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만금’ 성장의 허상, 지배당하지 않을 자격

[경북대 민교협 시사칼럼] 정부, 새만금신공항 계획 취소訴 패소 새만금, 60년간 ‘낙후 전북’ 구원의 상징 애초에 잘 진행되기 어려운 사업인데도 지역언론 등 ‘성장연합’ 세력에 세뇌당해 당연한 것 의심하고 달리 생각할 줄 알아야

취소소송 판결이 나오기 사흘전인 지난 9월 8일 서울 서초구 행정법원 앞에서 열린 새만금신공항 기본계획 취소소송 인용촉구 기자회견에서 시민 등 참가자들이 구호를 외치고 있다. 사진= 연합뉴스
취소소송 판결이 나오기 사흘전인 지난 9월 8일 서울 서초구 행정법원 앞에서 열린 새만금신공항 기본계획 취소소송 인용촉구 기자회견에서 시민 등 참가자들이 구호를 외치고 있다. 사진= 연합뉴스
  • 2025년 2월부터 <더 칼럼니스트>와 <경북대 민주화교수협의회>는 공동 기획으로 다층적 차원에서 한국 사회를 분석하는 연재를 시작합니다. 정치학·사회학·언론학·문학·경제학·교육학·공학을 전공하는 다양한 연구자들이 참여하여 지역의 시선에서 우리 사회의 쟁점에 대한 진단을 제시하고 민주주의 근육을 강화하기 위해서 시도하고자 합니다. 많은 관심 부탁드립니다.

세뇌 당하기 쉬운 성장논리

내 유년 시절의 추억 한 페이지를 장식하고 있는 것 중 하나가 만화방이다. 학교에서 집으로 가는 길 어딘가에 만화방이 있었고, 또 곳곳에 만화방이 있었다. 당시 즐겨 봤던 만화 장르 중 하나가 오늘날 식으로 말하자면 SF이다. 주로 세계 정복을 노리는 악의 화신에 대항하는 소년이 주인공으로 나오는 내용이다. 그런데 이런 종류의 만화에 흔히 나오는 장면이 있다. ‘세뇌’다. 만화에서 세뇌는 간단하다. 머리에 무슨 기계를 씌우면 세뇌가 되어서 생각하지 못하는 존재가 되고 악당에게 무조건 복종한다. 세뇌는 만화에서 흔한 소재다. 최근 젊은이들에게 큰 인기를 끌고 있다는 ‘진격의 거인’도 기억의 조작이라는 세뇌의 한 방식을 소재로 택하고 있기도 하다. 그런데 세뇌가 만화에서나 존재하는 것은 아니다.

2025년 9월 11일, 서울행정법원은 국민소송인단이 국토교통부를 상대로 낸 새만금신공항 기본계획 취소소송에서 원고 승소 판결을 내렸다. 공항을 만들려는 장소가 조류 충돌 위험이 매우 높고, 갯벌 훼손 등 환경파괴 가능성을 충분히 검토하지 않았다는 것이 판결을 내린 이유다. 아니나 다를까 전북 지역의 일간지와 정치권은 강력하게 반발했다. 국토교통부는 항소를 했다. 전라북도는 국토교통부와 함께 전담 TF를 꾸렸다고 한다. 예상했던 일이다. 전라북도민이거나 전북 지역에 오랫동안 거주했던 이라면 새만금이 전북 지역에서 갖는 의미가 무엇인지 잘 알 것이다.

1987년 12월에 열린 13대 대통령 선거는 대통령 직선제가 부활하고 열린 첫 선거였다. 선거 과정에서 당시 노태우 후보가 전북 지역의 지지를 구하고자 내세운 개발 공약이 새만금 간척이었다. 집권에 성공한 노태우 정부는 사업 추진을 머뭇거렸다. 사실 전두환 정부에서 검토되었다가 경제성 문제로 고려되지 않은 사업이었기에 진지한 공약이라고 보기 어려웠다. 하지만, 전라북도민들은 여기에 낙후 전북을 벗어날 염원을 담았다. 당시 야당 총재였던 김대중은 영수회담에서 새만금 사업의 적극 추진을 요청했다. 결국 1991년에 200억 원의 사업비가 확보되어 방조제 기공식을 갖고 새만금 사업이 시작된다. 당시 내세운 것은 농업식량 생산기지였다. 이해가 가지 않았다. 갯벌과 바다가 가져다주는 수많은 가치와 그것에 기대어 살아가는 이들은 뒤로 하고 그것을 메워서 농사를 짓자고? 왜 여기에 전북 발전의 미래를 담지? 그러나 그 후 새만금은 낙후 전북을 구원해 줄 상징이 되었다.

새만금사업의 민낯

정작 새만금 사업은 처음 시작할 때 세부 계획이나 예산계획도 없었다. 무려 서울의 약 3분의 2에 해당할 정도로 광활한 넓이에도 불구하고. 당연히 잘 진행될 리 만무했다. 몇십 년 동안 숱한 우여곡절을 겪게 되었다. 새만금의 용도도 대통령이 바뀔 때마다 계속 변했다. 대중국 교두보였다가, 동북아의 두바이였다가, 4차산업의 전진기지였던 새만금이 이재명 정부에서는 재생에너지의 허브가 목표로 제시되었다. 앞으로 또 어떻게 바뀔지 모른다.

잊혀지지 않는다. 2006년 4월, 33.9km라는 세계 최장 방조제의 끝 물막이 공사가 완료되던 날 당시 전라북도지사가 득의양양한 모습으로 공사가 완료된 현장에서 만세를 부르던 모습을. 그 후 19년이 지났다. 새만금 방조제 기공식이 시작한 지는 34년이 지났다. 하지만, 약 한 달 전에 발간된 『시사인』 941호에 의하면, 새만금 사업부지의 매립율은 49.2%에 불과하다. 그마저도 전체 부지의 32%를 차지하는 농업용지의 진척률이 81.4%일 뿐, 산업연구용지와 복합개발용지는 10% 미만이다. 새만금개발청은 용지 조성 완료 시점을 2050년으로 보고 있다고 한다. 용지 조성만 60년 동안 진행되는 셈이다. 무려 두 세대에 걸친 시간이다.

그런데, 이는 확실한 것일까? 설사 그 일정이 제대로 지켜진다 치자. 1990년대에 전북의 성장을 새만금에 담아 염원했던 전라북도민들은 그때 어디에 있게 될까? 세계 경제 환경이 변하고, 삶의 패러다임과 노동의 방식이 바뀐 현실에서 그 부지는 무엇을 위한 것이 될 수 있을까? 낙후 전북을 벗어나고자 했던 염원은 당면한 것이었지만, 그 염원은 시작된 지 60년 후에도 달성 여부가 불확실하다는 것. 그것이 새만금 사업의 민낯이다..

누군가는 그럴 것이다. 애초부터 정치권이 적극적으로 나서서 예산을 과감하고 신속하게 투입했다면 달랐을지도 모른다고. 하지만 이런 주장은 구체적 계획과 예산도 없이 무작정 시작했다는 것도, 또한 엄청난 규모의 개발사업인 이상 사회적 갈등이 불가피하다는 것도 외면한 것이다. 다시 말해서 새만금 사업은 처음부터 잘 진행되기 어려운 사업이었다. 그럼에도 전북 지역민들은 새만금 사업을 낙후 전북의 구원자로 여겼다.

새만금 개발 조감도.
새만금 개발 조감도.

‘성장연합’ 세력이 있다

지난 세월 전북 지역의 공론장에서 새만금 사업은 성역이었다. 1990년대 시민단체들의 매립 취소 소송이 제기되었을 때 전북 지역 곳곳에 설치되었던, 새만금 사업의 염원을 담은 현수막에 대한 기억은 여전히 생생하다. 새만금 사업의 찬성은 전라북도민의 자격을 규정하는 기준이었다. 다른 생각을 할 수 없는 것. 이것은 세뇌된 이들의 특성이다.

지역사회학에서 사용되는 용어 중 ‘성장연합’이라는 게 있다. 성장연합은 성장을 목표로 한 지역의 정치·경제 엘리트 연합체이다. 주로 지역의 언론사, 정치인, 관료, 엘리트, 자본가들로 구성된다. 성장연합은 지역에서 토지와 자본, 그리고 정책을 조직하며 성장을 공익인 양 포장해서 헤게모니를 관철시키는 이들이다. 그 과정에서 사회적 동원을 도모하며, 제도적 장치 마련을 시도하고, 지역에 대한 담론적 지배-바로 세뇌-를 수행한다. 그간 새만금 사업의 전개 과정은 정확히 이 패턴으로 진행되었다. 이는 오래전에 전북 지역의 사회학자 이성호가 입증한 것이기도 하다. 새만금 사업은 전라북도민의 삶을 바꾸려는 모색이기보다는 성장연합의 헤게모니 구축을 위한 도구였던 것이다.

새만금사업범도민위원회 등 209개 단체는 지난 10월 21일 전북도의회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새만금 국제공항 건설이 흔들림 없이 추진되어야 한다"며 "지난 9월 법원의 새만금 공항 기본 계획 취소 판결이 일부 절차적·기술적 보완을 요구한 것이지 공항의 필요성을 부정한 것이 아니다"고 주장했다. 사진= 연합뉴스
새만금사업범도민위원회 등 209개 단체는 지난 10월 21일 전북도의회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새만금 국제공항 건설이 흔들림 없이 추진되어야 한다”며 “지난 9월 법원의 새만금 공항 기본 계획 취소 판결이 일부 절차적·기술적 보완을 요구한 것이지 공항의 필요성을 부정한 것이 아니다”고 주장했다. 사진= 연합뉴스

성장연합은 전북 지역에만 있는 것이 아니다. 우리 사회 어디에서나 존재한다. 토건 개발에 장밋빛 청사진을 제시해 주민들을 세뇌하면서 지역사회를 동원하는 이들은 어디에나 있다. 대구에도 있고, 부산에도 있으며, 제주에도 있다. 그런데 보고 들은 것이 적어서인지 몰라도 나는 지금까지 살면서 성장연합의 목표가 달성되어 어느 지역의 삶이 획기적으로 변모했다는 이야기를 접한 적이 없다. 그럴 수밖에 없다. 성장연합이 추구하는 바는 지역 지배의 재생산이지 주민들의 삶의 질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러니 성장연합의 청사진에 의심을 해야 한다. 그러면, 다른 것이 보일 수 있다. 당연한 것처럼 여겨지는 것을 의심하고, 다른 생각을 할 수 있다는 것, 그것이 지배당하지 않을 수 있는 자격이다.

글쓴이

김정원 경북대 사회학과 조교수

김정원은 경북대학교 사회학과 조교수로 재직하고 있다. 외환위기 시절 우연히 자활사업 현장에 몸을 담게 된 후 빈곤과 사회적경제를 화두로 실천가와 연구자로 활동했으며, 최근에는 민주주의와 시민권에 관심을 두면서 실천가와 학생들을 만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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