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주국방 비웃는 미 사령관의 ‘단검’ 발언
- 미한동맹 강화와 자주국방의 모순 안규백 국방부 장관은 샹그릴라 대화에서 동맹강화와 자주국방의 병행을 주장했으나, 현재의 군사구조에서 동맹강화는 한국군의 작전 범위를 미국의 인도·태평양 전략 안에 귀속시켜 종속을 심화시킬 뿐이다.
- ‘항공모함’에서 ‘단검’으로의 위험한 재규정 주한미군사령관의 ‘단검’ 발언과 호르무즈 해협 기여 검토는 한국을 단순한 방어선이나 출격 기지(항공모함)를 넘어, 미국의 대중국·대이란 전쟁 전략을 수행하는 직접적인 ‘공격수단(무기)’으로 전진 배치하려는 미국의 전략적 의도를 드러낸다.
- 자주국방의 진정한 기준은 ‘결정권’ 미국이 제시하는 무기 구매와 작전 능력 검증 조건에 맞추어 2029년쯤 허가받듯 환수하는 전시작전권은 ‘책임 이전’의 미끼일 뿐이며, 진정한 자주국방은 전쟁의 개시·종결, 파병, 기지 사용 여부를 한국이 독자적으로 결정하는 ‘주권 행사’에서 시작된다.
동맹강화의 자주국방은 대립되는 말
안규백 국방부 장관은 5월30일 싱가포르에서 열린 제23차 아시아안보회의, 이른바 “샹그릴라 대화” 본회의에서 ‘동맹강화’와 ‘자주국방’을 함께 말했다. 그는 미한 연합방위태세를 유지하면서 한국 주도의 방위를 위한 독자적 역량을 강화하겠다고 했다. 동시에 호르무즈해협 항행 정상화를 위한 한국의 기여 방안도 검토하고 있다고 밝혔다.
동맹강화와 자주국방, 언뜻 조화로워 보이는 두 낱말이다. 그러나 현재의 미한 군사구조에서는 두 말의 병행이 성립하지 않는다. 현재의 미한 군사구조가 유지되는 한, 동맹강화는 자주국방의 확장이 아니라 종속의 심화로 귀결된다. 자주국방은 한국군의 목적과 작전범위를 한국이 정하는 것이다. 반면 동맹강화는 그 목적과 범위를 미국 전략 안으로 더 깊이 묶는 방향으로 작동하고 있다.
주한미군사령관의 “한국은 중국을 겨눈 단검” 발언은 이 문제를 압축적으로 보여준다. 단검은 한국을 공격축으로 상정한다는 뜻이다. 미국이 한국을 중국을 겨눈 단검으로 규정하는 순간, 한국은 방위의 주체가 아니다. 미국의 대중국 전쟁구조 안에 배치된 군사수단에 불과하다.
자주국방이라면 한국정부는 이 발언을 규탄해야 한다. 한국군의 활동 목적과 작전범위는 주한미군사령관이 정하는 것이 아니다. 미국 인도·태평양전략이 정하는 것도 아니다. 그것은 한국이 정해야 한다. 바로 이 기준에서 안규백 장관의 발언은 심각한 문제를 드러낸다.
‘단검’ 발언은 한국을 공격축으로 보는 주장
단검 발언은 의도된 표현이다. 미국이 한국을 대중국 군사구도 안에서 어떻게 활용할 것인가를 밝힌 것이다. 미국은 한국을 방어선으로 보지 않는다. 이제 한국은 중국을 향한 공격 의도를 가진 공격선, 전진 축으로 규정되고 있다. 이 표현이 위험한 이유는 한국의 지리와 군사력이 미국의 대중국 전쟁구조 안에서 공격수단으로 활용되기 때문이다.
미국은 최근 미한동맹을 현대화해야 한다고 말해 왔다. 이 말은 듣기에는 좋은 말 같다. 그러나 실제 의미는 한국의 역할 확대다. 주한미군이 한국에만 묶이지 않는 구조를 뜻한다. 한국군도 조선(북한) 대응을 넘어 대중국 전구 작전에 투입되는 구조를 뜻한다. 단검 발언은 그 구조를 노골적으로 드러낸 것이다. 그러다 보니 한국은 조선과 중국이라는 2중 위험에 노출된다. 만약 한국이 독자적 결정을 할 수 있다면 이 위험을 줄일 수 있다.
단검 발언은 이전의 항공모함 발언보다 더 위험하다. 항공모함은 해상 공군기지다. 한국을 항공모함으로 본다는 것은 한국을 미국 군사력이 출격하는 고정 공군기지로 본다는 뜻이다. 미국은 한국의 땅과 하늘을 이용해 각종 미사일과 드론을 발사하고 전투기, 폭격기, 정찰기, 급유기, 정보자산을 운용하려 한다. 이것이 항공모함 발언의 본질이다.
그러나 단검 발언은 한 걸음 더 나아간다. 항공모함은 한국을 미국 군사력이 출격하는 기지로 보는 표현이다. 단검은 한국을 중국을 향한 공격수단으로 규정한 말이다. 항공모함에서 단검으로 표현이 옮겨간 것은 단순한 수사 변화가 아니다. 한국을 기지에서 무기로, 출격지에서 공격축으로 재규정하는 변화다. 그만큼 한국의 위험은 커지고 있다.
언론보도는 이 문제의 본질을 해석하기보다 주로 발언 논란이나 외교적 마찰로 다루었다. 한국 매체는 안규백 장관의 발언을 ‘동맹강화와 자주국방 병행’, ‘호르무즈 기여 검토’라는 정책 발표로 소개했다. 미국 쪽 설명은 단검 발언을 작전 환경에 대한 설명으로 방어했다.
중국 쪽은 한국을 항공모함이나 단검 같은 군사적 표현으로 부르는 것 자체가 “호전적”이라고 반발했다. 홍콩 영자지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SCMP)는 이 발언을 인도·태평양에서 주한미군의 지휘 범위를 넓히려는 흐름 속에서 소개했다.
그러나 문제는 표현 수위에만 있지 않다. 핵심은 미국이 한국을 중국을 겨냥한 ‘군사적 돌격대’로 설명했다는 점이다. 미국이 한국을 “중국을 겨눈 단검”이라고 부른 것은, 한국을 방어 동맹국이 아니라 중국을 압박하는 군사수단으로 보고 있다는 뜻이다. 그렇다면 한국정부는 물어야 한다. 한국은 진정 미국의 의도대로 대중국전에 나서겠다는 것인가.
이미 지난 1월 재비어 T. 브런슨 주한미군사령관은 대만 유사 대비와 주한미군 역할 확대를 시사했다. 이는 한국이 대중국전 구상 안에 포함되고 있음을 보여준 발언이었다. 그때 이미 문제는 한국과의 논의가 아니라 통보의 단계로 넘어가고 있었다.
한국은 중국을 겨눈 단검이 되서는 안된다. 한국은 미국의 전쟁전략을 수행하기 위해 존재하는 전초기지, 항공모함도 아니다. 한국을 단검으로 부르는 순간, 한국 국민의 안전과 한국의 외교적 선택권은 미국의 대중국 작전 구도 속에서 박탈된다. 이것이 동맹강화의 실제 모습이라면, 그것은 자주국방과 정면으로 충돌한다.

미한동맹은 전쟁동맹·종속동맹이다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동맹의 의미는 현재의 미한동맹에는 없다. 평등과 수평, 공존과 상호배려가 아니라 불평등과 수직, 미국 중심과 미국 우선주의가 작동한다. 현재의 미한동맹이 대등한 동맹이라면 한국은 마땅히 한국군의 작전 목적과 범위, 파병 여부, 기지 사용 여부를 스스로 결정할 수 있어야 한다.
미한동맹의 본질은 한국의 군사력을 미국의 전쟁계획 속에 배치하는 전쟁동맹이자, 핵심적 결정권이 미국에 있는 종속동맹이다. 전쟁동맹이라고 하는 것은 한국군과 한국 기지, 정보망과 병력이 미국의 작전계획 안에 있는 구조이기 때문이다. 또한 종속동맹이라고 규정하는 것은 전쟁의 개시와 종결, 작전 범위와 목표, 기지 사용 여부를 한국이 독자적으로 결정하지 못하는 불평등한 군사관계이기 때문이다.
한국은 아직 전시작전권을 온전히 행사하지 못한다. 전시에는 한국군의 작전 지휘가 미한연합사 구조와 미국 중심의 작전계획에 묶여 있다. 전쟁의 개시와 종결, 작전 범위와 목표, 한국군과 한국 기지의 사용 문제를 한국이 독자적으로 결정하지 못한다면 그것은 대등한 동맹이 아니다. 그것은 불평등관계이며 종속관계다.
그래서 미한동맹은 일반동맹이 아니다. 군사동맹이며, 더 정확히는 전쟁동맹이고 종속동맹이다. 자주국방은 바로 이 구조를 끊어내는 것이다. 한국군의 목적과 작전범위를 한국이 정하는 것이다. 한국 땅과 한국군이 미국의 전쟁계획에 동원되지 않도록 막는 것이 자주국방이다.
물론 현실 안보의 복잡성을 이유로 미한동맹을 당장 끊을 수 없다고 말하는 사람도 있을 수 있다. 그러나 그 주장과 동맹강화가 자주국방이라는 주장은 다르다. 안보 현실을 관리해야 한다는 말이 미국의 전쟁구조에 더 깊이 들어가야 한다는 뜻은 아니다. 평화를 원한다면 동맹의 종속성을 봐야 한다. 그리고 한국의 결정권을 키우는 방향으로 가야 한다.
각종 회의와 훈련이 작전범위를 넓히고 있다
최근 진행된 한일정상회담, 한일 외교·국방 2+2, 미일한 국방장관 환담, 한일 수색구조훈련 재개, 호르무즈 기여 검토는 따로 떨어진 사건이 아니다. 공급망, 에너지 안보, 호르무즈, 조선 문제, 중국 문제, 미일한 안보협력이 하나의 흐름 안에서 다뤄지고 있다. 명칭은 협력이고 형식은 회의지만, 실제 효과는 한국군과 한국 외교의 작전범위를 넓혀 전쟁에 동원하려는 것이다.
여기서 ‘미일한’이라고 쓰는 것은 순서의 문제가 아니라 구조의 문제다. 미국이 전략을 설계하고, 일본이 후방 거점으로 결합되며, 한국이 전진 축으로 배치되는 군사구조를 드러내기 위한 표현이다. ‘한미일’이라는 말은 이 수직적 질서를 흐리게 만든다.
한일정상회담과 한일 외교·국방 2+2 회의는 철저히 미국의 전략을 실천하기 위한 실무회담에 가깝다. 중동 해상로와 호르무즈 문제가 한일 협력 의제로 들어왔다. 조선과 중국 문제도 미일한 안보협력 속에서 함께 다뤄지고 있다. 한국 외교의 범위가 코리아반도 문제에서 동북아 해상전구와 중동 해상로 문제로 확장되고 있는 것이다. 위험한 확장이다.
샹그릴라 대화 계기로 미일한 국방수장 환담과 한일 해군 수색구조훈련 재개도 같은 흐름이다. 수색구조라는 명칭은 부드럽다. 그러나 중단됐던 한일 해상 군사훈련이 다시 움직인다는 점이 중요하다. 한번 복원된 군사협력은 정보 공유, 해상작전, 미사일방어, 연합훈련으로 이어질 수 있다. 미한, 미일은 이미 손을 맞추었다. 이제 한일 간에도 손을 맞추라고 미국이 요구한 것이다.
이것은 사실상 전쟁수행을 전제로 한 훈련과 조정이다. 전쟁이 발생했을 때 한국군과 한국 기지가 어떤 범위에서 움직일 것인지를 미리 정리하는 과정이다. 누구와 함께, 어떤 방향으로 움직일지도 정리하는 과정이다. 그런 의미에서 최근의 회의와 훈련은 전쟁을 막는 장치라기보다 전쟁수행 준비체계의 정비에 가깝다. 한국과 일본이 역할을 분담하는 것이다.
중국 견제를 위한 불가피한 선택이라고 주장할 수도 있다. 그러나 그 선택의 비용은 한국이 떠안는다. 군사적 긴장, 경제적 압박, 공급망 위험, 외교적 부담은 모두 한국의 현실 문제가 된다. 따라서 문제는 중국을 어떻게 볼 것인가에만 집중해서는 안 된다. 먼저 한국이 미국의 대중국 전쟁구조를 일방적으로 따를 것인가, 아니면 거부할 것인가를 고민해야 한다.

호르무즈는 역외 전쟁구조 편입의 시험대다
안규백 장관 발언에서 특히 위험한 대목은 “호르무즈 기여 검토” 발언이다. 호르무즈 해협은 한국 영토 방위 문제가 아니다. 그것은 미국의 대이란 해상전략, 봉쇄전, 항행통제 문제와 연결된 공간이다. 국방부 장관이 공개적으로 한국의 기여 방안을 말한 것은 한국군의 작전 범위가 코리아 반도를 넘어 중동 해상전략까지 넓어질 수 있음을 보여준다.
한국 선박 보호는 필요할 수 있다. 그러나 선박 보호와 미국의 봉쇄전 참여는 다르다. 한국이 이란과 직접 충돌할 이유는 없다. 그런데 미국의 작전구조에 들어가면 한국은 스스로 원하지 않는 분쟁의 당사자가 될 수 있다. 이것은 미국 뒤에 서 있다가 생겨나는 불행이자 위험이다. 한국은 왜 이런 위험을 자초하려 하는가.
호르무즈 문제는 한국군의 작전범위가 어떻게 넓어지는지 보여주는 대표적 사례다. 처음에는 ‘선박 보호’라고 말한다. 다음에는 ‘항행 안정’이라고 말한다. 그다음에는 ‘국제사회 기여’라고 말한다. 그러나 실제로는 미국의 대이란 전쟁전략과 한국군의 역할이 연결된다. 한국을 자연스럽게 전쟁에 편입하게 하려는 과정이다.
이 방식은 호르무즈에만 머물지 않을 수 있다. 대만해협, 남중국해, 동중국해에서도 같은 논리가 반복될 수 있다. 처음에는 항행 안정과 국제질서 수호로 시작하지만, 결국 미국이 정한 작전범위 안에서 한국군의 역할이 넓어진다. 미국 전략대로 따라가다 보면 세계 각 지역 전쟁에 모두 개입하게 될 수 있다. 그래서 호르무즈는 단순한 해상로 문제가 아니라 역외 전쟁구조 편입의 대표 사례다. 끊어내는 것이 필요하다.
전작권 전환은 회복이 아니라 미끼가 되고 있다
일부는 전작권을 환수하면 곧바로 자주국방이 실현된다고 생각한다. 착각이다. 문제는 누가 어떤 방식으로 작전권을 행사하는가이다. 전작권 회복은 자주국방의 완성이 될 수도 있다. 그러나 미국이 설계한 조건 속에서 받아들이는 작전권은 자주국방의 환상을 심어주는 미끼가 될 수 있다. 유럽의 자주국방 논리도 이와 같다.
전작권 회복 자체는 필요하다. 한국군의 전시작전권을 한국이 행사하는 것은 주권국가라면 마땅히 가져야 할 권한이다. 그러나 미국의 인도·태평양 전략과 전쟁계획 구조 속에 더 깊이 편입되는 전작권 회복이라면, 그것은 마냥 기뻐할 일이 아니다. 한국군이 사령관 자리에 앉더라도 작전범위와 전쟁목표를 미국 전략이 정한다면, 그것은 주권 회복이 아니라 모양새만 변경된 ‘책임 이전’이다.
전작권 회복을 위해 일정한 군사능력 점검과 지휘체계 준비가 필요하다고 미국은 말한다. 문제는 검증 자체가 아니다. 문제는 검증의 기준과 시기, 조건을 누가 정하느냐이다. 미국은 한국의 주권행사를 준비하기 위한 검증이라고 한다. 그러나 미국이 만족하는 무기체계, 연합작전 능력, 대중국 전구작전 역할을 충족해야 한다는 조건을 내거는 것 자체가 문제다. 검증은 준비가 아니라 허가 절차로 바뀐다.
미국이 전작권 전환을 순순히 허용하는 것처럼 보인다면, 그 이유를 물어야 한다. 미국이 한국의 군사주권을 존중해서가 아니다. 전작권 전환이라는 목표를 내걸고 한국군을 미국식 작전구조에 더 깊이 맞추려는 계산일 수 있다. 한국은 전작권을 받기 위해 더 많은 무기를 사고, 더 많은 국방비를 부담하고, 더 많은 기지를 제공해야 할 수 있다. 더 넓은 작전범위에 적응하라는 요구도 받을 수 있다.
미국 측에서 2029년 1분기라는 시점을 거론하는 것도 주목해야 한다. 그것은 전작권을 넘기겠다는 확정된 약속이라기보다, 지금 당장 시기를 결정하지 않겠다는 말에 가깝다. 2029년은 트럼프 임기 말과 차기 행정부 출범 국면과 맞물린다. 결국 미국은 전작권 전환을 약속처럼 내걸면서도, 실제 결정은 다음 정치 국면으로 넘길 수 있는 여지를 남겨두고 있다. 그사이 미국과 중국의 충돌이 발생한다면, 한국은 자기 군대의 운용도 온전히 결정하지 못한 채 전쟁위험의 최전면에 서게 될 수 있다.
이 지점에서 미래연합사령부와 동북아전투사령부 구상도 함께 보아야 한다. 미래연합사령부는 전작권 전환의 포장이고, 동북아전투사령부 구상은 전환 이후 한국군이 들어갈 작전범위의 확대다. 하나는 한국군 사령관이라는 외형을 주고, 다른 하나는 한국군이 움직일 전구를 넓힌다. 겉으로는 한국이 전면에 나서는 역할 확대지만, 실제로는 미국의 결정권을 유지한 채 책임을 한국 쪽으로 옮기는 구조가 될 수 있다. 결국 한국을 앞세워 위험을 감수하라는 말이다. 미국은 뒤에서 지휘하고, 한국은 앞에서 위험을 떠안는 구조다.
전작권이 환수되어도 상시적으로 동북아전투사령부와 미래연합사령부가 존재한다면 제대로 된 전작권 환수라고 볼 수 없다. 이러한 사령부는 마땅히 해체되어야 한다. 전작권 회복은 한국군 사령관이라는 외형을 얻는 일이 아니라, 한국군의 작전 목적과 범위를 한국이 결정하는 일이어야 한다.
미국은 전작권 전환을 미끼로 사용하려 한다. 작전권을 받기 위해 미국 무기를 사고, 미국 작전구조에 맞추고, 미국이 요구하는 전쟁역할을 수행해야 한다. 미국의 요구를 다 맞추는 순간 한국군은 주권국가의 군대가 아니라 미국 전쟁구조의 대리수행 전력으로 변하는 모순이 생긴다. 전작권은 검증으로 얻는 자격이 아니라 주권으로 행사해야 할 권한이다.
따라서 전작권 문제는 “언제 전환되는가”보다 “무엇을 결정할 수 있는가”로 보아야 한다. 한국이 전쟁의 개시와 종결, 작전 목적과 범위, 파병 여부, 한국 기지 사용 여부를 스스로 결정할 수 있어야 한다. 이것이 전작권 회복이다. 한국군 사령관이라는 감투가 아니라 군대 사용의 결정권이 핵심이다.
따라서 필요한 것은 전작권 전환을 위해 미국 기준에 맞추는 것이 아니라 전작권 회복을 선언하는 것이다. 전작권은 미국이 조건을 붙여 허가하는 권한이 아니다. 한국이 주권국가로서 행사해야 할 권한이다.
한국은 전작권 회복을 전제로 미한동맹의 성격도 스스로 재설정해야 한다. 미한동맹이 유지된다 하더라도 그 동맹은 한국군의 작전범위와 한국 기지 사용을 미국 전략에 자동으로 종속시키는 구조여서는 안 된다. 한국군의 목적, 파병 여부, 역외작전 참여, 한국 기지 사용 여부는 한국이 결정해야 한다. 이것이 전작권 회복의 실제 내용이다.
결론: 자주국방의 기준은 주권행사다
자주국방은 단순히 최신 무기를 많이 갖는 것이 아니다. 국방비를 늘리는 것도 아니다. 한국군 장성이 어느 사령부의 사령관 자리에 앉는 것도 아니다. 자주국방의 기준은 주권행사다. 한국이 전쟁 여부, 작전 범위, 파병 여부, 한국 기지 사용 여부를 스스로 결정할 수 있어야 한다.
강한 군대를 갖는 것은 두 번째 문제다. 첫 번째 문제를 먼저 해결해야 한다. 군대를 누가 지휘할 것인가. 아무리 강한 군대를 가져도 사용 결정권이 외부에 있다면, 그것은 자주국방이 아니다. 자주국방은 무기의 양이 아니라 군대 사용의 결정권에서 시작된다. 그 결정을 미국의 간섭 없이 한국이 할 때만 자주국방은 성립한다.
한국정부는 스스로에게 세 가지를 물어야 한다.
첫째, 미국의 전쟁 요구를 거부할 수 있는가.
둘째, 한국군의 작전 목적과 범위를 스스로 정할 수 있는가.
셋째, 한국 기지와 한국군을 미국의 전쟁 시나리오에 내주지 않을 수 있는가.
이 세 질문에 답하지 못한다면 자주국방은 성립하지 않는다.
한국정부가 원하는 것은 무엇인가. 전쟁위험을 낮추는 것인가, 미국의 전쟁구조에 더 깊이 들어가는 것인가. 평화를 원한다면 동맹강화가 아니라 자주국방, 곧 주권행사에 방점을 찍어야 한다. 현재의 미한 군사구조가 유지되는 한, 동맹강화는 자주국방의 확장이 아니라 종속의 심화로 귀결된다.
지금 필요한 것은 동맹강화라는 포장이 아니다. 군대 사용의 결정권을 한국이 행사하는 것이다. 한국군이 강해지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그 힘을 누가 어떤 목적에 쓰는가이다. 한국이 결정하지 못하는 군대는 한국의 군대가 아니다.
이 글은 윤현일 재미 칼럼니스트께서 페이스북에 올린 글을, 필자의 허락을 받아 전재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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