메이션 52부작 각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