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흥부보다 놀부의 박이 훨씬 많을까

[경북대 민교협 시사칼럼] 흥부전 곳곳에 놀부 패악질 묘사 흥부의 박엔 금은보화와 노비들 놀부는 세상 온갖 저주와 오물들 타면 탈수록 돈 대신 재앙 쏟아져 ‘부패한 엘리트’ 처벌 원한다는 뜻

영화 흥부(2018년, 롯데엔터테인먼트)의 한 장면.
영화 흥부(2018년, 롯데엔터테인먼트)의 한 장면.
  • 2025년 2월부터 <더 칼럼니스트>와 <경북대 민주화교수협의회>는 공동 기획으로 다층적 차원에서 한국 사회를 분석하는 연재를 시작합니다. 정치학·사회학·언론학·문학·경제학·교육학·공학을 전공하는 다양한 연구자들이 참여하여 지역의 시선에서 우리 사회의 쟁점에 대한 진단을 제시하고 민주주의 근육을 강화하기 위해서 시도하고자 합니다. 많은 관심 부탁드립니다.

<흥부전>의 진짜 주인공은 놀부

고전소설 <흥부전>의 주인공은 흥부이다. 그런데 정작 작품을 읽어보면 놀부에 대한 이야기의 비중이 더 많다. 놀부는 재물에 대한 탐욕으로 부모가 물려준 재산을 모두 차지한 채 동생 흥부 가족들을 집에서 쫓아낸다. 생활이 너무 힘들어진 흥부는 어쩔 수 없이 형 놀부를 찾아가 도움을 청하지만 놀부는 흥부를 모르는 사람 취급을 한다. 흥부의 형수인 놀부의 아내 역시 흥부를 박대한다. 놀부 부부는 가족보다 돈이 더 소중하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다.

<흥부전>의 시작도 흥부가 아닌 놀부의 이야기다. <흥부전>에서 놀부는 흥부처럼 부자가 되고 싶어 부러진 제비의 다리를 치료해 주고 박씨를 얻어 부자가 된 흥부를 따라한다. 그러나 놀부는 제비의 다리를 치료해 주기는커녕 일부러 제비 다리를 부러뜨리고 난 후에 치료해 주는 시늉만 한다. <흥부전>의 서두에는 제비 다리를 부러뜨리는 것 외에도 놀부의 여러 행악질이 구체적으로 제시되어 있다.

놀부의 패악질을 볼라치면

놀부는 다른 사람을 괴롭히는 인물로 등장한다. 그는 뛰어 가는 사람에게 발을 내밀어 넘어지게 하고 잠이 든 사람에게는 뜸을 떠 놀라게 한다. 이 정도는 장난으로 볼 수 있지만 공동체를 파괴하는 행위도 서슴지 않는다. 남의 호박 넝쿨을 끊어 놓기도 하고 다 익은 곡식을 잘라 버리기도 할 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의 채소밭에 가서 똥을 싸기도 한다. 길 가운데 구멍을 파 놓아 다른 사람이 빠지게 하기도 하고 마을 공동체가 신성시하는 땅에 있는 나무를 베어 버리기도 한다. 남의 집안 혼사도 방해하며 초상집에 가서는 노래를 하고 가족들의 사소한 싸움에 개입하여 집안의 큰 싸움으로 만들기도 한다.

더 나아가 놀부는 남의 물건을 훔치기도 하며 방화와 폭행을 하기도 하며 살인을 계획하기도 하는 범죄자의 면모도 드러낸다. 그는 수박밭을 서리하거나 술을 마시고는 돈도 내지 않고 달아나며 행인들의 노잣돈도 훔치고 남의 선산을 팔아 돈을 챙긴다. 관아의 서신, 병졸들의 병기, 목수의 대패, 초라니패들의 비녀와 잡범들의 끝돈과 벌금까지 가로챈다. 다른 사람들의 곡식더미와 무덤에 불도 지르고 힘없는 노인과 어린아이를 비롯하여 부녀자와 여승에게까지 접근하여 성범죄를 저지르기도 한다. 게다가 우는 아이에게 똥도 먹이고 술병에 비상도 넣어 사람을 죽을 수도 있게 만드는 패악한 범죄자의 면모를 드러낸다.

<박타령>에서 왜 놀부가 더 많은 박을 탈까

이처럼 <흥부전>에서 놀부는 추악한 면모를 드러내는 인물의 전형으로 등장한다. 판소리 이론가로 평가받고 있는 신재효(1812~1884)는 판소리 <흥보가>의 사설을 <박타령>이라는 제목으로 개작했다. <박타령>에 등장하는 놀부는 자신을 찾아온 흥부에게 당태종도 동생을 죽였고 조조의 큰아들인 조비도 아우를 죽였다고 하면서 자신의 흥부에 대한 행동을 합리화한다. <박타령>에서 놀부는 사람들을 괴롭히는 존재로, 흥부는 사람들을 도와주는 존재로 등장한다. <박타령>의 서두에는 놀부의 행악질과 범죄 행위가 상당히 자세하고 구체적으로 제시되어 있다. 그리고 흥부가 타는 박보다 놀부가 타는 박의 수가 더 많다. 신재효가 판소리 <흥보가>를 개작하면서 제목을 <박타령>으로 고친 것도 흥부와 놀부가 박을 타는 대목에 주목한 결과로 보인다.

흥부가 타는 박은 서너 개에 불과하다. 흥부가 타는 박에서는 돈과 쌀, 비단과 보물, 가구 그리고 양귀비와 남녀 종들이 등장한다. 이본에 따라 불사약이 등장하는 경우도 있다. 그러나 놀부가 타는 박의 수는 적게는 여섯 개에서 많게는 열세 개까지 등장한다. 이본에 따른 차이는 있지만 놀부가 타는 박이 흥부가 타는 박의 수보다 몇 배로 많다. 흥부는 박을 타면 탈수록 부유해지지만 놀부는 박을 타면 탈수록 돈을 잃고 종국에는 패가망신한다.

제비가 흥부에게 준 박씨에는 보은(報恩, 은혜갚은 은)이라고 적혀져 있었지만 놀부에게 준 박씨에는 보수(報讎, 복수할 수)라고 적혀져 있었다. 놀부의 아내는 걱정이 되어 놀부에게 박씨를 심지 못하게 했지만 놀부는 아내의 말을 듣지 않고 박씨를 심었고 박은 지나치게 크게 열려 타기 전부터 주위의 환경을 파괴하기 시작한다. 그러다가 놀부가 타는 박에서 등장하는 인물들은 놀부에게 적게는 오천 냥에서부터 많게는 오만 냥까지 요구한다. 재물에 대한 욕심을 걷잡을 수 없었던 놀부는 그 다음에 탈 박에서 나올 재물들을 기대하면서 그들이 요구하는 돈을 모두 준다. 그러나 놀부가 박을 탈 때마다 돈을 요구하는 수천, 수만의 인물들이 등장하여 결국 놀부는 가진 재산을 모두 잃고 만다.

기대를 꺾지않고 다시 박을 타는 놀부

놀부는 여러 개의 박을 타면서 돈만 잃은 것이 아니었다. 박에서 등장한 만여 명이나 되는 사당거사들은 놀부를 헹가래 치면서 논문서와 밭문서를 빼앗아간다. 그리고 만여 명이나 되는 왈짜들은 놀부를 나무에 거꾸로 매달아 곤장을 친다. 놀부는 피를 토하고 똥을 싸지만 왈짜들은 이에 굴하지 않고 돌아가면서 놀부를 폭행한다. 이미 너무 많이 두드려 맞은 놀부는 몸을 가눌 수 없을 지경에 이르러서도 박에서 나올 돈에 대한 기대를 멈추지 않고 또다시 박을 탄다. 그리고 놀부가 타는 마지막 박에서는 온갖 종류의 똥들이 쏟아지고 놀부의 집은 똥 속에 파묻힌다.

대중은 조롱과 함께 강력한 처벌 원한다

행악질과 범죄 행위를 일삼으면서 돈에 대한 욕심이 지극했던 놀부는 이렇게 패가망신한다. 흥부가 타는 박보다 놀부가 타는 박의 수가 더 많은 것은 흥부의 선행에 대한 보상보다는 놀부의 악행에 대한 처벌에 대한 대중들의 요구가 더욱 지대했음을 시사한다. 놀부의 패망은 그가 저지른 수많은 행악질과 범죄 행위의 대가이다. 그러나 판소리 <흥보가>에서 놀부가 박을 타는 장면들은 흥겨운 분위기로 연출된다. 놀부가 탄 마지막 박에서 많은 똥들이 나와서 놀부의 집이 똥 속에 파묻혀 버린 것으로 제시한 것도 결국 놀부의 패망에 대한 조롱이다.

놀부는 아주 오래전에 만들어진 이야기에 등장하는 인물에 불과하다. 그러나 <흥부전>이 한국 고전소설로 오랜 기간 향유될 수 있었던 것은 대중들의 공감과 지지가 있었기에 가능했다. 다소 현실과 동떨어져 있고 과장된 측면도 있지만 현대에도 충분히 공감할 수 있는 내용들이다. 지금도 많은 재물을 소유하고 있으면서도 법과 윤리를 무시한 채 남에게 행악질과 범죄 행위를 하면서까지 부를 축적하고자 하는 자들은 존재한다. 그리고 대중들은 그들에 대한 강력한 처벌을 원하고 있다. <흥부전>에 제시된 놀부의 패망은 독자들에게는 즐거움을 선사한다. 그래서 한국 고전으로 오랜 기간 향유될 수 있었다.

글쓴이

서혜은 경북대 국문학과 교수

서혜은 교수는 한국 고전문학 전공자로서 조선 후기 서울에서 간행된 경판본 소설의 대중성에 대한 연구로 박사학위를 취득했다. 현재 경북대학교 인문대학 국어국문학과 교수로 재직하고 있다. 대표적인 논문에는 「프랑스·러시아·영국의 경판본 소설 소장 양상 연구」, 「랜디스의 한국 설화의 영역과 그 수록 양상 연구」, 「Anderi Serband의 <다른 춘향>의 연출 기법과 창극사적 의미」 등이 있다. 설화, 소설, 판소리, 창극 등 한국 고전문학 전반의 대중화와 세계화에 기여하고 싶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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