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강보험 축소? 윤석열 정부의 후진적 복지
국민 건강 팽개치려 등장한 재정파탄론 매년 보험료·수가로 조정...파탄날 일 없어 한국 보장성 60%수준...선진국은 90% 국가 책임, 국민에 미루고 민간에 특혜를
국민들이 건강보험을 낭비한다?
윤석열 정부가 최근 건강보험에 대한 개혁을 하겠다고 밝혔다. 복지부 장관은 물론이고, 대통령까지 나서서 건강보험개혁 당위성을 설명했다. 시민사회와 여론이 즉각 반발했음에도 ‘국민과의 대화’와 보도자료를 통해 방향성 수정을 할 생각이 없다는 점도 밝힌 상태다.
시민들이 염려하는 이유는 ‘개혁’이라는 단어와 걸맞지 않은 개악 요소와 방향성 때문이다. 단순하게 보면 ‘건강보험이 낭비되고 있어 의료 혜택을 줄이겠다’는게 요지다. 사실 이런 논리가 새삼스럽지는 않다. 주요 사회 서비스와 사회보험은 언제나 ‘낭비’라는 공격을 받아왔다. 굳이 안 받아도 되는 서비스를 ‘공짜’라서 받는다는 논리로 국민들의 ‘도덕적 해이’를 주된 논점으로 삼는다.
여기에 빠지지 않는 것이 ‘재정파탄론’이다. 지금처럼 퍼주다가는 손실이 너무 커져 복지 서비스를 운영할 수 없게 된다는 논리다. 이런 논리는 주로 수 십년 후 재정예상치가 제시되고 그런 계산이 사실일 것이란 가정하에 반복되는 공포를 주입한다. 이런 재정파탄론은 복지 축소를 위해서만 쓰이는 게 아니라 내부 단속을 할 때도 자주 쓰이는 레파토리다.
군사정부 때는 걸핏하면 국가부채 이야기가 뉴스에 나오면서 절약과 국산품애용을 선동하는데 쓰였다. IMF(국제통확기금) 위기 이후에는 국가채무 비율이 자주 공개되면서 긴축재정을 편성해야 할 근거로 제시된다. 박근혜 정부때에는 무려 ‘2060년 재정전망치’도 발표했는데, 예상했던 대로 전 부문에서 재정파탄이 공시됐다.
이번에도 아니나 다를까 대통령실이 나서서 현재의 건강보험이 ‘2040년 누적적자가 678조 원에 이를 것으로 전망된다’고 밝혔다. 우선 이는 사실이 아닐뿐더러, 건강보험과 같이 연간계획으로 운영되는 사회보험에서는 해당이 될 수도 없는 일이다.
이 정부가 얼마나 사회보험에 대해 무지한 지는 차치하더라도, 재정파탄 선동으로 국민들을 호도하려는 의도는 명확해졌다. 일단 건강보험 혜택은 무조건 줄이겠다는 선전포고를 한 것이다. 물론 건강보험에 대한 현정부의 주장은 재정예측 뿐 아니라 세부적으로도 사실이 아닌 것이 대부분이다.
보장성이 높다고? OECD 최저수준일 뿐
그 중 중요한 한가지 주장을 우선 살펴보면, 보장성 강화로 불필요한 의료이용이 많아졌다고 이야기한다. ‘보장성’이란 환자들이 받은 의료서비스 중 건강보험이 보장해주는 범위를 말한다. 따라서 보장성이 높아져서 의료이용이 발생하는 부분은 그동안 본인부담이 높아서 의료이용을 자제했던 환자들이 검사하고 수술 받는 한계치까지다. 그리고 이런 미충족 의료는 당연히 국가가 책임져야 했던 것인데, 방치했다면 그것이 문제라고 할 수 있다.
현실에서 불필요한 의료이용도 상당부분 존재한다. 바로 과잉진료 부분이다. 하지만 과잉진료는 이를 부추길 수 있는 전달체계 미비나 민영보험의 존재, 의사들의 도덕적 해이 때문에 발생하는 것이지, 건강보험 혜택을 늘린 것과 직접 관련성은 없다. 건강보험 혜택을 받게되면 공적평가체계(건강보험심사평가원)에서 이를 평가하기 때문에 함부로 과잉진료를 하기도 어렵다. 거기다 맹장을 두번 땔 수 없고, 시끄러운 소음속에서 MRI를 몇번이고 찍기 원하는 환자는 없기 때문이다.
피부미용과 같은 선택적 영역이 아니고 건강보험이 당연히 보장해야 하는 의료영역에서 과잉진료는 의료공급자가 문제지, 건강보험 보장성이나 국민들의 책임은 아닌 것이다. 때문에 대부분의 나라들이 공공의료를 확충하고, 공공의료 체계와 공적의료전달 체계를 유지하는 것이다.
거꾸로 보장성이 축소된다는 뜻은, 환자본인 부담이 늘어난다는 것 뿐 아니라 건강보험의 통제를 받지 않는 비급여가 늘어난다는 뜻이다. 비급여야말로 현재 국민 의료비 폭등의 주범이다. 비급여는 건강보험이 보장하는 급여가 아니라서 환자들에게 얼마나 시행했는지, 왜 시행했는지도 따질 수 없다. 때문에 한국에서 그동안 국민들이 내는 보험료가 올라가도 비급여가 비슷한 수준으로 증가해 보장성이 획기적으로 올라가지 못했다. 그런데 이런 비급여를 최대한 급여범위에 집어넣어서 적정성을 평가하는 보장성강화 정책이 불필요한 의료이용을 조장한다는 논리는 비급여 문제 해결시도를 포기하겠다는 선언이나 다름없다.
대통령의 주장은, 단순하게 비급여로 그간 시행하던 MRI, 초음파 비용을 건강보험이 기대보다 많이 지출하게 되었다는 주장인데, 결국 그동안 필요해서 시행한 검사비용은 모두 국민의 호주머니에서 나왔을 뿐더러, 건강보험측이 그 내역을 파악도 못하고 있어 얼마나 시행되었는지도 몰랐던 것이었다. 따라서 복지혜택 증가를 단순히 복지 포퓰리즘으로 환원하는 방식은 건강보험에 대한 몰이해는 물론이고, 재정축소만 하면 된다는 단순한 사고가 아니고선 이해가 불가능하다.
거기다 한국의 의료보장성은 65% 수준으로 80%가 넘는 OECD 대부분의 국가에 훨씬 못 미친다. 한국보다 보장성이 낮은 나라는 멕시코 정도밖에 없다. 한국의 건강보험을 부러워할 나라는 미국과 멕시코 정도 밖에 없는데, 뭘 더 축소한다는 것인가?
건강보험 자체는 적자 누적되는 것 아냐
거기다 재정파탄론을 국민연금과 같은 현금급여가 있는 사회보험이 아니라, 의료서비스를 받았을 때 일정 비용을 보상하는 현물급여 중심의 건강보험에 적용하는 것도 이상한 일이다.
건강보험은 연단위 단기보험으로 매년 수입과 지출을 계산해서 보험료를 걷고 의료공급자들에게 보상을 하는 구조다. 때문에 매년 보험요율이 얼마가 되었는지, 의료공급자들의 보상몫인 수가가 얼마가 되었는지 언론이 중요하게 다루고, 국민들도 관심을 가진다. 애초에 누적해서 흑자가 발생해도 의미가 크지 않고, 누적해서 적자가 발생하는 게 아니라 적자를 당장 메꿔야 한다. 그리고 그런 흑자와 적자는 재정 예측을 잘못해 보험료를 많이 걷었거나, 수가를 많이 줬거나 하는 식의 원인에서 나타날 뿐이다
혹여나 필요한 의료서비스를 제공하다가 적자가 발생한다면 국가가 더 부담하면 된다. 그럴려고 국가가 있는 것이다. 특히 건강보험에 대한 국고지원이 한국은 일본과 대만의 40% 수준에 훨씬 못미치는 10%수준이다. 건강보험에 대한 국고지원만 제대로 했어도 국민의료비는 훨씬 줄었을 것이다.
보수정부가 자랑하는 박근혜 정부 시절 건강보험 누적흑자도 국민들이 받을 의료서비스의 양에 비해 보험료를 많이 걷어 생긴 일이었다. 만약 그 흑자를 의료서비스로 전환해 보장성을 더 높였으면 국민들의 의료비 지출이 당장 줄었을 것이다. 건강보험에 대해 “흑자는 좋고 적자는 나쁘다”는 식의 논리를 적용하려면 최소한 현금으로 축적해서 공급하는 현금급여가 있어야 하는데, 아쉽게도 한국은 아직 상병수당 같은 기본적인 현금급여 서비스도 제공하지 않고 있다. 그런데 어떻게 누적 적자가 687조원이 되고, 거꾸로 지금부터 아낀다고 흑자가 몇 백조씩 될 수 있겠는가?
무엇보다 의료이용은 무한정 늘어나는 게 아니고, 그간 비용 때문에 받지 못했던 서비스가 보장성 강화로 늘어나다가 거의 늘어나지 않는 로그곡선의 증가 방식을 따른다. 만약 의료비가 계속 증가한다면 보장성을 90% 수준으로 유지하는 선진국들이 의료비로 다 망했나? 거꾸로 공적의료 제도와 건강보험이 없는 미국은 전세계에서 가장 높은 의료비를 지출하고도 그 결과는 나쁜 수준을 유지한다. 건강보험 적자가 그렇게 걱정이 되면 공적보장제도를 더욱 강화해야 관리가 되는 것이다.
그리고 앞서 설명했듯이 낭비와 과잉이 있다면 당연히 재정 축소로 대응하는게 아니라 적절한 의료공급 장치들을 마련해서 해결해야 한다. 주치의제나 환자등록제 같은 선진국형 1차의료제도를 도입하고 병원의 상당수를 공공화하면 낭비의료를 막을 수 있다. 그런데, 공공병원 하나 늘릴 계획이 없고, 공공클리닉 하나 만들 계획이 없는 윤석열 정부가 건강보험의 낭비를 걱정한다니, 진정성이 하나도 느껴지지 않는다.

英 대처· 美 레이건· 日 나카소네도 안한 일
도리어 윤석열 정부는 민간병원 중심의 의료체계를 더 부추기겠다고 한 바 있다. 여기에 1차의료부분도 민간보험사가 진출할 수 있도록 ‘건강관리서비스 인증제’를 올 10월부터 시작했다. 여기다 만약 정부계획처럼 보장범위를 축소한다면 당연히 국민들은 의료비 걱정으로 민영보험에 더 가입할 수 밖에 없다. 즉 민영보험 시장을 키워주게 된다.
이처럼 정부는 건강보험재정을 아끼려고 의료혜택을 줄이겠다고 밝혔지만, 실제 현실에서는 비급여진료가 늘어나 수익성을 추구할 민간의료기관, 더 커지는 보험시장에 즐거워할 민영보험회사들만 좋아지게 될 것이다. 이런 실체적 진실은 숨기고 재정논리로 국민들을 호도하는 일은 한 나라의 대통령이 해서는 안된다.
때문에 이런 문제로 역대 어떤 대통령도 다른 건 몰라도 복지를 축소하겠다는 언명을 직접하지는 않았다. 낭비요소를 살펴보고 약속만큼 복지혜택을 제공하지 못했다고 사과하는 대통령은 있었지만, 국민들 앞에서 뻔뻔스럽게 돈걱정을 늘어놓으며 혜택을 줄이겠다고 한 사람을 보지 못했다.
더구나 이런 천박한 복지에 대한 입장을 스스럼 없이 몇차례 드러낼 정도로 주변 참모와 전문가들이 모조리 시장논리에 빠져있는 정권도 처음이다. 민영화 첨병이었던 영국의 대처, 미국의 레이건, 일본의 나카소네 등도 건강보장과 관련해서 축소를 언명하거나 집행한 적은 없었다. 국민저항이 무서워서도 그랬거니와, 건강보장은 여타 산업의 경쟁력하고도 관련이 있기 때문이다. 이런 기본적인 상식보다도 재정건전성이 우선이라는 사고는 시장자본주의 ‘끝판왕’에서나 가능한 소리다.
국민 건강 지켜야할 국가의 ‘도덕적 해이’
거기다 한국은 가난한 나라에서 이제 부자나라가 되었다. 과거에는 1만불 시대가 되면 복지제도를 도입하겠다고 하고, 그게 2만불 시대로 미뤄지고, 이제 3만불시대가 되었는데도 우리 국민은 비슷한 수준의 국가의 반도 안되는 복지서비스를 받고 있다. 그런데 갑자기 이제는 복지서비스 때문에 재정파탄이 오고 국민들의 도덕적 해이가 발생한다고 주장한다. 그러면 한국은 잘살든 못살든 선진국형 복지서비스는 요원하다는 것이다. 이런 주장의 기저에 혹여나 복지제도로 국민들이 나태해진다는 생각이 깔려있는 것은 아닌지 의심된다.
결국 재정론에서 벗어나지 않으면 제대로 된 복지서비스 도입은 불가능하다. 복지는 돈이 없어서 못하는 게 아니고 공적사회서비스를 민영화해서 사업으로 가지고 가려는 시장주의자들, 각자도생해야 경쟁력이 있다는 경쟁지상주의자들 때문에 못하는 것이다. 영국 복지제도의 근간이 된 베버리지 보고서에서는 복지제도가 부분적 이해관계(sectional interests)로 제한되어선 안된다고 밝히고 있다. 그리고 가장 중요한 부분적 이해관계가 ‘국가의 부’인 재정적 고려다.
한국의 사회보장 중 그나마 훌륭한 편인 건강보험을 공격하는 윤석열 정부의 태도로 보아 앞으로 국민연금과 저소득층 보장제도에 대한 축소 논의도 커질 것 같다. 하지만 우리 국민들이 그렇게 호락호락하지 않다. 정부 여당은 대통령까지 나서서 의료혜택 축소를 천명한 것을 아마 두고 두고 후회하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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