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이사제, 공공기관에 필요한 이유 있다
공공부문은 ‘낙하산 임원’인사 다반사 노동이사, 이들의 전횡· 무능 막는 역할할 수 있어
지난 11일 공공기관 노동이사제 도입을 골자로 하는 ‘공공기관의 운영에 관한 법률’(이하 공운법) 개정안이 국회에서 의결됐다. 이로써 올 하반기, 즉 공포 후 6개월 뒤부터 일부 공공기관에 노동이사제가 시행된다. 노동계와 경제계에서 환영의 박수와 함께 우려의 목소리도 들리고 있다. 사회적 합의가 채 이루어지기도 전에 성급하게 노동이사제를 도입한 건 아닐까?
노동이사제, 해외에도 충분한 사례있어
‘노동이사제’란 근로자의 경영참여를 보장하는 제도로서, 근로자 대표들이 직접 이사회 멤버로서 기업의 중요한 의사결정에 참여하는 것을 말한다. 이와 유사한 ‘근로자추천이사제’는 근로자 또는 노동조합 대표가 추천하는 전문가가 이사회에 참여한다.
통과된 개정 ‘공운법’에 따르면 원칙적으로 공기업과 준정부기관은 3년이상 재직한 소속 근로자 중에서 근로자대표(근로자의 과반수로 조직된 노동조합이 있는 경우 그 노동조합의 대표자)의 추천이나 근로자 과반수의 동의를 받은 사람 1명을 비상임이사로 임명해야 한다. 이에 따라 한국전력공사, 인천국제공항공사 등 공기업 36개와 국민연금공단, 한국언론진흥재단 등 준정부기관 95개는 노동이사를 두어야 한다. 산업은행과 수출입은행, 한국투자공사 등 기타공공기관은 해당사항이 없다.
노동이사제는 EU 회원국 등 유럽 국가들이 도입해 운영하고 있는데, 각 나라별로 그 대상 기업과 규모, 근로자의 이사회 참여 방법 및 정도가 다르다.

외국 중에서도 그리스, 스웨덴과 같이 기업지배구조가 이사회로 일원화된 곳에서는 노동이사가 이사회에 참여하고, 독일과 같이 기업의 지배구조가 감독이사회와 경영이사회로 이원화되어 있는 나라에서는 대개 감독이사회에 참여하고 있다.
우리나라에서는 지난 2016년 서울시가 ‘서울특별시 근로자이사제 운영에 관한 조례’를 제정해 서울시 산하의 공공기관에 근로자이사제를 도입했다. 그 후 광주시, 경기도, 인천시, 경상남도 등 다른 지방자치단체들도 앞다투어 조례를 제·개정해 노동이사제를 도입하고 있다. KB금융지주 등 몇몇 금융회사의 경우 노동조합이 추천한 사람을 사외이사로 선임하려는 움직임이 있었으나 실패했고, 지난해 9월 수출입은행이 금융회사로는 처음으로 노동조합이 추천한 사람을 이사로 선임했다.
이번 ‘공운법’의 개정으로, 다가오는 3월 주주총회에서부터 소위 국책은행의 노조추천이사제 도입이 본격화될 것으로 예상된다.
노동이사제, 기대되는 효과도 분명 있다
과연 노동이사제가 기업이나 공공기관의 경영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칠까? 기업 회계에 대한 신뢰도와 경영 성과 측면에서 긍정적인 효과를 보인다는 연구가 있는가 하면, 고용과 주가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친다는 연구도 있다. 우리나라의 경우에는 아직 제대로 된 실증적 연구가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
노동이사제의 도입을 주장하는 측은 노동이사제가 도입되면, 내부의 다양한 정보를 가진 근로자가 의사결정에 참여하게 됨으로써, 의사결정구조를 개선하고, 경영에 대한 견제와 감시기능이 높아지며, 낙하산 인사를 근절할 수 있다고 한다.
이에 반대하는 측은 노동이사제는 유럽에서도 이미 퇴조하고 있는 제도이고, 경영에 관한 전문적인 능력을 갖추지 못한 노동조합이 경영에 본격적으로 관여하게 되면 이사회의 의사결정이 지연되거나 방해를 받게 된다고 한다. 이는 투자의 위축으로 이어지고, 또 구조조정을 어렵게 하며, 때로는 노사담합이 생길 수도 있는 등 경영의 비효율성으로 주주 이익이 침해될 것이라고 주장한다.
‘낙하산 임원’인사를 막진 못할 듯
공운법이 적용되는 공공기관에 대해 기대효과가 그대로 나타날지는 매우 불투명하다. 우선 공공기관의 임원 선임절차를 살펴보면 노동이사제 도입이 낙하산 인사의 예방책이 되리라고 기대하는 것은 무리라 할 것이다.
공운법에 의하면 공공기관은 공기업, 준정부기관, 기타 공공기관으로 구분되는데, 공기업의 장은 대통령 또는 주무기관의 장, 상임이사는 대통령 또는 기획재정부장관 또는 주무기관의 장, 비상임이사는 기획재정부장관이 임명한다. 준정부기관의 장은 대통령 또는 주무기관의 장, 상임이사는 대통령 또는 기획재정부장관 또는 주무기관의 장이, 비상임이사는 주무기관의 장이 각 임명하도록 되어 있다. 임명권자의 의중 또 그 임명권자의 임명권자의 의중, 이렇게 꼬리에 꼬리를 물고 올라가다 보면 공운법의 취지와 절차는 형식적인 것이 되고 만다. ‘낙하산 인사 방지’를 기대하기는 어렵다.
지방자치단체가 출자·출연한 지방 공공기관의 경우도 ‘지방자치단체 출자·출연 기관의 운영에 관한 법률’이 형식상 공개모집 또는 정관이 정하는 바에 따라 임원을 선임하도록 규정하고 있는데, 이 역시 임명권자의 전리품이기는 매한가지다. 이처럼 공공기관의 낙하산 인사를 방지하기 위해서는 근본적으로 공공기관 지정 및 분류부터 재검토하고, 공공기관에 대한 전면적인 구조조정 및 운영 혁신이 필요할 뿐이다.
또한 민간이 주주로 참여하고 있는 공공기관의 경우는 주식회사라는 특성을 고려하여야 한다. 현행 공운법은 주주총회 등의 의결을 거치도록 하고 있는 것 정도다(제27조). 적어도 주식회사인 공공기관의 임원 선임 절차와 방법은 다른 공공기관과 달리 규율할 필요가 있다. 상부의 지시대로 움직이는 꼭두각시가 아니라 전문성에 기초한 책임경영을 실천하는 합리적인 의사결정 구조를 마련하기 위해서는 근로자들 뿐만 아니라 소수 주주들도 경영에 참여하도록 해야 한다.
낙하산 인사의 ‘무능’을 보완할 순 있어
운용에서 노동이사제의 이점이 기대되는 부분은 있다. 노동이사제가 도입되면, 오랫동안 해당 공공기관에 재직하면서 경험과 지식을 쌓은 노동이사는 해당 공공기관에 대한 전문적인 지식이 거의 없는 ‘지나가는 과객’인 낙하산 임원들의 부족한 부분을 보충해 줄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그들이 추진하고자 하는 선심성 비용 지출도 어느 정도 제지할 수 있을 것이다.
나아가 근로자들 중 일부는 소속 공공기관의 재정에 관해 관심을 가질 것이고, 그 재정이 대부분 국민들의 혈세로 충당된다는 걸 알게 된다면 비용 절감 또는 효율성 제고를 위한 아이디어를 내고 방법도 모색할 것이다. ESG(Environmental, Social and Governance) 경영면에서도 득점을 하게 될 것이다.
이와 같이 공공기관의 ‘낙하산 임원’에게 전문성과 책임감을 기대하기 어려운 현행임원 선임 구조하에서 노동이사는 국민을 위한 경영의 감시자가 될 수 있다.
노동이사도 ‘선량한 관리자 의무’ 지켜야
그러나 반대의 경우가 일어나지 말라는 법도 없다. 나쁘게 운용될 경우에는 국민을 배신하는 ‘공범’이 될 수도 있다. 노동이사도 이사이니만큼 ‘선량한 관리자로서 주의의무’를 부담하며 이를 위반한 경우 업무상 배임죄 또는 회사 또는 제3자에 대해 손해배상 책임을 질 수도 있다.
상법 제399조 제1항은 “이사가 고의 또는 과실로 법령 또는 정관에 위반한 행위를 하거나 그 임무를 게을리한 경우에는 그 이사는 회사에 대하여 연대하여 손해를 배상할 책임이 있다”고 규정한다. 같은 조 제2항은 “전항의 행위가 이사회의 결의에 의한 것인 때에는 그 결의에 찬성한 이사도 전항의 책임이 있다”라고 규정하고 있다.
이와 관련, 지난 2019년 판결에서 대법원은 강원랜드 이사회가 태백시에 300억원의 기부금을 제공하기로 결의한 행위에 대해 “주식회사 이사들이 이사회에서 그 회사의 주주 중 1인에 대한 기부행위를 결의하면서 기부금의 성격, 기부행위가 그 회사의 설립 목적과 공익에 미치는 영향, 그 회사 재정상황에 비추어 본 기부금 액수의 상당성, 그 회사와 기부상대방의 관계 등에 관해 합리적인 정보를 바탕으로 충분한 검토를 거치지 않았다면, 이사들이 그 결의에 찬성한 행위는 이사의 선량한 관리자로서의 주의의무에 위배되는 행위에 해당한다”라면서, 결의에 참가한 이사들에게 손해의 일부에 대한 배상책임을 인정한 바 있다(대법원 2019. 5. 16. 선고 2016다260455 판결).
다음으로 민간 영역을 살펴보자. 노동이사제 도입 필요성에 대해서 민간 기업에서는 사정이 다르다. 민간 기업의 경영진은 기업과 생사를 같이하는 오너이거나 아니면 성과에 의해 평가를 받은 전문경영인인 경우가 대부분이다. 불법을 저지르는 일부 예외적인 경영진을 제외하고는 대부분 기업이 잘 되어야 자신에게도 이익이 되는 사람들이다. 공공기관과 같이 노동이사가 경영의 투명성을 감시하고 전문성을 보충해야 할 필요성이 상대적으로 크지 않다는 것이다.
민간기업 확대 적용은 시간 두고 신중히
기업이 잘못되면 주주는 현재의 주식가치를 잃게 되지만, 근로자는 미래의 일자리를 잃게 된다. 만약 근로자가 다른 일자리를 찾는다면 손해가 없다. 적자가 나면 주주는 배당을 못 받을 수 있지만, 근로자는 원칙적으로 급여를 받을 수 있다. 주주와 근로자가 모두 기업의 이해관계자이기는 하지만, 같은 평면에 있지는 않은 셈이다.
그리고 일반 근로자들도 기업과 근로자 자신이 대척점에 있다고 생각하지 않고, 자신이 기업의 일부라고 생각한다. 무관(無冠)의 근로자들 대부분은 경영 자체에는 관심이 없다. 전문분야도 아니다. 자신이 직접 국회의원으로 출마해 국회에 참여하기보다는, 그냥 국회의원들이 일 잘하기를 바라는 일반 국민들의 심정이라고 할까? 다소의 이해 대립은 있을 수 있지만, 자율적으로 이해를 조정할 수도 있다. 대립적인 구도로 갈등을 조장하면 근로자도, 주주도, 소비자도, 기업도 모두 피해자가 된다는 점도 이해하고 있다.
또한 근로자들의 권익 보호를 위한 통로로 이미 노사협의회와 노동조합이 있다. 그리고 근로자들도 자신의 일터인 기업의 경영정보에 대해 노사협의회나 노동조합제도, 기업의 다른 커뮤니케이션 채널을 통해서 문제를 인식하고 이를 해결하기 위해 노력할 수 있다.
그래도 부족해서 노동이사제 도입이 필요하다면, 시간을 두고 다양한 이해관계자들이 진지하게 논의하면서 사회적 합의를 쌓아가야 한다. 민간기업에 노동이사제가 필요한 이유가 무엇인지, 무엇 때문에 노동이사제를 도입하려고 하는지, 그리고 대안으로는 어떤 것들이 있는지, 현재의 제약조건과 상황하에서는 어떤 대안이 적절한지에 대한 분석 및 검토가 필요하다. 시기와 방법 등에 대한 고민도 더 있어야 한다. 이 문제에 대해서는 민간기업이 ESG경영차원에서 자율적으로 선택할 수 있게 시간을 줘야 한다.
밀려오는 쓰나미에 동조하기는 보다는, 충분한 준비를 갖추고 잔잔한 파도를 기다려서 물고기를 잡는다면, 모두가 여유있게 일용할 양식을 마련할 수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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