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유럽에 뻥뚫린 난민 ‘구멍’...원조는 호네커

[위민복의 ‘남의 나라 흑역사’] 벨라루스 루카센코의 ‘비밀 양탄자’의 시초는? 동독 호네커 시절, 베를린에 뚫렸던 ‘망명 루트’

1979년 동독 정권 수립 30주년 기념식에 참석한 브레즈네프 소련 공산당 서기장을 맞아 호네커 동독 서기장(오른쪽)이 '세기의 키스'를 하고 있다. 호네커는 소련에 대한 사랑과 존경심을 담아 키스 세례를 퍼부었고, 브레즈네프도 소련에 절대 복종하는 호네커의 입술을 마다하지 않았다. 요즘 루카셴코 벨라루스 대통령과 푸틴 러시아 대통령간 관계와 비슷하다.
1979년 동독 정권 수립 30주년 기념식에 참석한 브레즈네프 소련 공산당 서기장을 맞아 호네커 동독 서기장(오른쪽)이 '세기의 키스'를 하고 있다. 호네커는 소련에 대한 사랑과 존경심을 담아 키스 세례를 퍼부었고, 브레즈네프도 소련에 절대 복종하는 호네커의 입술을 마다하지 않았다. 요즘 루카셴코 벨라루스 대통령과 푸틴 러시아 대통령간 관계와 비슷하다.

[위민복 외교부 서기관] 벨라루스 정권이 시민사회 및 야당, 언론인에 대해 폭력적인 억압과 심각한 인권 유린을 자행하자 유럽연합(EU)가 벨라루스 정권에 대해 여러가지 제재를 하고 있다. 이에 대한 벨라루스의 대응이 또 EU를 골치아프게 하고 있다.

난민을 실어서 유럽으로 보내는 방법 때문이다. 아래 트위터 링크를 보자. 벨라루스가 1주일에 비행기 50편을 동원하여 중동 지방의 난민들을 민스크로 실어나른 다음에 EU, 그러니까 리투아니아와 폴란드로 가도록 하고 있는 것이다. EU의 동쪽을 난민 유입으로 공격하는 것이다. (그림 및 트윗의 설명에 따르면 러시아와 터키도 여기에 참여하고 있다고 나온다.)

출처= https://twitter.com/JulianRoepcke/status/1457711386361016320
출처= https://twitter.com/JulianRoepcke/status/1457711386361016320

요새 언어로 ‘하이브리드 공세’라 부르는 이런 전술은 이전에도 있었다. 바로 동독의 지도자 에리히 호네커의 이름을 딴 ‘호네커의 비밀 양탄자’다. 정치적으로 박해받는 사람들이 망명신청권을 향유한다는 독일 기본법 제16조 때문인지는 몰라도, 독일이 망명(신청)을 잘 받아주는 나라라는 소문은 옛날부터 나 있었다. 최근 시리아 난민의 독일행이 이유가 없지는 않다는 얘기다.

망명신청에 피곤할때로 피곤한 ‘독일’

통일 이전, 외국인이 서독으로 망명을 하려면 루트가 세 군데 있었다. 함부르크 항구 출입국사무소와 프랑크푸르트 국제공항 출입국사무소, 이 두 곳은 당연히 그럴 법 하다. 독일에서 제일 유동량이 많은 항구와 공항이기 때문이다. 나머지 하나는 어딜까?

바로 서베를린에 있는 출입국사무소였다. 실제로 1970년부터 1989년까지 동독을 지나 서베를린으로 망명을 신청하는 이들이 수 만 명이나 됐다. 안 그래도 도시 크기가 작은 서베를린은 이런 상황을 버틸 수 없어서 여러가지 방어막을 구상하고 실천도 했었다. 그 주된 방법이 바로 ‘인종 프로파일링(Racial Profiling)’이었다.

인종이라고 말하면 좀 이상하게 들릴 수 있다. 냉전 당시 동독에서 서베를린으로 넘어갔다면 대체로 동독인을 포함한 유럽계 사람들이 아닐까 추측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 추측은 상황을 잘 모르고 하는 얘기다. 당시 서베를린에서 망명 신청을 하는 이들 대부분은 남반구에서 북반구로 올라온, 그러니까 어두운 피부톤을 가진 사람들이었다.

1961년 베를린 브란덴부르크 문 옆에 세워져 있는 경고판. “당신은 지금 서베를린을 벗어나고 있다”는 문구가 눈에 띈다.출처= 위키피디아
1961년 베를린 브란덴부르크 문 옆에 세워져 있는 경고판. “당신은 지금 서베를린을 벗어나고 있다”는 문구가 눈에 띈다.출처= 위키피디아

이들의 경로는 아래 그림에서 볼 수 있다. 제3국 비행기가 사용할 수 있는 베를린-쇠네펠트 공항을 이용하는 것이었다. 동독에 속해 있던 쇠네펠트는 베를린 외곽에 있어서,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연합국들 비행기만 사용할 수 있던 베를린 시내에 접근하기 위해 다른 나라들이 사용했던 공항이다.

베를린 쇠네펠트 공항(Berlin-Schönefeld) 모습.
베를린 쇠네펠트 공항(Berlin-Schönefeld) 모습.

망명객은 각자 출발지역에서 동독으로 비행기를 타고 베를린 쇠네펠트 공항에서 내린다. 공항에서는 ‘경유 비자(Transitvisum)’를 구매하고, 프리드리히슈트라세(Friedrichstraße) 전철역으로 향한다. 그런 후 그들은 지하철(U6)을 타고 서베를린으로 향했다. 동독 당국의 묵인으로 서독이나 동독 당국의 제지를 전혀 받지 않은 채 말이다.

프리드리히슈트라세 지하철역. 출처= 위키피디아
프리드리히슈트라세 지하철역. 출처= 위키피디아

호네커의 ‘비밀 양탄자’, 서독 망명 경유지 제공

망명이 맘대로 허용되었다니, 어떻게 이런 일이 가능했을까? 1961년 베를린 장벽이 세워지면서, 동쪽으로부터 서쪽으로 향하는 사람들을 서독이 막지 않기로 한 것이 큰 도움이 됐다. 이른바 ‘베를린 구멍(Berliner Loch)’이라 불리는 이 망명 신청 루트는 20년 가까이 유명세를 탔다. 이 루트는 별명도 따로 얻었다. 망명신청자 입장에서 붙인 듯한데, ‘호네커의 비밀 양탄자(Honeckers fliegender Teppich)’라는 별명이다.

이렇게 할 수 있었던 것은 ‘프리드리히슈트라세 역’의 특색 때문이었다. 이 역은 동베를린 지역에 있는데, 서베를린의 U-Bahn 지하철 라인과 S-Bahn 고속철 라인 등 여러 라인이 결집하는 곳이었다. 지금도 16개 노선이 겹친다. 동베를린을 가는 것이 아니라 ‘갈아타기 위해’ 서베를린 사람들이 이용하는 곳이었다는 말이다.

다시말해 동베를린에 위치해 있으되, 서베를린 전철망과 끊겨지지는 않았고 대신 동독인은 이용 못하는, 그런 기묘한 전철역이 바로 이곳이었다. 그래서 다른 나라 사람들도 얼마든지 이용 가능했다.

프리드리히슈트라세 역을 통과하는 사람들이 전철을 갈아탈 때는 검문소를 통과해야 했다. 1964년에 촬영된 사진. 출처=위키피디아
프리드리히슈트라세 역을 통과하는 사람들이 전철을 갈아탈 때는 검문소를 통과해야 했다. 1964년에 촬영된 사진. 출처=위키피디아

하지만 서베를린으로서는 이런 루트로 들어오는 외국인들이 골치거리였다. 처음에는 주로 아랍(시리아와 레바논) 쪽에서 온 망명객들이 이 루트를 이용했는데 1980년대에는 스리랑카 내전에서 도망쳐 나온 타밀족 망명객들이 가장 많이 이용했다. 뿐만 아니라 가나와 나이지리아, 에티오피아에서 온 사람들도 많았다. 터키와 이란, 심지어 칠레에서 온 망명객도 있었다.

이런 이유로 서독으로 들어오는 망명 신청자가 1만 명 수준이었다가 1977년부터 1980년 사이에는 한해에만도 10만 명으로 늘어날 정도였다. 이들 대부분은 서베를린을 통해 넘어온 사람들이었다. 망명이 뻔한 경유 루트를 묵인한 나라가 동독만이 아니었다. 너무 신청이 많았던 탓에 서독 역시 프랑스로 넘어가려는 사람들을 묵인해주는 바람에 프랑스의 항의가 꽤 거셌다고 한다.

그야말로 좀 가려가면서 받아야 할 때였다. 앞서 말했듯 서베를린 경찰은 ‘불법적인 망명자’를 가려내기 위해 인종을 구별해서 기록하기 시작한다. 전형적인 ‘독일인’으로 보이지 않는 이들에 대해 등록증 소지여부를 물어보는 ‘인종 프로파일링’이었다.

성과도 있었다. 1984년과 1985년 두 해에만 하더라도 ‘이국적인 외모’와 피부 색깔만으로 1만 5천여 명의 불법적인 망명객들을 적발해냈다. 1986년 베를린 디스코텍 테러 사건(리비아가 클럽 다니는 미군을 겨냥해서 저질렀다) 때문에라도 단속을 더 엄하게 했다.

그러나 이런 단속이 더 많은 망명신청으로 이어지는 모순적인 결과를 낳기도 했다. 조용히 불법체류민으로 살아가려 했거나, 혹은 다른 나라(가령 프랑스)로 가려 했다가 서독에서 적발되자 아예 망명신청서를 내놓는 경우다. 당시 서베를린 경찰은 적발된 이들에게 다시 원래 나라로 돌아가든지, 정식으로 망명신청을 하든지 양자 선택을 강요했다고 한다.

그냥 동독으로 돌려보내면 안될까? 당연히 그 시도도 했었지만 동독이 받아줄리 만무했고, 망명신청자들 스스로 다시 지하철을 타고 서베를린으로 돌아오곤 했다. 그래서 서독 정부는 동독에게 ‘경유비자 장사 놀이’를 그만두라 요청할 정도였다.

베를린 지도. 프리디리히슈트리세역은 동베를린지역에 있다.
베를린 지도. 프리디리히슈트리세역은 동베를린지역에 있다.

벨라루스가 내보내는 난민, 목적지는 또 ‘독일’

동독은 서독을 도와줄 생각이 처음엔 없었다. 경유비자와 비행기표로 벌어들이는 외화 또한 동독 입장에서는 꽤 짭짤한 수익이었다. 게다가 서독 당국에게 베를린 장벽이 갖는 국경이라는 의미를 법적으로 확립시킬 수 있는 수단이기도 했다. 들어오는 기차를 서독은 통제하지 않았다.

서독에게도 제지 수단이 있었다. 동독과의 거래에 있어 은행 이자율을 제로로 한 ‘특혜 신용장 제도(Lieferantenkredit)’를 갱신하지 않겠다고 위협한 것이다. 외환이 아쉬운 동독으로서 어떤 조치라도 취하지 않을 수 없었다. 동독은 1985년 당시 망명신청자 중 제일 큰 비중을 차지했던 스리랑카 타밀에게, 그리고 1986년부터는 모두에게 더 이상 경유비자를 판매하지 않겠다고 약속한다.

물론 인도적 이유를 내세워서 동독은 신청객들을 서베를린으로 ‘방출’하는 행위를 지속했다. ‘신청객이 본국으로 돌려보내면 자살한다고 하는데, 그쪽으로 가야 하지 않겠나, 동무?’ 라는 식이었다. 즉, ‘베를린 구멍’은 베를린 장벽 개방 전까지 완전히 닫힌 적이 없었다.

동베를린에서 서베를린으로 ‘지하철’ 타고 편하게 망명 신청을 한 사례 건수가 얼마인지는 가늠조차 안된다. 10만명에서 50만명까지도 추정하는데 이때 독일은 한 가지를 깨달았다. 첫 망명신청은 도착한 나라에서 받게 하자는 것이었다. 바로 ‘더블린 협정’의 시작이다.

시리아 망명자가 EU 국가중 그리스에 도착을 하면 그리스에서 신청하게 하자는 것이다. 최종적으로는 독일로 온다 하더라도 말이다. 아이러니컬하게도 현재 벨라루스가 보내고 있는 난민들도 국경선에서 ‘독일’을 외치고 있다.

글쓴이

위민복 외교부 서기관

위민복은 외교부 서기관으로 주로 통상 분야쪽 일을 맡았다. 전공은 경제학이며 평소에 다방면으로 글을 많이 쓰고 있다. '한국의 걸어다니는 위키피디아'라는 별칭도 있다. 이 칼럼은 필자가 속한 기관과 전혀 관계가 없으며 개인의 의견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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