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기자명 김영주 유럽 칼럼니스트
  • 글로벌
  • 입력 2023.03.03 17:40
  • 수정 2023.03.04 12:07

알고보니 '교육지옥' 핀란드

[김영주의 '유럽에 대한 코리안의 오해']
체제 안정되고, 교육 잘시킨다는 핀란드
세세히 따지면 청소년 교육에 문제 많아
고등교육 인구도 적어...'화려한 궁핍'을

OECD 2008년 자살률 통계.
OECD 2008년 자살률 통계.

핀란드의 높은 청소년 자살률

우크라이나-러시아 전쟁중에 가끔 언급되는 나라인 핀란드는, 남한에선 '교육천국'으로 유명하다. 정확하게 어디에 있는지도 모르는 인구 550만명의 작은 나라가 누군가에 의해 최고의 교육국가가 되었다. 그러나 핀란드의 청소년 자살률을 아는 사람은 없다.

위 도표는 2008년 통계지만, 우리 사회에서 교육천국 핀란드 이미지가 한창 퍼지던 시기라 의미 있는 통계이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는 서양 국가들의 자살률에 충격을 받았는지 더 이상 청소년 자살률을 집계하지 않는다. 우리가 OECD 최고의 자살률을 기록한다며 헬조선이라 부르던 사람들은 핀란드를 '교육지옥'이라고 불러야 할 것이다. 우리가 우리를 대하는 방식으로 이 글 제목도 붙여보았다.

알다시피 한국은 한국인들조차 적응하기 어려운 치열한 경쟁사회이다. 그 결과, 2021년에 유엔국제무역개발기구(UNCTAD)가 한국을 선진국으로 분류하면서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새롭게 선진국이 된 유일한 나라가 됐다. 서울이 세계 도시 GDP 순위에서 도쿄, 뉴욕, LA 다음을 차지했다는 통계도 있었다. 

우리는 유일하게 다른 나라를 침략하지 않고 선진국이 된 경우다. 한국은 기존의 선진국들처럼 '침략'으로 자본을 모으지 못했다. 부존자원조차 부족하던 한국의 성장 동력은 오직 노동력뿐이었다. 모든 경제기적의 판이야 미국이 짜주었지만, 이것은 일본·독일과는 또 다른 의미의 경제기적이었다.

한국의 1949년의 농지개혁은 다른 선진국들과 달리 대지주층의 해체를 가져왔다. 정부는 과거 지주 계층에게 사립학교법인으로 피신할 길을 열어주었고, 그들은 교육 사업으로 부를 세습해나갔다. 한국의 교육제도는 국민 대부분이 가난한 상태에서 시작했다. 그래서 기존의 선진국들과 대조적으로 교육의 기능이 달랐다.

다른 선진국들에서 교육은 지배체제를 공고히 하는 쪽으로 작동했지만, 한국은 잿더미에서 새로운 지배층을 만들어내야 했다. 이 시기에 지배층에 편입되고 싶어했던 한국인들의 열망은 마치 유전자에 새겨진 것처럼 여전히 유효하다.

핀란드 초등학교 교육현장.
핀란드 초등학교 교육현장.

저조한 대학진학률과 높은 지니계수

핀란드에서는 늦어도 16살에 일반중등학교(lukio)와 직업학교(ammattikoulu)로 진로가 나뉜다. 이론적으로는 우리나라처럼 직업학교 졸업생들도 대입시험(ylioppilastutkinto)으로 4년제 대학교에 진학 가능하다. 이렇게 4년제 대학교에 진학하는 비율은 13%, 전문대 진학률은 33%이다.

13%는 서울에서 '인서울' 학생의 비율보다 조금 많은 비율이다. 무한의 자유를 준다는 핀란드식 교육도 13%만 우리 개념의 4년제 대학교에 진학하는 것이다. 이는 두 가지를 동시에 보여준다. 자살하지 않은 핀란드 청소년들도 결국 4년제와 전문대로 나뉜다는 것, 그리고 아무리 청소년들이 자유롭게 놀 수 있게 해도 마지막엔 13%를 골라낸다는 것.

핀란드는 출산 및 육아휴가의 천국, 아이들의 낙원이기 때문에 거기 가서 아이를 기르고 싶다고 우리가 생각할 수 있다. 유럽에 대한 우리의 상상임신, 혹은 착각이 워낙 견고한 탓이다. 또 초대졸자나 고졸자들도 충분히 넉넉하게 살 수 있을 것이라고 여기고 싶을 것이다. 하지만 핀란드 서민의 삶을 잘 모르고 하는 소리다. 

지니계수는 소득의 불평등 정도를 나타내는 가장 대표적인 소득분배지표인데, 0에 가까울수록 평등하다. 핀란드의 1인당 균등화 가처분소득 지니계수는 0.49다. 사회적 이전(우리의 공공부조와 사회복지서비스)을 받은 뒤에는 0.35 수준이다. 우리의 지니계수가 0.33인데, 핀란드는 연금을 받는 뒤에라야 우리만큼 불평등 정도가 낮아진다. 즉 핀란드인들은 연금을 받기 이전에 우리보다 주머니에 돈이 없다는 의미이다.

2017년 통계를 보면, 핀란드(57% 감소)와 덴마크(51%)에서 사회적 이전의 결과 빈곤 위험에 처한 사람들의 수가 절반 이상 감소했다. 유럽 정부들은 이런 사회적 이전의 금액을 그들이 떵떵거리고 살 정도로는 주지 않는다. 이것은 극빈층을 그만큼 줄였다는 의미이지, 그들이 벤츠와 프라다를 샀다는 뜻은 아니다. 이렇게 받은 돈은 개인의 통장을 거쳐 바로 빠져나가기에 사실상 가처분소득으로 볼 수도 없다.

그러나 OECD는 이것을 소득으로 집계한다. 유럽에서 궁상맞게 하루하루 보내는 서민은 우리 눈에 풍요로운 국민으로 보이는 것이 이런 이유다. 가령 양육비로 받은 지원금은 내 통장을 거칠 뿐이지 바로 유치원으로 들어가고, 지방세가 별로 안 걷히는 지역에 사는 가계는 추가적인 비용을 더 지불해야 한다. 우리 기준으로 보자면, 폭동(?) 방지책 수준에서 사회적 이전으로 지니계수를 눌러놓은 것에 불과하다. 그래서 통계는 통계이다.

핀란드인들의 마약관련한 사망자수..
핀란드인들의 마약관련한 사망자수..

핀란드를 비롯한 유럽 청소년들의 약물 중독 문제는 예전부터 심각하다. 비단 청소년만의 문제가 아닌 사회에 만연한 현상이지만, 특히나 핀란드 청소년의 약물중독사는 가벼운 문제가 아니다. 아무런 걱정 없이 학교에서 노닥거리다가 오는 핀란드 청소년들이 왜 약물에 손을 댈까. 단지 몇몇 아이들의 일탈일 것이라 말한다면, 우리가 스스로에게 적용하는 자학과는 다른 이중잣대다.

자유방임의 대가는 빈곤아닐까

사회가 아무리 연성화 되어도 아이들은 수학이나 제 2외국어를 싫어한다. 특히나 아이들은 왜 대학에 가야하는지 모르기 때문에, 굳이 2차방정식 풀이나 외국어 단어 암기의 필요를 느끼지 못한다. 유럽은 아이들에게 주체할 수 없는 자유와 방임을 선물하지만, 결과는 우리보다 더 가처분소득이 없다. 그래서 유럽의 성인들은 비록 대학교를 졸업했다 할지라도 우리가 보기에 궁상맞다.

미국과 독일의 대학진학률.
미국과 독일의 대학진학률.

독일은 초등학교 5학년 끝나면서 학생들을 인문계와 실업계로 분류한다. 담임교사가 정하지만, 학부모는 2회의 이의신청을 할 수 있다. 이런 일방적인 분류는 한국에서라면 제2의 촛불혁명을 부를 수도 있다. 학부모가 끝까지 버티면, 아이는 인문계 고등학교인 김나지움에 갈 수 있지만, 그런 아이들은 원치 않는 공부 속에 불행해진다.

결국 우리가 생각하는 지구상에서 가장 이상적인 나라 독일도 대학 진학할 때엔 얼굴에 웃음기가 싹 가신 채 냉정해진다. 어차피 아이들은 대학에 가기 원하지 않기 때문에, 대학 진학률은 28% 안팎이다. 독일의 아이들이 나중에 스스로 공부해서 사회적 계층 이동을 하는 경우는 드물다. 유럽은 기본적으로 계층이동의 가능성을 사실상 지움으로써 국민들에게 행복을 제공하는 것이다.

유럽의 대학 진학률이 낮은 까닭은 아이들이 행복하게 지낼 수 있도록 학습에 대한 부담을 주지 않기 때문이다. 대부분이 서울 인구 규모의 작은 나라들이라는 것을 감안하면, 대학생은 소수에 불과하다. 대학교까지 한국 수준의 등록금을 받는다면, 작은 나라들의 대학들은 더욱 국내 학생들을 유치하기 어려워진다. 68혁명 이후 교육의 평등을 내세우며 유럽의 대학교 등록금에 대한 학생 부담은 거의 없어졌지만, 68 혁명은 대학 진학에 대한 가치관도 불필요하게 만든 셈이다.

유럽에 비해 우리는...자기비하는 하지말아야

모든 현상에는 동전처럼 양면이 있고, 어떤 체제도 완벽하지 않다. 그리고 한국은 한국이고, 서양은 서양이다. 그러나 일부 교수들은 경쟁 없는 사회라는 홍보만 할 뿐, 활기 잃은 유럽의 실상에 대하여 침묵하거나 모른 체 한다. 지식인이 선동하고 책임지지 않으며, 평범한 시민들은 자기 학대만 한다.

옥스포드 대학생들이 대학수학능력시험의 영어영역 문제를 풀 수 없다해서 이야깃거리가 된 적이 있다. 그런 학생들이 영어영역 문제를 풀 수 있어서는 안 된다. 낙도의 여고생이든 부모 잘 만나 런던에 사는 여고생이든, 적어도 한국의 대학에 입학하려면 EBS 수능특강 문제집을 누가 더 자주 보았느냐로 평가받는 것도 나름의 의미가 있다. 

옥스포드 대학교의 등록금을 지불할 수 있는 부모의 재력은 세습된다. 적어도 우리 사회의 교육은 신분 상승의 통로이지, 유럽처럼 신분 고착화의 명분이 되어선 안된다고 생각한다. 언론에서 노래를 부르는, 진짜 영어를 배우고 싶은 학생은 대학교에서 알아서 배우면 되는 것이다. 한국은 한국이고, 유럽은 유럽일 뿐이다.

※ 김영주 유럽 칼럼니스트는 16년 동안의 입시학원 강사 생활을 청산하고, 2017년에 유라시아 대륙횡단을 떠났다. 숙소 없이 158일 동안 대륙을 횡단하면서 우리 식자층이 접하지 못한 유라시아의 서민들을 만나고 소통했다. 우리가 선택한 체제가 결코 열등하지 않다는 것을 느끼고, 우리의 유럽에 대한 '상상임신'을 연구했다. 독일 프랑크푸르트에 유한회사를 설립하고 입시학원을 운영하며, 매일경제신문에 '세계사와 시사'를 연재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