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기자동차, 이번에도 거품일까?
[박근태의 ‘자동차와 사회’] 현재 제기되는 전기차 회의론은 과도 판매는 계속 확대중...다만 성장세 둔화 확산의 장애 요인 어떻게 극복해야 할까
전기자동차 판매 성장세가 둔화되면서 전기자동차 대세론에 대한 의심이 일고 있다. 역사적으로 반복되어 왔듯이 이번에도 전기자동차는 일시적인 거품에 그치는 걸까? 지금까지 틈새시장에 머물던 하이브리드차가 대세가 되고 전기자동차는 틈새시장에 갇히는 걸까?
사실 현재와 같은 전기자동차 판매 정체(?)는 충분히 예상할 수 있는 현상이다. 혁신 제품 도입 과정에 흔히 있는 일이다. 이번 칼럼에서는 혁신 제품의 확산 및 수용이라는 관점에서 전기자동차의 확산을 살펴보고, 전기자동차 확산 정체(?)에 어떻게 대응하는 것이 사회적으로 바람직한지 생각해보자.
기술수용주기이론
혁신 제품의 확산 및 수용을 연구한 대표적인 학자인 에버렛 로저스(Everett M. Rogers)는 혁신 제품 확산에 관한 방대한 연구를 기반으로 혁신 제품 확산이 정규분포로 나타난다는 기술수용주기론(technology adoption cycle theory)을 주장하고, 수용기간의 평균과 표준편차를 이용해 혁신 제품 수용자들을 혁신성을 기준으로 다섯 집단으로 분류했다.
Rogers의 기술수용주기 모형

첫 번째 집단인 혁신 수용자(innovators)는 신기술에 대한 관심과 지식이 높으며, 새로운 기술을 습득하는 성향을 지닌 기술 애호가로, 이들이 혁신 제품을 구매하는 이유는 편익보다는 “그냥 좋아서”이다. 이들은 전체 잠재 수용자 중에서 2.5% 정도를 차지한다.
다음 집단인 조기 수용자(early adopters)는 혁신제품을 통해 남보다 앞서고자 하는 욕구를 가진 선구자로, 기술 자체보다는 혁신기술이나 제품이 제공하는 가치를 중요하게 여기며, 가격에 덜 민감하다.
전기자동차를 예로 들면, 혁신 수용자와 조기 수용자는 “다른 사람들보다 먼저 전기자동차를 운전하고 싶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다.
세 번째 집단인 전기 다수 수용자(early majority)는 실용주의자(pragmatists)로 구매할 때 복수의 대안을 고려하며, 저렴한 가격에 검증된 품질의 제품을 사기 위해 이전 확산단계에서 입증된 제품을 구매하는 경향이 있다. “전기자동차의 성능이 입증되고 도로에 충전소가 충분히 보급된다면 사겠다”는 사람들이 여기에 해당한다.
네 번째 집단인 후기 다수 수용자(late majority)는 기술에 대한 보수주의자(conservatives)로 불연속적인 혁신에 저항하는 경향이 있다. 이들이 새로운 기술 제품을 구매하는 이유는 다른 사람들과 보조를 맞추기 위해, 너무 뒤떨어지기 싫어서이며, 제품 가격에 민감하다. 이들은 “많은 사람들이 전기자동차로 바꾸고 가솔린 자동차가 정말 불편해지거든 산다.”
마지막 집단인 지각 수용자(laggards)는 첨단기술제품 및 기술 변화에 부정적인 사람들(skeptics)로 자신의 과거 경험을 고집하는 경향이 있다. 이들은 “결코 전기자동차는 살 일이 없다.”
캐즘(chasm)에 이른 전동화
기업 컨설턴트인 제프리 무어(Geoffrey A. Moore)는 첨단기술 사업화는 일반 기술 사업화와 매우 다르다는 점을 강조하면서, 기술 수용단계 사이에 틈새가 있다고 주장했다. 특히 조기 수용자 집단과 전기 다수 수용자 집단 사이에는 대규모 협곡과 같은 단절, 캐즘(chasm)이 존재한다고 역설했다.
Moore의 수정된 기술수용주기 모형

이런 캐즘이 발생하는 이유는 조기 수용자와 전기 다수 수용자 사이에 신제품 수용에 근본적인 차이가 있기 때문이다. 조기 수용자는 스스로를 변화의 선도자로 생각하며, 첨단기술제품이 아직 완전하지 않아도 첨단기술제품을 조기 활용하려고 하는 반면, 전기 다수 수용자들은 실용주의자로서 문제점이 없는 제품을 기대한다.
따라서 첨단기술제품의 경우 혁신자와 초기 수용자만 있는 초기 시장(early market)과 전기 다수 수용자와 후기 다수 수용자 등 절대 다수의 수용자가 있는 주류 시장(mainstream markets) 사이 캐즘(chasm)을 어떻게 건널 것인가가 사업화 성공에 핵심인 것이다.
현재 제기되고 있는 전기자동차 회의론은 과도하다. 지난 해 상반기 세계에서 팔린 새 차 중 전기자동차 비율은 8.2%였으나, 올 해 상반기에는 10%였다. 국가별 차이는 있으나, 전기자동차 판매는 감소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계속 확대되고 있다. 다만 판매 성장세가 둔화되고 있을 뿐이다.
이제 전기자동차는 첨단기술이나 친환경에 열광하는 혁신 수용자나 조기 수용자를 넘어 실용주의자인 전기 다수 사용자에 침투해야 하는 상황, 즉 캐즘에 이른 것으로 보인다. 이 계곡을 어떻게 건널 것인가?
사회적으로 바람직한 방법으로 계곡을 건너야
현재 전기자동차 확산에 가장 큰 장애 요인은 충전 인프라 미비와 높은 차량 가격이다. 그래서 테슬라를 필두로 전기자동차 가격을 낮추기 위한 자동차 회사들의 경쟁이 치열해지고 있다. 전기자동차 가격을 낮추기 위해 가장 중요한 것은 원가에서 가장 큰 비중(30~40%)을 차지하고 있는 배터리 가격을 낮추는 것이다.
현재 배터리 가격을 낮추기 위해 저가형 배터리인 LFP 배터리 사용이 확대되고 있다. 그러나 LFP 배터리 사용은 몇 가지 문제가 있다. 우선 NCM 배터리에 비해 에너지 밀도가 낮을 뿐 아니라 저온에서 성능 저하가 더 크다. LFP 배터리가 장착된 전기자동차 사용자에게 겨울은 큰 시련의 계절이 될 것이다.
다음으로, 신차 가격만이 아니라 중고차 가격도 더 낮을 것이다. 따라서 신차와 중고차 가격 차이를 비교하면 NCM 배터리와 차이가 크지 않을 것이고, 결국 LFP 배터리의 경제적 이점은 ‘조삼모사’에 불과할 수 있다.
무엇보다도 LFP 배터리 소재의 가격이 싸서 재활용의 경제성이 없다. 따라서 재활용되지 않을 것이고, 전주기 관점에서 보면 환경에 미치는 악영향이 더 클 것이다. 이런 점에서 재활용될 NCM 배터리와 보조금을 차별화해야 한다는 주장은 상당히 설득력이 있다.
현재 진행 중인 교통수단 전동화의 근본 목적인 기후위기 대응을 위해 바람직한 방법은 저가형인 LFP 배터리 사용을 확대하는 것이 아니라 전기자동차에 장착되는 고전압 배터리의 용량을 줄이는 것이다. 고전압 배터리의 용량을 줄이면 차량 가격만이 아니라 중량도 줄일 수 있다. 고전압 배터리 중량이 400~600kg 정도나 되기 때문이다. 또한 원료 채취부터 고전압 배터리 제작에 이르는 과정에서 발생하는 온실 가스와 환경 부담을 줄일 수 있고, 주행 중 발생하는 미세먼지와 도로 마모도 줄어든다.
판매되는 전기자동차의 고전압 배터리 용량을 줄이는 것은 자동차 회사의 노력만으로 가능하지 않다. 공공 교통을 발달시켜 자가용 이동, 특히 장거리 이동의 필요성을 줄여야 하고, 무엇보다 충전 편의를 제고해야 한다.
우리가 잊지 말아야할 게 있다. 이번 전기자동차 확산은 소비자나 자동차산업의 필요가 아니라 기후위기 대응을 위한 것이며, 기후위기 대응과 자국 자동차산업 경쟁력 강화를 동시에 추구하는 주요 국가 정부의 정책에 의해 강제되어 왔으나, 일부 정부 사용 차량을 제외하면, 결국 차를 사는 것은 정부가 아니라 소비자라는 점이다. 전기자동차 확대를 위해 계곡을 건너야 한다, 사회적으로 바람직한 방법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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