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정우의 ‘소버린 AI’ 비전, 불가능할까요?

[공학자 김태형의 미래기술과 인문] AI 미래기획수석 하정우에 거는 기대 ‘신뢰’의 대한민국이 약소국 ‘독립AI’ 개발 이들 국가와 연대해 인류에 기여하는 일 불가능하다고 생각하시나요?

네이버AI센터장 시절의 하정우 AI수석. 사진=네이버
네이버AI센터장 시절의 하정우 AI수석. 사진=네이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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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장 전문가가 그리는 ‘소버린 AI’ 국가 비전

한 사람의 이름이 호명되었습니다. 새 정부의 초대 AI 미래기획수석. 그 자리에 관료가 아닌, 평생을 현장에서 기술과 씨름해 온 공학자 하정우 전 네이버퓨쳐AI센터장이 앉았습니다. 저는 이 인사를 보며, 단순한 자리 채우기를 넘어 대한민국이라는 국가가 다가오는 AI 시대를 어떻게 건너갈 것인지에 대한 하나의 선언, 혹은 하나의 출사표를 읽었습니다. 이제 AI라는 단어에 따라붙던 추상적 구호와 파편적인 예산 나누기 대신, 기술의 본질을 꿰뚫는 철학과 데이터에 기반한 냉철한 전략이 국가의 중추에 서게 될 것이라는 신호탄을 봤습니다.

그는 오래전부터 경고해왔습니다. 세상은 머지않아 AI 기술을 가진 패권국과 그 기술을 빌려 쓰는 종속국으로 나뉠 것이라고 말입니다. 그의 묵직한 경고는, OpenAI의 샘 알트만 같은 기술 선지자들이 ‘조용한 특이점(The Gentle Singularity) ‘이라는 거대한 파도를 예고하는 지금, 우리에게 더욱 서늘한 질문을 던집니다. 거대 AI 모델을 만들고 복제하는 것이 시간과 돈의 문제가 되는 세상, 즉 어제의 기술 패권이 내일의 평범함이 되는 시대에, 대한민국은 과연 무엇으로 스스로를 지킬 수 있는가?

하정우 수석의 임명은 이 질문에 대해 새 정부가 방향을 제시한 것으로 보입니다. 그가 외쳐온 ‘소버린 AI(Sovereign AI)’, 즉 우리의 말과 글, 문화와 역사를 체화한 ‘우리만의 AI’를 만들고, 그 토대 위에서 신뢰와 윤리의 시스템을 세우는 일이 이제 변방의 외침이 아닌 국가의 핵심 의제가 되었다고 볼 수 있을 듯 합니다.

모래 위의 성 ‘순위’라는 허상에 대한 반성

우리는 종종 스탠퍼드 대학의 ‘AI 인덱스 종합 6위’라는 숫자에 안도하곤 합니다. 그러나 그 성적표의 이면을 들여다보는 순간, 우리의 안도는 민망한 착각이었음이 드러납니다. AI 규제와 사회적 신뢰도를 평가하는 ‘운영 환경’ 순위가 불과 1년 만에 11위에서 35위로 곤두박질쳤습니다. 이는 우리가 쌓아 올린 AI 역량이라는 것이 언제든 허물어질 수 있는 ‘모래 위의 성’과 같다는 통렬한 경고등입니다.

문제의 근원은 사람과 시스템에 있습니다. 하정우 수석의 지적처럼 우리는 인재를 양성만 했지 확보하지 못했습니다. 더 나은 환경을 찾아 젊은 두뇌들이 바다를 건너는 현실은 어제오늘의 일이 아닙니다. 이 부처, 저 부처에서 이름만 바꾼 인력 양성 사업을 중복 추진하며 혈세를 낭비하는 동안, 정책에 대한 신뢰는 무너지고 생태계는 독소에 병들어갔습니다. 이는 총체적 실패입니다. 밑 빠진 독에 물 붓기식 정책으로는 다가오는 인재 전쟁에서 백전백패할 뿐입니다.

‘추격자’의 시대는 끝났다: 왜 ‘소버린 AI’인가?

강력한 AI가 몇 달 만에 복제되고 추월당하는 지금, ‘빠른 추격자(Fast Follower)’ 전략은 영원한 2등을 예약하는 것과 같습니다. 남이 닦아놓은 길을 빨리 따라가는 능력은 더 이상 미덕이 될 수 없습니다. 이제 우리만의 길을 내는 ‘퍼스트 무버(First Mover)’가 되어야 합니다.

하정우 수석이 제시하는 새로운 길의 이름이 바로 ‘소버린 AI’입니다. 이는 단순히 국산 AI 모델 하나를 만드는 차원의 이야기가 아닙니다. 데이터와 컴퓨팅 자원, 그리고 이를 꽃피울 산업 생태계까지 AI에 관한 모든 것을 우리 스스로 통제하고 책임지는 ‘기술 주권의 문제’입니다. 만약 우리가 구글이나 OpenAI의 AI에 종속된다면, 그것은 새로운 형태의 기술 식민지가 되는 길입니다. 우리의 데이터는 그들의 자산이 되고, 우리는 그들이 정한 규칙과 비용에 따라 생각하고 말하게 될지도 모릅니다. 따라서 ‘인간을 위한’ 소버린 AI를 가장 먼저, 가장 신뢰할 수 있게 구축하는 것이 우리의 새로운 국가 비전이 되어야 합니다.

신뢰, 모방 불가능한 최고의 국가 자산

미국과 중국의 기술력, 자본력과 데이터 규모를 정면으로 상대하는 것은 현명하지 않습니다. 대한민국이 겨냥해야 할 목표는 ‘가장 신뢰받는 소버린 AI(Trusted Sovereign AI)’의 글로벌 표준이 되는 것입니다.

기술은 복제할 수 있고, 자본은 따라잡힐 수 있습니다. 그러나 한번 쌓아 올린 신뢰는 모방이 거의 불가능한, 가장 강력한 방어 자산입니다. 우리의 역사와 가치를 올곧게 학습한 소버린 AI는 편향과 왜곡의 위험에서 상대적으로 자유로울 수 있으며, 이는 국민적 신뢰의 초석이 됩니다. AI의 위험성에 대한 전 세계적 우려가 증폭되는 지금, 안전, 투명성, 윤리를 담보하는 국가는 최고의 인재와 데이터를 끌어당기는 자석이 될 것입니다.

지난15일 서울 용산 대통령실에서 강훈식 대통령비서실장이 수석인사 발표를 하고 있다. 왼쪽부터 하정우 AI미래기획수석, 강 비서실장, 김현종 국가안보실 1차장. 사진= 연합뉴스
지난15일 서울 용산 대통령실에서 강훈식 대통령비서실장이 수석인사 발표를 하고 있다. 왼쪽부터 하정우 AI미래기획수석, 강 비서실장, 김현종 국가안보실 1차장. 사진= 연합뉴스

담대한 국가 개조, 그 구체적인 청사진

하 수석이 제안해 온 청사진은 파격적일 만큼 구체적입니다. 범용인공지능(AGI) 원천 기술 연구에만 몰두하는 ‘국가초지능연구소(NASII)’를 세우고, 2030년까지 국산 AI 반도체 50만 장을 확보하는 ‘AI 컴퓨팅 파운데이션(AICF)’을 구축하자는 제안이 그렇습니다. 국가의 인프라 지원을 받은 기업들은 한국형 소버린 AI 모델을 만들어 오픈소스로 공개하는 공적 의무를 집니다. 이는 특정 대기업의 독점이 아닌, 모든 기업과 개발자가 우리 기술로 혁신을 일굴 수 있는 단단한 토양을 제공하는 것입니다.

이 인프라 위에서 우리가 가장 잘 할 수 있는 제조 AI를 키우고, 싱가포르의 ‘AI4E’처럼 모든 국민이 AI를 쉽게 쓰도록 문턱을 낮춰야 합니다. 키오스크 앞에서 망설이는 어르신도 편하게 쓸 수 있는 AI를 만드는 섬세함이야말로 기술이 인간을 향할 때 나오는 진정한 혁신입니다. 높은 AI 소양을 갖춘 국민은 결국 더 나은 AI를 요구하게 되고, 이는 신뢰받는 AI 생태계라는 선순환을 완성시킬 것입니다.

‘AI 독립국 연대’의 중심을 향하여

우리의 외교 전략 또한 바뀌어야 합니다. 국제 규범 논의에 참여하는 수준을 넘어, 하 수석의 제안처럼 ‘소버린 AI’를 꿈꾸는 모든 나라의 믿음직한 파트너가 되어야 합니다. 미·중 기술 패권에 대한 불안감 속에서 자국만의 AI를 원하는 국가는 많지만, 기술과 자본이 부족한 것이 현실입니다. 바로 그 지점에 대한민국의 기회가 있습니다.

우리의 반도체 기술, 소프트웨어 역량, 그리고 세계 최고 수준의 국민적 AI 활용 경험을 하나로 묶어 ‘소버린 AI 구축 패키지’로 수출하는 것입니다. 이는 단순한 기술 판매가 아닌, 그들의 언어와 문화에 맞는 AI 독립을 돕는 기술 동맹 전략입니다.

이 모든 담대한 전환을 이끌기 위해, 부처 칸막이를 허무는 강력한 리더십, 즉 AI디지털혁신부와 같은 강력한 추진체가 필요하다는 그의 주장에도 깊이 공감합니다.

대한민국이 진정한 AI 선도국으로 가는 길은 미국의 자본이나 중국의 규모를 어설프게 모방하는 무모한 추격전이 아니라, 기술의 추격자에서 소버린 AI의 설계자로 거듭나는 용기 있는 전략적 전환에 있습니다. 하정우 수석의 임명은 그 담대한 전환을 이끌 적임자가 마침내 칼을 쥐었다는 희망의 증거입니다.

이제 제조업 시대의 낡은 성공 방정식과 작별하고, 소버린 AI라는 백년지대계 아래 대담한 걸음을 내디딜 때입니다. 대한민국을 세계가 가장 신뢰하는 AI 독립국이자, 다른 국가들의 AI 독립을 돕는 핵심 동반자로 만드는 것. 그것이야말로 다가오는 특이점의 파고를 넘어 우리 스스로를 구원하고 인류에 기여하는 길이 될것입니다. 새 정부와 하정우 수석이 함께 열어갈 AI 독립의 서사에 큰 기대를 거는 이유이기도 합니다.

글쓴이

김태형 바이오넥서스 대표

필자인 김태형은 국가생명연구자원정보센터(KOBIC)에서 국내 최초의 한국인 유전체 프로젝트에 참여하였으며, 이를 기반으로 초기 유전체 기업 설립에 주도적으로 참여해 15년간 사업을 운영하였다. 현재는 바이오 빅데이터 분석에 특화된 바이오 AI 기업, 바이오넥서스(BioNexus)의 대표를 맡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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