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라노, 브레라 미술관에서 키스를!
[정연복과 손잡고, 세계의 미술관으로] 세계의 미술관을 가다② 독립전쟁 참전 남녀의 격정적인 ‘키스’ 프랑스 흔적들 눈길, 작품배치 재미 미술관 광장 중앙엔 ‘나폴레옹’ 상
추한 키스와 아름다운 키스
독일의 베를린 장벽에 가면 <형제의 키스>라는 그림을 볼 수 있습니다. 이 그림은 1989년 11월, 동서냉전의 상징인 베를린 장벽이 무너지고 일부 남아있던 벽에 러시아 화가 드미트리 브루벨이 그린 그림이죠. 언뜻 보면 냉전에서 화해로 나아가는 독일통일의 정신을 나타내는 뜨거운 키스처럼 보이는데요.
사실은 레오니트 일리치 브레즈네프 전 소련 공산당 서기장과 에리히 호네커 전 동독 공산당 서기장이 1979년 실제로 했던 키스를 그린 ‘그래피티’입니다. 굳건하게 버티던 소련과 동독의 결속을 이겨내고 결국 자유와 해방의 시대가 시작되었다는 것을 자축하는 패러디라고 할 수 있겠죠.
<형제의 키스>가 20세기 현대사의 비극을 잘 보여준다면, 무수한 외세의 공격과 침탈을 겪었던 이탈리아 역사를 보여주는 키스가 있습니다. 그 뜨거운 역사를 보여주는 작품은 프란체스코 하예즈(Francesco Hayez, 1791~1882)의 <키스>(1859, 캔버스에 유채, 110x88cm)인데요. 그림이 있는 도시, 밀라노로 가볼까요?
밀라노 역사가 한 눈...’브레라 미술관’
15세기에 밀라노는 악명높은 독재자 루도비코 스포르차가 실권을 쥐고 있었는데요. 자신의 권력을 공고히 하고 유리한 입지를 다지기 위해 오스트리아와 프랑스와 차례로 동맹을 맺습니다. 이는 두 나라에게 이탈리아의 여러 지역을 침공하는 빌미를 제공해주었고, 잦은 전쟁과 침탈 속에 도시국가들은 힘없이 몰락해갑니다. 결국 밀라노 공국은 1535년부터는 스페인의 지배를 받다가 1714년부터는 오스트리아의 수중에 들어가게 되죠. 프란체스코 하예즈의 그림 <키스>(1859)는 밀라노에 있는 『피나코테카 디 브레라』(이하 브레라 미술관)에 가시면 볼 수 있는데요. 이곳은 소장품도 훌륭하지만 밀라노의 복잡한 역사를 그대로 담고 있다는 점에서 아주 흥미로운 곳입니다.
티켓을 사서 미술관 마당에 들어서면 반원 아치로 이루어진 아름답고 고요한 회랑이 관람객을 맞이합니다. 관람객은 마치 르네상스기의 수도원에 온 듯한 기분에 잠기게 됩니다. 그런데 마당 한가운데는 안토니오 카노바의 <중재자 마르스의 모습을 한 나폴레옹>(1811) 청동 조각이 서 있습니다. 수도원 분위기와 나폴레옹 조각은 어딘지 모르게 조화롭지 못하다는 생각이 드는데요.

실제로 이곳은 수도원을 위해 지어진 건물입니다. 옛 수도원이 있던 곳에 1571년부터 재건축이 시작됩니다. 건축가 프란체스코 마리아 리치니(Francesco Maria Richini, 1584-1658)가 1615년에 공사에 참여하고 그의 뒤를 이어 아들과 다른 건축가들이 이어받으면서 1776년에 건물이 완공됩니다. 공사가 시작된 1571년에 밀라노는 스페인의 지배를 받고 있었죠. 그런데 1773년에 예수회가 해체되면서 건물은 정부 소유가 되는데, 이때 밀라노가 있던 롬바르디아 지방은 오스트리아의 지배하에 있었습니다. 황후 마리아 테레지아는 수도원으로서의 용도가 폐기된 이 건물에 도서관과 미술학교를 만듭니다. 조각, 회화, 판화 컬렉션도 전시하고요.
18세기 후반, 그러니까 1796년 5월에 밀라노는 오스트리아가 아니라 프랑스의 차지가 되는데요. 나폴레옹이 입성한 겁니다. 나폴레옹은 ‘민중의 것을 민중에게’ 돌려준다는 정신으로 혁명 이후 루브르 박물관이 문을 열었듯, 교회와 수도원 등에서 몰수해온 이탈리아 회화들을 이곳에 전시하기로 합니다. 이렇게 해서 1809년 8월 15일 『브레라 미술관』이 개관합니다.
나폴레옹 몰락 후에도 컬렉션은 그대로 남아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고요. 말하자면 브레라 미술관은 이탈리아의 도시 밀라노에 있지만, 건축과 컬렉션에서 스페인, 오스트리아, 프랑스와 얽힌 복잡한 역사를 그대로 품고 있는 곳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미술관 마당에 분쟁을 끝내고 평화를 정착시킨 전쟁의 신 마르스의 모습으로 분한 나폴레옹 동상이 서있는 것도 바로 이런 이유 때문입니다.
독립전쟁의 극적 장면 상징하는 <키스>
정복자 나폴레옹은 이탈리아에 혁명 이념과 민족주의를 불어넣어주게 되는데요. 로마 제국의 멸망 후 여러 도시국가로 나눠져 있고 오랜 외세의 지배로 시달림을 당하는 이탈리아에 독립의 열망이 뜨거워집니다. 프란체스코 하예즈의 <키스>는 제2차 독립전쟁의 승리(1859)를 기념하기 위한 전시회에서 소개된 작품입니다. 이 당시 이탈리아는 나폴레옹의 몰락 후 다시 오스트리아의 지배를 받고 있었고, 프랑스의 도움으로 독립전쟁을 치르고 있었습니다. 그림 앞으로 가보죠.

두 남녀가 열정적으로 키스합니다. 남자가 왼다리를 계단에 올리고 있네요. 가야 할 길을 멈추고 마지막 키스를 서둘러 하는 걸까요? 아니면 등을 한껏 뒤로 휜 채 입맞춤에 몰입하는 여인의 상체를 받쳐주려는 걸까요? 깃털달린 멋진 모자를 쓴 바람에 얼굴이 거의 보이지 않아 남자의 마음을 알 도리는 없습니다. 다만 양손으로 여인의 머리를 붙들고 몸을 기울인 자세에서 절박하고 격정적인 마음이 느껴집니다.
그런데 낭만적이고 열정적인 키스라고 하기에는 어딘지 불안해 보이는데요. 계단의 큰 그림자, 왼쪽 끝의 어둑한 실내, 얼굴이 보이지 않는 채로 입맞춤에 몰입하는 두 연인의 태도에서 뭐라고 말하기 어려운 불길함마저 느껴집니다. 아마도 사랑하는 여인을 뒤로 하고 돌아오지 못할 지도 모르는 전쟁터로 떠나야 하는 병사의 마음을 표현하기 위한 화가의 선택인 것으로 보입니다.
하예즈는 두 인물의 의상에 공을 많이 들였는데요. 남자는 붉은 스타킹을 신고 있고, 여인은 하얀 소매장식이 있는 파란색 드레스를 입고 있습니다. 바로 ‘자유, 평등, 박애’를 나타내는 프랑스의 국기, 삼색기의 색깔이죠. 남자가 입고 있는 갈색 망토 안쪽에는 초록색 자켓이 어렴풋이 보입니다. 초록, 빨강, 하양으로 이루어졌던 이탈리아 통일 운동의 깃발이자 후에 이탈리아 국기를 이루는 색깔을 상기시킵니다. 낭만적으로 보이는 ‘키스’ 장면을 통해 하예즈는 이탈리아의 통일에 대한 열망, 프랑스의 협조에 대한 고마움을 표현하고 있습니다. 이후 하예즈는 같은 그림을 세 점 더 그립니다.

작품 배치, 어머니와의 작별과 슬픔 예감
브레라 미술관의 <키스> 전시방식도 매우 흥미롭습니다. <키스>의 왼쪽에는 제롤라모 인두노(Gerolamo Induno, 1827~1890)가 그린 <큰 희생>(1860), 오른쪽에는 같은 작가가 그린 <슬픈 예감>(1862)이 전시되어 있습니다. 인두노는 가리발디가 이끌었던 이탈리아 독립전쟁에 참전했던 경험을 바탕으로 전장으로 향하는 아들에게 키스하는 어머니(<큰 희생>)와, 전쟁터에 간 애인을 그리워하는 여인(<슬픈 예감>)을 그림으로 그렸습니다. <슬픈 예감> 속 침대 뒷벽에는 하예즈의 <키스>가 걸려 있어요. 마치 하예즈가 그린 <키스> 속 여인이 떠나간 연인의 초상화를 보며 슬픔을 달래는 장면처럼 보입니다.


브레라 미술관에서 놓치지 말아야 할 작품으로는 조반니 벨리니(Giovanni Bellini, 1430~1516)의 <성모마리아와 아기예수(일명 그리스 성모마리아)(1460-1465, 목판에 템페라, 84x64cm), 안드레아 만테냐(Andrea Mantegna, 1431-1506)의 <죽은 그리스도>(1480, 캔버스에 템페라, 68x81cm), 라파엘로 산치오(Raffaello Sanzio, 1483-1520)의 <성모의 결혼>(1504, 목판에 유채, 175x118cm), 카라바조의 <엠마오의 순례자들>(1606, 캔버스에 유채, 141x175cm) 등 이루 헤아릴 수가 없는데요. 뛰어난 소장품들과 함께 밀라노와 이탈리아의 역사를 반추하게 되는 매력적인 미술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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