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모두의 김낙수 씨를 응원합니다

‘서울 자가에 대기업 다니는 김부장’ 중산층 타이틀 만족하고 살던 인생 하나씩 잃는 와중에도 지킨 자존심 가족애·동료애의 재발견과 참 행복 우리 다 행복할 자격 있음 잊지말길

아내 하진(명세빈 분)이 남편 김낙수(류승룡)을 위로하는 장면. 사진= JTBC
아내 하진(명세빈 분)이 남편 김낙수(류승룡)을 위로하는 장면. 사진= JTB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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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만한 사람의 자괴감 이야기 아냐?

‘서울 자가에 대기업 다니는 김부장 이야기’. 최근 가장 많이 회자된 이 드라마를 나는 내내 외면했다. 제목만으로도 가슴 한켠이 조여 오는 듯한 심정 때문에 안 보고 싶었다는 게 솔직한 마음이다. 드라마가 끝나고 그래도 결말은 해피엔딩에 가깝다는 얘기를 듣고서야 뒤늦게 쳐다볼 마음이 생겼다. 그렇다고 신나게 내리 보는 건 역시나 어려웠다. 중간 중간 마음이 아파 잠시 끊었다가 다시 보고 하느라 시간이 많이 걸렸다. 회사생활 25년차 김부장의 모습에서 나뿐만이 아니라 내가 만나왔던 많은 사람들의 얼굴이 겹치면서 꽤 힘들었다.

회사생활이 과연 정말 이러냐, 이것뿐이냐 라고 한다면 그다지 현실과 딱 떨어지게 맞는 건 아니라고 말할 수 있다. 조금 과장된 면도 있고 다른 면도 있고 아예 틀린 면도 있다. 그럼에도 많은 사람들의 마음에 그저 리얼한 ‘짠함’으로, 마치 내 일인 양 느껴지는 서러움으로 전해지는 건, 알고 보면 우리는 누구나 김부장처럼 살고 있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누군가는 이렇게도 얘기한다. 제목처럼 ‘서울’에 ‘자기 집’을 가지고 ‘대기업’에 다니면서 ‘부장’ 씩이나 하는 사람이 힘들다고 하면, 그것도 안 되는 사람들은 어떻게 살라는 얘기냐고. 충분히 일리 있는 말이다. 회사 다니는 사람 전체의 10%도 안 되는, 소위 그래도 살만한 사람의 자괴감 따위 들어줄 여력이 없는 사람이 더 많을 수 있다. 하지만 알게 모르게 남에게 맞춰 살라고 강요하는 우리 사회에서 맥없이 소진되어 가는 한 사람에 대해, 그럴싸한 ‘타이틀’을 떼 내고 남은 ‘자연인’으로서의 개인에 대해 얘기하고 싶었던 거라면 나름 일리 있는 설정이다.

자신의 삶에 자신만만하던 김낙수. 사진=JTBC
자신의 삶에 자신만만하던 김낙수. 사진=JTBC

내가 다 잘 하고 있잖아. 근데 왜 그래?

72년생 김낙수 부장. 취업이 잘 되던 시기에 통신회사에 입사를 했고 줄곧 영업통으로 뛰면서 열심히 살았다. 그동안 결혼도 했고 아들도 낳았고 서울 강동 쪽에 집도 샀다. 회사에서는 승진 누락 한 번 없이 부장까지 승승장구했고 이제 바야흐로 임원이 코앞이다. 김 부장에겐 이 모든 것이 앞만 보고 달렸던 지난 세월에 대한 보상이며 자부심이다. 모두가 바라는 삶을 살고 있다는, 소위 말하는 ‘성공’한 인생의 테두리 내에 들어갔다는 생각으로 가득하다.

“결국 이 대한민국에선, 이 세계를 선도하는 대기업에 똬악 입사해서 그냥 책상에 딱 앉아서 컴퓨터 착착착 두들기면서 돈을 벌어야 되는 거야. 이게 스탠다드인 동시에 가장 이상적인 결말이야.” 아들과 술 한잔 하면서 김부장이 강조하는 이 말은 확고한 진심이다. “아들, 명심해. 대기업 25년차 부장으로 살아남아서 서울에 아파트 사고 애 대학까지 보낸 인생은 위대한 거야!”

그런 그에게 가족은 어떤 의미일까. “아들. 니들끼리 모이면 막 그런 얘기하지? 한번만 더하면 진짜 서울대 갈 수 있을텐데.” 재수까지 시키며 서울대 가길 바랐던 아들이 Y대를 간 것이 못내 아쉬워 얘길 꺼낸다. “아니요. 다들 만족하던데요. 캠퍼스도 예쁘다고 하고.” “너는?” “저두요.” 도저히 이해가 안 된다. 한발만 더 나아가면 최고가 될 수 있는데 이게 웬 말인가? 짜증이 역력하다. 노후 대책을 생각하는 아내도 맘에 안 든다. 내가 벌어오는 걸로 그냥 취미생활이나 하며 살면 되는데 자존심 상하게 뭘 자꾸 하겠다고 한다. 회사에서 ‘잘 나가는’ 김부장에게 가족은 그저 내가 가장으로 끌고 가야 하는 또 하나의 ‘팀원’ 이자 내세우고 싶은 ‘타이틀’ 에 불과했다.

직속 상사인 백정태 상무는 어떠한가. 사원 때부터 호형호제 하던 사이로, 그야말로 ‘빤쓰’ 까지 빨아주며 온갖 뒤치다꺼리를 했고 본인 아들 졸업식은 못 가도 백 상무 아들 딸 졸업식은 꼭꼭 챙겨가며 충성을 바쳐왔다. 옆 부서 영업 2팀 도진우 부장이 사내 정치를 곧잘 해서 좀 거슬리긴 하지만, 그에게 회사란 25년 동안 우리 가족을 먹여 살려준 고마운 곳이고 나를 저버리지 않을 곳이다. 더군다나 지난 세월을 함께 한 ‘전우’ 백상무는 나를 절대 버리지 않을 것이라 확신하고 그 동아줄을 놓치지 않으려고 버둥댄다.

김낙수 부장에겐 윗사람의 지시를 그대로 따르기만 해도 되던 때가 마치 아주 오랜 옛날처럼 느껴진다. 사진= JTBC
김낙수 부장에겐 윗사람의 지시를 그대로 따르기만 해도 되던 때가 마치 아주 오랜 옛날처럼 느껴진다. 사진= JTBC

수첩에 받아적은 대로 하면 되던데...

그랬던 그에게 불현듯 위기가 닥쳐온다. 영업실적은 떨어지고 팀원들은 자기를 꼰대 취급하고 백 상무는 자꾸 질책하는데 뭐가 문제인지 알 수가 없다. 김 부장은 이제까지 해왔던 업무 방식이 맞다고 철떡같이 믿고 있다. 데이터 따위에 의존하기보다는 발로 뛰며 인간 대 인간으로 만나 허리 굽혀가면서 이야기하고 설득하는 영업이 최고라고 생각한다. 술자리에서 폭탄주 제조를 기막히게 해서 웃음을 이끌어내고 백 상무가 지시를 내릴라치면 수첩과 볼펜부터 꺼내 그대로 적고 수행하는 게 제대로 일하는 회사원의 모습이다. 아니, 그것밖엔 모른다.

그런데 이상하다. 계속 일이 묘하게 굴러간다. 점점 궁지에 몰리는 자신을 발견한다. 게다가 스스로 ‘성공한 사람’의 울타리 안에 들어갔다 여겼던 곳에는 넘어설 수 없는 ‘그들만의 리그’가 있다. 반포에 대형 아파트를 가지고 좋은 외제차를 굴리는 도 부장이 있는가 하면, 양복에 넥타이 매는 일 없이 허름하게 보이던 친구가 건물주로 월 3천만원의 수익을 올리고 있다고도 한다. 내 한몸 온전히 바쳐 죽자고 달려왔는데 내가 가지고 있는 것들만으로는 안 되는 더, 더 높은 자리가 있다.

김낙수 같은 우리, 차마 그렇게는 못한다

결국 지방으로 좌천된 김부장. 개똥이나 치우는 신세가 된 스스로를 못 이겨 다시 복귀할 수 있다며 자기 최면도 걸었다가, 내가 뭐 그리 잘못 했냐고 분노도 토했다가 좌충우돌하는 중에 기회가 생겼다. 공장 정리해고에 동참하라는, 그렇게만 하면 본사 복귀도 시켜주고 임원도 달게 해주겠다는 달콤한 유혹이었다.

눈 한번 질끈 감고 명단 따위 아무렇게나 작성해서 넘겨주면 되는 것을, 김 부장은 자신의 명예퇴직으로 마무리를 짓는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퇴직금 사기까지 당해서 낙망하고 있을 때 다시한번 기회가 생겼다. 백 상무가 괘씸한 도 부장을 저지하기 위해 김 부장의 아는 인맥을 동원해 회사 업무를 방해해달라고 간곡히 부탁한다. 그렇게만 해주면 어디 중소기업이라도 좋은 자리 책임지고 알아봐주겠다며 사정한다. 김 부장은 고민하다가 다시 포기한다.

어쩌면 우리가 김부장에게 감정적으로 이입되는 것은 이런 것 때문인지도 모른다. 달라진 세상에 적응하지 못하고 겨우 일구어낸 자신의 성과에 소시민적인 자부심으로 가득한, 어찌 보면 꼰대일지언정 다른 사람에게 손해를 주거나 평생을 바쳐온 회사를 배신하는 행동은 차마 하지 못하는 ‘선한’ 사람이라서. 그게 우리라서.

공장으로 쫓겨나 근로감독을 맡은 김낙수씨. 사진=JTBC
공장으로 쫓겨나 근로감독을 맡은 김낙수씨. 사진=JTBC

자존심? 가족? 잘못 생각하고 있었어

굳건히 지켜내리라 믿었던 타이틀이 하나둘 떨어져 나간다. ‘대기업’과 ‘부장’이 사라지고 ‘자가’ 가 사라지고 ‘서울’이 사라졌다. 어느새 김낙수 씨에게 남은 것은 이름 석자 뿐이다. 형의 카센터 구석에서 남의 차를 닦는 일을 하는 신세가 되었다. “도대체 넌 왜 임원이 되고 싶었냐? 가족끼리 여행 한번 못 가고 애 졸업식도 한번 못 가고 일만 미친 듯이 하면서 도대체 뭘 위해서, 뭘 쫓아다니면서 그렇게 살았냐, 너는?” 예전의 김부장을 마주 하며 김낙수씨는 절실하게 물어본다.

“몰라서 물어?.. 지키고 싶었어. 하진이(아내), 수겸이(아들), 가족들. 그리고 내 집, 내 자리. 그게 왜?” 제발 한번이라도 솔직해보라고 다그치자 김부장은 말한다. “그래, 자존심. 하진이가 말한 대로 자존심 지키고 싶었어. 내가 뭘 그렇게 잘못한 거야?”, “그러게. 내가 뭘 그렇게 잘못 살았어? 젊었을 땐 그렇게 앞만 보고 달리라던 세상이, 지금은 또 앞만 보고 달리지 말래. 뭐 내 자신도 돌아보고 주변도 돌아보래.” “근데 막상 내 안을 들여다보지. 내가 없어. 공허해. 텅 비어있어. 그리고 주변을 돌아보면 다 내 등 뒤에 타있어. 부모님, 대출, 노후”, “하진이, 수겸이. 무겁다 무거워.”

하지만 가만히 생각해보니 그게 아니었다. 무겁게 짊어지고 있던 가족이 사실은 나를 받쳐주던 든든한 지지였음을 문득 깨닫는다. “나는 내가 지켜주고 있는 줄 알았는데 아니었어. 하진이가, 수겸이가 그렇게 내 등 뒤에서 나를 지켜주고 있었던 거야. 이 못난 나는, 그럴동안 그냥 이 알량한 자존심만 꽉 움켜쥐고 있었던 거야”, “그래, 그거 좀 내려놓자 우리.. 김부장, 그동안 수고했어. 그 지랄맞은 백 상무 수발들고 밤낮으로 영업뛰고 접대하고. 그 돈으로 수겸이 대학 보내고 하진이랑 집 사고. 정말 애썼어. 그리고 미안하다. 내가 너한테 선물 한번 못 줬어.”

그리고 말한다. “고마와. 가벼워졌어.” 과거의 김부장은 말한다. “낙수야, 행복해라” 그리고 씨익 웃어준다. “고맙다, 김 부장, 잘 가.” 다른 사람이 아니라 이 힘든 세상에서 어렵게 살아내고 있는 나 자신과 화해할 시간이, 나 자신을 위로할 시간이 우리에겐 필요했던 거다. 이 장면에서 나도 과거의 나와 만나는 시간을 가지며 눈물을 흘렸다.

이름 석자만 남은 김낙수 씨, 이젠 행복하길

중산층의 정의에 대해 쓴 글을 본 적이 있다. 프랑스의 중산층은 외국어를 하나 정도는 하고, 직접 즐기는 스포츠가 있어야 하고, 다룰 줄 아는 악기가 있어야 하고, 남들과는 다른 요리를 만들 줄 알아야 하며, 공분에 참여하고, 봉사활동을 꾸준히 하는 사람이라고 했다. 반면 우리나라의 중산층은 부채없는 30평 이상 아파트를 가지고 월 급여 500만원 이상에, 2000cc 급 중형차를 몰면서 예금에 잔고 1억원 이상을 보유하고 해외여행을 1년에 한 차례 이상 다닐 수 있는 사람이라고 답했다는 내용이었다. 우리나라에서 중산층이라는 범위 내에 속하려면 내 몸에 물질적인 뭔가를 하나씩 붙여나가야 한다는 소리로 들렸다. 그게 중요하지 않다고 말하는 건 아니다. 다만, 그 속에 들어가지 못한다고 해서 내가 쓸모없는 인간은 아니라는 것, 이 모든 걸 다 떼어내고도 남는 것이 진정한 내 것이지 않은가.

그래도 우리 김낙수 씨. 세상 헛 산건 아니었다. 이젠 양복에 넥타이로 무장하고 비싼 서류가방을 든 채 서울 자기 집에서 나와 대기업 간판 큼직하게 달린 대형 빌딩 입구를 통과한 후 사원 카드를 찍고 게이트를 넘어 출근하는 폼나는 영업팀장 김부장은 아니지만 말이다. 어릴 적부터 원수처럼 여기며 왕래도 거의 하지 않았지만 낙심한 모습으로 찾아온 동생에게 자신의 카센터 내에 세차장을 마련해주고 짠한 눈빛으로 바라보며 좋은 일 있을 때마다 진심 다해 응원해주는 형이 있다. 좌천의 위기에 몰려 도와달라 손 내밀었을 때 회사 눈치 보느라 외면했지만 이젠 함께 세차장을 하며 동고동락하는 회사 동기가 있다. 팀원 중 그다지 살갑게 다가오는 사람은 아니었지만 옛 직장 지하 주차장에서 꿋꿋이 세차일을 하는 김낙수씨를 보며 존경한다 말해주는 옛 팀원이 있다. 늘 보살펴줘야 하는 아이로만 생각했었는데 아빠가 야간 대리운전하다가 사고날까봐 같이 뒤에서 운전해주는 아들이 있다. 무엇보다 명예퇴직하고 축 처져 집에 왔을 때 아무 말 없이 수고했다고 따뜻하게 안아주던 아내가 있다.

남들 시선에 맞춰 괜한 자존심으로 무리하게 펌프질하며 풍선처럼 비대하게 키웠던 자아가 바람이 다 빠지고 나니 비록 좀 작아졌지만 소중한 알맹이들로 충만해졌고 그걸 자포자기가 아니라 나의 것으로 받아들이는 순간 사람은 비로소 행복해지는 듯하다.

마지막 장면. 세차 중에 거센 소나기가 내려 잠시 쉬는 시간. 낡은 소파에 앉아 뒤로 머리를 기내고 다리를 앞으로 뻗어 책상에 올려놓은 채 조용히 눈을 감은 김낙수 씨의 머릿 속에 지난 세월이 스르르 지나쳐간다. 그리고 다정한 가족들의 음성, 그리고 내가 나에게 건네던 위로의 음성을 들으며 그의 입가에 모처럼 편안한 미소가 번진다.

이름 석자만으로 남겨진 김낙수 씨. 이제 행복하길. 지나온 인생이 쉽진 않았지만, 어쩌면 남들은 이게 뭐냐고 할 수도 있겠지만 당신 마음의 소리에 귀 기울이며 당신을 에워싼 진심어린 사람들과 더불어 지내며 남은 인생 다정하게 누리길 응원합니다. 그리고 이 세상 어디에나 있을 ‘김낙수 씨’ 당신들을 또한 응원합니다. 잘 났든 못 났든, 높은 자리에 갔든 못 갔든, 잘 살든 못 살든 세상이 부지불식간 강요하는 허울에 부질없이 나를 온전히 던지지 말길. 무엇보다 우리네 모든 인생은 헛되지 않음을, 우리가 발딛고 선 자리에서 행복해질 자격이 있음을 내내 잊지 말길.

글쓴이

변혜정 자유기고가

변혜정 경희사이버대 교수는 작업장에서 일하는 사람들이 건강하고 안전하게 근무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기 위해 공부하고 일해 왔다. 사회경제적 요인과 주거환경과의 연관성을 주제로 박사학위를 취득한 후 연구소 및 기업체에서 EHS 컨설팅 및 전략수립, 안전보건관리 업무 등을 수행했다. 사람이 아름답게 살 수 있도록 도와주는 모든 존재양식에 관심이 많다. 책과 영화와 음악과 공연 등에 대한 경험은 언제든지 마다하지 않고 있으며 여기에서 받은 영감을 다른 사람과 나누는 일을 통해 보다 좋은 세상을 만드는 데 작은 역할이나마 할 수 있기를 늘 꿈꾸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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