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성목
칼럼니스트
필자인 추성목은 평범한 직장인으로, 스스로를 듣고 읽고 쓰는 사람이라 생각한다. 한국외국어대학교에서 중국어를 전공하고 졸업 후 취업했다. 하지만 언젠가 한 번은 프랑스어를 제대로 배우고 싶다는 마음에 한국방송통신대학교 프랑스언어문화학과에 입학해 ‘제2의 학사 학위’를 취득했다. 비시 체제와 레지스탕스, 쇼아를 공부하며 글을 쓰고 싶다는 목표. 또 중국과 중앙유라시아, 중동 등 지역을 다룬 프랑스어권의 저서나 자료들을 번역해 소개하겠다는 목표. 이 둘을 마음에 지니며 공부를 이어가고 있다.
추성목의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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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로벌
유럽인들은 미국과 ‘헤어질 결심’ 섰을까
무슨 일이 있었는지부터 정리하자. 숨 가쁜 며칠 동안 과연 어떤 일이 벌어졌는지 살펴야 옳다. 올해 1월 6일 미국 트럼프(Donald Trump) 행정부는 그린란드 획득이 미국 국가 안보의 최우선 과제고, 미군을 동원하는 것은 최고사령관이 언제든 선택할 수 있는 옵션이라는 입장을 밝혔다. 덴마크는 여기에 대응해 그린란드 주둔 병력을 늘렸으며 노르웨이, 스웨덴, 프랑스, 독일, 영국, 네덜란드, 핀란드는 덴마크가 주도하는 다국적 훈련에 참여하겠다는 의사를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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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로벌
레지스탕스가 프랑스 언론에 남긴 ‘유산’
프랑스의 비시 체제는 어떤 면에서 나치 독일과 비슷한 방법으로 국가를 유지했다. ‘대규모 선전’이 바로 그것이다. 프랑스인들이 처한 패배의 고통을 위대한 원수, 필리프 페탱(Philippe Pétain)이 국민들과 함께 해결하고 있다는 내용이 프로파간다의 핵심이었다(물론 그 ‘국민’엔 유대인을 비롯한 외국인, 소수자들은 없었다). 여기엔 나치 독일과의 협력(La Collaboration)이 영국과 소련의 위협에 맞선 선택이라는 주장 또한 섞여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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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문화
프랑스에서 ‘협력’이란 이름의 변절
1939년 9월 1일. 나치 독일의 폴란드 침공으로 2차대전이 시작된다. 프랑스는 전쟁을 선포했다. 그러나 교전이 벌어진 건 아니었다. 이른바 ‘이상한 전쟁(La drôle de guerre)’이 1년 가까이 이어진다. 1940년 5월. 나치 독일은 드디어 프랑스와 전쟁을 벌인다. 미국은 물론 영국도 프랑스가 (적어도 바로) 무너지리란 생각은 하지 않았다. 하지만 예상은 빗나갔다. 프랑스 총참모부는 전격전(blitzkrieg)에 전혀 대응을 못했다. 아르덴 숲이 돌파되고 마지노선은 쓸모가 없어졌으며 포로는 100만 명이 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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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로벌
1930년 극우와 함께 춤을 춘 프랑스 언론
내 동료들이 전쟁 때에도 그 비열한 주간지들이 계속 내보내고 있는 증오와 어리석음을 매일 우유 마시듯이 받아들이는 것을 보고 나는 얼마나 여러 차례 혼잣말을 했던가! - 마르크 블로크(Marc Bloch 주- 마르크 블로크 지음, 《이상한 패배》, p.181 ) 본론에 앞서 1930년대 프랑스에 대해 말할 게 있다.우리에게 프랑스사가 친숙하다 말하긴 힘들다. 특히 1930년대 역사는 더욱 그렇다. 이유는 단순하다. 교과서에 자주 등장하는 내용이 아니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두 차례 세계대전을 사이에 둔 프랑스가 어떤 시간을 보냈는지, 1930년대 프랑스 언론의 행보에 묻어나는 흐름이 우리에게 아주 생소하게 다가올 가능성이 크단 얘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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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문화
佛 언론의 과거청산 : ②전쟁 앞에 서다
‘빨리 끝날 것이다. 아니, 빨리 끝내겠다. 여름이 가고, 가을도 가고 겨울이 오기 전까지 전쟁은 끝난다. 그럼 크리스마스는 집에서 가족들과 오붓하게 보낼 수 있다.’ 1914년 6월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 페르디난트 대공 부부가 사라예보에서 세르비아계 과격 민족주의자 가브릴로 프린치프의 손에 암살되자 유럽 강대국들은 일제히 열차 시간표처럼 그동안 나라들 사이에 오고 간 비밀 조약과 협약에 의해 전쟁으로 가는 급행열차에 올라탔다. 프랑스도 예외가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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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로벌
프랑스 언론, 어떻게 과거를 청산했나
1898년 에밀 졸라(Émile Zola)의 호소가 통할 수 있었던 건 다뤄줄 언론이 있었기 때문이다. 신문 <여명(L’Aurore)>이 아니었다면 반(反)드레퓌스파의 목소리만 일방적으로 공론의 장에 울려 퍼졌을 것이다. 드레퓌스가 어쨌든 사면을 받고, 끝내 무죄를 확인해 군에 복직할 수 있었던 건 제대로 된 여론을 만들 수 있는 언론의 역할이 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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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문화
권력은 영원하지 않다 : ‘예니체리의 청산’처럼
혁명은 사람들이 완전히 극빈 상태에 빠지고 온갖 수단으로 억압당하며 희망을 상실한 때가 아니라, 성장과 개선 그리고 기대감이 있지만 고루하고 엄격한 기존 질서에 의해서 방해받을 때 발생되는 법이다.- 니콜라스 V. 랴자놉스키(Nicholas V. Riasanovsky) & 마크 D. 스타인버그(Mark D. Steinber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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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문화
Korea: Those Who Uphold Truth Also Protect the Nation
Since the French Revolution in 1789, France has not always maintained the same system of governance. There were periods of monarchy and empire. However, the France of today is a republic, self-defined in its constitution as a nation inheriting the Declaration of the Rights of Man (1789) and the preamble of the 1946 Constitution. The republic’s foundation rests upon the proud legacy of the Revolution. Yet, preserving the spirit of the republic has not been easy. The Catholic Church, opposing the Revolution’s legacy, and elites like the military and bureaucrats, prioritized their own interests at critical moments under the guise of “national interest.” When they ignored truth for selfish gain, the French Republic was imperiled. It was citizens who believed that upholding truth and justice aligned with France’s best interests who ultimately safeguarded the republi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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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문화
진실을 지키는 이들이 나라도 지킨다
1789년 대혁명 이후 오늘날까지 프랑스가 늘 같은 모습으로 이어진 건 아니다. 제정도 있었고 왕정도 있었다. 하지만 지금 프랑스는 공화국이다. 헌법에서도 스스로를 1789년 인권선언과 1946년 헌법 전문(前文)을 이은 나라로 정의한다. 프랑스에 있어 공화국이란 기틀은 대혁명이란 자랑스러운 역사에 바탕을 둔 체제인 것이다. 그러나 공화국의 정신을 지키는 일은 말처럼 쉽지 않았다. 대혁명의 유산에 반기를 든 교회(가톨릭), 또 중요한 순간에 자신들의 이익만 생각한 엘리트(군, 관료). 이들이 ‘국가의 이익’이란 이름으로 진실을 외면하고 오직 ‘욕심’을 이루려고 할 때 공화국 프랑스는 위험에 빠졌다. 그들에 맞서 프랑스를 지켜낸 건 진실과 정의를 지키는 일이 프랑스의 이익에도 맞는다고 믿었던, 시민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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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로벌
왜 프랑스 ‘비시 체제’에 관심이 쏠릴까
2024년 2월 21일. 프랑스 파리, 팡테옹(Le Panthéon; 프랑스 파리에 있는 위인들의 묘소). 조금씩 비가 내리는 가운데 팡테옹 앞 대로엔 하얀 카펫이 깔렸다. 살아남아 계속 존재한다는 말, ‘Survivre’란 단어가 써져 있는 관 두 개가 카펫 위에 놓였다. 팡테옹 안은 물론 밖에도 사람들로 가득하다. 에마뉘엘 마크롱(Emmanuel Macron) 대통령도 아내 브리지트 마크롱(Brigitte Macron) 여사와 함께 왔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