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찰개혁 논의가 벽에 부딪힌 세 가지 이유
- 방향의 부재와 실무 역량의 부족 정부와 민주당은 검찰개혁의 큰 틀을 조기에 정치적으로 확정하지 못한 채 ‘검수완박’이라는 수단에 매몰되었고, 이를 정교한 형사사법 제도로 구현할 실무적 설계 체계마저 미흡했다.
- 진보 법률가들의 원리주의적 함정 검찰개혁 담론을 주도한 일부 원리주의 법률가들은 검찰권 남용 비판을 넘어 ‘검수완박’을 절대 신앙화했으며, 이로 인해 국민 보호라는 형사사법의 본질적 가치와 경찰 권한 통제 문제는 논의에서 배제되었다.
- 응징이 아닌 국민 중심의 개혁으로의 회귀 검찰개혁은 검찰을 응징하는 프로젝트가 아니라 국민의 권익을 보호하는 시스템을 만드는 일인 만큼, 이제라도 정파적 논쟁을 멈추고 ‘검찰권 통제와 국민 안전’이라는 정책적 본질로 돌아가야 한다.
주말 아침 지난 1년 검찰개혁의 과정을 돌아보았습니다. 왜 지금과 같은 상황이 만들어졌는가. 몇가지 이유를 정리하다보니 떠오르는 얼굴들이 많아 리얼하게 쓰기 어려웠습니다. 그래도 미래를 위해 기록한다는 차원에서 써보았습니다.-필자주
가까이서 본 검찰개혁 논의 ‘교착’
나는 이번 검찰개혁 논의 과정에서 매우 미묘한 위치에 서있다고 생각한다. 오랜 세월 진보적 법률가로 자리매김해 왔기에 검찰 개혁 목소리를 크게 내고 있는 이들과 매우 가깝다. 그런데 지금 개혁의 9부 능선에 이르러 이들과 의견 차이가 심하다. 검수완박을 신앙처럼 떠받드는 그들 주장에 대해 나는 정면으로 비판한다.
이재명 정부 출범 이후 나는 검찰개혁의 한복판에서 쉬지 않고 글을 썼고, 검찰개혁추진단 자문위원장으로서 정부 책임자들과 의견을 교환했으며, 입법 추진 과정을 지켜보았다. 이런 경험을 바탕으로 검찰개혁 논의가 지금처럼 벽에 부딪힌 이유를 어느 정도 설명할 수 있을 것 같다. 내 눈에는 세 가지 이유가 보인다.
첫째, 대통령과 민주당 지도부가 검찰개혁의 큰 방향을 조기에 정치적으로 정리하지 못했다.
집권 초기에 대통령과 민주당 지도부는 검찰개혁의 목표와 방향을 분명히 제시했어야 했다. 일부 지지자들의 반발을 감수하더라도, 적어도 큰 틀만큼은 조기에 정리했어야 했다. 그것이 책임 정치 아니겠는가.
경찰이 수사를 담당하되 검사는 송치사건의 보완수사를 담당하고, 검찰이 직접 수사해 온 중대범죄는 중수청을 만들어 대응한다는 정도의 방향은 정치적으로 확정했어야 했다. 그래야 이후의 세부 쟁점들도 그 틀 안에서 조정될 수 있었다.
그러나 대통령과 민주당 지도부는 그렇게 하지 못했다. 검찰개혁의 목표를 책임 있게 제시하기보다 ‘검수완박’ 논리에 끌려다녔다. 수사·기소 분리를 검찰권 남용을 통제하기 위한 수단으로 정리하지 못하고, 그것 자체를 목적이자 교리로 만들어 버렸다.
그 결과 개혁의 기준은 “검찰권 남용을 통제하면서도 국민을 범죄로부터 보호할 것인가”가 아니라 “검사의 손에서 무엇을 더 빼앗을 것인가”로 바뀌었다.

지도부는 방향이, 실무는 역량이 없었다
둘째, 정치적 방향을 실제 제도로 바꿀 실무 역량이 허약했다.
정치가 방향을 제시하는 것과 그것을 실제 형사사법 제도로 설계하는 것은 다른 차원의 일이다. 대통령이 몇 차례 보완수사권에 대해 현실적인 문제의식을 드러낸 적이 있다. 그러나 그것을 정교한 개혁안으로 번역해 낼 실무 역량, 즉 유능한 참모와 전문가 집단은 사실상 보이지 않았다.
대통령의 문제의식을 입법안으로 정리하고, 당과 정부를 조율하며, 법조계와 언론, 시민사회에 설득력 있게 설명할 수 있는 실무 체계가 매우 허약했다. 얼마나 허약했으면 10여 개월 작업해 온 추진단 준비 법안이 총리 말 한마디로 없던 일이 되었겠는가.
노무현 정부 ‘사법개혁’과 크게 대비돼
이 점은 노무현 정부 시절의 사법개혁과 비교하면 더욱 분명해진다. 당시에는 청와대에 역량 있는 관련 비서관이 있었고, 명망가와 전문가들이 참여한 사법개혁위원회가 실질적으로 작동했다. 개혁의 쟁점을 정리하고 정치적 부담을 분산하며 입법과 제도 설계를 연결하는 체계가 있었다.
반면 이번 정부의 추진단은 위상도 약했고 영향력도 미미했다. 총리실 소속이지만 실질적으로는 대통령실의 통제를 받는 구조 역시 추진단의 존재감을 더욱 약화시켰다. 정치가 방향을 분명히 세우지 못한 데다 이를 구체적인 제도로 설계할 체계마저 미흡했으니 개혁은 처음부터 흔들릴 수밖에 없었다.
셋째, 검찰개혁 담론을 주도해 온 진보진영 일부 법률가들의 원리주의가 문제를 키웠다.
지금 검찰개혁은 구조상 진보진영이 주도하고 있다. 현재 상황을 만드는 데에는 일부 강성 정치인과 강성지지자들의 역할이 컸지만, 그들을 법률적으로 뒷받침한 진보진영 법률가들, 즉 변호사와 법학교수들의 책임 또한 결코 작지 않다.
수사·기소 분리를 ‘신앙’으로 끌어올린 사람들
이들의 도움이 없었다면 검수완박 논리가 지금처럼 개혁 담론을 지배하지는 못했을 것이다. 나는 이들과 오랜 세월 함께해 왔기에 그들의 순수함과 진정성을 누구보다 잘 안다. (이 글을 쓰면서도 얼굴 하나하나가 떠올라 사실 마음이 여간 불편하지 않다. 지금 견해를 달리해 관계가 서먹해졌지만 언젠가 다시 서로 존경하고 서로 신뢰하는 관계로 돌아가길 바라면서 이 글을 써 내려간다.)
이들은 대부분 오랫동안 검찰권 남용을 비판해 왔고, 그 과정에서 ‘검찰은 더 이상 고쳐 쓸 수 없는 기관’이라는 확고한 신념을 갖게 되었다. 문제는 그 신념이 어느 순간 토론의 대상이 아니라 신앙 수준의 원리가 되었다는 점이다.
쓰고 싶은 말은 아니지만 이들은 어느 순간부터 원리주의자로서 검찰개혁을 바라보고 있었다. 이들은 ‘검수완박’을 사실상 절대 명제로 만들어, 그것을 강성 지지자들에게 검찰개혁의 논리로 제공했다. 그 결과 검수완박이 아니면 개혁이 아니고, 검사에게 일말의 보완수사권이라도 남겨두면 개혁은 실패라는 인식이 확산되었다.
현장에 있는 민변 변호사도 신중한 입장
이처럼 원리주의가 지배하면서 경찰 수사를 어떻게 통제할 것인가의 문제는 애초부터 관심 밖으로 밀려났다. 검사의 폐해는 끊임없이 이야기하면서도 경찰 권한의 비대화와 부실수사로 국민이 입게 될 피해는 외면한다.
더 큰 문제는 이들이 진보진영 법률가 전체를 대표하지도 않으면서 오랫동안 검찰개혁 담론을 사실상 지배해 왔다는 점이다. 최근 민변 회원 설문조사는 이를 분명하게 보여주었다. 보완수사와 전건송치 문제에서 민변 다수 회원의 의견은 그동안 원리주의 법률가들이 주장해 온 내용보다 훨씬 신중하고 현실적이었다.
다시 말해 지금까지 검찰개혁 담론을 주도해 온 원리주의 법률가들의 견해는 민변에서조차 다수의견이 아니었던 것이다.
결국 지금의 교착은 구조적이다. 대통령과 민주당 지도부는 검찰개혁의 방향을 조기에 정리하지 못했고, 이를 실제 제도로 설계할 실무 체계도 갖추지 못했다. 그 틈에서 진보진영 일부 법률가들의 원리주의가 개혁 담론을 지배했다.
국민을 범죄로부터 더 안전하게 보호할 수 있는가
그 결과 검찰개혁은 국민의 권익을 지키는 형사사법 개혁이 아니라, 검사의 권한을 얼마나 더 박탈할 것인가를 둘러싼 정치적 논쟁으로 변질되고 말았다.
검찰개혁은 검찰을 응징하는 프로젝트가 아니다. 검찰권 남용을 통제하면서도 국민을 범죄로부터 보호하는 형사사법 체계를 다시 설계하는 일이다. 기준은 하나뿐이다. 어떤 제도가 검찰권의 남용을 방지하면서도 국민을 범죄로부터 더 안전하게 보호할 수 있는가, 바로 그것이다.
이것은 정파를 불문하고 우리가 따라야 할 기준이다. 지금이라도 대통령과 민주당은 그 기준으로 돌아와야 한다. 수사·기소 분리는 수단일 뿐 목적이 아니다. 검찰개혁은 신앙으로 결정할 일이 아니라 현실을 토대로 결정할 정책적 결단이어야 한다.
이 글은 필자인 박찬운 교수가 페이스북에 올린 글을 허락받아 전재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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