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틴도 체포 가능? 선택적 정의의 딜레마

국제형사재판소(ICC)는 지난 2023년 3월17일 블라미디르 푸틴 대통령에 대해 "점령지의 우크라이나 어린이들을 불법 추방하고 불법 이주시킨 전쟁범죄에 대해 책임이 있다"며 체포영장을 발부했다. 사진= 연합뉴스
국제형사재판소(ICC)는 지난 2023년 3월17일 블라미디르 푸틴 대통령에 대해 "점령지의 우크라이나 어린이들을 불법 추방하고 불법 이주시킨 전쟁범죄에 대해 책임이 있다"며 체포영장을 발부했다. 사진= 연합뉴스
  • 국익과 외교의 냉혹한 현실 네타냐후와 달리 러시아는 북핵 문제와 에너지 협력의 핵심 변수이기에, 이스라엘과 똑같은 기계적 원칙을 적용해 푸틴 체포를 논하는 것은 중견국인 한국에 ‘외교적 자멸의 길’이 될 수 있다.
  • 숙명적 선택과 전략적 조건 국제정치에서 법 집행의 불평등은 피할 수 없는 현실이므로, 원칙을 유보하더라도 맹목적 굴복이 아님을 증명할 명확한 내부 기준을 세우고 다른 전선에서 국제규범 강화를 위한 행동을 축적해야 한다.
  • 중견국 한국의 유일한 방패 비록 강대국 앞에 무력하고 선택적으로 작동하는 불완전한 국제법일지라도, 최소한의 규범마저 사라진 채 힘의 논리만 남는 야만의 세계를 막아내기 위해 한국이 끝까지 지켜내야 할 유일한 무기다.

어제 네타냐후에 대한 국제형사재판소(ICC) 체포에 대한 국제법적 문제에 대한 글을 쓰고 나니 바로 ‘선택적 정의’라는 비판이 여기저기 보입니다. 국제사회에서 ‘선택적 정의’ 문제는 피할 수 없는 현실입니다.

국제인권을 공부한 저에게도 이 문제는 오랜기간 양심을 건드린 골칫거리였습니다. 이것은 사실 국내 법집행에서도 나타나는 현상이니 법률가들에겐 공통의 딜레마입니다. 오늘 새벽 이 문제를 갖고 깊은 사색에 빠졌습니다. 그 결론을 여기에 올립니다.-필자주

“푸틴이 방한하면 체포할 것인가”

이재명 대통령이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에 대한 ICC 체포영장 집행을 검토하라고 지시했다. 즉각 야권의 반격이 나왔다. “그 논리라면 푸틴에게도 적용해야 한다. 푸틴이 방한하면 체포할 것인가.” 날카로운 질문이다. 그리고 솔직히 말하면, 쉽게 답하기 어려운 질문이기도 하다.

결론부터 말하자. 푸틴에게 같은 원칙을 그대로 적용하기는 어렵다. 이것을 인정하는 것이 정직하다. 그러나 그 인정이 곧 선택적 정의의 ‘면죄부’가 되어서는 안 된다. 선택적 정의는 불가피하지만, 그 선택에도 일정한 원칙이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왜 푸틴에게 같은 원칙을 적용하기 어려운가. 한국과 러시아의 관계는 한국과 이스라엘의 관계와 차원이 다르다. 러시아는 북한 문제의 핵심 변수다. 유엔 안보리 상임이사국으로서 한반도 평화 프로세스에 직접적인 영향력을 행사한다.

에너지와 자원 협력의 상대이기도 하다. 이스라엘에 강경한 메시지를 보내는 것과 러시아에 그렇게 하는 것은 외교적 비용이 완전히 다르다. 한국 같은 중견국이 모든 전선에서 동시에 원칙을 관철하고자 하는 것은 국익을 도외시한 ‘자멸’의 길이다.

선택적 정의는 정당한가...지켜야할 원칙

그렇다면 선택적 정의는 정당한가. 이 질문 앞에서 우리는 불편한 진실을 직면해야 한다. 선택적 정의는 국제정치의 피할 수 없는 현실이다.

강대국도 예외가 없다. 미국은 동맹국의 인권 침해에는 눈을 감고, 적대국의 위반에는 목소리를 높인다. 유럽도 다르지 않다. 국내에서도 마찬가지다. 재벌과 일반 시민에게 법이 똑같이 적용되지 않는다는 것을 우리는 경험으로 안다.

권력이 불평등하게 분포된 모든 사회에서 완전히 평등한 법 집행은 ‘이상(理想)’일 뿐이다. 국제사회는 그 불평등이 더 극단적인 공간이다.

그러나 선택적 정의가 불가피하다는 것이 아무 원칙 없이 선택해도 된다는 뜻은 아니다. 선택에도 기준이 있어야 한다.

첫째, 선택의 이유를 스스로 알고 있어야 한다. 왜 이 경우에는 원칙을 적용하고, 저 경우에는 유보하는지, 그 근거를 대외적으로 설명하기 어렵더라도 내부적으로는 분명히 해두어야 한다. 그것이 무원칙한 굴복과 전략적 판단을 가르는 경계선이다.

둘째, 원칙을 유보하는 경우에도 그것이 ‘원칙의 포기가 아님’을 행동으로 보여야 한다. 러시아에 대해 직접적인 압박을 가하기 어렵다면, 다른 전선에서 국제규범 강화에 일관되게 기여해야 한다.

ICC 활동에 대한 재정적 지원, 유엔 인권이사회에서의 적극적 발언, 전쟁범죄 피해국에 대한 인도주의적 지원- 이런 행동들이 쌓여야 원칙을 유보한 선택이 굴복이 아니라 ‘전략’임을 증명할 수 있다.

셋째, 선택적일 수밖에 없을 때도 그 선택이 강자의 편에 서서 국제규범 약화의 ‘공범’으로 비난받는 일이 있어선 안 된다. 선택적 정의를 취하더라도 그 선택에서 오는 책임을 최소화할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한다.

국제법은 우리에게 무슨 의미인가

더 근본적인 질문이 있다. 선택적으로 적용되는 국제법이 과연 의미가 있는가.

국제법 무용론이 나오는 것도 이해할 수 있다. 강대국이 어길 때 아무도 막지 못한다면, 그것을 법이라고 할 수 있는가. 그러나 나는 국제법이 없는 세계를 상상해보라고 말하고 싶다.

기준 자체가 사라진다. 지금은 강대국이 국제법을 어길 때 적어도 ‘위반’이라는 언어가 존재한다. 비난이 가능하고, 기록이 남고, 역사적 책임의 근거가 된다. 그 언어가 사라지면 순수한 ‘힘의 논리’만 남는다. 한국 같은 중견국에게 국제법은 힘없는 자의 ‘유일한 방패’다.

국제법은 느리게 작동한다. 뉘른베르크 재판이 전범 처벌의 선례를 만들었고, 수십 년이 지나 ICC가 탄생했다. 지금 ICC가 무력해 보여도, 선택적으로 집행되더라도, 집행된 사례가 축적되면 규범의 실효성은 조금씩 두터워진다. 국제법은 현실을 지배하는 도구가 아니라 현실을 조금씩 바꾸는 축적의 과정이다.

1950년 6월 유엔 안전보장이사회가 긴급회의를 열고 소련 대표가 불참한 가운데 6·25전쟁 참전 결의안을 거수 투표로 진행하고 있다. 출처=미국 국립문서기록관리청
1950년 6월 유엔 안전보장이사회가 긴급회의를 열고 소련 대표가 불참한 가운데 6·25전쟁 참전 결의안을 거수 투표로 진행하고 있다. 출처=미국 국립문서기록관리청

‘국제법의 숙명’을 어떻게 마주할 것인가

한국은 국제법과 자유주의 국제질서의 수혜자였다. 한국전쟁 때 유엔 결의가 없었다면 한국의 생존 자체가 불가능했다. 그 질서 안에서 민주화와 경제발전을 이루었다. 수혜자에게는 책임이 있다.

선택적 정의를 완전히 피할 수는 없다. 그러나 그 선택이 전략적으로 일관된 방향을 가져야 하고, 그 방향은 국제규범을 강화하는 쪽이어야 한다. 네타냐후에 대한 이 대통령의 발언이 의미를 갖는 것은 바로 그 방향을 가리키고 있기 때문이다. 푸틴에게 같은 원칙을 당장 적용할 수 없다는 현실이 그 의미를 지우지는 않는다.

선택적 정의는 국제정치의 숙명이다. 그러나 숙명을 인정하는 것과 숙명에 굴복하는 것은 다르다. 중견국 한국이 할 수 있는 일은 선택적 정의의 폭을 줄여나가는 방향으로 끈질기게 기여하는 것이다. 그것이 우리가 국제법을 지지해야 하는 이유이고, 불완전한 국제법이 그럼에도 필요한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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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날 박찬운 교수께서 쓰신 글에 대해 궁금해 하시는 독자들을 위해 첫 글도 전재해둡니다.-편집자주

이재명 대통령의 네타냐후 체포영장 발언- 짧은 법적 검토

어제 이재명 대통령의 네타냐후 관련 발언이 정치권이나 언론에서 분분한 의견이 나오고 있군요. 제가 한마디 안할 수 없군요. 이 분야는 제 전공과 밀접하게 관련되어 있습니다. 바로 이 문제와 직결된 법적 문제를 가지고 박사학위 논문을 썼거든요. 제 검토를 읽어보시지요. 이 글은 SNS 용이라 짧게 썼습니다. 아래 블로그 링크를 누르면 제가 검토한 풀 텍스트를 보실 수 있습니다.

이재명 대통령이 어제(5월 20일) 국무회의에서 주목할 만한 발언을 했다. 이스라엘군이 한국인 활동가가 탑승한 가자지구 구호선단을 나포한 사건을 비판하면서, ICC가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에게 발부한 체포영장을 “우리도 판단해보자”고 말한 것이다.

네타냐후를 ‘전쟁 범죄자’로 지칭하며 “원칙대로 하라”고 지시하기도 했다. 외교적 파장이 예상된다는 반응이 나오지만, 법적으로는 어떻게 평가해야 할까(이 글은 법적 평가에만 국한된 것임, 발언의 방식이나 그 공개에 대한 정치적 평가는 다른 각도에서 할 수 있을 것임).

ICC 체포영장의 내용

ICC 예심재판부는 2024년 11월 21일 네타냐후와 갈란트 전 국방장관에 대한 체포영장을 만장일치로 발부했다. 인정된 혐의는 세 가지다.

첫째, 전쟁 수단으로서의 기아 유발이다. 가자지구 민간인에게 식량·물·의약품·연료·전기를 고의적으로 박탈한 행위로, 이 죄목으로 ICC 역사상 영장을 발부한 최초의 사례다. 둘째, 민간인 주민에 대한 고의적 공격 지시다. 셋째, 반인도범죄로서의 살해·박해·기타 비인도적 행위다.

회원국의 협조 의무

로마규정은 당사국의 협력 의무를 명확히 규정한다. 제86조는 당사국이 ICC의 수사·기소에 전면 협력할 의무를 선언하고, 제89조는 체포영장 발부 대상자가 자국 영토에 입국할 경우 체포·인도 요청에 응할 의무를 규정한다. 제27조는 현직 국가원수·정부수반이라는 공식 지위도 형사책임의 면제 사유가 되지 않는다고 못 박는다.

이에 따라 이미 20여 개국이 집행 의사를 공식 표명했다. 캐나다, 네덜란드, 아일랜드, 스위스, 벨기에, 노르웨이 등이 네타냐후가 자국에 입국하면 체포하겠다고 의사를 밝혔다. 반면 헝가리는 오르반 총리가 직접 그를 초청해 영장 집행을 거부했고, ICC는 이를 강력히 비난했다. 프랑스·독일·이탈리아는 입장을 유보해 비판을 받았다.

한국은 로마규정에 2000년 서명하고, 2003년 비준을 완료한 당사국이다. 따라서 이 대통령의 발언은 법적 의무 이행 의지의 표명이다. 외교적으로 민감할 수 있으나, 법적으로는 아무런 문제가 없다.

한국법에 의한 직접 처벌도 가능하다

더 나아가 한국법을 살펴볼 필요가 있다. 법률가들도 이런 법률이 있는 줄 모르는데, 한국은 2007년 「국제형사재판소 관할 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법률」을 제정했다.

이 법은 인도에 반한 죄(제9조), 사람에 대한 전쟁범죄(제10조), 금지된 방법에 의한 전쟁범죄(제13조) 등을 국내법으로 처벌할 수 있도록 규정하고 있다. ICC가 인정한 네타냐후의 혐의 - 기아 유발, 민간인 공격 지시, 살해·박해 등 -는 이 조문들에 그대로 해당한다.

결정적인 것은 제3조의 ‘보편적 관할’ 규정이다. 이 조항은 외국인이 국외에서 이 법의 범죄를 저지른 뒤 현재 대한민국 영역 안에 있는 경우에도 한국 법원이 재판권을 행사할 수 있도록 했다. 전쟁범죄와 반인도범죄는 인류 전체에 대한 범죄이므로 피해자의 국적이나 범죄 발생지와 무관하게 어떤 국가든 재판할 수 있다는 보편적 관할권 원칙을 국내법으로 수용한 것이다.

결론적으로 네타냐후가 한국 영토에 발을 딛는 순간, 한국은 ICC에 신병을 인도할 권한과 의무를 동시에 갖는다. 이 대통령의 발언은 국제법 원칙에 충실한 것이다.

나아가 한국이 그가 입국하면 체포해 한국 법정에 세우겠다고 선언하는 것도 법적으로 완전히 가능하다. 이것은 법적으론 의문의 여지가 없다.

이 글은 필자의 허락을 받아 페이스북 글을 전재한 것입니다.

글쓴이

박찬운 한양대법학전문대학원 교수 변호사

자세한 글은 블로그에서. 나의 주장/사법 이재명 대통령의 네타냐후 체포영장 관련-발언에 관한 법적-검토[박찬운의 아브라카다브라:티스토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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