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실을 지키는 이들이 나라도 지킨다
[비시 체제: 협력과 부역의 일대기] ‘드레퓌스는 죄가 없다’ 믿은 시민들 오늘날까지 프랑스를 지키고 있다. 프랑스 이익 말하던 가톨릭, 군, 언론 오히려 나라를 위험에 빠뜨렸다
1789년 대혁명 이후 오늘날까지 프랑스가 늘 같은 모습으로 이어진 건 아니다. 제정도 있었고 왕정도 있었다. 하지만 지금 프랑스는 공화국이다. 헌법에서도 스스로를 1789년 인권선언과 1946년 헌법 전문(前文)을 이은 나라로 정의한다. 프랑스에 있어 공화국이란 기틀은 대혁명이란 자랑스러운 역사에 바탕을 둔 체제인 것이다. 그러나 공화국의 정신을 지키는 일은 말처럼 쉽지 않았다. 대혁명의 유산에 반기를 든 교회(가톨릭), 또 중요한 순간에 자신들의 이익만 생각한 엘리트(군, 관료). 이들이 ‘국가의 이익’이란 이름으로 진실을 외면하고 오직 ‘욕심’을 이루려고 할 때 공화국 프랑스는 위험에 빠졌다. 그들에 맞서 프랑스를 지켜낸 건 진실과 정의를 지키는 일이 프랑스의 이익에도 맞는다고 믿었던, 시민들이었다.

“드레퓌스는 죄가 없다. 그래서 우린 진실을 지키기 위해 일어섰다.”
20세기를 얼마 남겨두지 않은 1894년 일어난 드레퓌스 사건(L’Affaire Dreyfus)은 지식인을 대표로 한 시민들이 진실과 공화국을 지키는 프랑스 특유의 모습을 잘 보여준다.
파리에 있는 독일 제국 대사관에서 프랑스 군사기밀이 담긴 문서가 발견되자 프랑스 정부는 범인 찾기에 나선다. 용의자로 지목된 사람은 알프레드 드레퓌스(Alfred Dreyfus) 대위. 참모본부는 문서의 필적과 드레퓌스의 그것이 유사하다는 점을 증거로 내세웠다. 하지만 드레퓌스에 혐의가 쏠린 진짜 이유는 바로 그가 유대인이었기 때문이었다. 수사는 부실했다. 그럼에도 재판은 반유대주의적 분위기가 지배하는 상태에서 속전속결로 진행돼 드레퓌스는 유배형과 더불어 강제로 군에서 떠나는 치욕을 겪는다.
하지만 반전이 벌어진다. 드레퓌스에 대한 판결이 끝나고 2년 뒤인 1896년 참모본부 정보국장인 조르주 피카르(Marie-Georges Picquart) 중령이 이 사건에 진짜 범인이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 것. 독일에 정보를 팔아 받은 돈으로 유흥을 즐긴 에스테라지 소령이 바로 그였다.
필적은 아예 유사한 정도가 아닌, 에스테라지 본인 글씨였다. 피카르 정보국장은 재조사 자료를 모아 드레퓌스 사건에 대한 처결이 잘못 되었음을 수뇌부에 보고했다. 그러나 뜻밖의 반응이 돌아왔다. 왜 유대인 한 명을 구하기 위해 다 끝난 일을 다시 꺼내느냐는 것. 프랑스 참모본부에게 사건의 진실은 중요하지 않았다. ‘유대인이 프랑스를 위협한다’는 선전이 훨씬 소중했을 뿐.

피카르 국장은 이에 좌절하지 않고 계속 진실을 밝혀야 된다고 말하지만 총참모부는 그를 한직으로 보내는 걸로 답을 대신했다. 거기다 가톨릭, 반유대주의에 힘입은 언론들이 힘을 합해 피카르를 비난한다. 프로이센–프랑스 전쟁(1870-1871) 패배로 상처 입은 자존심을 식민지 확보를 통해 회복하고 있던 군부를 지키기 위해.
진범을 제대로 처벌하지 못하고 있던 그때 나선 건 에밀 졸라(Émile Zola)였다. 그는 <여명(L’Aurore)>이란 신문에 ‘나는 고발한다(J’accuse)’란 글을 써 군 수뇌부를 비롯해 드레퓌스 사건의 진실을 가리는 사람들을 차례로 규탄한다. 이미 프랑스 문단에서 거장의 반열에 오른 졸라였다. 침묵하는 것으로 혼란을 피할 수도 있었다. 그러나 졸라는 힘차게 진실을 외쳤고, 이 외침은 프랑스 사회를 뒤흔든다.

가톨릭, 군, 관료, 반유대주의 언론 등이 한 몸으로 졸라가 프랑스의 위신을 깎아내리고 있으며 나라를 적에게 팔아넘긴다고 비난했다. 다른 편에서는 진실을 밝히는 일이 결코 프랑스의 이익에 반하지 않으며, 오히려 군부가 에스테라지 소령의 죄를 눈감아 안보를 위험하게 만든다고 주장하며 졸라의 생각을, 나아가 드레퓌스의 무죄를 지지했다. 모든 프랑스가 드레퓌스파와 반드레퓌스파로 나뉘어 치열하게 대립했다.
끝나지 않는 논쟁에 지친 프랑스 총참모부는 드레퓌스를 감형 후 사면하는 방식으로 출구를 모색한다(오랜 유배 생활로 지친 드레퓌스는 사면에 응한다). 그럼에도 드레퓌스의 무죄를 믿은 지식인과 시민들은 끊임없이 그의 복권을 주장했고 마침내 드레퓌스에 최종 무죄가 선고된다. 이후 드레퓌스와 함께 진실을 되찾은 사람들은, 가톨릭이 더 이상 국가의 운영에 간섭하며 여론을 호도하지 않게 만들기 위해 정교분리법(1905)을 이뤄낸다.
무고한 이를 죄인으로 만든 그들... ‘내부의 적’을 만들다
그럼에도 드레퓌스를 죄인으로 만든 이들의 영향력이 사라진 건 아니었다. 드넓은 식민지를 보유하고 있다는 어긋난 자부심은 프랑스의 제국주의를 지탱했고, 이런 제국주의 프랑스의 버팀목이 된 건 가톨릭, 군, 극우 파시스트, 거기다 그들을 지지하는 언론들이었다. 모두 ‘유대인 드레퓌스’에 죄가 있다 말했던 이들이다. 오직 자신들의 이해관계에 따라 드레퓌스의 유죄를 주장한 극우는 이후에 1929년 대공황에 따른 1930년대의 경기 침체를 거치며 더 확대되어 1940년 나치 독일에 패배한 조국의 어려움을 구실로 비시 체제를 출범시키는데 성공한다.
비시 체제는 프랑스가 독일 나치에 지면서 시작됐다. 역사적 사실이다. 하지만 이면엔 프랑스 공화국의 핵심적 가치(공화주의, 정교분리)에 반발했던 ‘공화국의 기득권’이 있었다. 가톨릭은 비시 체제에 협력하며 과거 왕정에서 혜택을 입고 국정에 관여하던 역사를 되살리고자 했다. 나치 독일의 침략에 제대로 대응하지 못한 군부는 프랑스의 국난이 외국인 및 사회주의 정치인들 때문이라며 화살을 돌렸다. 군과 관료들은 레옹 블룸(Léon Blum) 등 1930년대 중후반 국정을 책임진 명망 있는 좌파 정치인들을 공격하고 (유대인일 경우엔) 학살수용소로 보내기까지 했다. 파시즘을 따른 작가, 사상가들은 나치가 다스리는 유럽에서 이에 버금가는 지위를 누려야 프랑스가 산다고 주장했다. 이들 모두 공산주의자, 외국인, 프리메이슨이란 내부의 적이 없어야 프랑스가 우월함을 입증할 수 있다고 국민들에게 말했다.
그러나 이는 눈속임이었다. 1943년 나치가 스탈린그라드 전투에서 소련에 결정적으로 패배한 뒤 더 많은 전비를 프랑스에 요구하는 독일의 목소리가 거세졌다. 나치와 관계를 원활히 해 저들의 요구를 누그러뜨리고 포로도 되찾겠다는 비시 정부의 다짐은 이뤄지지 않았다. 나치 독일의 지배는 프랑스 전체로 확대되었고 나치 장교와 시비가 붙었다는 이유로 처형되는 등 무고한 국민들의 피해도 늘어갔다. 드레퓌스를 죄인으로 만든 이들은 나치와 함께 공화국을 짓밟았다. 그들이 민병대를 조직해 레지스탕스를 탄압한다고 해서 역사에 지은 죄를 가릴 수는 없었다.
진실을 높이 걸고 공화국을 수호한 시민들
비시 체제는 페탱(Philippe Pétain)을 영웅으로 만들고 위대한 원수, 위대한 아버지가 조국을 구한다고 선전했다. 그러나 영웅은 없었다. 국민을 지키는. 정작 나라를 구한 건 레지스탕스 활동에 나선 시민들이었다. 철로를 끊고, 때론 나치 친위대 간부들을 습격하고, 학살수용소로 끌려가는 유대인을 구하고, 연합군과 연락을 유지하고. 조국 프랑스의 명예를 지킨 건 가톨릭 고위 사제도, 군 수뇌부도, 파시스트 작가와 언론인들도 아니었던 것이다. 반면 자신들을 비판하는 사람들을 ‘조국의 적’이라 몰아간 그들이야말로 프랑스를 위험에 빠뜨렸다.
평소 으스대며 공화국 체제에 군림한 ‘힘 있는 자들’이 지키고자 한 건 오직 자신들의 이권 혹은 욕심이었다. 드레퓌스를 진범으로 몰며 자신들이 얼마나 국가를 생각하는지 국민들에게 보여주고자 했고 나치 독일과 손잡고 내부의 적을 잡아야 조국이 올바로 선다고 말했다. 그러나 실제론 독일 제국에 정보를 팔아넘긴 모리배를 감싸 프랑스를 위험하게 만들고, 나치 독일과 함께 정적들을 죽이는 일에만 혈안이 됐다. 그들은 프랑스를 위한다고 말만 했을 뿐 아무 것도 지키지 않았다.
오히려 ‘드레퓌스는 무죄’라 외치며 거대한 힘에 맞선 지식인들, 소중한 자신들의 친구와 동료를 지키고 전체주의에 맞서는 게 공화국 프랑스를 수호하는 것이라 믿고 행동한 시민들이 오늘날 프랑스를 만들었다. 나와 같은 곳에서 숨 쉬며 일상을 이어가는 수많은 사람들을 혐오하는 논리를 계속 이어가는 극우. 그들을 견제하는 힘은 바로 이러한 시민들에게서 나온다. 프랑스 시민들은, 조금은 시간이 걸릴지라도 늘 승리했다.
“진실이 전진하고 있고, 그 무엇도 그 발걸음을 멈추게 하지 못하리라.”
드레퓌스의 무죄를 믿고 나치 독일에 맞서 무기를 든 이들은 진실을 말하는 게 결코 국가의 이익과 반하지 않는다고 믿었다. 그리하여 국가의 이익을 들먹이며 프랑스 사회를 잿빛으로 만든 모두에 저항했다. 사람들의 의식을 지배하고(가톨릭), 총과 칼로 대표되는 무력을 지니며(군), 경제적 이익에만 골몰하는(자본가). 더불어 그릇된 논리로 사람들을 혼란에 빠뜨리는(언론). 이렇듯 프랑스 사람들은 사회를 짓누르는 기득권에 맞서 진실을 수호해야 할 때 단결했다. 잠깐의 역행이 있을지라도 좌절하지도 포기하지도 않았다. 만약 기득권에 좌절했다면 그 역사는 기록으로 남겨 미완의 과제가 다음에 이뤄지도록 도왔다.
그리하여 오늘날 프랑스의 역사는 어제의 과오를 되새기고, 오늘의 힘에 저항하며, 미래엔 희망을 전하는 공화국의 가치를 보여주는 증거로 남았다. “진실이 전진하고 있고, 그 무엇도 그 발걸음을 멈추게 하지 못하리라”라 말한 에밀 졸라의 발걸음을 기억한 채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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