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사에 갇힌 형소법 개정, ‘박찬운’이 던진 쟁점
- 이상주의의 헌법적 장벽 한인섭 교수가 《한겨레신문》를 통해 제시한 교조적 수사·기소 분리론은 헌법상 명시된 검사의 영장청구권 및 구속 제도와 양립할 수 없는 법리적 모순을 안고 있다.
- 시민을 위협하는 통제 공백 박찬운 교수가 개인 블로그에 던진 날카로운 화두는, 검찰 해체에만 골몰해 ‘보완수사’를 없애고 ‘전건송치’를 반대하는 개혁이 결국 비대해진 경찰 권력 앞에 힘없는 시민들을 가장 취약하게 만든다는 것이다.
- 디테일을 잃은 개혁의 부메랑 올 10월 거대 사법 기구의 출범을 앞둔 시점에서 현실적 역량과 조문의 정밀성을 도외시한 채 당위적 서사만 앞세운 형소법 개정은 사법 체계의 대혼란과 ‘사건 암장’이라는 인권 잔혹사로 이어질 수 있어 우려된다.
한인섭 교수(서울대학교 법학 명예교수)는 형사법 학자로서 한평생 반독재 투쟁의 최전선에 서왔다. 민주주의를 위해 혼신의 힘을 다해온 분이다. 특히 지난 12·3 내란 이후에는 시민들이 왜 윤석열 정권과 싸워야 하는지를 번득이는 법이론으로 설명하며 헌정 질서를 지키는 데 크게 기여했다.
나와도 오랜 기간 특별한 인연을 맺어온 선배 교수이기도 하다. 검찰개혁에 있어서는 8부 능선까지 함께 걸어왔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정상 가까이에서 서로 다른 노선을 걷게 된 것 같아 개인적으로 마음이 아프다. 오늘 이 논쟁은 형소법 개정 논의에서 피차 인내해야 할 불가피한 과정이다. 한 교수께서 내 마음을 이해해 주시리라 믿으면서 이 글을 쓴다.
한 교수의 글이 검찰개혁의 염원과 선의에서 출발했음은 의심의 여지가 없다. 형소법 개정을 ‘시민 인권 장전’으로 만들어야 한다는 문제의식에 누가 반대하겠는가. 그러나 ‘선의’와 ‘옳은 지향’이 좋은 법을 보장하지는 않는다. 법은 구체적인 절차의 설계이고, 그 정밀성이 제도의 성패를 가른다. 그 시각에서 이 글을 읽으면 대중적으로는 환호받을 수 있지만 법학적으로는 심각한 문제가 있음을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한인섭 교수 칼럼: 형소법 개정, ‘기관 이익 쟁탈’ 아닌 ‘시민 인권 장전’으로 )
[기획 대조표] 한인섭 vs 박찬운: 형소법 개정 4대 쟁점
핵심 쟁점 한인섭 교수 (한겨레 연재) 박찬운 교수 (블로그 반론) 검사의 수사기능 수사 기능 전면 삭제 · 검사를 순수 기소기관으로 제한 수사기능전면제한은 헌법개정 사안 · 영장청구권·구속은 수사 전제 보완수사권 폐지 (악습의 불씨) · 표적 및 별건 수사의 빌미 제공 유지 (공소의 전제) · 서류 기록만 보고 기소할 수 없음 사건 송치 현행 유지 (경찰 종결) · 무혐의 피의자의 불안 가중 방지 전건송치 (경찰 통제) · 불송치 급증에 따른 사건 암장 방지 개혁의 속도 일괄 도입 (종합 장전) · 기소대배심 등 인권 제도 동시 도입 단계 도입 (속도 조절) · 10월 시행인데 전부 원하다 다 잃음
1. 검사의 수사기관성 완전 제거 주장은 헌법, 형소법 체계와 양립할 수 없다 수사-기소분리 원칙에는 한계가 있는 법이다.
한 교수는 형소법 전반에서 검사를 수사 주체로 규정한 조항들을 삭제·수정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이것은 수사·기소 분리 원칙의 교조적 적용이며, 우리 헌법과 형소법 체계가 허용하기 어려운 주장이다. 길게 생각하지 않아도 몇 가지 구조적 장벽이 뚜렷이 보인다.
첫째, 검사의 영장청구권은 그 자체가 수사권의 결정적 근거이다. 헌법 제12조 제3항은 체포·구속·압수·수색의 영장을 반드시 검사의 신청에 의하도록 규정한다. 우리 헌법은 처음부터 검사를 수사기관으로 성격 규정한 것이다. 검사를 순수한 기소기관으로 만들려면 헌법 개정부터 해야 한다.
둘째, 검사의 구속기간은 수사를 전제한 제도이다. 형소법 제203조는 검사의 구속기간을 규정하고, 제205조는 그 연장 요건을 “수사를 계속함에 상당한 이유가 있다고 인정한 때”로 명시한다. 검사의 구속은 수사를 전제로 한 것이다. 검사의 수사기관성을 부정한다면 이 구속기간을 정당화할 근거는 없다. 검사가 송치 사건을 검토하는 동안 피의자를 붙들어둘 근거가 무엇인가. 전혀 다른 구속 체계를 새로 설계하지 않는 한, 피의자를 즉시 석방해야 한다는 결론으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
셋째, 검사의 영장집행 지휘도 수사기관성과 관련 있다. 형소법 제81조와 제115조는 구속영장과 압수·수색영장의 집행을 검사의 지휘에 의하도록 규정한다. 수사와 무관한 순수 기소기관이 영장 집행을 지휘한다는 것은 논리적으로 설명되지 않는다.
넷째, 검사의 긴급체포 제도도 수사기관성을 포기하면 설명하기 어렵다. 현행 형소법 검사에게 긴급체포권을 부여한다. 긴급체포권은 수사기관에게만 인정되는 권한이다. 수사·기소 분리론자들은 긴급체포 조항(제200조의 3)을 폐지하면 그만이라고 할지 모른다. 그러나 그들 중에서도 일부는 검사가 피의자를 직접 조사하는 것은 필요하다고 인정한다.
한 교수가 어떤 입장인지는 모르지만, 만일 후자라면 이 질문을 피할 수 없다. 그 조사 과정에서 피의자가 도주를 시도하거나 증거인멸의 우려가 현실화되면 어떻게 할 것인가. 경찰에게 긴급체포를 요청할 것인가? 긴급체포는 즉각적인 신병 확보를 요구한다. 경찰이 현장에 도착하는 시간을 기다리는 것은 긴급체포의 본질과 정면으로 충돌한다. 검사의 조사 기능을 인정하는 한, 긴급체포권은 검사에게 직접 주어져야 한다. 긴급체포권을 가진 검사는 수사기관이다.
비교법적으로 보더라도 검사의 수사기관성을 완전히 부정하는 나라는 영국 정도가 예외일 뿐, 우리 형소법의 뿌리인 독일을 비롯 대륙법 계통 어디에서도 찾아보기 어렵다. 직접수사행위를 법률로 제한하는 것은 가능하다. 2020년과 2022년 개정이 그 방향이었다.
그러나 수사기관성 자체를 부정하는 것은 다르다. 헌법 개정 없이, 구속제도의 재설계 없이, 영장 집행 체계의 대안 없이 검사의 수사기관성을 완전히 제거할 수 없다. 수사-기소분리 원칙, 검수완박에는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2. 보완수사를 검찰 기득권의 상징으로 규정하는 것은 본질을 오해한 것이다.
보완수사는 경찰이 기소 의견으로 송치한 사건에서 검사가 기소 여부를 판단하기 위해 부족한 사실을 확인하는 행위다. 공소기관이 책임 있는 기소 결정을 내리기 위한 내재적 전제조건이다. 성폭력 사건에서 진술이 정면 충돌할 때, 경제범죄에서 자금 흐름이 불명확할 때, 피의자가 새로운 알리바이를 제출하겠다고 할 때, 검사는 기록만 보고 기소 여부를 결정해야 하는가. 남용 가능성은 남용 방지 장치로 막으면 된다. 칼이 흉기로 쓰일 수 있다고 부엌칼을 없애지는 않는다. 보완수사 없는 공소기관은 공소기관이 아니다.
흥미롭게도 한 교수 스스로 이 논리의 모순을 드러내고 있다. 그는 검사가 영장을 청구할 때 피의자를 직접 대면하고 의견을 청취할 방안을 검토해야 한다고 말한다. 그런데 같은 논리가 기소 여부 판단에는 왜 적용되지 않는가.
영장 청구 단계보다 기소 결정 단계가 피의자의 운명에 더 결정적인 영향을 미친다. 검사가 기소 여부를 판단하기 위해 피의자를 대면하고 사실을 확인하는 것, 그것이 바로 직접 보완수사를 인정해야 하는 근거다. 보완수사를 부정하면서 보완수사의 필요성을 스스로 인정하는 자기모순이다.

3. 전건송치 반대론은 경찰 수사권 통제의 핵심 문제를 외면한 것이다.
경찰의 불송치 결정은 2021년 38만 건에서 2024년 54만 건을 넘어 3년 새 41%나 급증했다. 이의신청은 법률 지식과 경제적 여유가 있는 피해자에게나 실질적인 권리다. 기록 송부를 받은 검사의 재수사 요청 비율은 2024년 기준 2.61%에 불과하다.
혹자는 현재의 제도로도 경찰 수사를 통제할 수 있지만 정작 문제는 검사의 의지 박약이라고 비판하지만 검사가 적극적으로 개입할 유인이 생기지 않는 것은 제도 설계의 필연적 결과다. 현재 상황은 경찰이 사실상 불기소 결정권을 행사하는 것이라는 비판을 도외시해서는 안 된다.
이런 상황에서 전건송치는 검찰 기득권 회복이 아니라 집중된 경찰 수사권력에 대한 민주적 통제 장치다. 경찰이 수사한 모든 사건을 검사에게 보내야만 경찰 수사의 적절성을 판단할 수 있다. 그렇지 않고서는 사건 암장의 구조적 문제나 사실상 불기소 결정권 행사라는 비판을 피하기 어렵다.
다만 전건송치로의 회복이 검경 관계의 역사적 변천에 따라 현실적으로 어렵다면, 최소한 중대사건만이라도 경찰의 불송치 결정권을 제한하고 검사의 최종 판단권을 회복하는 제한적 전건송치를 해야 한다.
4. 특사경에 대한 검사의 수사지휘 폐지 주장은 현실을 외면한 것이다.
한 교수는 경찰 내부의 특사경지원센터를 통해 수사기법과 법률 조력을 제공하면 된다고 말한다. 그러나 이것은 수사지휘를 폐지하는 것이 아니라 검사에서 경찰로 옮기는 것에 불과하다.
특사경은 식품·환경·노동·출입국 등 고도의 전문성이 요구되는 분야를 담당한다. 수사지휘를 담당해온 검사의 전문성을 갑자기 경찰 조직의 지원으로 대체할 수 있다는 것은 근거 없는 낙관이다(올 10월부터 그게 가능하겠는가!). 특사경에 대한 검사의 수사지휘는 당분간 현실적으로 유지되어야 한다. 제도의 이상과 현실의 역량 사이의 간극을 메우지 않은 채 원칙만 앞세우는 것은 개혁이 아니라 실험이다.
5. 방대한 제안 목록은 개혁의 현실성을 스스로 훼손한다.
올 10월 시행되는 형소법을 만들어야 하는 상황에서, 한 교수의 제안 목록은 압수수색영장 사전심문제, 조건부 석방제, 한국형 기소대배심, 국민참여재판 필수화, 수사인권보호관 신설, KICS 고도화, 영상 녹화 의무화까지 망라한다.
하나하나 진지하게 논의할 수 있는 주제들이고 나도 그 문제의식 대부분에 동의한다. 그러나 이것을 이번 형소법 개정에 한꺼번에 담겠다는 것은 청사진이 아니라 희망 목록이다. 전부를 원하다가 핵심마저 잃는 것이 개혁 실패의 가장 흔한 경로다. 이런 희망 목록의 논의는 최소화하고 그 본격적 논의는 다음 기회로 넘겨야 한다.

6. 경찰 수사권 통제 방안이 없다는 것이 한인섭 형소법 개정론의 가장 큰 공백이다.
검사의 수사권을 완전히 박탈하자는 주장을 한다면, 그 반대급부로 집중된 경찰 수사권을 어떻게 통제할 것인지에 대한 구체적 대안을 반드시 제시해야 한다. 보완수사권을 중심으로 반론을 펴는 나와 같은 사람들에게 가장 중요한 문제인데, 한 교수의 글에는 이런 고민이 없다.
검찰개혁의 목적은 검찰 권한을 없애는 것이 아니다. 국민에게 실질적인 이익, 즉 범죄 억지, 실체적 진실 발견, 인권 보장이 제대로 이루어지는 형사사법 체계를 만드는 것이다. 검찰의 권한을 줄이면서 동시에 경찰 수사권을 어떻게 민주적으로 통제할 것인가를 함께 설계하지 않는 개혁은 절반의 개혁이다.
오로지 검찰 권한 죽이기에 집중하면서 경찰 수사권 통제 문제를 외면하는 것은, 개혁의 목적을 국민이 아니라 기관 간 권력 재편에 두는 것과 다르지 않다.
7. 시민 인권 장전이 정작 시민을 취약하게 만든다면 개혁이 아니라 구호에 불과하다.
수사·기소 분리 원칙을 신앙처럼 받드는 사람들 사이에서는 보완수사 폐지와 전건송치 반대가 검찰 기득권을 걷어내는 당연한 서사로 받아들여진다.
그러나 법은 서사가 아니라 조문이고, 조문은 현실의 사건을 통해 작동한다. 보완수사가 없고 경찰의 불송치 결정이 사실상 최종이 되는 형소법이 실제로 작동할 때 가장 먼저 억울해지는 사람은 제대로 수사받지 못한 피해자와 충분한 검토 없이 기소되는 피의자다.
시민 인권 장전을 내세우면서 정작 시민을 가장 취약하게 만드는 구조를 설계하는 것은, 아무리 선의라 해도 받아들이기 어렵다. 그것은 실속 없는 구호에 불과하다.
결론적으로 이번 형소법 개정의 핵심은 수사·기소 분리의 취지를 살리되, 검사가 책임 있는 기소 판단을 내릴 최소한의 조건을 유지하고, 집중된 경찰 수사권을 민주적으로 통제하는 장치를 갖추는 것이다.
그 조건이 보완수사이고, 그 장치의 핵심이 전건송치다. 나아가 검경의 협력체계를 위한 구체적인 방안을 법률로 규정해야 한다. 원칙에 천착하다가 절차의 디테일을 잃으면 검찰개혁은 또다시 좌초될 운명에 처해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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