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날 악령 영화가 지금도 먹히는 까닭

[박상욱의 스크린 너머의 리얼리티] 윌리엄 프레드킨의 엑소시스트(1973) 70년대 영화치고 촌스럽지 않은 분위기 왜 이 영화는 그토록 공포스러웠을까 “공포영화가 아닌, 다큐멘터리처럼 찍었다”

영화 '엑소시스트'의 한 장면.
영화 '엑소시스트'의 한 장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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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이 순간에도 2,30대들이 책상 앞에 앉아 컴퓨터 모니터 화면을 보며 OTT에 있는 현대판 공포영화들의 후기들을 열렬히 올리고 있는 것만 같습니다. 좀비, 공포영화가 또 하나의 대세입니다. 그들의 후기들이 50대 영화광이 그때보다 더 어렸던 나이에 경험한 ‘엑소시스트’라는 광적 흥분에 비할까 싶습니다.

공포의 극한, 공포의 대명사

아마 시작은 거기서부터였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어느 골목길 앞을 지나다 우연히 마주친 벽에 붙어있던 무시무시해 보이는 포스터. 빛을 등 뒤로 한 손을 높이 쳐든 실루엣에서 느껴지던 공포.

단지 포스터만 보고 오금이 저릴 만큼 어린 소년에게 그것은 매우 무섭고 충격적인 시각적 자극이었습니다. 그 뒤로 교회 형과 누나들이 얘기하는 영화의 이야기들…. 학교에서 선생님 몰래 수군대던 영화의 뒷얘기들을 안 듣는 척 귀를 쫑긋 세우며 듣고는 무서워하던 그 시절 말입니다.

적어도 1970, 80년대에 유년기와 청소년기를 보낸 사람들에게 영화 ‘엑소시스트’란 단지 제목을 떠나서 공포의 극한, 혹은 대명사 그 자체로 각인되어있다고 해도 과장은 아닐 듯 싶습니다.

허름한 동시상영관을 홀로 찾았다가 우연히 예고편으로 등장한 ‘엑소시스트’란 글자에 온몸을 부들부들 떨던 10살짜리 소년 기억의 한 단면들 속엔 단지 보고 싶지 않은 것, 하지만 호기심을 극도로 자극하는 것에 대한 이상야릇한 상상들만 남아있었을 뿐이었습니다. 물론 그 심약한 소년은 동네 동시상영관이 미성년자 관람 불가 영화도 그냥 들여보내 주는 관용(?)을 베풀었음에도 결코 그 ‘공포의 극한’을 보고 싶어하지 않았습니다.

사실 공포영화를 보는 사람들의 심리가 다 그렇지 않던가요? 보고 싶지 않으면서도 보게 되는 야릇한 호기심. 그로부터 단지 봐서는 안될 두려운 그 무엇, 하지만 너무도 강렬한 호기심을 자극하던 그 실체를 확인한 건 무려 20년의 세월이 흐른 뒤였습니다.

악령이 씐 소녀, 구마 신부와의 싸움

영화의 전체 줄거리를 짧게 소개하면 이렇습니다.

유명한 배우이자 이혼녀 크리스 맥닐의 딸 리건은 평범한 소녀이었습니다. 그러나 어느날부터 리건은 손님이 가득한 방에 들어와 오줌을 싸고 욕설을 내뱉으며 목이 360도로 돌아가는 등 이상행동을 보입니다. 병원을 찾은 리건에게는 ‘일반적으로 사춘기 소녀들에게 보이는 증상’이라는 진단이 내려집니다. 그러나 다락에서는 이상한 소리가 들리고, 침대가 마구 흔들리는 일까지 벌어지고 병원을 다시 찾아 여러 가지 검진을 받아보지만, 의사는 “몸에는 아무런 이상이 없으며 악마에 씐 것 같다”라고 말합니다.

크리스는 해결책을 찾지 못해 정신과 담당의사의 조언에 따라 가톨릭교회에 딸의 치유를 의뢰합니다. 이후 예수회 소속인 구마(驅魔) 사제 메린 신부와 카라스 신부가 구마 의식을 행합니다. 하지만 평소 심장에 지병이 있던 메린 신부는 악령의 공격으로 구마 예식 거행 도중에 사망하고, 카라스 신부는 이를 목격한 뒤 격분하여 리건의 목을 조르며 악령을 자기 몸으로 들어오게 한 뒤 창밖으로 뛰어내려 자살합니다. 이후 리건이 정상으로 돌아오자, 리건의 가족은 이사를 하면서 영화는 끝을 맺습니다.

이젠 웬만큼 잔혹한 장면에도 그다지 눈 하나 깜짝 안 할 만큼 성숙한(?) 영화 중년이 된 필자가 환한 대낮 아파트 베란다 앞 벽걸이 TV 화면으로 확인한 그 공포의 실체는 한마디로 ‘지루한 옛날 공포물’과 ‘그래도 분위기는 음산한 고전’의 중간쯤으로 느껴진 맥 빠진 이미지였을 뿐입니다. 적어도 이 영화를 공포영화-오컬트 영화의 대표작으로 여기던 생각들에서 빠져나오지 못했던 그 시절까지는 말이죠.

그리고 10년 뒤, 다시 커다란 스크린에서 확인한 이 맥 빠진, 하지만 어린 시절의 오싹했던 추억을 더듬게 해주는 영화는 그 두려움의 효과에 있어선 과거에 미치지 못할지라도, 적어도 과거에(70년대에) 이 영화가 관객에게 얼마나 충격적이고 무시무시한 경험이었을까를 짐작하게 하는 것으론 충분한 것이었습니다.

이 영화의 미덕은 다큐멘터리적 기법

현재 필자의 눈은 현재 영사되는 스크린을 보고 있지만 나의 두뇌는 과거의 어떤 유추할 만한 경험들(70년대 이 공포물에 치를 떨었을 그때 관객의 느낌들)을 하나하나 유추해 나가고 있는 것입니다. 적어도 ‘13일의 금요일’ 시리즈로 그 포문을 연 슬래쉬 무비들과는 차별되는 70년대 공포물들을 기억하는 사람들에게 당시 공포 장르(미국에서 만들어진 공포물들, 예를 들어 AFKN에서 매주 금요일 밤마다 해주던 ‘프라이 데이 호러 픽쳐’)의 일반적인 특성은 그 특유의 음산한 배경부터 꼽을 수 있을 것입니다.

그리고 그러한 배경이 등장하기 전에 일종의 ‘프롤로그’로 등장하는 암시적인 설정 장면들과 분위기로 뭔가 나타날 듯 나타날 듯 지속적으로 보이다가 순간적으로 터져 나오는 끔찍한 상황, 즉 그것이 살인이든, 악령의 얼굴이든, 뭐든 간에 적어도 그 시대의 공포물들엔 기다림과 절제 뒤에 관객의 보고 싶어 하는, 또한 그러면서도 보고 싶어하지 않는 호기심을 자극하는 무엇인가가 있었습니다. 그 속에서 관객의 잠재의식 속에 숨겨진 ‘악에 대한 두려움을 자극하는 것’.

<엑소시스트>의 미덕이란 이러한 것들을 철저하게 미학적으로 잘 구현한 데 있다고 할 것입니다. 실제로 엑소시스트의 장점은 악령 들린 어린 소녀 리건의 얼굴이 돌아가는 장면이라든가 자신의 음부를 향해 십자가로 마구 자해하는 등의 충격적인 장면에 있는 것이 아닙니다. 물론 이 장면들은 지금 관객도 고개를 설레설레 절 정도로 끔찍한 장면임에는 이견이 있을 수 없겠지만.

<엑소시스트>에는 감독이 의도한 놀랄만한 미학적 야심이 숨어있습니다. 1980, 90년대의 특수효과의 현란한 카메라워크에 익숙한 관객의 눈에도 이 영화가 그다지 촌스러운 70년대 공포물로 보이지 않는 거대한 힘이 있습니다. 연출을 맡은 윌리엄 프레드킨 감독은 한 잡지와의 인터뷰에서 “이 영화를 공포영화라기 보다는 다큐멘터리를 찍는 느낌으로 만들었다”고 말합니다.

실제로 카메라는 당시에 주로 사용되던 줌렌즈의 사용을 극도로 제한하고 카메라가 한 발짝 뒤로 물러서서 바라보는 듯한 느낌으로 화면을 꾸며나가고 있습니다. 클로즈업보다는 객관적인 상황을 보여주는 듯한 미장센에 의존한 구성이죠.

객관적인 상황에서 보여지는 공포보다 더 무서운 게 있을까요? 마치 실제 일어나고 있는 듯한 느낌, 거기다가 영화의 스토리가 실화에 바탕을 두고 있다는 그 전설적인 소문과 함께 말입니다.

영화 촬영 당시의 모습.
영화 촬영 당시의 모습.

지금도 촌스럽지 않은 영화

지금의 관점에서 다시 한번 바라본 <엑소시스트>는 70년대 분위기를 일부러 낸 ‘신비스러운’ 종교영화를 보는 듯한 느낌이 듭니다. 즉, 영화가 70년대에 만들어졌음에도 마치 현대식 세련된 어법으로 70년대 분위기를 만들어낸 것 같은 느낌이라는 얘깁니다.

만들어진 지 50여 년이 지났음에도 촌스럽지 않다는 것은 빠른 유행의 시대에 엄청난 미학적 성취를 의미합니다. 이것이 영화가 가진 가장 큰 매력이라고 할 것입니다. 인간 내면 깊숙한 곳에 드리워진 공포를 다큐멘터리적 수법으로 그려내겠다는 윌리엄 프레드킨의 거대한 야심은 비록 당대에는 그 화제가 된 반응 때문에 실패했는지 몰라도 말입니다.

글쓴이

박상욱 영화 칼럼니스트

박상욱은 그룹 ‘동물원’의 코러스로 대중음악 활동을 시작하고 김창기 밴드에서 기타 연주와 코러스로 활동을 했다. 졸업 후 직장생활을 하다가 뮤지컬 제작에 참여하여 ‘이석준의 뮤지컬 이야기 쇼’라는 소극장 토크쇼를 4년 동안 공연, 제작을 했을만큼 뮤지컬도 상당기간 일을 했었다. 드라마 OST 가창도 했을만큼 음악 활동을 했지만, 뒤늦게 어렸을때 꿈 이었던 영화를 대학원에서 공부하고 현재는 다큐멘터리 독립연구자로 활동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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