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도대체 무슨 짓을 하고 있는 거지?

[박상욱의 스크린 너머의 리얼리티] 폴 해기스 감독의 영화 ‘크래쉬’ 아카데미 작품상에 빛나는 영화 교통사고 둘러싼 인종간 갈등 은유 가해자, 피해자 구분되지 않는 관계 갈등의 다인종 사회에서 사랑이 해법?

아카데미상 수상 감독 폴 해기스.
아카데미상 수상 감독 폴 해기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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폴 해기스가 던진 묵직한 주제

19년 전 <크래쉬(Crash 2006)>라는 제목의 미국 영화가 우리나라에서 개봉을 했었다. 영화가 개봉했을 당시 헐리우드 톱스타들이 출연하는 영화로도 눈길을 끌었지만 이 영화의 각본과 연출을 맡은 폴 해기스의 이름을 보고 눈길이 먼저 갔다. 폴 해기스는 <밀리언 달러 베이비>의 각본가이기도 하다. 명성에 더해 제 77, 78회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수상까지 했으니 연타석 홈런을 친 각본가 겸 감독이었다. 더군다나 당시 호평받았던 ‘브로크 백 마운틴’을 제치고 최우수작품상을 거머쥐었다.

도대체 얼마나 훌륭한 각본이길래? 영화를 보고 난 뒤, 역시 영화의 힘은 뭐니 뭐니 해도 훌륭한 각본에서 시작됨을 재확인할 수 있었다. 한 마디로 영화 <크래쉬>는 감동과 긴장, 그리고 여운까지 절묘히 맞물려 급박히 돌아가는 묵직한 영화라 할 수 있다.

특히 이 영화는 트럼프가 미국의 대통령이 된 후 요즘 한창 이슈인 ‘인종 갈등’에 관해 이야기 하고 있다. 영화에서는 사람들이 흔히 얘기하는 흑백 인종간 문제를 넘어 아랍인과 히스패닉, 동양인 등 유색 인종들 간의 갈등으로 더욱 확대, 심화해 그리고 있다. 인종 간의 차별과 거기서 비롯된 차이, 소외, 오만, 편견 등의 문제는 더 이상 다인종 국가인 미국만의 일이 아니다. 이제는 순혈통주의를 부르짖을 수 없으며, 또한 인구감소 현상과 더불어 1, 2차 산업 현장의 노동자들 대부분이 외국인들로 채워지는 대한민국에서도 주의깊게 살펴봐야 할 주제다.

영화 '크래쉬'의 포스터. 가운데 그레이엄 형사역을 맡은 돈 치들. 오른쪽은 산드라 블록.
영화 ‘크래쉬’의 포스터. 가운데 그레이엄 형사역을 맡은 돈 치들. 오른쪽은 산드라 블록.

영화는 미국 LA근방 외곽 도로에서 발생한 교통사고 현장에서 시작된다. 사고 현장에 도착한 흑인 형사 그레이엄(돈 치들)은 현장에 나뒹구는 낡은 나이키 스니커즈 한 짝을 발견한다. 그리고 영화는 일그러진 그레이엄의 얼굴로부터 36시간 전의 LA로 돌아간다. <크래쉬>에는 총 15명(여덟 커플과 형사 그레이엄)의 이야기가 맞물려 돌아간다. 주인공은 따로 없다. 백인 부부 릭과 진, 흑인 부부 카메론과 크리스틴, 백인 경찰 라이언과 핸슨, 이란인 파라드와 히스패닉 대니얼, 흑인청년 피터와 앤쏘니, 한국인 조진구와 그의 아내 등 여덟 커플과 흑인형사 그레이엄의 이야기가 우연과 필연으로 맞물리고 뒤엉켜 돌아가며 서로 충돌한다.

영화 크래쉬 예고편.

가해자와 피해자 구분할 수 없는 인종갈등

이 영화는 이런 말을 전하고 싶어하는 듯하다. 인종간의 갈등과 그로 인해 벌어지는 일들에 있어서 어느 누구도 일방적인 가해자나 피해자가 될 수 없다는 것을. 영화에서 서로가 서로에게 가해자이며 피해자들이다. 또한 선한 사람이라고 생각했던 사람이 악한 일을 자행하고 악인 이라고 생각했던 사람이 선한 일을 행한다. 고로 악인도 선인도 없다.

그런데 영화의 메시지는 인물들 내면의 심리처럼 복잡미묘하지도 않다. 각각의 충돌을 통해 ‘용서와 화해’를 말한다. 이 용서와 화해를 통해서 서로가 진정한 사랑을 할 수 있을 거라며 엔딩 씬(Ending Scene)에 눈이 내리는 LA를 보여준 것일까? 내가 알기로는 LA는 제일 추울 때 평균 기온이 10도 안팎이다. 눈이 내리지 않는 곳이다.

영화는 다시 36시간 후의 LA교외 교통사고 현장으로 돌아온다. 배우 돈 치들이 분한 형사 그레이엄은 현장에 떨어진 낡은 스니커즈 운동화의 흔적을 따라걷다가 한 흑인 청년의 시체를 마주한다. 그 청년은 바로 그의 어머니가 그토록 찾던 자신의 동생이었다. 백인 사회에서 성공하기 위해 가족으로부터 스스로 소외를 선택한 그이지만, 지금 그에겐 동생의 시체와 함께 “동생을 죽인 살인자는 너”라는 어머니의 비난만 남아있다.

동생의 시체를 수습하고 다시 찾은 사고 현장, 그곳에서 동생이 분신처럼 지니고 다니던 여행자들의 수호성인 ‘성 크리스토퍼’ 성인의 성물을 발견한다. 그레이엄이 좀 더 이해하고 관심을 가졌더라면 어쩌면 그의 동생은 살 수 있지 않았을까. 이것은 단지 그레이엄의 문제만은 아니다. 인종적 편견의 중심에 서있는 우리에게 던져진 후회 섞인 질문이기도 하다.

영화를 보면서 등장하는 인물들의 각자의 성격과 그로 인해 벌어진 사건들을 통해 ‘충돌과 분노’를 떠올렸다. 사실 ‘충돌과 분노’는 우리가 살면서 흔히 접하는 개념이다. 20년 전에 비해 20년이 지난 지금 내 자신이 느끼는 우리 사회의 ‘충돌과 분노’는 더 극명해졌다는 생각이다. 물론 그만큼 더 서로 이해하고 사랑하자하는 사회적 운동이 활발한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이 세상은 따뜻한가?

영화 '크래쉬'의 한 장면.
영화 ‘크래쉬’의 한 장면.

충돌은 우연히 일어나고 갈등해소는 더디고

이 영화에서 갈등 해소를 위한 진정한 소통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가를 극명하게 보여주는 장면이 있다. 흑인 차강탈범인 앤소니와 피터에 의해 자신의 차가 강탈되는 위기에 처하자 텔레비전 방송국의 흑인 PD인 카메론은 이들과 과감하게 대결한다. 그는 경찰차가 출동하자 그 중 앤소니 만을 옆자리에 태운 채 현장을 빠져나와 질주한다. 결국은 백인 경찰들에 의해 포위되지만 카메론은 막무가내로 경찰들에게 욕설로 지금까지의 모욕적인 인종차별 처사에 대해 항의하기 시작한다. 백인 경찰 핸슨이 인간애를 발휘한다. 경찰 경력은 약하지만 의협심이 강한 젊은 경찰 핸슨은 카메론을 자신의 친구라고 우기며 그를 보호해 준다. 카메론은 결국 경고처분만 받고 그 자리에서 무사히 나온다. 그렇지 않았으면 카메론은 경찰들의 총알 세례로 억을한 죽음을 당했을지 모르는 일이었다. 이 장면은 인종 차별을 배제한 진정한 인간관계를 보여주는 장면이다.

그러나 핸슨의 또다른 장면은 신뢰를 바탕으로 한 인간에 대한 진정한 믿음과 이해가 얼마나 어려운 일인가를 극명하게 대비시켜 보여준다. 핸슨은 백인 구역의 동네를 순찰하다가 흑인 수사관 그레이엄의 가출한 동생을 길거리에서 태워준다. 두 사람은 인종을 떠나 진정한 이해와 화해의 제스처로 이야기를 편안하게 나눈다. 그러다가 옆자리의 흑인이 웃자 핸슨이 “그 웃음이 나를 비웃는 것이 아니냐”고 경계의 빛을 보내자, 흑인은 “사람 사는 세상이 웃긴다”고 대답한다.

대답과 동시에 흑인이 주머니를 뒤져 무엇인가를 꺼내려고 하자 핸슨은 순간적으로 방어기제가 발동해 얼떨결에 총으로 그를 쏘아 죽이고 만다. 그러나 죽은 흑인 청년의 손에는 총이 아니라 ‘성 크리스토퍼’ 조각상이 들려져 있었던 것이다. 당황한 핸슨은 청년의 시체를 고속도로 변에 유기하고 차는 불태우고 현장을 빠져 나간다.

마지막 장면에 죽은 흑인의 형 그레이엄 수사관이 길바닥의 흙 속에서 ‘성 크리스토퍼’ 조각상을 발견하고 그것에 입맞춤하는 것은 구원과 화해의 메시지에 대한 은유적 표현이라 할 수 있다.

머잖아 맞게 될 다인종 사회를 준비하며

미국의 작가, 사회운동가이자 페미니스트인 Bell hooks는 「사랑이 없으면 해방도 없다」라는 글에서 각계 각층의 사람과 모든 인종과 더불어 살아가는 즐거움을 아는 사람들, 원래부터 인종차별에 반대하는 기질을 지닌 사람들에게 ‘공개선언’을 요구한다. 그래야 언젠가 모습을 드러낼 ‘사랑의 다인종 사회’가 승리를 거둘 수 있다고 말한다.

영화〈크래쉬〉는 제목 그대로 전반에서 중반까지는 인종 간의 충돌과 갈등의 에피소드가 제시되지만 후반부로 가면서 구원과 화해의 장면들이 펼쳐진다. 우리가 서로에 대한 편견과 차별의 관습을 버리고, 새로운 마음가짐으로 다양한 사회 구성원들 간의 입장, 정체성, 경험, 역사에 관심을 갖고 이해하고 존중한다면, 각자의 뚜렷한 색깔이 한데 어우러져 새로운 하나가 되는 무지개 같은 평등하고 조화로운 사회를 만들어갈 수 있을 것이다.

글쓴이

박상욱 영화 칼럼니스트

박상욱은 그룹 ‘동물원’의 코러스로 대중음악 활동을 시작하고 김창기 밴드에서 기타 연주와 코러스로 활동을 했다. 졸업 후 직장생활을 하다가 뮤지컬 제작에 참여하여 ‘이석준의 뮤지컬 이야기 쇼’라는 소극장 토크쇼를 4년 동안 공연, 제작을 했을만큼 뮤지컬도 상당기간 일을 했었다. 드라마 OST 가창도 했을만큼 음악 활동을 했지만, 뒤늦게 어렸을때 꿈 이었던 영화를 대학원에서 공부하고 현재는 다큐멘터리 독립연구자로 활동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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