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루벨 ‘앉아있는 악마’ 어떻게 탄생했을까②
[김희은의 울림 깊은 러시아미술 이야기] 레르몬트프 시 ‘악마’에 붙인 삽화들 브루벨의 천재성 여과없이 드러나 슬픈 악마의 공허한 눈빛, 꽉 다문 입술 왕자와 공주 사랑에 질투하는 표정 ‘신비’ 카드 보드에 검은 잉크, 무채색의 화려함
1편에 이어서
미하일 브루벨이 그린 삽화를 하나씩 보면서 레르몬토프의 연작시 <악마>를 좀 더 심도 있게 이해해 보자. 단순히 책 속의 그림이라고 하기에는 삽화의 예술성이 가히 천재적이다.
검은 눈동자의 악마. 우수에 젖은 서글픈 눈빛이 악마의 공허한 내면을 그대로 보여준다. 절대 고독을 품은 인간의 모습을 화폭에 옮기면 바로 이런 모습일까? 공허한 눈빛과 꽉 다문 입술이 고독에 몸부림치는 악마의 슬픔을 대변하는 것 같다.

지상을 떠돌던 악마는 어느날 작은 마을에서 왕자와 이웃나라 공주 타마라의 약혼식을 보게 된다. 악마는 춤추는 공주의 아름다움에 빠져 열렬히 구애하게 된다. 기쁜 표정으로 춤을 추고 있는 타마라와 한쪽에서 이들을 보고 있는 악마의 쓸쓸한 모습이 대조를 이룬다. 카드 보드에 검은 잉크로 그려진 삽화들이지만 모자이크 같은 터치, 화려한 장식적 패턴들로 인해 무채색의 그림이란 게 믿기지 않을 만큼 화려하다.
환희에 들떠 춤추는 타마라 공주의 모습을 황홀경에 젖어 바라보는 악마! 공주를 사랑하는 마음과 왕자와 공주의 약혼에 대한 질투심이 교차하는 오묘한 표정이 신비롭다. 브루벨의 천재성이 가장 잘 드러나는 부분이다.

그러나 아름다운 공주 타마라에게 불행이 닥친다. 타마라에 대한 사랑이 차고 넘친 악마는 공주의 약혼자를 죽여 버린다. 말 위에서 죽어가는 약혼자의 긴박함이 브루벨의 자유로운 터치에서 묻어난다.

타마라가 슬픔에 잠겨 있다. 충격에 휩싸여 흐느끼는 그녀에게 악마는 달콤하게 속삭인다.
“너무 아름다운 당신, 나를 믿어요. 나를 사랑해 주시오. 나는 당신을 위해 내 모든 것을 바치리다.”
진심을 다해 그녀를 위로한다.
“나는 악마요. 하지만 겁내지 마시오. 나는 당신 속에 있는 지나간 나의 고통을 사랑하고 나의 사라진 젊음을 사랑하오.”
“우리 이야기를 누가 듣겠어요!”
“우리는 눈에 띄지 않을 거야. 신은 지상이 아닌, 하늘의 일로 바쁘니까.”

두려움에 떨던 타마라도 악마를 사랑하게 되고 영원을 약속하는 밤을 보내지만, 인간인 타마라는 곧바로 죽는다. 외로이 살아야 하는 신의 형벌을 어긴 악마에 대한 노여움의 표시로 신은 그렇게 타마라의 목숨을 앗아가 버린다. 신의 명령을 어긴 악마에게 다시 한번 혹독한 벌이 내려졌다.

싸늘한 주검으로 누워 있는 타마라. 악마는 그녀의 영혼만이라도 함께하길 원했으나 신은 타마라의 영혼마저 거둬 가버리고, 악마는 쓸쓸히 지상에서의 고독한 삶을 영원히 이어간다. <끝>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