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 미니멀리즘과 단색화 탄생시킨 ‘순수’

[김희은의 울림 깊은 러시아미술 이야기] 러시아 미술사를 바꾼 3대그림 제3탄② ‘세계를 재현한다’는 예술관념과 완전 결별 무엇과 닮지 않은 순수한 창작 자체 표현 소멸과 부재 의미하는 ‘제로(0)’ 부각 스탈린에게 탄압받아 쓸쓸한 말년 보내

말 달리는 붉은 기병대, 1928~1932년, 카시미르 말레비치, 캔버스에 유채, 91×140cm, 트레챠코프 미술관, 모스크바
말 달리는 붉은 기병대, 1928~1932년, 카시미르 말레비치, 캔버스에 유채, 91×140cm, 트레챠코프 미술관, 모스크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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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화의 철학화, 사상화

검은 사각형

검은 사각형, 1913년, 카지미르 말레비치, 캔버스에 유채, 79.5×79.5cm, 트레챠코프 미술관, 모스크바.
검은 사각형, 1913년, 카지미르 말레비치, 캔버스에 유채, 79.5×79.5cm, 트레챠코프 미술관, 모스크바.

드디어 꽃 피운 말레비치의 절대 추상 <검은 사각형>이 탄생했다!!

지금까지 일련의 작품들을 창작해 내면서 말레비치는 대표작 『검은 사각형』에 다다르게 된다. 모든 그림은 표현하고자 하는 대상, 소재가 있다. 하지만 말레비치는 과감히 소재와 대상의 재현을 배제했다.

원래 이 그림은 말레비치가 1913년에 오페라 <태양에 대한 승리>의 무대와 의상 디자인을 맡게 되면서 고안한 커튼 디자인이었다. 하얀 바탕 위에 놓여 있는 검은 사각형. 마치 칼로 자른 듯 명확히 가장자리 처리된 『검은 사각형』은 보이는 그대로다.

여기서 주목할 것은 그림을 보고 느끼는 우리의 감정이다. 하얀 바탕 위에 ‘검은 사각형’을 보고 심오한 뭔가를 끌어낼 수 없다. 보이는 대로 느끼는 대로 해석하면 된다. 즉, 검은 사각형을 처음 보았을 때 느껴진 그 감정만이 중요한 요소가 된다. 현대 미술의 전환점이 된 『검은 사각형』은 현실 세계를 그대로 재현하던 과거와 결별하고, 무엇과도 닮지 않은 순수한 창작물 자체를 표현하려 한 것이다. 이렇게 외부 세계의 재현을 완전히 거부하고 구체적인 형상을 없애 버린 당시 러시아의 새로운 미술을 ‘절대주의(Suprematism)’라고 한다.

가장 성스로운 곳에 걸린 ‘절대주의’

이 『검은 사각형』은 ‘마지막 미래주의 전시: 0.10’에 출품되었는데, 전시된 위치 또한 중요한 의미를 가진다. 러시아는 집안의 가장 성스러운 장소에 이콘을 건다. 그런 의미를 겨냥하듯 말레비치는 이콘이 걸려야 할 장소에 검은 사각형을 걸어 전시했다. 우리를 지배하던 기존 관념들을 과감히 버리고 새로운 질서를 부여하자는 것이다. 우리 관념에 똬리를 틀고 있는 일련의 매너리즘을 과감히 버리라고 선언했다.

또, 전시 제목 <0.10>은 대상의 소멸과 부재를 의미하는 ‘zero’라는 절대주의적 주제와 이를 추구하는 10명의 화가들의 전시회라는 의미였다. 이때 쓰여진 수프레마티즘(Suprematism), 즉 ‘절대주의’라는 용어는 최상의 주도권, 지배권을 의미하는 프랑스어 suprematie에서 차용하여 만든 말레비치 고유의 신조어다. ‘절대주의’라는 용어는 이 전시의 팸플렛 속 <큐비중에서 수프레마티즘까지, 회화에서의 새로운 사실주의>라는 선언문에서 최초로 사용되었다.

당시 『검은 사각형』이 전시된 모습이다. 그림 속 벽과 벽이 맞닿은 모서리 꼭대기, 『검은 사각형』이 걸린 자리는 일반적인 러시아 가정 집에 이콘이 걸리는 성스러운 곳이며, 손님이 러시아 집을 방문하면 주인과 인사 나누기 전에 그곳을 향해 먼저 성호를 긋는다. 말레비치는 과감히 성스러운 이콘을 내리고 『검은 사각형』을 걸어 새로운 관념의 시도를 꾀한 것이다

이 세상 기본 중의 기본들

검은 십자형

검은 십자형, 1923년, 카지미르 말레비치, 캔버스에 유채, 79×79cm, 러시아 박물관, 상트페테르 부르크.
검은 십자형, 1923년, 카지미르 말레비치, 캔버스에 유채, 79×79cm, 러시아 박물관, 상트페테르 부르크.

십자가 또한 사각형에서 비롯된 형태다. 사각형이 여러 개 어우러져 만들어지는 것이 십자가다. 따라서 절대주의의 비대상적 창조로 가기 위해서 형상들은 먼저 사각형의 상태를 거쳐야 하고, 십자가는 수프레마티즘으로 구성될 수 있는 첫 번째 형식이라고 말레비치는 설명한다.

검은 원

검은 원, 1923년, 카지미르 말레비치, 캔버스에 유채, 106×105.5cm, 러시아 박물관, 상트페테르부르크.
검은 원, 1923년, 카지미르 말레비치, 캔버스에 유채, 106×105.5cm, 러시아 박물관, 상트페테르부르크.

커다란 네모 안에 동그라미, 동그라미 속에 세모, 세모 속의 네모, 세상 모든 만물이 품고 있는 가장 기본 중의 기본 형태다. 또한 『검은 사각형』에서 비롯된 추상 구성의 한 형태다. 구상 요소와 관련된 모든 소재들을 소거해 버린 원. 여기서 말레비치는 완전한 하얀색 배경 속에 들어가 있는 ‘완벽한 원‐순수하고 기하학적인 형 상’을 묘사하고자 했다. 이 『검은 원』은 바로 모든 것을 포용하는 유일의 형태라 할 수 있다.

흰색 위의 흰색

흰색 위의 흰색, 1918년, 카시미르 말레비치, 캔버스에 유채, 79.4×79.4cm, 뉴욕시 현대미술관, 뉴욕
흰색 위의 흰색, 1918년, 카시미르 말레비치, 캔버스에 유채, 79.4×79.4cm, 뉴욕시 현대미술관, 뉴욕

기하학적 추상 미술의 선구자인 말레비치는 자신의 저서 『비대상 세계(The Non-objective World)』에 수록된 논문 「절대주의Suprematism」에서 다음과 같이 말한다.

“절대주의자는 ‘가면을 쓰지 않은’ 진정한 미술에 도달하기 위해, 또 이런 우월한 관점에서 순수한 예술적 감각을 통해 삶을 조망하기 위해, 주변 환경의 사실적인 재현을 의도적으로 포기했다.”

말레비치는 기하학적 추상미술의 선구자였고, 그의 작품은 미니멀리즘의 효시로서 중요성을 갖는다. 후대 미술가들은 구상 미술을 벗어난 말레비치의 작품으로부터 크게 영감을 받았다. 바넷 뉴먼, 이브 클랭, 애드 라인하르트의 단색 그림들과 엘 리시츠키의 추상화들에서 말레비치의 영향이 분명하게 드러난다. 특히 『절대주의 구성: 흰색 위의 흰색 1918』을 제작함으로써, 아마도 말레비치는 캔버스 전체를 흰색으로 칠한 최초의 화가일 것이다. 이후 수많은 화가들이 이와 비슷한 방식으로 그림을 그렸으며 현재 최고의 인기를 끌고 있는 ‘단색화’의 탄생에 밑거름이 됐다.

절대주의 구성

절대주의 구성, 1916년, 카시미르 말레비치, 캔버스에 유채, 88.5× 71cm, 스위스 개인 소장.
절대주의 구성, 1916년, 카시미르 말레비치, 캔버스에 유채, 88.5× 71cm, 스위스 개인 소장.

“회화는 오래 전에 죽었다. 그리고 예술가 자신은 과거의 유물이 되었다.”

하얀 바탕에 나열된 파란 정사각형, 검정, 초록, 노랑, 빨강, 주황 직사각형, 그리고 사다리꼴의 분홍 사각형들이다. 사각형을 기본으로 하는 아주 제한적인 형태의 도형, 말레비치가 보여주고 싶은 궁극적인 절대주의 표현이다. 그는 최고 진리가 어떤 것도 재현하지 않는 순수한 도형으로만 표현될 수 있다는 결론을 내렸다. 이 작품은 2008년 뉴욕 소더비에서 6,000만 달러(629억 5,000만원)에 팔려 러시아 미술 작품 경매 사상 가장 비싼 가격으로 기록된 그림이다.

말 달리는 붉은 기병대

불우한 말년...’검은 사각형’에 담긴 예술혼

“부르주아적 퇴폐주의.” 하지만 스탈린 시대에 말레비치는 이렇게 평가절하됐다.

한 무리의 붉은 말이 끝도 모를 넓은 길을 달린다. 그들이 달리는 그 길이 미래를 향한 길인지, 과거로의 회귀를 향한 길인지는 아무도 모른다. 절대주의의 대가 말레비치는 스탈린에 의해 ‘형식주의자’로 낙인 찍히고 ‘사회주의 리얼리즘’을 표방하는 소비에트 미술과의 타협을 강요 받는다.

그 탓에 말레비치는 1920년대 말부터 비구상을 벗어나 사실적인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다. 하지만 그림 곳곳에 자신의 화법을 펴지 못하는 안타까움을 남겨놓는다. 그림 곳곳에 작가의 현실과 타협할 수 없는 절대 고독을 토로한다. 그런 그를 스탈린은 ‘부르주아적 퇴폐주의’라 낙인 찍고 맹렬히 비난했다. 그렇게 불우한 말년을 보낸 말레비치는 1935 년 암에 걸려 생을 마감한다.

러시아 아방가르드의 선두주자로서, 보는 예술에서 생각하고 철학하는 예술을 이끌어낸 말레비치는 제자 수틴에 의해 제작된 검은 사각형으로 장식된 관에 묻혔다. 그렇게 <검은 사각형>이 살아 생전에 이루지 못한 절대주의의 꿈을 저 세상에서라도 이루어내라는 듯 지상에서 말레비치의 마지막 여행길을 함께했다.

소비에트 연방의 국경을 지키러 가는 병사들을 주제로 한 『말 달리는 붉은 기병대』는 붉은 깃발을 꽂고 광활한 러시아 대지를 달리고 있다. 하지만 말레비치가 실상 표현하고 싶었던 것은 자신이 이룩한 절대주의의 길을 달리는 미래의 인간이 아닐까.

붉은 기병대가 달리는 다양한 색채의 평면적인 길은 절대주의가 지향하는 바로 그 길이다. 그렇게 말레비치는 사회주의 찬양 일색의 예술에서 벗어나 회화가 지향해야 할 그 길로 붉은 기병대를 달리게 한다. 말레비치가 죽자 러시아 정부는 그의 많은 작품들을 강제 압수하거나 파괴했다.

기하학적 추상미술의 선구자, 말레비치의 절대주의 작품은 20세기 현대 디자인의 표본이 되었다. 또한 후에 미국에서 등장한 미니멀리즘의 기반을 마련했다는 점에서 큰 의미를 가지며, 당시부터 현재에 이르기까지 많은 미술가들에게 영감의 원천이 되고 있다.

글쓴이

김희은 갤러리 까르찌나 관장

김희은은 20년 가까이 아트 딜러, 전시기획자, 큐레이터 등으로 활동하고 있다. 서울과 모스크바에서 러시아 그림 전문 '갤러리 까르찌나'를 운영중이다. 일반인들에게 그림 이야기를 전하는 도슨트 활동도 열심이다. 러시아 트레챠코프 국립 미술관과 푸쉬킨 박물관 전문 도슨트다. 저서로 <소곤소곤 러시아 그림 이야기>, <미술관보다 풍부한 러시아 그림 이야기>가 있다. 유튜브 채널 <갤러리 까르찌나>를 운영하며, 러시아 예술의 한국 대중화를 위해서도 애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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