갈라지고 쪼개지는 미국 그대로의 ‘시빌 워’
[박상욱의 스크린 너머의 리얼리티] 여론 분열중인 미국, 내전 모습 그려 독립영화사가 블록버스터급 제작 눈길 종군기자 눈에 비친 내전과 엄숙한 죽음
영화 시빌 워: 분열의 시대(2024) 각본/감독: 알렉스 가렌드 출연: 커스틴 던스트, 와그너 모라, 케일리 스페이니
분열의 정점을 찍는 2025년, 그 한해 전
어느덧 시간이 흘러 2025년도 막바지에 이르렀습니다. 이제 20일 후면 2025년의 12월이 되겠군요. 이 말을 다르게 표현하면 前 대통령의 위헌적 비상계엄이 선포된 지 1년이 된다는 뜻이지요.
그렇다면 1년이 다 되도록 과연 대한민국은 내란 세력들에게 어떠한 법적 타당한 선고와 그에 따른 조처를 했는가? 라는 물음에 대다수 국민은 고개를 갸우뚱할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물론 민주적 절차를 지키고 따르는 과정에서 어쩔 수 없이 생기는 지루한 시간적 소비는 차치하고서라도 국민의 답답한 속을 시원하게 긁어주는 정치적 행동과 정책들은 더디기만 하기 때문입니다. 그나마 경주APEC 외교처럼 새로운 대통령이 부지런하게 행보하고, 국민과 지자체들과 소통하며 노력하는 모습은 대다수 국민에게 안심과 위안 그리고 희망을 주고 있습니다.
대한민국에 계엄이 있던 2024년 12월 3일, 그리고 같은 해 12월 31일에 영화 한 편이 개봉합니다. 각본과 감독은 알렉스 가렌드이고 미국 영화이며 제목은 ‘시빌 워: 분열의 시대’라는 영화입니다. 가히 지금 ‘노 킹(No King)’ 시위로 분열된 미국의 상황을 예견한 듯한 영화입니다.
‘독립영화’ 제작사의 역작 ‘시빌 워’
미국의 19개 주(州)가 분리주의 운동 및 자유주의 표어를 내걸며 연방 탈퇴를 선언합니다. ㅣ어 오리건, 워싱턴, 몬태나, 유타 등 북서부 주들이 중심이 된 ‘신인민군(New People’s Army, NPA)’, 플로리다를 중심으로 애틀랜타부터 오클라호마까지 분열되어 연합한 ‘플로리다 연합(Florida Alliance)’, 캘리포니아와 텍사스가 연합한 ‘서부군(Western Forces)’, 수도 워싱턴 D.C부터 네바다주, 위스콘신주까지 미국 중북부로 구성된 ‘연방 충성파(Loyalist States)’ 등 미국은 4개의 세력으로 분열됩니다.
영화의 전체적인 장면과 이야기는 로이터 통신 소속 종군기자 리(커스틴 던스트 분)와 조엘(와그너 모라 분) 그리고 이 둘의 멘토 뉴욕타임즈의 새미(스티븐 핸더슨 분), 리와 같은 종군기자가 되고 싶은 신참내기 제시(케일리 스페이니 분)가 한 팀이 되어 내전을 일으킨 대통령을 직접 인터뷰하고자 백악관이 있는 워싱턴 D.C.로 향하면서 시작됩니다.
기존 사법 치안은 붕괴했으며, 각 주마다 방탄복에 소총으로 중무장한 민병대들이 등장하며 각자도생의 모습을 연출합니다. 물론 모든 지역이 똑같은 상황은 아니라, 전선에서 비교적 떨어져 있어서 내전의 혼란에서 벗어난 몇몇 지역은 전쟁이 나건 말건 무관심한 모습을 보이기도 합니다. 물론 최소한 스스로 민병대를 조직해서 자체 방어력은 갖추고 있으면서 말이죠.
달러화는 폭락...전력난까지 겹치고
미국의 내전이란 최악의 상황 속에서 달러 가치도 대폭락합니다. 영화 중반 주인공 일행이 이동 중 주유소에 들러 300달러(현재 한화 약 40만 원)에 주유하겠다고 하자 거기 민병대원 한 명이 “300달러면 치즈샌드위치 하나 정도 살 수 있다”라며 비웃습니다. 이에 미국 달러가 아니라 캐나다 달러라고 말하자 군말 없이 물자를 거래해 줄 정도입니다. 전력난과 연료난도 묘사되며, 미국의 고속도로에는 움직이는 자동차가 보이지 않을 정도입니다.
연방 정부의 선전에서는 분리주의 세력들이 패퇴하고 있으며 워싱턴 D.C.를 향한 진격도 무마되었다고 발표를 하지만, 실제로는 이미 분열주의 세력들의 우세로 기울고 있습니다. 미국 독립기념일인 7월 4일까지 서부군(WF)은 워싱턴 D.C.로 진격할 예정입니다. 이미 워싱턴 D.C.의 정치적 중심지와 맞닿아있는 링컨 기념관에 서부군이 지상군과 공격헬기를 동원해 포격을 가하는 등 연방 정부는 패색이 짙어진 모습으로 등장합니다.
궁지에 몰린 연방 정부군은 워싱턴 D.C.로 접근하는 민간인인 종군기자들을 경고 없이 사살하는 잔악한 전쟁범죄까지 저지르는 수준으로 전락할만큼 이미 패자로써 최후의 발악을 하는 모습을 보여줍니다.
영화 중반부에 이르자, 충성파 연방군 대부분이 서부군에 항복하면서 북동부 방어선이 붕괴됩니다. 서부군은 버지니아주 샬럿빌에 전진기지를 세울 정도로 깊숙이 진군합니다. 이 장면 다음에 서부군이 워싱턴 D.C.로 진격하게 되는데 결말부에 이르자 백악관 내에서 대통령이 사살당하는 장면에서 영화는 절정에 이릅니다. 대통령은 집무실 책상 뒤에 숨어 있다가 추하게 끌려 나와 목숨을 구걸하지만, 서부군은 일말의 고민도 없이 방아쇠를 당깁니다. 종군기자들인 주인공 일행은 원래 목표대로 대통령 인터뷰를 시도하지만, 제정신이 아닌 상태에서 살려달라며 애걸하는 그의 모습에 더 이상의 인터뷰 시도를 포기합니다. 그리고 이를 촬영한 트로피 샷을 배경으로 엔딩 크레딧이 올라오며 영화는 끝이 납니다.

진짜 전쟁 방불케하는 시가전 볼만
이 영화에서 기억에 남은 장면은 영화 중반부 주유소에 들렀을 때 리와 제시가 나눈 대화 장면입니다. 영화에서 리를 닮고 싶어하는 23세의 신출내기 사진기자 제시는 디지털 대신 필름 카메라를 고집합니다. 그것도 흑백 사진으로. 제시의 재능을 알아본 리는 수십 년 넘게 전장을 누빈 자신의 경험을 전수합니다.
종군 사진기자는 비극적 죽음을 눈앞에 두고 냉정한 기록자로 남아야 하는 걸까요?. 제시는 리에게 묻습니다. “내가 사진을 찍다가 총에 맞아 죽는다면 그 순간도 사진을 찍을 건가요?” 리는 대답을 얼버무립니다. 영화 중반의 이 문답 장면은 영화의 끝이자 절정부의 장면에 현실로 나타납니다. 그리고 워싱턴에 들어가기 전 서부 연합군 기지에서 리는 평생 멘토로 삼았던 언론계 선배 새미의 시신 사진을 삭제합니다. 그가 지켜왔던 직업 윤리상 시신 사진은 피사체의 존엄을 세상에 남기는 기록 행위입니다. 그러나 가장 가까웠던 이의 죽음 앞에 리의 냉철함은 흔들립니다.
이 영화의 하이라이트를 꼽는다면 마지막 후반부가 될 것입니다. 그중에서도 워싱턴 D.C에서 연방군과 경호대 그리고 서부군의 시가전 장면이라 할 것입니다. 헬기에서 야간에 침투하면서 찍은 샷과 장갑차 곡사포와 탱크의 포격 장면 등은 실제 시가전이 벌어진 듯한 느낌을 느끼게 합니다. 연출 또한 돋보입니다. 제작비가 5,000만 달러나 썼다는 이유가 바로 마지막 후반부 이 장면 때문일 거란 추측이 듭니다.

블록버스터급 영화 찍는 독립영화사
영화의 감독이자 각본가인 알렉스 가렌드는 전작 ‘멘’(2022)으로 관객들에게 깊은 인상을 줬습니다. ‘독립영화’ 배급사로 유명한 A24는 지금까지 제작한 영화 중 가장 많은 돈(5,000만 달러)을 투자했다고 합니다. 나름 블록버스터급 영화인데 카메라의 앵글을 전선을 따라가는 종군기자들의 동선으로 좁혀 비용을 아꼈습니다.
영화에 관심이 많은 분은 아시겠지만 이 영화의 배급사인 A24는 미국 독립영화계의 떠오르는 신흥 강자입니다. 글로벌 투자회사 구겐하임 파트너스에서 투자금을 받아 A24 필름스로 시작했습니다. 2016년까지 회사명을 그대로 쓰다가 현재는 A24로 쓰고 있습니다.
영화 설정상 주인공이 종군기자라 영화의 주요 전투 장면마다 스틸컷으로 제시가 찍은 흑백사진이 나옵니다. 이 장면들도 이 영화의 묘미 중 한 부분입니다. 현장의 절박감과 고통, 죽음의 공포가 잘 표현된 사진들입니다.
목숨을 걸고 전쟁 지역을 누비며 진실을 알리는 영화 속 주인공들 덕분에 세상 사람들은 전쟁의 참상과 비극적인 진실을 알게 됩니다. 이동진 평론가의 말을 빌려 ‘찍다’ 와 ‘쏘다“ 가 모두 영어로 ’shoot’ 이라는 사실 또한 아이러니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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