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대홍수’, 모성의 진화와 AI의 미래
AI가 지배하는 ‘미래 디스토피아’ 유일한 희망은 ‘모성애’라는 설정 타임루프 2만1499번의 실험 끝에 자식 위해 희생하는 ‘모성애’ 발견 AI지배 속 인류, 어떻게 살아남을까
AI 시대에 모성애라니!
한 치 앞을 예상하기 어려운 AI 시대의 도래로 무수한 진단과 예측이 난무하고 있다. 특히 노벨상 수상자이자 인공지능의 대부로 일컬어지는 제프리 힌튼은 가장 암울한 ‘디스토피아’를 예언하는 분이다. 그는 초지능 AI 가 인류를 위협하는 실존적 위험이라 경고하며, 이를 통제할 수 있는 유일한 대안으로 ‘모성애‘를 제시한다. AI에게 모성이라니, 이건 무슨 소리일까.
힌튼에 의하면 “더 지능적인 존재가 덜 지능적인 존재에 의해 통제받고 헌신하는 유일한 모델은 아기에게 통제받는 엄마” 밖에 없기에, 지금부터라도 AI에게 모성을 학습시켜야 인류의 안전을 도모할 수 있다는 것이다. 사실 자연계의 모든 역학관계는 약육강식의 구조에서 자유롭지 않다. 물리적, 물질적 우위든 지능적, 정서적 우위든 더 강한 존재가 더 약한 존재의 상위에 위치하고, 지배하든 흡수하든 공존하든 관계의 형태를 결정한다. 모성애는 이러한 자연의 법칙을 거스르는 유일한 반(反)중력에 가까운 감정이자 윤리이기에, 더는 돌이킬 수 없는 초지능 존재에게 기대할 수 있는 자비 또한 모성애와 유사한 윤리 강령을 주입하는 방법 밖에 없는 것이다.
중요한 것은 이러한 감정을 어떻게 학습시킬 것인가, 그것이 가능한가 하는 물음이다. 인간의 공감 능력이나 모성애 같은 고차원 감정은 우주의 탄생이래 단세포 생물이 인간으로 진화하며 육체의 변화와 함께 수 십 억년에 거쳐 발전한 것이기 때문이다. 또한 인간이라 해서 누구나 갖춘 미덕도 아니고, 살아가면서 다양한 경험과 고통. 상처들을 통해 더욱 성숙하고 성장하는 것이기도 하다. AI가 아무리 뛰어난 학습능력과 행동능력을 갖춘다 해도, 아직 인간 외엔 어떠한 고등 포유류조차 소유하지 못한 무조건적 희생정신을 체득하는 것이 가능할까. 아니 합리성과 이성을 대변하는 AI라는 존재에겐 생존본능을 거역하는 ‘희생’이란 언어 자체가 불합리하고 모순적인 개념 아닐까. 단지 기계이기에 입력 값에 의해 파손될 수 있는 행동을 할지언정 약한 존재에 마음이 움직여 스스로 자신을 던지는 일은 불가능한 개념일 것이다.
새로운 인류의 탄생 예비하는 ‘대홍수’
최근 넷플릭스에 올라와 화제가 되고 있는 《대홍수》는 바로 이러한 물음을 던지는 영화다. 작품은 소행성이 지구와 충돌하며 대홍수로 인류가 멸망하는 재난물로 시작하지만, 주인공 안나가 자신의 아들 자인을 찾기 위해 무한 타임루프를 반복하는 모습을 보여주며 SF로 변신한다.
멸망 직전까지 인류가 이룬 기술은 상당하다. 인간과 똑같은 모습의 생명체를 만들어낼 수 있고, 5~6세 정도 아동의 수준까지는 인간과 유사한 감정 구현도 가능하다. 안나는 이러한 기술을 가진 ‘다윈 센터’에서 생산한 ‘안드로이드 아들’을 키우며 인간의 감정을 학습시키는 이모션 엔진 기술자인데, 친자도 아닌 인공 생명체에 대한 스스로의 모성애에 한계를 느끼고 로봇 회수를 요청한 상황이다.
하지만 대홍수로 인류가 멸망했다. 살아남은 초지능 AI들은 인류의 정신과 가치를 보존하라는 최종 임무를 실행하기 위해 새로운 인류를 우주에서 생성해 다시 지구로 돌려보내는 《뉴맨 프로젝트》를 진행한다. 문제는 아직 인간의 가장 위대한 정신인 모성애를 학습하지 못했다는 점이다.
결국 자신이 키운 아들에 대한 애정은 있으나 모성은 미성숙한 안나와 아들 자인을 강제로 분리함으로써, 안나가 자식을 위해 희생을 감내하는 사람으로 진화하는지를 지속적으로 시뮬레이션 하는 방법을 택한다. 이는 인간이 AI를 학습시키기 위해 사용하는 일종의 딥 러닝이나 강화학습과 유사한데, 실험 회차는 친절하게도 안나가 입고 있는 티셔츠에 새겨진 번호로 알 수 있다.
58년만에 완성되는 ‘인류애적 모성애’
영화는 매일 아침 안나가 반복되는 잔혹한 환경과 고난 속에서 조금씩 진짜 엄마로 성장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의식적 기억은 리셋되지만 잠재의식과 반응패턴은 누적되기에 각 루프마다 겪어내야 하는 상실의 고통과 타인에 대한 연민, 죄책감이 신경망에 각인되어, 좁은 의미의 혈연적 모성애에서 벗어나 주위 사람까지 살피고 구조하는 인류애적 모성애로 확장된다. 그렇게 2만 1499번의 도전 끝에 결국 아들 자인을 찾아내는데, 시간상으로는 약 58년이 걸렸다.
AI 에게 어린 아이의 감정을 학습시키는 것은 5년 정도면 가능하지만, 완전한 부모다움, 어른다움의 감정과 책임감을 추출하여 전달하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닐 뿐만 아니라 인간 스스로도 평생 도달하기 어려운 것임을 보여주는 장치가 아닐까 싶다. 영화 속 또 다른 등장인물인 손희조는 이런 안나를 때로 돕거나 압박하며 변화를 지켜보는 인물인데, 그의 모습 역시 회차를 거듭하며 협력적으로 변화한다. 방관자적 부성애의 발전 모습이다. 인간의 공감능력이 현재 수준으로 발전하기 위해 거쳐온 지난한 진화의 역사가 이해되는 장면들이다.

냉혹한 AI, 창조주도 그러했나
그러나 영화는 인류의 가치 보존이라는 숭고한 목적을 위해 안나와 자인에게 가혹한 방식의 실험을 진행하는 AI의 비인간성도 동시에 비춘다. 이는 마치 탐욕 가득한 인간들을 대홍수로 멸하고 순수한 신앙심을 가진 노아의 가족만을 구조한 냉혹한 신의 모습과도 유사해 보인다. 더 나은 존재가 되기 위해 AI를 숭배하는 인간. 그런 인간족(族)의 부족함을 멸시하든 연민하든 궁극적으로는 자신의 눈에 보기 좋은 신인류를 창조할 AI가 지배하는 미래의 세계. 왠지 창세기의 데자뷰 같은 느낌이 드는 것은 나만의 것일까.
반복되는 타임루프 속에서 숨겨진 비밀에 접근하거나 더 나은 사람으로 성장하는 영화, 혹은 발전한 물리학 지식을 통해 현실과 가상세계의 경계를 묻는 영화는 많다. 오래 전 보았던 ‘사랑의 블랙홀’, ‘소스 코드’, ‘엣지 오브 투머로우’ 같은 작품들도 그렇고, 시간의 역전을 보여준 ‘테넷’도 흥미로운 사고실험을 유도한다. 시간의 의미가 결코 가볍지 않음을 깨닫게 만드는 것들이다.
그리고 AI 시대가 목전에 다가온 이 시기, 가장 현실적인 질문과 함께 제프리 힌튼의 조언을 고스란히 응축하고 상징화한 점에서 《대홍수》도 의미있는 작품이라 할 수 있을 것 같다. 위급한 재난 속에서도 철없는 아이의 모습에 화도 나지만, 근미래에 AI가 바라보는 어른 인류의 모습이 그보다 나을 것 없다는 것을 인정하니 이해도 된다. 모성이라는 아름다운 언어에 비해 형편없이 초라한 우리의 내면을 직시하고 스스로 더 성장하는 것만이 대홍수같은 거대한 변화 속에서 살아남는 길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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