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위기 상반된 두 전쟁국...’추위’가 변수

[러시아 다녀온 사업가의 시각] 우크라 사회기반시설 파괴 나선 러시아 올 겨울 우크라에 ‘불안과 공포’ 확산 예상 러시아내 전쟁 불안감 거의 없이 평온해 2024년3월 대통령선거...분수령 될 것

우크라이나 수도 키이우에 포탄이 떨어져 건물이 파괴된 모습. 사진=연합뉴스
우크라이나 수도 키이우에 포탄이 떨어져 건물이 파괴된 모습. 사진=연합뉴스

비지니스 차 최근 러시아의 모스크바, 시베리아, 카프카즈를 두루 돌아보고 왔다. 3개월 정도의 일정이었고 러시아와 함께 중앙아시아 국가들까지 함께 돌아봤다.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중이라 러시아를 바로 입국할 수는 없었고, 중앙아시아를 거쳐서 러시아를 들어갔다가 나왔다가 하며 이들 나라를 두루 살필 수 있었다. 그리고 한국으로 돌아온 직후 러시아와 크림반도를 잇는 크림대교 폭파 사고가 있었고, 그저께 우크라이나 수도 키이우에 대한 러시아의 보복공격이 감행됐다. 최근 직접 보고 온 러시아 모습을 느낀대로 정리해본다. 또 나름의 오랜 경험을 바탕으로 앞으로 전황은 어떻게 될지도 가늠해본다.

우크라니아 전쟁의 흐름이 바뀌다

서서히 다가오는 겨울을 앞두고 러시아는 전략을 바꾼 것 같다. 자신들에게 직접적인 피해가 크지 않지만, 상대에게는 치명적인 ‘공포’와 ‘불안’ 전략으로 우크라이나를 공격하기로 한 것같다.

러시아는 전쟁터인 우크라이나 땅의 사회기반시설을 철저하게 파괴하는 방식을 구사중으로 보인다. 우크라이나의 사회기반을 철저히 파괴해 국가를 붕괴시키는 상황으로 몰아가려는 듯하다. 반면 우크라이나 군에 대한 직접적인 군사공격은 강도가 낮아져 방어적 수준이 됐다고 보는 게 맞을 것이다. 이렇게 계속 전개되면 앞으로 다가올 겨울 날씨 탓에 우크라이나인들의 삶은 상상하기 어려울 만큼 혹독하고 참담할 것으로 예상된다.

반면 현지를 방문하는 동안 러시아 국민들이 전쟁의 공포나 불안을 느끼는 모습은 별로 찾아볼 수 없었다. 전쟁 발발이후 일부 러시아인이 해외로 피난을 갔는데, 이들 대부분은 우크라이나 민족계이거나 연관이 있는 사람들이었고, 아니면 말그대로 ‘금수저들’이라 할 수 있다. 사회 전반적으로 지금 러시아가 전쟁을 하고 있나 싶을 만큼 일상적인 모습이었다.

불과 얼마전 서쪽 카프카즈에서 모스크바, 시베리아 중부의 노보시브르스크, 이르쿠츠크, 울란우데, 야쿠츠크를 다녀왔다. 뿐만아니라 유라시아 최동단의 마가단까지 돌아보면서 직접 느끼고 본 모습이 그렇다. 물론 지난 9월에 발표한 러시아의 부분동원령으로 러시아 국민들의 전쟁에 대한 체감이 높아졌지만 일상의 변화는 크지 않아 보였다.

볼가강에서 여름 피서를 즐기는 러시아 국민들. 멀리 강건너 마마예프쿠르간의 어머니상이 보인다. 2차세계대전때 최대 전투였던 스탈린그라드 전투 현장이다. 사진=이봄철
볼가강에서 여름 피서를 즐기는 러시아 국민들. 멀리 강건너 마마예프쿠르간의 어머니상이 보인다. 2차세계대전때 최대 전투였던 스탈린그라드 전투 현장이다. 사진=이봄철

그러나 우크라이나는 이제 그 어디도 안전지대는 없어졌다고 봐야할 것이다. 러시아의 전략이 우크라이나 전역의 사회기반시설 파괴로 바뀌었기 때문이다. 비인도적 살상이 급증할 수 있는 위험한 상황이 됐다. 우크라이나인들은 공포로부터의 피난이냐, 공포와 함께하는 불안이냐를 선택해야 하는 기로에 놓이게 됐다.

‘공포와 불안’이 우크라이나 전역으로 퍼지는 상황에서 젤란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은 독전대를 자임하며 계속 국민들에게 저항을 요구하고 있다.

불안과 공포라는 ‘유령’이 다시 출현했다

이번 겨울에, 러시아인들은 자신들과 부모들이 과거에 겪었던 공포와 불안의 경험을 상기하며 “우크라이나, 너희도 겪어봐라”라는 비정한 마음을 품고 있을지 모른다.

전쟁에서 죽음보다 무서운 건 공포와 불안이다. 죽이기 위한 공격이 무서운 게 아니다. ‘죽겠구나’, ‘다치겠구나’하는 공포와 배고픔, 추위, 질병 등에 대한 두려움이 커지는 게 무서운 것이다. 이 그림자가 우크라이나 전역으로 확산되면, 적에 대한 분노보다 공포로부터 벗어나고자 하는 내부 혼란이 커지기 마련이다. 물론 극단적인 공포는 최고의 단결과 투쟁 의지를 만들기도 하지만, 그것은 극히 찰나같은 ‘공동 위안’이라는 공포에 대한 또다른 반응일 뿐이다.

상대가 느끼길 바라는 공감적 체감의 공포와 불안은 ‘레닌그라드 봉쇄’의 역사에서 러시아가 배운 것이다. 제2차 세계대전 당시 독일은 당시 소련의 상징적인 도시이자 역사도시인 지금의 상페테스부르그(옛 지명은 레닌그라드)를 900일 가까이 봉쇄했다. 그 누구도, 그 어디와도 소통하지 못하도록 거대 도시를 완벽히 봉쇄함으로써 극한의 공포감을 불러 일으키고 내부의 분열과 혼란을 야기시켜서 항복을 끌어내려 했다.

레닌그라드 봉쇄는 실제로 이뤄졌다. 1941년 9월 16일 독일은 레닌그라드의 방어선을 돌파한 후 900일 동안 레닌그라드에 모든 음식과 연료 공급을 차단했다. 봉쇄는 3년간 계속됐다. 1944년 마침내 레닌그라드 포위망이 무너지기까지 러시아인 1백만 명, 즉 전쟁 전 인구의 3분의 1이 질병이나 기아로 사망했다. ‘레닌그라드 봉쇄(Leningrad Blockade)’로 알려진 전무후무한 사건이다.

독일은 봉쇄기간 동안 매일 아침 9시부터 9시, 정오가 되기 전 한 시간, 오후 5시부터 6시, 마지막으로 저녁 8시부터 10시까지 정확하게 시간을 맞춰 포탄을 떨어뜨렸다. 레닌그라드 주민의 삶은 비참함 그 자체였고, 일부에선 식인 사례까지 비공식적으로 보고되기도 했다. 러시아인들은 이런 극한의 공포와 불안 속에서 최악의 생존조건을 이겨낸데 대해 자부심도 크다. 하지만 그 트라우마도 깊고 컸다.

레닌그라드 봉쇄는 독일의 실패로 끝났다. 봉쇄 능력에서 독일군이 한계를 보였기 때문이다. 공포감 조성과 확대는 끝날 때까지 계속됐다. 당시 레닌그라드 시민들은 자신이 겪은 공포, 고통과 피해가 상상을 초월했음을 전쟁후 밝혔다.

러시아는 자신들이 겪은 여러 전쟁에서 봉쇄와 소개, 장기간 소모전에 익숙한 체험의 역사를 가지고 있다. 멀리 징기스칸부터 나폴레옹의 침공때 모스크바 소개작전, 히틀러 독일의 레닌그라드 봉쇄, 모스크바 전투, 스탈린그라드 전투 등에서 러시아인들은 극한의 공포를 느꼈다. 이런 봉쇄를 벗어나는 과정에서 주목할 것이 있다. 그들의 극한적 저항도 큰 요인이 됐지만 공포감을 조성했던 상대가 스스로 먼저 무너졌다는 사실이다. 그들이 스스로 무너지게 했던 환경 중의 하나가 바로 ‘혹독한 추위’였다.

우크라이나 전쟁, 2024년 3월 분수령이다

비정한 얘기로 들리겠지만, 필자는 우크라이나인들의 공포와 불안에 대한 인내가 언제까지 계속될지 모르겠지만 결코 길지는 않을 것이라고 예상한다. 무엇보다 지금 이들이 폴란드의 도움에 의존하는 것이 커지면 커질수록 우크라이나인들의 민족적 모멸감과 자괴감은 깊어질 것이다.

우크라이나에게 폴란드는 한일 관계 수준의 감정이 내적으로 흐르고 있다. 이는 폴란드의 지원도 전쟁이 끝날 때까지 계속 이어지기 어렵다는 뜻이고, 우크라이나 역시 전쟁이 끝날때까지 계속 폴란드에게 손벌리지도 않을 것이라는 얘기다. 젤란스키의 운명 역시 정해져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필자는 우크라이나 전쟁에서 러시아나 푸틴을 비난하고 싶지 않다. 물론 그렇다고 러시아의 우크라이나에 대한 공격을 지지하거나 잘하고 있다고 응원하는 것 역시 아니다. 단지 러시아로서는 어쩔수 없는 마지막 카드였음을 이해할 뿐이다. 러시아와 푸틴은 애초에 이 전쟁을 원하지 않은 것으로 알기 때문이다. 러시아는 이 전쟁을 할 이유도 없었고, 치밀하게 준비를 진행해 온 것도 아니었으며, 사회경제적 상황도 마땅치 않았다. 북대서양조약기구(NATO)의 동진과 우크라이나의 정치적 네오이즘을 비전쟁적 방법으로 해결하기를 끝까지 희망했음을 알고 있다.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모두 2024년 3월 대통령 선거가 있다. 푸틴이든 젤란스키든 그때까지 전쟁을 지속하든 그전에 휴전을 하든 간에, 그 시간이 다가올수록 치열하고도 목숨을 건 권력사수의 길을 택하게 될 것이다.

최근에는 푸틴이 전쟁의 목표를 추가했다. 우크라이나의 젤란스키 정권을 정조준한 것이다. 미국과 서방의 바람대로 러시아 내분으로 푸틴이 물러날까? 아니면 러시아의 공격에 젤란스키 정권이 무너질까? 전쟁은 이제 명확한 목표를 정한 모양새가 됐다.

우크라이나에 군인 1만명 이상을 참전시키고 있는 체첸공화국의 수도 그로즈니의 한가한 거리모습. 사진=이봄철
우크라이나에 군인 1만명 이상을 참전시키고 있는 체첸공화국의 수도 그로즈니의 한가한 거리모습. 사진=이봄철

전쟁을 더욱 키우고 있다

그 누구든 크림대교를 건드린 것은 전쟁을 키우겠다는 것을 드러낸 것이라고 봐야한다. 간과해서는 안될 것이 하나 더 있다. 젤란스키는 배우 출신이고 푸틴은 정보원 출신이라는 점이다. 그래서일까? 전쟁을 지휘하는 모습도 극단적이다. 젤란스키는 정치 초년병이지만, 푸틴은 집권 햇수만 20년이 넘었다. 미국과 서방은 우크라이나 전쟁을 “선과 악의 구도”, “독재와 민주의 대결”, “침략과 방어의 구도”로 만들어서 우크라이나 지원을 정당화하려고 한다. 반면 푸틴은 러시아에 대한 미국과 서구의 부당한 도전, 러시아에 대한 무시, 집단적 린치에 대한 정당한 응전이라고 말한다. 어느쪽이 국민들의 지지를 지켜낼지 지켜보기로 하자.

우크라이나 전쟁에 대한 판단과 관점은 다양할 수 있겠지만, 보다 객관적 사실에 근거해서 바라보는 혜안도 필요하지 않을까 싶다. 물론 필자의 관점이 맞고 옳다고 주장하는 것은 아니다. 전문가는 더욱 아니다. 그러나 ‘백문이불여일견’이라고 발품을 팔며 바라본 우크라이나 전쟁에 대한 단상은 국내언론의 보도에 문제가 많다는 것이다. 서구와 미국 중심의 받아쓰기 수준의 가십성 보도가 안타깝고 아쉽다. 기자는 치열해야 하고 기사는 진실해야 할 것이다.

덧붙임

몇 년 전 지금의 크림대교가 건설중일 때 크라스노다르의 아조프해 인근 팀룩과 아나파를 갔었다. 이곳은 러시아에서 포도주 산지로도 유명한 휴양지다. 아름다운 바닷가를 거닐었던 기억이 있다. 사실 필자는 작년 이 맘때 우크라이나의 동남부, 지금의 전쟁터 지역을 한달 정도 방문할 계획이었다. 그곳은 수십년 동안 고려인들의 중요한 고본질농업(소련시기 고려인들만 했던 임차형 원거리 계절농업)의 현장이기 때문이다.

글쓴이

이봄철 러시아 사업가

필자 이봄철은 학생운동, 시민운동을 했고 우리민족서로돕기운동에서 남북교류협력, 해외동포 지원활동을 오랫동안 했다. 2004년부터 남부러시아 볼고그라드(구 스탈린그라드)에서 고려인 지원활동과 한글학교를 운영하고 있다. 그는 캄차트카에서 사할린 시베리아, 카프카즈 지역 등 러시아 곳곳과 중앙아시아 여러나라를 다니며 고려인 역사를 채록하고 있다. △볼고그라드한글학교장(현) △CIS한글학교협의회 부회장△(주)한국스마트농업 대표

댓글

    함께 읽을 글

    칼럼 전체 보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