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 ‘국방비 5%’ 요구, 韓 반도체 전략으로 뚫자
예산증액 요구 피하기 어렵다면, 예산 어떻게 활용해야 할지 고민해야 각국 ‘반도체 내재화’...이 기회에 우리도! 韓정부, 삼성 시스템반도체 부문 인수해 대만의 TSMC같은 반도체 생태계 만들자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이 주요 동맹국에게 국내총생산(GDP)의 5%까지 국방비 예산을 올리도록 요구하고 있다. 한국도 그 대상에서 예외는 아니며 머잖아 요구는 공식화할 가능성이 높다.
실제, 지난 23일 나토(NATO·북대서양조약기구) 회원국들은 나토 정상회의를 앞두고 국방비 지출을 국내총생산(GDP)의 5%까지 늘리기로 합의했다. 마르크 뤼터 나토 사무총장은 국방비 지출을 GDP 대비 직접 군사비 3.5%와 간접 안보 비용 1.5%를 합한 5%에 회원국들과 합의했다고 발표했다.

일본은 미국으로부터 압박을 받고 있다. 일본은 미국의 방위비(방위 예산) 증액 요구에 반발해 미일 외교·국방 장관(2+2) 회의를 취소하기도 했다. 영국 파이낸셜타임스(FT)에 따르면 일본 정부가 내달초 미국 워싱턴DC에서 1년 만에 개최예정이던 ‘2+2 회의’ 취소를 결정했다고 보도했다. 엘브리지 콜비 미국 국방부 정책 담당 차관이 일본 측에 2027회계연도(2027년 4월∼2028년 3월)에 국내총생산(GDP) 대비 방위비를 기존 요구액인 3%보다 더 높은 3.5%로 올려 달라고 요구했다는 것인데, 일본은 일단 이 논의를 보류했다.
최근 트럼프 미 행정부가 한국을 포함한 아시아 동맹국들에게 국내총생산(GDP)의 5%를 국방비로 지출하라는 새로운 기준을 제시하기도 했다. 이는 기존 한국 국방비의 2배 이상을 요구하는 셈이다. 과연 이 요구는 현실적인가? 그리고 우리는 어떤 전략으로 대응할 수 있을까?
국방비 132조 원 감당할 수 있을까
올해 한국의 국방 예산은 약 61조 2,469억 원으로, 이는 GDP 대비 2.32% 수준이다. 미국의 요구대로 GDP 5%를 맞추려면 약 132조 원이 필요하다. 하루아침이 아니고 수년을 거쳐 끌어올려야 한다. 이는 단순히 예산을 늘리는 문제가 아니라, 국가 재정 구조 전체를 흔드는 수준이라 할 것이다.
어쩔 수 없이 받아들인다 하더라도, 다른 예산을 삭감하고 국방예산에 숫자를 맞출 것이냐, 아니면 그 국방예산을 활용해 우리나라의 미래 성장발전 동력을 창출하는 재원으로 활용할 것인가. 여기에 우리의 또 다른 선택지가 있다. 그 선택은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이다.
시사하는 좋은 예가 바로 미국에 있다. 미국 방산기업의 수익 구조는 부품산업이 핵심이다. 미 방산기업들은 완제품보다 부품과 핵심 기술에 집중한다. 예를 들어 아날로그 디바이스(ADI), 텍사스 인스트루먼트(TI), 자일링스(Xilinx), 팔란티어(Palantir) 등은 민간기업이지만 국방용 반도체, 센서, AI 분석 플랫폼을 공급한다. 특히 국방용 반도체의 경우 민수용에 비해서 수천 배의 가격으로 판매한다. RF 모뎀칩은 민수용으로는 수십 센트에 불과하지만, 미사일이나 사격통제장치에 들어가면 수천 달러에 수출된다.
우리나라의 방위산업은 어떤가. 한국은 방산 제조품의 껍데기는 국산이지만, 알맹이는 대부분 외국산이다. KF-21 전투기, K2 전차, K9 자주포, 이지스함, 잠수함 등 다양한 무기체계를 자체 개발하고 있지만, 국방용 반도체의 99.2%를 외국산에 의존하고 있는 실정이다. 완제품은 국산이지만, 핵심 부품은 외국 기업이 독점하고 있는 구조다.
‘가마우지 경제’를 다시 보는 느낌이다. 과거 일본은 한국을 ‘가마우지 경제’라 비웃은 적이 있다. 이는 일본의 어업방식인 가마우지 낚시법에서 유래됐다. 가마우지는 물고기를 잘 잡는 새인데, 일본에서는 이 새의 목에 줄을 묶어 가마우지가 물고기를 삼키지 못하게 한 뒤, 잡은 물고기를 어부가 꺼내는 방식으로 고기를 잡았다. 새는 열심히 사냥하지만, 결국 이익은 어부가 가져가는 구조를 말한다.
한국은 기업들이 열심히 제품을 조립하고 수출하지만, 그 안에 들어가는 고부가가치 부품(반도체, 센서, 소재 등)은 일본이나 미국 등 외국에서 수입한다. 수출이 늘어도 무역수지는 적자가 되는 경우가 많았고, 이 구조를 일본 경제학자들이 ‘가마우지 경제’라고 비꼰 것이다.
지금까지 한국이 완제품을 조립해 수출하면 그 안에 들어가는 고부가가치 부품은 일본산이었다. 일본은 한국에 부품 수출로 이익을 챙겨왔다. 지금은 그 이익을 미국 반도체 기업이 대신하고 있는 것이다.
한국의 반도체 산업 전략으로 돌파할 수 없을까
국방비 132조원을 전략적으로 활용하는 방법 중 하나는 정부가 삼성전자의 시스템 반도체 사업부를 인수해 대만의 TSMC같은 이름의 “KSMC(Korea Semiconductor Manufacturing Company)”를 설립하는 것이다. 이를 발판으로 GaN 공정(질화갈륨(GaN, Gallium Nitride) 공정, 미세공정 파운드리, AI SoC, 아날로그 칩 개발에 집중하는 것이다. 단순한 산업 육성을 넘어, 국방예산을 전략적으로 활용하는 길이 될 수 있다.
우리에게 사례가 없는 것도 아니다. 최근 웨이비스는 질화갈륨(GaN) 기반 군수용 반도체를 국산화하며 L-SAM 등 무기체계에 적용되고 있다. 한화는 전력 반도체 사업에 진출해 GaN 기반 고출력 칩 개발에 나서고 있다. 이들은 국방비 증액을 산업 성장의 기회로 전환한 대표적 사례다.
현재 한국의 팹리스 시장 점유율은 1.6%에 불과하다. 미국(61.4%), 대만(19%), 중국(12.6%)과 비교하면 극히 미미한 수준이다. 정부는 팹리스-파운드리-디자인하우스-IP 벤더가 유기적으로 협력할 수 있는 클러스터를 조성해야 한다. 광주시는 최근 AI 팹리스 클러스터를 조성하며 이 흐름에 합류했다.

대만의 사례를 보자. TSMC는 설립 초기 대만 정부가 50% 이상 지분을 보유했고, 이를 기반으로 수많은 팹리스 기업이 성장했다. 현재 대만 GDP의 60% 이상이 반도체 산업에 기반하고 있다. 한국도 정부 주도 팹리스 생태계를 구축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미국의 EL(수출통제) 리스크 때문에 더 필요성이 크다. 미국은 수출허가 Export License(EL) 제도를 통해, 자국 반도체가 포함된 모듈은 전쟁용으로 수출을 제한하고 있다. 이는 한국 방산무기가 미국산과 경쟁할 경우, 미국이 반도체 수출을 막아 한국 무기 수출을 차단할 수 있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실제 LIG넥스원이 천무의 아랍 수출을 추진했으나 미국의 부품 공급 규제로 수조 원 규모 계약이 무산되기도 했다.
반도체 내재화, 실패를 두려워하지 말자
‘반도체 내재화’는 반도체를 외국에 의존하지 않고 자국 내에서 설계·생산·검증까지 자체적으로 수행하는 것을 의미한다. 단순히 공장을 짓는 수준이 아니라, 설계(IP), 팹리스, 파운드리, 패키징, 테스트, 장비, 소재까지 전 주기를 자립화하는 전략이다.
미국의 수출통제(Export License)처럼 특정 국가의 반도체가 들어간 제품은 전쟁용·전략물자 수출이 제한될 수 있기에 반도체 내재화는 반드시 필요하다. 또 팬데믹, 미-중 갈등, 우크라이나 전쟁 등으로 글로벌 공급망이 흔들리면서 반도체 확보가 국가 안보 이슈로 떠올랐다. 물론 산업 경쟁력 강화라는 측면에서도 중요하다.
반도체는 AI, 자율주행, 국방, 우주, 바이오 등 모든 첨단 산업의 핵심 부품이며, 내재화는 곧 미래 산업의 주도권 확보로 이어질 것이다. 미국의 반도체법, 중국의 ‘제조 2025’, 대만의 TSMC 중심의 수직계열화, 일본의 Rapidus 설립 등은 이같은 반도체 내재화의 일환이다. 반면 한국은 메모리는 세계 1위지만, 시스템 반도체·장비·소재는 취약하고 팹리스 점유율은 1.6%에 불과하다.
전투기 엔진 개발에 수십 년이 걸리고 수십 조 원이 소요되듯이, 반도체 내재화도 오랜 시간과 실패, 시행착오가 필요하다. 미국 실리콘밸리의 팹리스 기업들도 대부분 군수용 기술에서 출발했다. HP, TI, 시스코, 팔란티어, 쥬니퍼 등은 모두 국방 기술 기반에서 성장했다.
국방비 132조 원, 위기인가 기회인가
트럼프의 요구는 단순한 방위비 증액이 아니라, 한국의 산업 전략을 재편하라는 신호일 수 있다. 국방비를 단순히 무기 구매에 쓰기보다, 국방용 반도체 내재화와 팹리스 생태계 구축에 투자하고 이들이 생산하는 부품들을 국방예산으로 확보하는 것이다. 이는 국가 안보와 산업 경쟁력을 동시에 강화하는 길이 될 수 있다.
지금이야말로 “돈이 없지, 머리가 없냐”는 각오로 대한민국형 실리콘밸리를 만들어야 할 때이다. 국방비 132조 시대, 반도체 내재화는 선택이 아니라 생존 전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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