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 나치가 망가뜨린 헤어스타일 ‘단발머리’

[위민복의 ‘남의 나라 흑역사’] 파리서 폴란드 인의 손으로 탄생한 ‘단발머리’ 한때 ‘현대성’과 ‘여성해방’의 상징으로 각광 독일 나치, 유대인 혐오와 연결지어 ‘불량한 여자’ 이미지化

단발머리를 한 미국 여배우 루이즈 브룩스. 1929년에 촬영된 사진이다. 사진출처=위키피디아
단발머리를 한 미국 여배우 루이즈 브룩스. 1929년에 촬영된 사진이다. 사진출처=위키피디아

[위민복 외교부 서기관] 최근 도쿄 올림픽 양궁과 관련해 숏컷 머리가 화제가 됐다. 넓은 범위에서 숏컷에 속하는 ‘단발머리’를 여자들이 하게 된 때는 사실 그리 오래되지 않았다.

근대 이전에 여자들의 긴 머리는 당연하게 여겼고, 짧은 머리를 하는 경우 부정적 의미의 남장여자로 간주하는 분위기가 있었다. 물론 20세기 이후 여자도 사회에 진출을 시작하게 되면서 무엇보다 머리 관리의 문제 때문에 단발머리를 하는 경우가 많아지게 됐다. 하지만 무조건 숏컷 혹은 단발머리가 아니다. 스타일이 중요하다.

단발머리의 시작은 100여년전 파리

지금으로부터 100여년 전, 세상의 온갖 유행은 당연히 프랑스 파리가 시작이었다. 단발머리 하면 당연히 ‘코코 샤넬’을 떠올리기는 하는데, 그 말이 맞기는 맞되, 헤어 스타일리스트는 별도로 있었고, 그는 남자였다.

폴란드 시에라츠(Sieradz)에 위치하고 있는 무슈 앙트완을 기리는 동상. 사진 출처=위키피디아
폴란드 시에라츠(Sieradz)에 위치하고 있는 무슈 앙트완을 기리는 동상. 사진 출처=위키피디아

파리에서 미용실을 연 무슈 앙트완(Mr. Antoine)이라는 남자였다. 본명은 안토니 치엘플리콥스키(Antoni Cierplikowski, 1884-1976)인데, 이름으로 알아볼 수 있듯이 폴란드 사람이었다.

그는 사실상 최초의 스타 미용사였다. 코코 샤넬(Gabrielle Chasnel, 1883-1971)이 그의 단골이었으며 샤넬 외에도 마를레네 디트리히, 사라 베르나르 등 유명 인사들이 고객이었다.

무슈 앙트완은 1909년에 잔 다르크에서 스타일의 아이디어를 얻었다면서 단발머리를 시연했는데, 이를 처음에는 “잔다르크 스타일(Coupe à la Jeanne d’Arc”이라 불렀다.

바로 여자 헤어스타일의 현대화가 바로 단발이었다는 의미이다. 그 명칭은 곧 ‘소년 스타일(Coupe à la garçonne)’, 혹은 ‘깍두기 머리(Coupe au carré)’로도 불리게 된다.

여자들은 열렬히 환영했다. 긴머리만 고수할 필요가 없는 상황이 드디어 찾아왔기 때문이다. 단발머리 스타일은 곧바로 서유럽과 미국에서 히트를 쳤고 그 상징이 바로 아래 사진의 루이즈 브룩스(Louise Brooks, 1906-1985)였다.

여성해방의 상징된 ‘단발머리’

그렇다면 프랑스 옆에 나라 독일은 어땠을까? 지금으로부터 정확히 100년 전인 1921년 영화 ‘햄릿(Hamlet, 1921)’에 나온 여배우 아스타 닐센(Asta Sofie Amalie Nielsen, 1881-1972)의 헤어스타일이 시작이었다.

독일인들은 이 단발머리를 처음에는 프랑스어의 ‘소년 스타일’를 직역한 ‘소년머리(Bubenkopf)’라고 불렀다가 나중에는 ‘단발머리(Bubikopf)’로 바꿔 불렀다. 당시 독일 내에 등장한 ‘신여성(Neue Frau)’에 지극히 어울리는 스타일이 바로 단발머리인 부비코프였다. 그 자체로서 현대성은 물론 ‘여성 해방’을 상징하기도 했다.

아스타 닐센, 1920년에 촬영됐다. 사진출처= 위키피디아
아스타 닐센, 1920년에 촬영됐다. 사진출처= 위키피디아

이 단발머리를 싫어한 것은 당연히 남자들과 교회, 그리고 나중에 등장한 나치였다. 그런데 여자들중에서도 단발을 마뜩찮게 여기는 일파가 있었다고 한다. 너무 도시적이고 엘리트스러우며, 당시 참정권을 주된 목표로 삼았던 여성운동에 도움이 안된다는 시각이 없지 않았다.

당시 독일 남자들은 왜 싫어했을까. 그들은 이제까지 관념적으로 굳어진 ‘여성=긴머리’라는 정의가 바뀌는 것이 그냥 싫었다.

나치 정권은 인종차별적 시각에서 싫어했다. 나치 정권은 단발머리가 비-독일적(undeutsch), 혹은 비애국적이라 선언한다. 심지어 ‘러시아 스타일(verlauste Russinnen)’이라고도 주장했다. 심지어 “아리안 민족은 머리를 땋지만, 유대인들은 단발을 한다(„Arisch ist der Zopf – Jüdisch ist der Bubikopf“)라고 주장하기도 했다.

1920년대에 단발머리를 한 젊은 여성이 등장한 물비누 광고 포스터. 사진출처=위키피디아
1920년대에 단발머리를 한 젊은 여성이 등장한 물비누 광고 포스터. 사진출처=위키피디아

나치가 ‘단발머리’ 부정적 이미지 만들어

하지만 실질적으로 독일에서 단발을 이끌었던 동력은 따로 있었다. 거창한 여성해방이나 이념보다는 그저 당시 독일 내에서 다시 활기를 띄고 있던 제조업의 노동시장이었다.

제1차 세계대전에서 남자들이 대거 군대로 투입됐기 때문에 전후에도 여성 노동력이 전체 노동력의 절반 가까이를 차지했다. 따라서 여성도 경제력을 지니기 시작했고, 여성의 미용을 겨냥한 하나의 거대한 시장이 구성됐다. 즉 단발이 유행이 되고, 그것이 ‘젊음의 상징’이 되면서 각종 관련 시장이 커졌다. 가령 단발도 다 똑같은 길이로 자르는 것이 단발이 아니었으며 여러가지 종류로 분화가 됐다.

물론 이 모든 것을 망친 건 히틀러였다. 나치는 포로수용소 내 남자는 물론 ‘불량한(?)’ 여자들의 머리카락을 자름으로써 짧은머리에 대한 일종의 부정적 이미지를 만들어냈다. 이는 전쟁 직후 프랑스와 네덜란드, 덴마크에서 나치와 협력한 여자들 머리카락을 자르는 형태로도 나타났다.

올해 독일에서 이런 제목의 책이 나왔다. ‘단발: 남성스타일- 여성의 자존심(Der Bubikopf: Männlicher Blick - weiblicher Eigen-Sinn, Wallstein 2021)’라는 책인데, 내용이 궁금하지 않을 수 없다. 이 책은 1920년대 독일의 단발머리 스타일에 대한 분석을 다루고 있다. 한국어판도 나오기를 기대해 본다.

책 '단발: 남성스타일- 여성의 자존심(Der Bubikopf: Männlicher Blick - weiblicher Eigen-Sinn, Wallstein 2021)'. 사진 출처= 아마존
책 ‘단발: 남성스타일- 여성의 자존심(Der Bubikopf: Männlicher Blick - weiblicher Eigen-Sinn, Wallstein 2021)’. 사진 출처= 아마존
글쓴이

위민복 외교부 서기관

위민복은 외교부에서 주로 통상 분야, 최근에는 국민경제자문회의에서 근무했다. 전공은 경제학이며 전공 공부를 잘 못한다는 사실을 깨닫고 석사까지만 받았다. 평소에 잡다한 주제로 글을 많이 쓰고 있다. 물론 성씨가 같아(?) 친숙한 '위키피디아'의 도움을 많이 받으며 '한국의 걸어다니는 위키피디아'라는 별칭도 있다. 이 칼럼은 필자가 속한 기관과 전혀 관계가 없으며 개인의 의견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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