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조원짜리 그림, 말레비치의 『검은 사각형』
[김희은의 울림 깊은 러시아미술 이야기] 러시아 미술사를 바꾼 3대그림 제3탄① 추상 미술의 선구자 말레비치의 그림 미술 혁신성·상징성 감안 ‘1조원 가치’ 소재 재현하는 어떠한 행위도 ‘생략’ 완전 추상을 추구하는 ‘절대주의’
어떻게 1조원의 가치가?
저 까만 네모가 세계 미술사에 한 획을 그은 대작 중의 대작이라 한다. 그림 가격이 1조 원이 넘어 세상 모든 그림을 통틀어 가장 비싼 작품으로 꼽힌다.(주- 한번도 경매에 나온 적이 없지만, 전문가들이 미술사적 가치, 예술적 혁신성, 그리고 문화적 상징성을 고려해 비공식적 평가한 가격이다).
“도대체 뭐야?”
“이 정도면 나도 그리겠네…”
“물감도 적게 들고...경제적인 그림이군”
2차원 화폭에 덩그러니 네모를 그려 놓은 이 작품 앞에서 ‘뭐지?’를 조용히 속삭이며 이러쿵저러쿵 한다. 그리고 도통 무슨 뜻인지 몰라 ‘아, 현대미술 어렵구나! 골치 아파!’ 한다.
추상미술을 접하자마자 아름다움과 가치를 느끼고 이해하긴 힘들다. 누군가에게는 일설로 표현할 수 없는 강렬한 느낌을 주기도 하지만 또 다른 누군가에게는 혼란만 줄 수도 있다. 바로 『검은 사각형』이 대표적일 것이다. 까만 네모만을 그려 놓은 말레비치의 작품을 보고 주저 없이 뭔가를 정의할 수 있는 사람이 몇 명 있을까?
『검은 사각형』의 진가를 알려면 먼저 그림이 위치한 전후 미술사 배경과 작가의 의도를 어느 정도 이해해야 한다. 그래야 작품에 다가가 대화할 수 있고 공감할 수 있다. 결국 현대 미술에 대한 이해는 ‘보고, 느끼고, 생각하고, 알아야 하는 것, 곧 지식을 습득해야 한다는 것’을 전제 조건으로 한다.
완전 추상, ‘절대주의’의 탄생
“나는 나 자신을 제로의 형태로 만들었다. 그리고 무에서 창조로 나아갔다. 그것이 절대주의고 회화의 새로운 리얼리즘이고 대상이 없는 순수한 창조다.” 카지미르 말레비치의 설명이다.
말레비치는, 아주 옛날부터 생각해 오던 관념을 제로로 만들라 한다. ‘작가가 무엇을 그렸냐’를 파악하고 이해하려 애쓰는 건 의미가 없고 내가 본대로, 느낀 그대로가 중요하단다. 아주 쉽고 단순한 논리 같지만, 어느 정도 미술 고수가 되어야만 받아들일 수 있는 정의다.
말레비치가 활동한 20세기 초반 세계 미술은 여러 화파, 주의, 표현 등이 다양하게 시도되고 그려지던 시기다. 보이는 그대로 재현하는 것이 미술 활동의 목적이던 시대를 지나, 표현의 주체가 색채인가 빛인가를 논하던 시대에 인상주의를 거쳐 야수파, 고흐, 고갱, 입체파 등 여러 미술 사조의 다양한 작품들이 쏟아져 나오는 그런 때였다.
이때 말레비치는 기존의 모든 예술 사조에서 빠져나와 그림의 소재를 재현하는 어떠한 행위도 생략해 버리는 독특한 화풍을 제시한다. 당시 센세이션을 일으켰던 입체파의 추상은 대상을 해체한 것이지 소재를 생략해 버린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말레비치는 무중력 상태와도 같은 캔버스에 네모, 세모, 동그라미를 그리고, 단일 컬러에서 느껴지는 물감의 질감과 농도 등을 순수하게 느껴보라고 했다. ‘완전 추상’에 접어든 것이다.
말레비치는 작품을 보고 대상을 인식하고 서사를 파악하는 기존의 감상법에서 벗어나, 단순화된 작품에서 느껴지는 자신만의 감정과 느낌, 생각을 스스로 정리하는 자발적 감상을 시도해보라 한다. 그러면서 말레비치는 서사적 현실을 유추할 수 있는 모든 요소들을 배제하고 무중력의 우주 공간 같은 새로운 개념의 회화 세상을 창조해냈다.
그런 말레비치 작품을 ‘절대주의(Suprematism) 회화’라 칭한다. 드디어 추상 미술의 새 장이 열린 것이다. 미술사는 그렇게 말한다. 절대주의는 현대 미니멀리즘의 시작이고, 20세기 문화혁명을 일으킨 디자인 산업의 기초가 되었다. 그렇기에 이 그림을 통해 1백 년 전 말레비치의 천재성을 눈여겨볼 만한 가치는 충분하다. 그러고 보면 우리가 좋아하는 아이패드의 디자인도 말레비치의 검은 사각형을 모델로 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들만큼 흡사하다.
‘절대주의’에 이르는 화풍의 변천과정
사실 단숨에 이해할 수 있는 내용은 아닌 듯하나, 시기별 말레비치의 작품을 하나씩 들여다보며 그의 손에서 창조된 ‘본대로 느끼라’는 현대 추상 미술을 내 감상의 것으로 만들어 보자.
꽃 파는 여인

말레비치는 당시 유행하던 미술 화풍들의 진화를 목표로 다양한 시도를 한다. 『꽃 파는 여인』은 말레비치 초기 작품으로 사람을 크게 잡고 흐릿한 배경을 뒤로 한 스냅 사진 같은 느낌을 준다.
아련한 느낌의 배경 앞에 꽃을 든 여인을 두드러지게 그렸다. 배경은 원근적인 표현과 함께 빛을 표현한 인상주의 화풍으로 처리되어 꿈틀대는 느낌이 나고, 꽃 파는 여인은 매끈하고 깔끔한 붓 터치로 평평하게 그려져 있다. 그래서인지 화폭이 두 개로 나눠지는 느낌을 주고 꽃 파는 여인을 따로 그려 화폭에 붙여 놓은 듯하다. 꼭 프랑스 화가 피에르 보나르(1867-1947)의 작품을 보는 듯하다.
이렇게 기존에 있던 여러 화풍을 자신만의 해석으로 재탄생시키면서 말레비치는 ‘절대주의’라는 추상주의에 도달하게 되는데 이를 그는 ‘진화’라 표현한다. 이렇게 중심인물을 회화 표면에 가깝게 그리는, 즉 마치 사람을 오려서 붙인 것 같은 방법은 말레비치가 입체미래주의 시절까지 계속해서 발전시킨 3차원적 원근법을 없애는 방식이라 한다.
자화상- 평면성, 강렬한 색채, 말레비치의 초기 초상화

18세기 이전 러시아 그림은 이콘화가 대표적이었다. 본격적으로 서유럽식 회화가 등장한 것은 표트르 대제의 개혁 후인 1700년대 초반이다. 그리고 18, 19세기 두 세기동안 폭발적으로 수많은 양식의 회화를 선보이는 과정을 거쳐 현대 추상주의의 토대를 닦는 쾌거를 러시아 미술이 이뤄냈다.
러시아 이콘화와의 관계
러시아 미술사의 큰 획인 추상주의의 선구자인 말레비치는 러시아 이콘화의 특징을 자신의 그림에 자주 표현했다. 그러므로 현대 회화의 평면성은 러시아 이콘에서 비롯되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물론 이 부분에 대해서 많은 논쟁이 있을 수 있지만 우선 추상화의 토대를 닦은 화가들 중 러시아 출신이 많고, 그들은 러시아 이콘화를 현대에 맞게 재현하는 작업을 많이 했다. 그래서 이콘화와 추상화의 연결고리를 그렇게도 찾을 수 있다는 이야기다.
이 말레비치 자화상은 우선 이콘화가 가지는 정면성을 충실히 따른다(주- 아래 이콘화 참조). 또 얼굴을 반으로 나눠 색채 대조를 표현하면서 하나의 얼굴이 또 다른 얼굴에 덧칠된 것처럼 그려졌다. 초록색 얼굴의 옆모습이 겹쳐져 보인다. 이 또한 독특한 시도로 평면 속의 입체화라 말할 수 있다.
특히 자화상의 과감한 색채 표현은 당시 포비즘의 대가인 마티스의 강렬한 색조를 받아들여 시도한 것이다. 이렇게 말레비치는 절대주의로 가는 길목에서 여러 가지 예술적 시도를 했다. 바로 그가 주장한 예술적 진화의 한 모습이라 할 수 있다.
*러시아 대표 이콘화


러시아 입체 미래주의 시기
나무꾼

마침내 말레비치의 회화가 사실적 재현을 벗어나 사각형, 십자가, 원을 기본으로 이루어지는 시기다.
이 그림은 나무꾼과 통나무를 소재로 하나의 통일을 이룬다. 원통 같은 형태로 단순화된 나무와 주인공 나무꾼은 서로 하나로 어우러져 경계가 모호하다. 하지만 형태를 구분하는 색채의 대조가 두드러져 강한 인상을 준다. 도끼를 잡고 있는 팔이나 신발의 사실성은 말레비치만의 ‘형식화된 회화 표현의 틀을 깨는 시도’라 할 수 있다. 기하학적인 도형 속에서 사실적인 표현이 함께 어우러져 있으니 말이다.
원, 네모 등 간단한 도형만으로 사물을 표현하고 단순화시키는 작업은 모든 소재를 표현하는 가장 기본 중의 기본이라 할 수 있다. 바로 여기서 말레비치가 추구하는 가장 기초적인 표현 기법을 읽어낼 수 있다.
건초 말리기

그림을 자세히 보면, 동화 나라의 한 장면처럼 색채와 구성이 재미있다. 동그라미, 세모, 네모들이 서로 연결되어 소재를 통일시키고 있다. 특히 색채의 대조를 이루는 소재들은 사실성에서 벗어나 지극히 추상적이며 평면적이다.
『꽃 파는 여인』과 같은 구도로 화면에 바짝 붙여진 것 같은 중앙의 인물은 화폭 전체를 차지하며 그림을 압도하고 있다. 하지만 사실적으로 중심 인물을 묘사한 『꽃 파는 여인』과 다른 점은 건초 말리기에서의 주인공은 도형화, 단순화 되어 있는 것이다.
또 점점 사라지는 듯한 소재들의 크기와 들판의 움직임은 평면화 속에서도 원근성을 나타내고 있고, 그로 인해 지평선이 높은 곳에 설정되어 있다. 사실성을 배제한 말레비치만의 회화적 표현이라 할 수 있다. 하지만 지평선 주변의 산, 하늘은 풍경화 같은 느낌도 준다. ②편으로 이어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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