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력사회, 언론의 책임이 크다

언론은 어째서 늘 극단주의를 선정적으로 이용하여 민심을 왜곡하고 사회를 더욱 혼란스럽게 만드는 것인지 반성해야 한다.

지난 19일 법원 폭동사태 CCV영상.
지난 19일 법원 폭동사태 CCV영상.

방치되고 있는 경호처 직원들의 신변

대통령 경호처의 경호차장과 경호본부장에 대한 구속영장이 검찰에서 반려되었고, 이들의 귀환으로 경호실 직원들이 멘붕상태라는 뉴스를 들었다. 이로 인해 본부장급 이상 간부들이나 일부 부장들도 “사직서를 제출했다”는 소식도 연이어 들린다. 강성파 상사들의 증거인멸 및 부당한 지시를 거부했거나 이미 인사조치를 당했던 직원들이 어떤 고초를 당할지, 왜 이들이 사표까지 내도록 정부와 사법부가 상황을 방치하는지 안타까운 상황이다. 정치화된 군대조직의 수장들이 공고히 남아있기에 박정훈 대령이 무죄판결을 받고도 여전히 인사발령을 받지못하고 떠돌고 있는데, 경호처 또한 비슷한 상황이 반복되는 것이다.

공수처의 대통령 체포영장 집행을 막으려 했던 대통령 관저 경호처 직원들. 사진= 연합뉴스
공수처의 대통령 체포영장 집행을 막으려 했던 대통령 관저 경호처 직원들. 사진= 연합뉴스

사람들은 “유전무죄 무전유죄”나, “유권무죄 무권유죄”를 논하며 법이 돈과 권력에 종속되어 있음을 조롱한다. 일정 부분 사실인데, 많은 법조인들이 권력을 쫒는 것과 동시에 스스로의 지위를 최고 권력으로 인식하기에 일어나는 현상이기도 하다. 한데 이러한 ‘권력 빙의’ 현상은 단지 강자와 결탁하는 행동만이 아니라, 우습게 여기는 자들의 부적절한 행위를 쉽게 무시하고 방조하는 오류도 동시에 드러낸다. 학교나 직장폭력 피해자를 가해자와 한 공간에 있도록 방치하고, 데이트 폭력이나 스토킹 범죄를 방관하는 경우도 그런 사례다. 높은 곳에서 안전한 삶을 누리는 이들에겐 이런 잡범들이나 그들에게 당하는 이들이나 매한가지로 하찮고 가벼운 존재라서다.

경호처 직원들의 법치국가에 대한 고민과 판단, 저항행동의 존중 및 보호, 그들이 겪고있는 심신의 고통에 대한 이해는 고사하고, 경호차장과 경호본부장 등의 불법행동을 가볍게 보는 것도 마찬가지 심리로 보인다. 경호직원이란 옳고 그름에 대한 판단없이 그저 충성도 높은 반려견이면 된다는 인식이 아니라면, 대통령 구속과 이러한 행정조치는 양립할 수 없을 것이다.

최고권력은 고통과 피눈물을 요구할 뿐

역사학자이자 작가인 유발 하라리는 신작 『넥서스』에서 어두웠던 스탈린 치하의 사건들을 소개한다. 당시 소련에서 가장 뛰어난 공군 조종사 중 한명이었던 파벨 리차코프의 이야기도 그 중 하나다. 그는 스페인 내전과 일본의 중국 침략전쟁 등에서 훌륭하게 작전을 수행하여 29살의 나이로 공군 사령관이 된다. 하지만 이 시기 소련 공군은 사건사고가 끊이지 않았는데, 스탈린의 공포정치로 인해 관료사회가 제대로 작동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전쟁을 수행할 전투기 설계와 제작조차 실적을 위해 급조되었지만 진실은 은폐되었다. 리차코프는 이러한 상황을 파악하고 있었기에 “공군이 관짝을 타고 비행하고 있다”고 스탈린에게 정직하게 말했고, 결국 반국가조직의 일원으로 체포되었다. 그의 부인 역시 리차코프의 반정부 공모를 방조했다는 이유로 함께 처형되었다.

1930년 후반 스탈린의 대숙청 기간동안 소련 정규군 장교중 10%가 비밀경찰에 의해 총살되거나 투옥되었고, 공산당에 입당한 원조 볼셰비키주의자의 1/3이 숙청되었다. 정치국이나 당중앙위원회 위원의 반쯤이 총살되었고, 이 모든 숙청을 수행한 비밀경찰들 역시 서로를 감시하고 고발하며 사라져갔다. 이 모든 살상을 지휘했던 겐리크 야고다는 독일간첩 혐의로 체포되어 고문을 받다가 1938년에 처형되었고, 그 자리를 차지한 후 “스탈린의 개”로 불리며 악명을 떨친 예조프는 2년간 수 백만명을 고문하고 죽이다 자신도 같은 방식으로 비참하게 처형되었다. 죽기전까지 몸부림치고 울면서도 “스탈린 만세”를 외쳤다는 이야기도 있다. 1935년 소련의 최고 권력기관이던 국가보안위원회(NKVD)에서 장군 계급에 있던 39인중 35인이 수년 안에 총살되었고 남은 4명 역시 망명하거나 권력투쟁 과정중 사망했다. 스탈린에게 인정받는 것은 세상에서 가장 위험한 일 중 하나였다고 유발 하라리는 기술한다.

이러한 사건들에서 기시감을 느끼는 것이 나만은 아닐 것이다. 최고존엄 1인과 소수권력을 위해 작동되는 사회는 반드시 수 많은 이들의 고통과 피눈물을 동반한다. 성실하게 자신의 일을 수행한 이들은 물론이고 존엄의 눈에 들기 위해 이전투구한 자들도 조직폭력배의 말로처럼 더 잔혹하고 더 비열한 이들에게 자리를 뺏기고 대개는 몰락한다. 지도자 이외의 모든 존재는 그를 위한 1회용 부품이기 때문이고, 그런 이의 주변에 포진된 권력바라기들 역시 유사한 성정을 가진 이들로 채워지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러한 이들이 득세하는 사회는 점차 정상성에서 일탈하며 무력해지거나 무력이 지배하는 사회로 변질되어 갈 수 밖에 없다.

지난 19일 새벽 서울서부지방법원 담장을 넘어 무단침입한 시위대들이 경찰에 의해 체포돼 있다. 사진= 연합뉴스
지난 19일 새벽 서울서부지방법원 담장을 넘어 무단침입한 시위대들이 경찰에 의해 체포돼 있다. 사진= 연합뉴스

이 시대, 누가 증오를 선동하고 있나

최근 몇 달간 벌어지고 있는 사건들은 우리사회가 스탈린이나 제 3세계 독재정부같은 공포정치 국가로 퇴보하는 듯한 느낌을 준다. 수십년 전 동족상잔의 비극이 떠오를만큼 극단적인 이념대립과 폭력이 난무하는데도 이를 만류하기는 커녕 증오의 선동을 통해 차기 선거나 이권을 챙기는 이들이 활보하고 있다. 국가공무원들의 “생각하지 않는 죄”를 가벼이 여기는 관용 아닌 관용이 법원난입이라는 중대사태를 촉발했음에도, 여전히 이들을 비호하는 이들이 방송에 더 많이 얼굴을 비추며 인지도를 높여가고 있기도 하다.

어느 사회나 소수의 극단주의자들은 존재하지만, 선을 넘는 폭력이 횡행하고 불법이 목소리를 높이는 것은 법과 권력과 언론이 방조하거나 결탁하기 때문이다. 트럼프가 당선되며 이민자들이나 동양권 시민들이 지속적으로 테러를 당하며 불안한 삶에 놓이게 된 이유고, 이와 비슷하게 최근 대한민국에 살고있는 중국인들이 극우들이 퍼뜨린 중국개입설로 인해 테러의 불안감을 느끼고 있는 이유이기도 하다. 지구상의 많은 국가가 내전으로 상호 절멸에 가까운 집단살해와 폭력의 참상을 겪는 이유 역시 동일하다. 먼나라 이야기로 알았던 위험한 일들이 더는 남의 이야기가 아닐 수 있다는 불안감을 느끼는 것도 나만은 아닐 것이다.

부하들에게 잠시 권력을 안겨주지만 결국은 모두를 의심하고 토사구팽하는 스탈린을 포함한 무수한 독재자들, 21세기 선진국에서 일어날 수 없는 초유의 사건들 속에서 대한민국의 상당수 정치·종교·법 권력자들이 보여주는 속성은 유사하다. 그럴듯하게 정의로운 언행으로 사람들을 미혹하거나 선동하고 관용과 친밀감을 드러내지만, 그들의 관심은 오로지 위대한 자기자신을 위해 희생할 추종자들일 뿐이라는 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동서고금 가장 위험한 속내의 사람들이 가장 높은 곳으로 추대되어 벌어지는 사회적 혼란이나 부조리의 원인에는 그들을 지지하는 이들의 그늘진 속내가 공존한다. 세금포탈의 욕심이, 지역주의의 이기심이, 발전하는 여성지위에 대한 시기심과 자괴감이, 소외된 노년의 오기와 힘에 대한 향수가, 유튜브같은 자본주의 미디어 시스템을 통해 이 모든 욕구를 증오로 추수하며 돈을 쓸어담으려는 욕망이 비열한 정치인과 잔혹한 종교인과 편향적인 지식권력자를 활개치게 만들고 폭력적인 청년들을 광장으로 불러낸다.

나태한 언론, 어째서 민심왜곡에 앞장서나

무엇보다 소수의 극단적 지지자나 정상적이지 않은 정치인들의 의견을 마치 다수의 상식적인 국민들의 판단과 비슷한 비율의 의견인 듯 포장하며 동일한 무게로 노출하고 있는 나태한 언론의 책임을 묻지 않을 수가 없다. 언론의 균형이란 비민주적이고 폭력적인 소수의 언행을 과하게 노출하여 대세인 듯 착시를 유도하는 것이 아니다. 탄핵을 기정사실화하기에 나타나는 정당지지도를 마치 탄핵반대가 대세가 된 듯 받아들일 수 있는 정보 소외계층이나 특정정보 중독자들의 오해도 고려해야 한다. 권위있는 운동경기도 극단의 점수는 삭제하는데, 언론은 어째서 늘 극단주의를 선정적으로 이용하여 민심을 왜곡하고 사회를 더욱 혼란스럽게 만드는 것인지 반성해야 한다.

언론의 역할은 그저 벌어지고 있는 사건과 사태를 나열하는 것이 아니라, 소수층의 잘못된 인식과 반복되는 사회적 문제가 우리 사회의 어떤 어두운 요소와 부족한 교육에 의해 야기된 것인지에 대해 더 많은 심층적 분석과 발전 방향을 제시하는 것이다. 또한 잘못된 선동가와 권력추종자들에 의해 어떤 비극적이고 잔혹한 역사가 반복되거나 발생할 수 있는지를 알리는 것에 더 많은 노력을 할애하는 것이다.

법치국가의 근간까지 뒤흔드는 망국의 정치는 평균적인 국민욕망의 거울이고, 정치인을 일꾼이 아니라 상전으로 모시고픈 잠재된 노비근성의 발현이며, 이러한 사회를 이끈다고 자처하는 언론인들과 지식인들의 책임방기 및 사고수준을 보여주는 바로미터다. 무력(無力)한 무력(武力)사회에 언론의 책임이 크다.

글쓴이

박선화 한신대 교수

필자인 박선화는 LG전자와 LG U+에서 브랜드 이미지를 만들고 커뮤니케이션하는 일을 했다. 업무를 통해 마케팅이 심리학임을 깨닫고, 이후 이와 관련된 공부를 하며 소통에 관한 책을 쓰고 강의도 하고 있다. 현재는 한신대학교 평화교양대학에 재직중이다. 전공과 관심분야가 다양하지만 '사람과 사람의 관계'에 대한 생각을 많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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