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250억불? 한미 관계, 새로운 변곡점에 서다
대미 상품수지 평균 흑자액 258억달러 연 250억 투자 요구, “흑자액 다 투자” 뜻 韓대기업들, 이미 美에 투자 올인 中 우린 재정과 민간 투자 나눠 ‘잘못 약속’ EU나 일본처럼 민간투자도 다 포함시켜야 이제 전략적 자율성 위한 국가전략 대전환을
일본보다 훨씬 못한 관세협상안
한미간 3,500억달러 관세협상이 또 하나의 변곡점을 지나고 있다. 8년에 걸쳐 매년 250억달러를 ‘투자’하고, 나머지 1,500억 달러는 대출보증을 서라는 안이 등장해서다. 흔히 알려진 것처럼 일본은 5,500억 달러의 1~2% (55억~110억 달러)만 직접투자이고 나머지 98~99%는 대출과 대출보증에 합의했다는 설이 맞다면, 이 제안 역시 오히려 일본보다 훨씬 못한 조건임에 분명하다.
한미 관세협상을 두고 대통령이 직접 ‘교착’이라는 표현을 사용했으니 여전히 타결전망은 불확실하다. 특히 이번 APEC 한미정상회담에서 오히려 트럼프가 서둘러 협상을 마무리짓기를 원하는 모양새다. 한국측 협상 관료들이 잠시 서두르는 낌새를 보였지만 여전히 불확실하다.
‘대미 무역수지 흑자와 대중 무역수지 적자
한미관세협상의 전망과 그 리스크를 정확히 이해하기 위해서는 현 단계 한미 경제관계의 구조적 특성을 먼저 이해해야 한다. 여기서는 수출과 투자에 주로 집중해서 살펴보기로 한다.
먼저 한국의 수출경제는 2020년대 들어 지역적으로 중국, 동남아에서 미국으로, 따라서 경상수지흑자 역시 거의 전적으로 미국시장에 의존하고 있다.



<표 1>에 보듯이 2024년 한국의 경상수지흑자 1,182억 달러 (2023년 878억 달러)가운데 대미 경상수지흑자가 1,089억 달러(2022년 590억 달러, 2023년 825억 달러)를 기록, 경상수지 흑자의 미국 비중이 압도적이다.
그 결과 20세기 들어 한국경제를 견인해온 이른바 ‘안미경중’에서 ‘경중’은 사실상 해체되었다. 2021년 이후 한국의 대중 무역 및 상품수지는 마이너스로 전환되었다.


그러는 과정에서 한국 서비스수지의 만성적자는 여전히 불변이고, 최근 들어 거의 모든 무역상대국으로 확대되고 있다. 특히 대미, 대EU 서비스 수지 적자는 일시 개선되다가 다시 악화되고 있다.

여기서 <그림 6>은 역대급 흑자를 기록한 2024년을 경상수지 흑자 역대 1위를 기록한 2015년과 비교한 것이다. 그 결과를 보면 2015~ 2024년 10년 기간 동안 한국의 상품수지는 오히려 -16.8% 감소했고, 서비스수지 적자는 -62% 확대되었으며, 경상수지는 -5.8% 감소했다. 대미경상수지 흑자는 이 기간 162.4% 증가한 반면 대중 적자 -163.1% 증가했다. 그러나 해외 증권투자자의 증가로 인한 본원소득 그 중 투자소득 수지가 498%증가했음은 아주 특기할 만하다.

해외투자는 거의 미국에 집중...증권투자도
그 다음은 투자를 보기로 한다. 한국의 해외투자 역시 마찬가지로 2020년 이후 거의 전적으로 미국으로 집중되고 있으며, 중국, 동남아, EU에 대한 투자는 지속적으로 감소하는 추세다. 내국인의 해외증권투자는 외국인의 그것과 비교해 거의 3배 정도 더 많다.(자료: 수출입은행, 한국은행)


한국은 순대외 금융자산(자산-부채) 1조 달러 시대를 열었다(일본 3조 달러). 하지만 우리는 동시에 심각한 해외자본유출 상태를 맞이했다. 2024년 한국의 해외직접투자가 486억 달러를 기록한 반면 외국인 국내투자는 152억 달러에 불과했다. 또 한국의 해외 증권투자는 723억 달러에 달하는데, 외국인의 대한 증권투자는 220억 달러에 불과했다. 2023년 해외직접투자 345억 달러 중 대미 투자가 298억 달러를 차지한 반면 외국인의 대한 직접투자 250억 달러 중 미국의 대한투자는 26억 달러에 불과했다. 2023년 한국의 해외증권투자 454억 달러 중 대미투자는 303억 달러에 달하는 반면 2023년 외국인 대한 증권투자 397억 달러 중 미국의 대한증권투자는 155억 달러에 불과하다. 즉 한국의 해외투자의 압도적인 부분은 대미투자가 차지하는데, 한국의 대미 직접투자에 비해 미국의 대한 직접투자는 심각한 불균형 상태다. 한국의 해외 증권투자 역시 빠르게 증가해서 직접투자를 한참 추월했는데 이 역시 미국에 거의 편중되어 있다.
결국 수출 및 투자(직간접)의 거의 전 분야에 걸쳐 미국 편중이 가파르게 심화되는 추세다. 중국시장과의 디커플링에 비례해 미국시장 의존도 심화되었다는 말이다. 하지만 2021년 이후의 대미흑자는 대미투자급증에 따른 중간재(부품)와 자본재(설비, 기계) 즉 그 비중이 각각 50%, 10% 수준으로 추정되는데 바로 여기에서 비롯되는 것으로 보인다. 그리고 그 흑자부분도 거의 대부분 미국내에 재투자되고 있다.

대기업의 친미 투자전략과 ‘탈중입미’
위 <표 2>는 2012년부터 2024년까지 한국의 대미투자 흐름을 한국은행 자료에 근거 재구성한 것이다. 2016년까지 대미투자는 제조업 중심으로 완만히 진행되었음을 보여준다. 뒤이어 2019년까지는 미중 1차 무역전쟁을 전후해 한국의 글로벌 대기업들이 생산 및 공급망 다변화를 모색하는 시기였다. 2020년 코로나 위기이후 미국의 칩스법(반도체 칩과 과학법)이나 IRA등 강력한 투자유인책으로 인해 대규모 투자가 준비되고 실행되기 시작했다. 반도체, 배터리, 전기차, 태양광, 재생에너지 부문 등을 중심으로 미국의 보조금 인센티브를 따라 투자가 이루어졌다.
위 <표 2>에 따르면 2021년 이후부터 200억 달러 이상 규모의 대미투자가 이어지고 있다. 이렇게 2020년대 이후 ‘탈중입미(脫中入美)’ 러시라 할 만한 대미 대규모 투자가 계속된 이유는 미국의 보조금과 ‘프렌드쇼어링’과 같은 투자 유인 때문만은 아닐 것이다. ‘미중 전략경쟁’이라는 지정학적 요인으로 인해 글로벌 공급망 재편과 미국내 생산기지 확보라는 한국계 글로벌 대자본의 ‘친미’ 투자전략이 맞물린 결과였다고 해석될 만하다.
한국의 기록적인 대미 경상수지흑자는 마찬가지로 기록적인 대미 투자러시와 밀접한 상관관계에 있다고 볼 수 있다. 이는 트럼프 행정부의 관세압박과는 별개로, 200억 달러 대의 막대한 규모의 대미투자가 이제 그 고점에 도달했는지 판단하기에 아직은 시기상조다. 그리고 그 전망 역시 마찬가지다. 이는 유럽쪽에서도 이제 ‘다극화’는 ‘하나의 팩트(fact)’라는 평가(2024년 뮌헨 안보회의 보고서)가 제시되는 상황에서 한국자본의 글로벌 전략은 여전히 ‘일극’ 쪽을 향하고 있기 때문이다.
‘연 250억 달러’ 투자, 이 숫자는 어떻게 나왔을까
그러면 다시 한미 관세협상으로 돌아가 보자. 그런데 여기서 한 가지 짚어 둬야 할 문제가 있다. 통계상 수치의 불일치다. 이는 한미뿐만 아니라 한국내에서도 기관별 예컨대 관세청과 한국은행 등에서도 통계수치가 적지 않은 차이를 보인다는 점이다. 경상수지뿐만 아니라 직접투자(FDI)에 관련해 많게는 수십 억 달러의 편차를 보이기도 한다. 미 상무부의 경제분석국(BEA)은 삼성의 대미투자와 관련, 예컨대 삼성의 네덜란드 자회사가 대미투자를 한 경우 BEA는 법인의 소유구조를 중심으로 이를 네덜란드의 투자로 보지만 한국은행 통계는 한국의 대미 직접투자로 분류한다.
아래 <표 3>은 2013년 -2024년 한국의 대미 상품수지 흑자액을 챗GPT를 통해 표로 정리한 것이다. 상품무역만 표시한 것이라 경상수지흑자는 아니다.

위 상품수지 흑자액의 평균값을 구해보면 약 258억 달러가 나온다. 연 250억 달러씩 8년을 투자해 총 2,000억 달러를 맞추라는 게 미국의 요구라면 우연히도 이 금액은 지난 10여 년간 한국의 연간 대미무역(상품) 흑자액과 사실상 거의 같은 수치다. 물론 여기에 대출보증 1,500억 달러는 별도다. 그래서 보자면 위 자료에 근거한 흑자액 전부를 다시 미국에 재투자하라는 말과 같다. 이는 기존의 ‘달러 리사이클링’ 즉 무역흑자액으로 미 재무성 채권을 구입해 다시 흑자액이 미국으로 환류하는 그것과는 분명 다르다. 미국의 재투자 요구는 기업이건, 인프라건 미국이 지정한 투자처에 정부재정으로 매년 상품무역에서 남은 금액 전부를 송금, 즉 투자하라는 말과 마찬가지다.
작성된 투자계약서가 없으니 그 정확한 투자 조건은 현재 알 수 없다. 단지 일본의 투자약속과 관련해 그저 알려진 것만 놓고 본다면 투자원금이 회수될 때까진 투자수익을 50 대 50으로 배분한다는 정도이다. 투자 실패시 책임은 한국, 즉 이 조건대로라면 한국 정부가 공적 자금으로 지게 된다. 그리고 일본의 경우 투자원금이 회수된 이후에는 수익의 90%는 미국이 가진다.
1,500억 달러 대출보증, 별도 250억 달러 8년(현금)선납 방식은 얼핏 완화된 요구처럼 보이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다. 오히려 외환보유고에 있어 일본의 1/3에 불과한 한국에게 그것은 일본보다 더 혹독한 조건이다. 지구상에 이러한 ‘폭력적인’ 요구를 받고 있는 경우는 한, 일 그리고 EU외에는 없다.
엉성한 투자약속...최악의 조건과 초고위험도
하지만 그것도 자세히 뜯어 보자면 EU의 6,000억달러 투자약속은 100% 민간기업의 투자를 대략 합산한 수치다. 유럽기업이 대략 매년 1,000억 달러 전후로 이미 미국에 투자하고 있는 상태에서 말이다. 일본은 국제협력은행이라는 국책은행을 내세워 민간은행과 기업으로부터 자금을 끌어 모으는 방식이다. 투자 실패시 대출보증을 선 일본정부에게 부담이 없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일본 정부재정을 투입하는 것은 아니다.
반면 한국의 투자약속은 100% 정부 재정이다. 바로 그렇기 때문에 한국의 외환보유고가 소환되고 제2의 외환위기 리스크설(說)이 등장하는 것이다. EU, 일본과 비교해 터무니없이 위험하고 자해적인 방식이 바로 한국형인 것이다.
필자로선 한미협상 초기 어디서 이런 방식의 투자약속을 설계했는지 알지 못한다. 하지만 위에서 내가 제시한 한국은행의 자료에 따르면 한국의 글로벌 자본은 2021년이후 매년 200억 달러 이상을 미국에 직접투자(FDI)하고 있다. 그런데 3,500억 달러와는 별도로 한국 기업들은 1,500억 달러의 별도의 추가 투자를 하겠다고 발표한 바 있다. EU나 일본의 경우라면 미국에 약속한 투자총액에 포함되었을 수치들이다.
현재와 같은 막대한 규모의 대미 투자가 향후에도 계속될 것인지 여부는 현재 판단하기 어렵다. 지금의 ‘탈중입미’식의 대미투자 러시가 지속가능한 것인지도 말이다. 하지만 그 모든 것에도 불구하고 오롯이 국가재정을 투입해 미국에 매년 250억 달러 아니 그보다 적은 금액이라고 ‘강요된’ 투자를 이행하는 것은 초(超)고위험을 자초하는 일이다. 순전히 현안, 즉 한미간 관세협상만을 놓고 볼 때 이미 대안은 위에서 시사한 바 있다.
이 못지않게 중요한 것은 우리의 안보뿐만 아니라, 경제 또한 전면적으로 미국에 의존하게 되는 일이다. 이미 이 경향은 한참 진행 중이라고 봐야 한다. 문제는 이 경향과 세계의 다극(多極), 다중심화(多中心化) 경향이 상충할 경우다. 미국의 일극체제를 전제한 글로벌 한국 기업의 투자전략 역시 마찬가지로 ‘하이 리스크’를 안고 있다.
‘계란을 한 바구니에 다 담지 말라’는 것은 증권가의 오래된 위험분산 원칙을 말하는 속언이다. 하물며 국가전략은 말해 무엇 할 것인가. 전략적 자율성을 향한 국가전략의 대전환이 물론 답이다. 하지만 당장 그것이 안 된다 할 때, 한미 관세협상은 우리의 미래를 시험할 그런 거대한 ‘리트머스 시험지’ 같은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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