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청 노동자’ 유최안의 손을 잡자
대우조선 하청노동자들 51일간의 절규 “이대로 살 순 없지 않습니까”의 실상은 대우조선과 산업은행이 저임금 해소해야
51일이 걸렸다. 대우조선 하청노동자들의 파업 투쟁이 어제 끝났다. 단지 하청업체 직원이 아닌 ‘우리도 노동자’라는 당연한 선언을 인정받기 위해 무더위와 맞서고 멸시와 조롱을 마음속 깊이 삭히면서 싸웠다. 6월 2일 시작된 파업은 22일 유최안 노동자가 0.3평짜리 쇠감옥을 만들어 스스로를 가두고, 동료 6명 노동자가 건조 중인 선박을 점거하며 최고조에 이르렀다. 이들이 현장에 내건 현수막은 핏기 없는 호소였다. “국민 여러분 죄송합니다. 이대로 살 순 없지 않습니까?”
“이대로 살순 없다”는 그 절규의 의미
이대로 살 순 없다는 말, 대우조선 하청노동자들이 외친 이 한마디는 무엇을 의미할까. 대우조선을 비롯한 대한민국 대형조선소에서 배를 짓는 사람들의 절반 이상은 비정규직 하청노동자들이다. 대우조선의 경우 이들은 약 1만여 명으로 ‘협력업체’라 불리는 백 개의 하청업체에 소속돼 있다. 이 하청업체에 직접 고용된 하청노동자들이 있는가 하면, 하청업체와 계약을 맺는 ‘물량팀’이라 불리는 2차 하도급업체에 소속된 경우도 많다. 한국 조선소는 이처럼 원청- 하청- 재하청으로 이어지는 전근대적인 다단계 구조로 이루어져 있다. 이런 상황에서 하청노동자들은 고용불안, 위험한 일터, 저임금 차별로 요약되는 암울한 상황에 직면할 수밖에 없다.
일자리는 불안정하다. 수주 불황으로 일감이 부족하면 제일 먼저 정리해고의 대상이 된다. 지난 5~6년간 불황으로 조선소를 떠난 노동자들은 7만여 명이다. 거의 전부가 하청노동자들이다. 대우조선만 해도 호황기 마지막 해인 2015년 이후 약 2만여 명의 하청노동자들이 회사를 떠났다.
조선소 일 자체가 위험하기도 하지만 하청노동자들은 그중에서도 가장 위험하다고 하는 도장, 발판, 용접 등의 업종에 종사한다. 노동강도는 상상을 초월하고 늘 중대재해의 위험에 노출돼 있다. 실제 사망을 비롯한 중대재해는 거의 하청노동자들에게 일어난다. ‘위험의 외주화’라는 말도 여기에서 비롯됐다.
경력 20년차 시급 1만500원의 삶
가장 심각한 것은 임금 문제다. 숙련노동자의 월급이 최저임금 수준에 머물러 있다. 경력 20년차 용접노동자의 시급이 1만 500원 정도, 3천만 원이 채 안되는 연봉으로 가정을 꾸리고 자식을 공부시키고 노후를 대비해야 하는 ‘미션 임파서블’의 세계다. 지난 5~6년간 불황으로 임금은 제자리였거나 사실상 삭감되었다. 그나마 있던 550%의 상여금을 없애 최저임금 인상분에 산입시키는 편법을 동원했다. 지금까지 그래왔듯이, 현재에도 가장 손쉬운 ‘경영합리화’ 비용 절감의 수단은 바로 하청노동자들의 임금이었다.
원청과의 차별도 여전히 존재한다. ‘코로나는 사람을 차별하지 않지만 그 영향은 차별적으로 발생한다’는 유엔 사무총장의 경고처럼 코로나19 확진 여부를 확인하는 검사 시간이나 예방 접종 후 하루나 이틀 쉬어야 하는 휴식도 무급 처리된다. 그러니 코로나 접종은 주로 금요일 저녁에 할 수밖에 없는 슬픈 상황이 연속된다. 이러한 불합리한 문제들은 업체별로 해결이 불가능하다. 그래서 2017년 하청노조를 만들었고 누적된 불만과 구조적인 모순이 이번 대우조선 하청노동자들의 파업으로 분출되었다.
세계 1위 조선강국이라는 빛나는 허울은 이처럼 하청노동자들의 열악한 노동환경과 저임금, 구겨진 자존감 없이는 지탱할 수 없었다. ‘이대로 살 순 없다’는 외침은 하청노동자들이 겪고 있는 이 모든 암울한 상황을 전 국민에게 알리고 개선하고자 하는 호소였음이 분명하다.
국민들이 알게된 열악한 노동조건
삭감된 임금 30% 원상회복, 상여금 300% 지급 등을 내건 파업은 요구조건에 한참 미치지 못하는 협상 타결로 결론났다. 대통령의 협박에 이어 상공에는 헬기가 날아다니고, 다른 시 도에서 차출된 경찰특공대가 투입되고, 에어매트가 깔리는 등 공권력이 투입될 조짐이 최고조에 달한 날, 협상 대표는 임금 4.5% 인상을 골자로 하는 협상안을 받아들였다. 하청노조 조합원은 눈물을 머금고 95%의 찬성으로 이를 승인했다.
파업은 종료되었지만 하청노동자들이 처한 열악한 노동조건은 크게 나아지지 않았다. 하지만 전 국민이 대한민국 조선소에서 어떤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생산의 주역을 담당하는 하청노동자들의 삶이 어떠한지에 주목하게 됐다. 파업 노동자들이 파업으로 월급 한 푼 받지 못할 상황에 처하자, 전국에서 2억 7천 만원의 성금을 모아 보내 1인당 180만원의 ‘국민 월급’을 지급했다. ‘이대로 살 순 없다’는 외침에 ‘이건 아니다’ 싶은 수많은 국민들의 마음이 모이기 시작한 것이다.
수많은 언론보도는 최근 수주 호황으로 일감이 넘쳐나고 있다고 말한다. 하지만 배를 지을 노동자들이 절대적으로 부족하다는 사실은 크게 드러나지 않고 있다. 거제에서만도(대우조선, 삼성중공업) 수주물량을 처리하려면 올해 말까지 7천~8천여 명의 인력이 더 필요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정규직 노동자들을 대거 신규 채용할 리 없는 상황에서 결국 부족한 인력은 하청노동자들로 채울 수 밖에 없다.

‘K-조선’이 경쟁력을 지키기위해서라도
불황기에 조선소를 떠난 노동자들이 돌아와야 하지만, 현재와 같은 저임금과 다단계 고용구조로는 불가능한 현실이다. 일은 힘들고 위험하며 임금은 낮고, 차별은 여전한 상황에서 어느 누가 선뜻 조선소로 일하러 올 것인가.
인력 부족을 해결할 첫 번째 과제는 임금인상이다. 하청노동자들의 임금인상은 대우조선 원청과 대우조선을 실질적으로 지배하고 있는 대주주 산업은행이 결단해야 한다. 인력을 공급하고 원청으로부터 기성금을 받아 운영비를 충당하는 하청업체가 노동자들의 임금을 올리기 위해서는 기성금 자체가 대폭 늘어나야 하기 때문이다. 이번 파업 과정에서 대우조선과 산업은행에 책임을 묻고 해결에 나서라고 요구한 것은 이 때문이다.
윤석열 대통령은 공권력 투입을 시사하며 “기다릴 만큼 기다렸다”고 말했다. 사실대로 말하자. 기다릴 만큼 기다린 사람은 대통령과 정부 관료가 아니라 수 년간의 임금 삭감과 홀대 속에 어쩔 수 없이 묵묵히 노동현장을 지킨 하청노동자들이다. 이제 정부가 답해야 한다. 다단계 하도급 구조에서 발생하는 저임금과 차별이 존재하는 이상 대한민국 조선업의 미래는 없다. 말로만 ‘K-조선’을 외치던 이전 정부나 ‘법과 원칙’만을 되뇌는 현 정부의 인식으로는 한국 조선산업의 미래를 견인할 수 없다.
하청노동자들의 희생을 전제로 한 조선산업은 잠깐 흥할지는 몰라도 결코 지속 가능하지 않다. 노동자들이 더 이상 이를 감내하지도 않을 것이며 국민들이 이를 그대로 용인하지도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다단계 구조를 어떻게 근절하고 완화시킬 것인지, 적정한 임금 보장을 위해 어떤 방안을 마련할 것인지 진지하고 구체적으로 고민하고 해답을 내놓아야 한다 그것이 . 정부가 할 일이다.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