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의 재탄생: 부르스 드 코메르스-피노 컬렉션

[정연복과 손잡고, 세계의 미술관으로] 세계의 미술관을 가다① 프랑스 파리 중심에 2021년 개관 1만여 점 보유한 케링 그룹의 미술관 안도 타다오, 18세기건물 현대화해 출구 직전 ‘생쥐’ 설치작품.. 깜짝 놀라

부르스 드 코메르스-피노 컬렉션 입구. 지난 2021년 5월 22일 개관했다.
부르스 드 코메르스-피노 컬렉션 입구. 지난 2021년 5월 22일 개관했다.

디지털 이미지는 아무리 화질이 뛰어나도 미술관에서 직접 작품을 대하는 감동을 주기는 어렵습니다. 그 이유는 뭘까요? 오늘부터 저와 함께 미술관에 같이 가보실까요?

현재 프랑스에서 컨템퍼러리 예술 컬렉션의 양대 산맥은 루이 뷔통 재단과 피노 재단이라고 할 수 있어요. 루이 뷔통 재단은 다음 기회에 가고, 오늘은 피노 재단으로 먼저 가보겠습니다.

구찌 대주주 ‘케링 그룹’이 운영하는 미술관

피노 그룹(현 케링 그룹)의 창립자 프랑수아 피노(François Pinault, 1936~)는 27세 때 목재유통회사를 세우는 것으로 기업활동을 시작합니다. 현재 케링 그룹은 구찌, 생로랑, 보테가 베네타, 발렌시아가, 알렉산더 멕퀸 등을 보유한 럭셔리 브랜드 그룹입니다. 피노는 인수&합병을 통한 기업의 확장에 신경쓰는 한편, 예술 작품 수집에도 지대한 관심을 쏟았는데요. 피노의 컨템퍼러리 컬렉션은 1만여 점에 이르는 것으로 추정됩니다. 어마어마하죠? 이렇게 수집한 작품을 전시하기 위해 피노 재단은 베네치아에 ‘팔라초 그라시(Palazzo Grassi)’를 2006년에, ‘푼타 델라 도가나’를 2009년 6월 6일에 개관합니다.

베네치아에 문을 연 두 개의 피노 컬렉션 미술관은 17세기와 18세기에 지은 오래된 건물을 개조했다는 공통점이 있는데요. 피노 재단이 오랫동안 염원해왔던 파리에서의 미술관 역시 지은 지 250년이 넘은 ‘부르스 드 코메르스’를 개조해서 문을 열었습니다. ‘부르스 드 코메르스-피노 컬렉션’은 지금 파리에서 가장 핫(hot)한 미술관이라고 할 수 있을 텐데요. 컨템퍼러리 전시 공간이 부족했던 파리에 단비 같은 공간이 생긴 겁니다.

파리 하면 19세기 중반까지의 작품이 전시된 루브르 박물관, 19세기 위주인 오르세 미술관, 20세기 예술 중심의 퐁피두 센터(국립현대미술관)가 유명하죠. 퐁피두와 팔레 드 도쿄가 컨템퍼러리 작품을 전시하고 전시회를 기획하긴 했지만, 파리를 세계적인 문화도시라고 하기에는 컨템퍼러리 미술관이 절대적으로 부족했는데요. ‘부르스 드 코메르스-피노 컬렉션’이 파리 중심가에 문을 연 덕분에 루브르, 오르세, 퐁피두와 함께 파리의 박물관 허브가 형성되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18세기에 곡물거래소로 지어진 이 건물은 파리의 중앙시장이었던 레 알 바로 옆에 있다.
18세기에 곡물거래소로 지어진 이 건물은 파리의 중앙시장이었던 레 알 바로 옆에 있다.

지금 현재 부르스 드 코메르스-피노 컬렉션은 프랑스의 왕 앙리 2세의 부인이었던 카트린 드 메디치(1519~1589)를 위해 지은 궁전이 있던 자리에 있습니다. 저택의 마지막 소유주인 빅토르 아마데우스 드 사부아(1690~1741)가 빚만 남긴 채 사망하자 저택은 철거되었고, 지금과 같은 둥근 건물(곡물거래소)이 지어진 것은 18세기였습니다. 기근에 대비할 목적으로 밀을 보관하고 거래하기 위한 건물을 지은 겁니다. 둥근 건축물은 계급의 차이도 없고 모두가 평등하다는 생각을 암시하면서 유토피아적이고 민주적인 건축물이라는 상징성을 띤다고 하겠습니다.

기근 대비용 곡물을 저장해두기 위해 인부들은 등에 곡물을 지고 계단을 통해 2층으로 올랐는데요. 계단은 2중나선계단으로 올라가는 사람과 내려가는 사람이 마주치지 않도록 만들었어요. 지금 봐도 아주 우아하고 단순한 아름다움이 돋보이죠? 인부들이 등에 지고 날랐을 곡물이 얼마나 무거웠을지 짐작하기 쉽지 않습니다. 여기서 “Fort des Halls”이라는 불어 옛표현이 나왔는데, “파리 중앙시장의 힘센 사람, 인부”를 의미하는 말입니다.

안도 타다오에게 ‘재탄생’을 맡기다

19세기 후반에 밀거래가 줄어들자 곡물거래소는 상품거래소(Bourse de commerce)가 되었고, 이때 ‘천장화’가 설치됩니다. 100여년 이어지던 상품거래소 역시 문을 닫으면서 비어있던 건물을 8600만 유로에 파리 시가 매입합니다. 파리 시는 50년 계약으로 피노 그룹에 운영을 맡기고요. 피노 그룹은 베네치아에 이어 그들의 컨템퍼러리 컬렉션을 전시할 목적으로 일본의 세계적인 건축가 안도 타다오에게 공사를 의뢰하여, 현대적이면서도 역사와 전통을 품은 공간을 새롭게 탄생시켰습니다.

안도 타다오는 이 건물의 둥근 실내에 노출 콘크리트 벽을 세웠다.
안도 타다오는 이 건물의 둥근 실내에 노출 콘크리트 벽을 세웠다.

안도는 250년 역사를 자랑하는 고전적인 건물의 기본적인 형태는 그대로 살리면서 1층 홀 한가운데에 9m 높이, 직경 30m의 노출 콘크리트 벽을 세웁니다. 안도 타다오는 고풍스러운 건물 안쪽에 왜 콘크리트 벽을 세웠을까요?

우선 전시공간을 확보하기 위해서입니다. 2021년 5월 미술관이 개관했을 때 이곳에는 우르스 피셔(Urs Fischer)의 조각 작품들이 전시되었습니다. 자료사진을 보면 후기 르네상스 양식의 대표적인 조각가 잠볼로냐(Giambologna, 1529~1608)의 <사비니 여인들의 납치>(1574~1582)를 전시한 것으로 보입니다. 사실은 우르스 피셔가 잠볼로냐의 작품을 밀랍으로 복제한 작품입니다. 매일 아침 미술관 직원들이 관람객이 들어오기 전에 작품 위쪽에 넣어둔 심지에 불을 켜서 몇 개월에 걸쳐 밀랍이 녹아 흘러내리도록 했습니다.

우셔의 작품은 층고가 높은 안도의 콘크리트 벽 덕분에 바깥쪽 진열창이 있는 복도로부터 분리되면서 130여년 전에 그려진 천장화와 조응할 수 있었죠. 우셔는 영원할 것 같은 예술작품이 녹아내리는 퍼포먼스를 통해 ‘영원한 것은 없고 시간이 가면 모든 것은 사라진다’는 것을 말하고 싶었을 겁니다. 후기 르네상스의 걸작과 19세 말에 그려진 천장화, 21세기의 컨템퍼러리 작품과 타다오의 미니멀한 건축, 이 모든 것이 한 공간에 어우러지며 관람객에게 시간과 역사의 대화, 예술작품의 의미에 대한 질문 등을 자연스럽게 하게 만든 탁월한 전시였습니다.

18세기에 지어진 이 건물 내의 우아한 이중나선계단. 짐을 지고 오르내리는 인부들이 마주치지 않도록 설계되었다.
18세기에 지어진 이 건물 내의 우아한 이중나선계단. 짐을 지고 오르내리는 인부들이 마주치지 않도록 설계되었다.

제국주의·인종주의가 노골적인 천장화

콘크리트 외벽의 두번째 기능은 계단을 통해 올라갈 수 있도록 해서 천장화를 가까이에서 볼 수 있게 해준다는 것입니다. 천장화의 제목은 <무역의 파노라마 Panorama du commerce>인데요. 높이 10m, 길이 140m의 유화입니다. 프레스코가 아니라 유화입니다. 여러 캔버스에 그려서 돔 안쪽 천장 부분에 붙인 거죠. 문명국가 프랑스가 무역을 통해 전세계로 뻗어나가는 것을 선전하는 일종의 선전 회화라고 할 수 있습니다.

4명의 화가가 각각 러시아와 북극, 아메리카, 아프리카와 아시아, 유럽을 그렸습니다. 지리학이나 과학에 토대를 둔 것이 아니고, 정치적 이데올로기와 인종주의가 노골적으로 드러나는 그림이라고 할 수 있어요. 아메리카 대륙 하늘 위에 콜럼버스가 신처럼 등장하고 유럽 선진 문명의 상징인 ‘기차’가 그려져 있습니다. 더 발전한 나라가 미개한 지역을 찾아가 그곳을 문명화하는 것은 너무나 당연하다는 이데올로기가 드러난다고 할 수 있습니다.

안도 타다오의 콘크리트 계단을 따라 올라가면 천장화를 가까이서 볼 수 있다. 난간에 보이는 비둘기는 마우리치오 카텔란의 작품이다.
안도 타다오의 콘크리트 계단을 따라 올라가면 천장화를 가까이서 볼 수 있다. 난간에 보이는 비둘기는 마우리치오 카텔란의 작품이다.

세번째는 오랜 시간을 간직한 건축물에 현대적인 숨결을 불어넣기 위해서입니다. 안도 타다오의 콘크리트 벽 덕분에 부르스 드 코메르스-피노 컬렉션은 단순히 역사적인 건물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오랜 시간을 품은 현대적인 건축물로 재탄생하게 됩니다. 역사와 전통을 배제하지 않고 그 안에서 동시대의 건축과 미술 작품이 대화하고 호흡하게 하는 것, 그것이야말로 경계를 허물고 끊임없이 질문하고 새로운 문제제기를 하는 예술의 본령이라고 할 수 있을 겁니다

컨템퍼러리 미술관으로서 부르스 드 코메르스-피노 컬렉션은 상설전시관이 아니라 여러 개의 기획전시를 통해 다양한 컬렉션을 주제별로 선보이고 있습니다. 2023년 2월부터 9월까지는 <폭풍우 치기 전 Avant l’orage>이 진행되었는데요. 세계 각국의 다양한 작가들이 지역의 정치적, 사회적 문제, 환경과 생태계 문제 등의 주제를 기발하게 펼쳐주었습니다. 2023년 9월 20일부터 2024년 2월 19일까지는 <미국의 신화 Mythologies américaines>가 개최중입니다. 세대가 다른 네 명의 작가가 미국의 신화를 탐색하고 해체하는 작업들을 선보입니다.

아메리카 대륙을 나타내는 천장화. 하늘 위에 콜럼버스가 신처럼 등장하고 유럽 선진 문명의 상징인 기차가 그려져 있다.
아메리카 대륙을 나타내는 천장화. 하늘 위에 콜럼버스가 신처럼 등장하고 유럽 선진 문명의 상징인 기차가 그려져 있다.

‘비둘기’와 ‘생쥐’를 주제로 한 설치 작품도

피노 컬렉션에 가시면 재미있는 설치 작품들도 만나실 수 있는데요. 건축물과 함께 일체를 이루며 감상하는 작품들입니다. 2층 난간에 비둘기들이 앉아 있는 게 보이시나요? 처음에 건물에 들어가서 보면 ‘웬 비둘기가 있나’ 하며 의아하게 생각하게 되는데 가만히 보면 조각인 것을 알 수 있어요. 이 비둘기들은 마우리치오 카텔란(Maurizio Cattelan)의 작품입니다.

라이언 갠더(Ryan Gander)의 ‘나는...나는...나는...I...I...I...’(2019). 실제 생쥐가 아니라 기계장치로 되어있으며, 작가의 딸이 말하는 걸 녹음했다. 촬영=정연복

출구로 나오다 보면 라이언 갠더(Ryan Gander)의 ‘생쥐’를 만나게 되는데요. 정말 귀엽죠? 목소리가 계속 흘러나오는데 작가의 딸의 목소리라고 합니다. 생쥐는 벽 뒤편에 있고 벽 아래에 부스러기가 있는 것으로 보아 생쥐가 벽을 갉아서 생긴 것으로 생각하게 되죠? 사실은 작가가 설치한 것인데 말이죠.

갠더에게 ‘생쥐’가 의미하는 게 뭔지 물었더니, 그걸 자신이 알면 그 작품은 훌륭한 작품이라고 할 수 없다고 답했다고 합니다. 우문현답이죠? 예술작품은 답이 없습니다. 특히 컨템퍼러리 작품은 더더욱 그렇죠. 관람자에게 자유롭게 바라보고 생각하도록 초대하는 것이 바로 예술이 제공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을 겁니다.

글쓴이

정연복 미술평론가

정연복 미술평론가는 서울에서 불문학 박사학위를 받았으며, 프랑스에서 미술사를 공부했다. 현재 중앙대에서 예술사 강의를 한다. 사조의 이해나 단순지식보다는 직관적인 경험으로서의 예술이해에 관심이 많다. 삶에서 예술이 아니고 예술이 곧 삶이 된다는 것, '아는 만큼 보이는 것이 아니라 보는 만큼 느끼는 것'이라는 믿음으로 그림과 미술관에 관한 글을 쓰고 강연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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