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자 아베’, 극우정치 펼까 좌파정치 펼까
마쓰시타정경숙에서 정치 배워 TV진행자 거쳐 정계진출 10선 비세습 의원 아베 내각서 각료·당 간부 지낸 ‘여자 아베’ 자위대 명기하는 헌법개정 주장 적극적 재정정책과 다양한 복지정책 제시도
대중 인기 바탕 둔 비세습 정치인
4일 치러진 일본 자민당 총재 선거에서 결선 투표 끝에 승리한 다카이치 사나에 전 경제안보담당상은 탄탄한 경력을 쌓으면서 일본 정계 ‘유리천장’을 뚫어온 여성 정치인이다.
일본 중의원(하원)은 여성 의원 비율이 15% 정도에 불과할 정도로 남성이 압도적으로 많은데, 다카이치 신임 총재는 1990년대 초반 처음 중의원에 입성해 총 10회 당선됐다.
그는 또 자민당 유력 인사 중 드문 ‘비세습 정치인’이다.
아베 신조, 아소 다로, 기시다 후미오 등 전직 총리와 이시바 시게루 현 총리는 모두 세습 의원이다. 이번 선거 주요 경쟁자였던 고이즈미 신지로 농림수산상, 하야시 요시마사 관방장관도 유명 정치인의 아들이다. 이들은 지역 기반·자금·지명도를 물려받았지만, 다카이치 총재는 평범한 맞벌이 가정 출신이다.
그는 1961년 3월 혼슈 서부 오사카 인근 나라현에서 출생했고 국립대인 고베대에서 경영학을 전공했다. 대학 졸업 후에는 정치인 양성기관인 ‘마쓰시타 정경숙’에 들어갔다. 제1야당 입헌민주당 노다 요시히코 대표, 자민당 오노데라 이쓰노리 정무조사회장 등이 마쓰시타 정경숙 출신이다.
그는 TV 프로그램 진행자를 거쳐 1993년 중의원 선거에서 당선되며 처음 국회의원 배지를 달았다. 아베 전 총리와 ‘국회 입성’ 동기다.
1996년 자민당에 입당한 뒤에는 중의원 선거에서 한 차례 낙선한 것을 제외하고는 모두 나라현 지역구에서 당선됐다. 이번 선거 소견 발표 연설회에서는 자신을 ‘나라의 여자’라고 소개했다.
‘여자 아베’가 되기까지
다카이치 총재는 아베 전 총리가 처음으로 집권했던 2006년 내각부 특명담당대신으로 처음 입각했다. 그는 본래 아베 전 총리와 함께 당내 파벌 세이와정책연구회 소속이었으나 이후 파벌에서 나와 ‘무파벌’ 의원으로 활동했다.
2012년 당시 야당이던 자민당 총재 선거에 아베 전 총리가 출마하자 지원에 나섰던 그는 그해 12월 아베 전 총리가 재집권하자 당 요직인 정무조사회장에 기용됐다.
이후 아베 내각에서는 두 차례 총무상을 지냈다. 이어 2021년 스가 요시히데 전 총리 후임을 뽑는 총재 선거에 출마했지만 기시다 전 총리, 고노 다로 전 디지털상에 이어 3위로 낙선했다.
그러나 아베 전 총리의 전폭적 지원을 받아 1차 투표에서 국회의원들로부터 114표를 얻으며 선전했다. 당시 선거에서 1위였던 기시다 전 총리의 의원 득표수가 146표였다. 그는 기시다 내각에서는 자민당 정무조사회장에 이어 경제안보상을 맡았다.
다카이치 총재는 초선 의원 시절이던 1995년 3월 중의원 외무위 질의를 통해 일본의 전쟁 책임을 부정하면서 일찌감치 일본 우익 세력으로부터 ‘눈도장’을 받았다. 또 아베·기시다 정권에서 각료로 재임하면서도 태평양전쟁 A급 전범이 합사된 야스쿠니신사를 정기적으로 참배하는 극우 행보를 보였다.
이 때문에 과거 총리 시절 야스쿠니신사를 참배한 바 있는 우익 성향 아베 전 총리에 빗대어 ‘여자 아베’로 평가받기도 했다. 아베 전 총리는 그를 ‘보수파의 스타’로 칭한 바 있다.
그는 지난해 9월 자민당 총재 선거에서도 “야스쿠니신사는 매우 소중하게 생각해 온 장소로 국책(國策·국가 정책)에 따라 숨진 이들에게 계속 경의를 표하고 싶다”며 참배를 계속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다카이치 총재는 ‘삼수’에 나선 이번 선거에서는 자신을 ‘온건 보수’라고 주장하면서 강경 보수 색채를 희석하는 데 힘을 기울였다. 야스쿠니신사 참배와 관련해서는 “적절히 판단할 것”이라며 다소 유보하는 태도를 나타냈다.
하지만 시마네현의 ‘다케시마(竹島·일본이 주장하는 독도의 명칭)의 날’ 행사에 참여하는 정부 대표를 차관급에서 장관으로 높여야 한다고 주장하는 ‘본색’을 드러내기도 했다.
그는 소셜미디어(SNS)를 잘 활용하는 보수 논객으로도 잘 알려졌다. 엑스(X·옛 트위터) 계정 팔로워 수는 약 96만 명이다. 이번 선거에서 가장 강력한 경쟁자였던 고이즈미 농림수산상의 엑스 팔로워 수는 15만 명 수준이다.
극우 정치 펼칠까, 좌파정치 펼칠까
그녀는 아베파 출신답게 ‘강한 일본’을 강조하고 있어 적극적인 안보·경제 정책을 펼 것으로 전망된다. 헌법 개정 추진, 재정 지출 확대 등 아베 신조 전 총리의 정책을 상당 부분 계승할 것으로 보인다.
다카이치 총재는 이번 선거를 위해 개설한 홈페이지에서 ‘일본 열도를 강하고 풍요롭게’를 표어로 제시하고 “일본의 저력으로 성장의 미래를 열자”고 제안했다.
그는 자민당 총재 선거가 본격적으로 시작된 지난달 22일 연설회에서는 “일본의 옛 전통을 지킬 것”이라며 “자위대를 헌법에 명기하겠다”고 역설했다.
다카이치 총재가 언급한 강한 일본, 전통, 개헌은 모두 일본 보수파들이 강조하는 개념이자 정책이다. 특히 헌법에 자위대 개념을 명기하는 것은 보수 세력 숙원으로 꼽힌다.
일본 헌법 제9조는 1항에 전쟁과 무력행사의 영구 포기, 2항에 육해공군 전력 보유 및 국가의 교전권 부인에 관한 내용을 각각 담고 있다.
이 조항에 따라 실질적 군대인 자위대가 헌법에 위배된다는 지적이 제기돼 왔으며, 자민당은 헌법에 자위대를 명기하는 개헌을 추진해 왔다. 이전부터 방위력과 외교력 강화를 강조한 다카이치 총재는 이번 선거에서도 방위 관련 연구·개발비와 무기 조달 비용을 확실히 늘려 나가겠다고 약속했다. 그는 일본 정부의 정보 수집 능력 강화를 위해 ‘국가정보국’을 만들겠다는 공약도 제시했다.
이번 선거에서 주요 쟁점이 된 외국인 정책과 관련해서는 외국 법인과 개인의 토지·건물 취득 규제를 강화하고, 관련 정책 총괄 조직을 신설하겠다고 말했다.
안보 측면에서 강경 보수 성향인 그는 이번 선거에서는 경제 정책을 알리는 데 주력했고, 다른 후보들과 차별화된 지점도 이 부문이었던 것으로 평가됐다.
다카이치 총재의 경제 정책 골자는 ‘책임 있는 적극 재정’이다. 그는 반도체를 포함한 경제안보 분야 투자를 확대하는 한편 고물가 대책에서 재원이 부족할 경우 적자 국채 발행을 용인하겠다고 밝혔다. 그는 미래 세대에 전해질 가장 큰 채무는 ‘빚’이 아니라 ‘성장 손실’이라면서 적극 재정에 나서야 한다고 호소했다.
아베 전 총리가 경기를 부양하기 위해 금리를 매우 낮은 수준으로 유지하고 재정 지출을 확대했던 것처럼 대담한 공적 투자로 성장을 주도하겠다는 자세를 나타낸 것이다.
아울러 다카이치 총재는 금융 정책에서도 방향성은 정부가 정하고, 중앙은행인 일본은행은 그 방향을 실현할 수단을 택해야 한다는 입장을 표명했다.
그는 작년 총재 선거에서 일본은행의 기준금리 인상에 명확하게 반대했던 만큼 총리 취임 이후 일본은행을 견제하며 금리 인상을 억제할 가능성이 있다.
이외에 저소득층 지원을 위한 ‘급부형 세액공제’ 제도 도입, 아이 돌봄 서비스 이용료 일부 세액공제, 보육 서비스 제공 기업에 대한 법인세 감세 등 다양한 민생 대책도 추진될 것으로 관측된다.
한편, 다카이치 총재는 후보 시절 요미우리신문과 인터뷰에서 “지금 정치에는 속도감이 필요하다”며 “가능하다면 연립 정권 확대를 추진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정책 실현을 위해 오는 15일로 예상되는 국회 총리 지명선거까지 약 열흘간 일본유신회, 국민민주당 등 일부 야당과 정책 협조, 정계 개편 등을 논의할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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