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리야 레핀의 대표적인 역사화 그림앨범②

[김희은의 울림 깊은 러시아 예술 이야기] 표트르 대제의 권력암투 그린 ‘소피아 공주’ 미친 황제의 광기를 그린 ‘이반 뇌제와 아들’ 유쾌한 그림 ‘술탄에 편지쓰는 카자크들’ 러시아 민중 편에서, 조국애 넘치는 역사화들

일리야 레핀 (1844-1930), 1581년 11월 16일 이반 뇌제와 그의 아들 이반 ,1885년, 캔버스에 유채, 199.5 х 254, 트레챠코프 미술관 모스크바
일리야 레핀 (1844-1930), 1581년 11월 16일 이반 뇌제와 그의 아들 이반 ,1885년, 캔버스에 유채, 199.5 х 254, 트레챠코프 미술관 모스크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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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시아의 천재 화가 일리야 레핀은 ‘역사화를 어떻게 그릴 것인가’ 라는 질문 앞에 이런 말로 화답했다.

“시대를 이야기할 때 현실만을 주제로 삼아야 하나? 현실은 분출을 멈추지 않는 화산과 같다. 분명 과거를 되짚어야만 현실 문제에 대한 해답을 찾을 수 있다.”

지금의 러시아를 똑바로 보기 위해 과거를 불러온다는 것이다. 그렇게 해서 탄생한 일련의 역사화들이다.

<소피아 공주>

일리야 레핀(1844-1930), 노보제비치 수도원에 감금된 지 1년 된 황녀 소피아 알렉세예브나-1698년 그녀의 친위병을 처형하고 추종자들을 고문하고 있을 때 1879년, 캔버스에 유채, 201.8x 145.3, 트레챠코프 미술관, 모스크바
일리야 레핀(1844-1930), 노보제비치 수도원에 감금된 지 1년 된 황녀 소피아 알렉세예브나-1698년 그녀의 친위병을 처형하고 추종자들을 고문하고 있을 때 1879년, 캔버스에 유채, 201.8x 145.3, 트레챠코프 미술관, 모스크바

미간을 찌푸리고 꽉 다문 입술에서 터져 나오는 탄식을 억누르며, 분노를 참고 견디고 있는 그림 속 여인은 누구일까? 바로 표트르 대제와의 권력 싸움에서 참패하고 노보데비치 수도원에 위폐된 황녀 소피아 알렉세예브나다.

숨을 참으며 화를 견디고 있는 여인의 분노가 화폭을 뚫고 터져 나올 것만 같다. 마치 메두사의 뱀들이 꿈틀거리듯 그녀의 머리카락도 분노로 이글대는 느낌이다.

소피아는 표트르 대제의 이복 누나다. 친동생 이반 5세와 이복 동생 표트르 1세가 공동 차르가 된 1682년, 어린 그들을 대신해 7년간 섭정을 한다. 그렇게 권력의 맛을 본 소피아는 훗날 차르의 자리를 놓고 표트르 대제와 왕위 쟁탈전을 벌인다. 하지만 권력 싸움에서 진 소피아는 노보데비치 수도원에 갇히고, 1704년 47세의 나이로 죽을 때까지 15년 동안 수도원 밖을 한 발자국도 나갈 수 없는 신세가 된다. 그림은 수도원에 갇힌 소피아를 그린 것이다.

표트르 대제는 왕권을 잡자마자 정적 소피아 공주의 측근을 단 한 명도 남김 없이 처단한다. 소피아 친위대 1,700여 명을 숙청했으며 핵심 인물 세 명은 공개 처형한 후 그림처럼 소피아가 머무는 수도원 창 앞에 시체를 걸어 놓았다. 참으로 잔인한 표트르 대제다. 하늘 아래 최고 권력 표트르 대제에게 덤빈 소피아의 교만을 무섭게 꾸짖는 것이다.

그렇게 손발이 묶인 채로 자신의 살점과 같은 부하들이 죽어 나가는 것을 지켜봐야 하는 소피아 공주의 심경은 어떠했을까? 피비린내 나는 권력 싸움에서 모든 것을 잃은 소피아 공주, 정상에서의 권력은 한없이 달콤하지만 그것을 잃었을 때 덧없음을 어디에 비유할 수 있을까? 곧 미쳐 버릴 듯 메말라 보이는 소피아의 커진 동공에서 권력의 허무를 제대로 찾아 낼 수 있다.

소피아 공주는 일리야 레핀이 그린 최초의 역사화의 모델이 됐다. 러시아의 역사는 슬라브주의와 서구주의, 즉 개혁주의와의 팽팽한 기 싸움이 점철된 과정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소피아 공주는 바로 러시아의 전통을 고수하려 하는 슬라브주의를 상징하는 인물이었다. 손발이 묶인 채 생을 보내야 하는 소피아 공주는 혜택 받지 못하는 가련한 러시아 민중을 대변하는 듯 보인다. 레핀은 19세기 재정 러시아 시대에 민중과 소통하지 않고 자신들의 안위만을 돌보는 황실을 무섭게 꾸짖는 듯 역사화를 그렸다.

<1581년 11월 16일 이반 뇌제와 그의 아들 이반>

피를 흘리는 사람을 감싸 안고 있는 늙은 남자. 그들 옆에는 긴 창이 보이고 카펫 위로는 선혈이 낭자하다. 그들에게 무슨 일이 생긴 것일까? 실제 이 그림 앞에 서면 긴박한 상황이 너무도 선명하고 사진보다 더 사진 같은 표현 앞에 짧은 탄성이 터져 나옴과 동시에 화폭 속으로 빠져들게 된다.

아버지가 저 무시무시한 창으로 아들의 관자놀이를 찔렀다. 아버지는 러시아의 폭군 황제 이반 뇌제이며, 아들은 아버지와 이름도 같은 왕자 이반이다. 집권 당시 극도의 공포 정치를 펼친 이반 뇌제는 조금이라도 자신을 거역하는 자는 누구든 단칼에 처단했다. 아들도 예외는 아니었으며 임신한 며느리조차도 차림이 단정치 못하다며 몽둥이로 때려 유산시키는 패륜을 저지른 이반 뇌제다.

그림은 순간의 광기를 참지 못하고 창을 휘두른 후 정신이 번쩍 든 황제는 피 흘리며 쓰러져 있는 아들을 부둥켜안고 ‘도대체 내가 무슨 짓을 한 거지’하며 몸서리 치는 장면이다. 아버지의 얼굴에는 이미 지옥만이 그려져 있다. 천하를 손에 쥐고 세상을 호령하던 차르가 아닌 한 인간으로서, 아버지로서 아들에게 가한 천인공노할 패악에 몸서리치는 불쌍한 영혼만이 그려져 있다.

그림 안에 이반 뇌제와 그의 아들 이반의 얼굴 표정
그림 안에 이반 뇌제와 그의 아들 이반의 얼굴 표정

아들은 이미 생명의 반이 빠져나간 듯 동공이 확대된 채 무겁게 숨을 몰아 쉬고 있다. 그러면서 고통에 몸부림치며 절규하는 아버지의 슬픔을 이해하는 듯 체념한 채 어린아이처럼 엷은 미소마저 보내고 있다. 아버지와 아들이 만들어 내는 표정과 눈빛이 너무도 사실적이고 애처로워 가슴 한 쪽이 쿵 하고 떨어지는 듯 서늘하다.

점점 꺼져 가는 아들의 희미한 생명을 안타깝게 부여잡고 있는 이반 뇌제의 처절한 절망, 자신을 가해한 아비의 품에서 슬픈 생을 마감해야 하는 왕자의 체념한 표정, 그 왕자의 눈가에 맺힌 눈물 한 방울이 참으로 극적이다.

<1581년 11월 16일 이반 뇌제와 그의 아들 이반>은 레핀 하면 바로 떠오르는 작품이며, 러시아를 대표하는 그림이기도 하다. 이 작품이 처음 이동파 전시에 선보였을 때 러시아 미술계는 술렁거렸다. 수많은 관객들이 러시아 황실을 과감없이 사실적으로 표현한 레핀의 대담함에 찬사를 보냈으며, 전시회는 인산인해를 이루었다고 한다.

하지만 황실을 모독하는 그림이라 판단하고 당국은 전시를 전면 금지한다. 그림이 그려지는 1885년 당시는 1881년 3월 1일 황제 알렉산드르 2세가 폭탄 테러로 목숨을 잃는 사건이 발생한 후여서 처절한 피의 숙청이 이루어지고 있었는데, 이 그림은 민중을 선동할 것이라고 황실은 판단했다. 하지만 파벨 트레챠코프는 주저없이 이 그림을 콜렉하고 자신의 미술관에서 전시를 강행했다. 예술만이 만들어 낼 수 있는 긴박한 역사가 아닐 수 없다.

이 그림은 레핀이 한 음악을 듣고 영감을 받았다 한다. 1881년 봄 ‘모스크바 음악의 밤’에서 림스키 코르사코프(1844-1908)의 교향곡 2번 <안타르>, 특히 2악장 <복수의 기쁨>에서 음악이 주는 비장함에 사로잡힌 레핀은 바로 이반 뇌제의 사건을 떠올리며 그리기 시작해 4년만에 완성했다고 한다. 천재 화가 레핀의 예술적 감흥에 경의를 표할 뿐이다.

림스키 코르샤코프의 교향곡 2번 ‘안타르’

레핀이 이 그림을 통해 표현하고자 했던 숨은 뜻은 따로 있었다. 레핀이 활동하던 당시 황실의 언론 출판 검열이 극에 달했는데, 이런 황실의 폭정을 고발하고자 하는 의도를 가지고 그림을 완성했다. 이반 뇌제의 모습으로 시인 겸 화가였던 그리고리 먀소예도프 얼굴을 그려 넣었고 황제의 품에서 죽어가는 아들은 당시 러시아 화가이며 중편 소설 작가였던 가르신을 모델로 했다. 또 부자 옆에 널브러져 있는 왕홀은 당시 예술가의 눈과 귀, 입을 통제하던 검열 제도를 상징한다고 한다.

이처럼 소통하지 않고 자신들의 안락함에 빠져 민중들의 개혁 요구를 말살하는 러시아 황실의 횡포를 이반 뇌제의 패악에 빗대어 보여준 것이다. 과거를 소환해 말도 안 되는 19세기 러시아의 어두운 현실을 사실적으로 보여주는 역사화가로서의 임무를 가장 잘 살린 그림이라 할 것이다.

<투르크 술탄에게 편지를 쓰는 자포로쥐에 카자크들>

일리야 레핀(1844~1930), 투르크 술탄에게 편지를 쓰는 자포로쥐에 카자크들, 1880-1891년, 캔버스에 유채, 217x361cm, 러시아 박물관, 상트페테르부르크
일리야 레핀(1844~1930), 투르크 술탄에게 편지를 쓰는 자포로쥐에 카자크들, 1880-1891년, 캔버스에 유채, 217x361cm, 러시아 박물관, 상트페테르부르크

이보다 더 유쾌한 웃음의 그림이 또 있을까? 박장대소하는 모델들의 웃음이 바로 귓전에서 들리듯 생생하다.

러시아 역사는 끝없이 이어지는 전쟁으로 점철되어 있다. 그때마다 끈질긴 저항으로 전쟁의 대부분을 승리로 이끌어냈다. 화려한 승리는 아니지만 참고 버텨서 결국엔 이겨낸다. 그래서 러시아 사람을 가장 잘 설명하는 단어 중에 첫번째가 은근과 끈기이며, 두번째는 드넓은 대륙에서 사는 민족이 가지는 호탕함이다. 레핀의 이 그림은 그런 러시아인의 두려움을 모르는 대범함을 리얼하고 코믹하게, 활기차게 표현하고 있다. 어떤 환경에도 굴하지 않는 러시아의 끈기 또한 색채로 그려낸다.

그림의 배경은 이렇다. 1670년경 우크라이나의 드네프르 강 근처에 살던 카자크들은 오스만투르크 세력과 충돌한다. 투르크의 술탄은 자포로쥐에 카자크들에게 항복을 요구하는 서한을 보낸다. 이에 카자크들은 항복은커녕, 터키의 군대를 전멸할 것을 장담하며 오히려 터키 술탄의 항복을 요구하는 답장을 보낸다. 바로 그 편지를 쓰는 장면이다.

박장대소하며 천하를 움켜 쥔 듯 그들의 씩씩한 기상이 화면을 가득 메운다. 그림 속의 인물들은 매우 율동적이다. 유쾌하고 호탕하며 유머러스 해서 그림 속의 그들을 보며 함께 껄껄 웃고 싶어질 정도다.

모델 한 명 한 명의 표정을 보라. 그림의 중앙에서 펜을 잡고 있는, 무리 중에 가장 지적으로 보이는 남자를 향해 모두가 한마디씩 거든다. 가소로운 투르크 술탄에게 걸쭉한 말을 퍼 부으며 큰 웃음을 공중에 날린다. 인물 개개마다 표정이 압권이다. 그들의 명쾌한 웃음에는 넘치는 기백과 조국에 대한 변치 않는 애국심, 자유를 사랑하는 카자크인의 굳은 의지가 그려져 있다. 그러면서 어떤 일이 있어도 끈기 있게 조국을 지켜낼 것이라는 결심 같은 것도 보인다.

레핀이 그려낸 밝고 낙천적인 표정, 그 시각적인 에너지가 화폭을 뚫고 튀어나올 만큼 강렬하고 호탕하다. ‘천만가지 표정 예술의 마법사’ 레핀 다운 그림이다. 단언코 전세계 회화를 통틀어 이 그림만큼 호탕한 웃음을 잘 표현한 작품도 없지 않을까 생각한다.

레핀은 그림 수준도 높지만 다작한 대표적인 작가이기도 하다. 소개하고 싶은 레핀의 그림은 너무 많기에, 다음 두번째 그림앨범은 레핀의 혁명화와 풍속화를 소개하려 한다.

글쓴이

김희은 갤러리 까르찌나 관장

김희은은 20년 가까이 아트 딜러, 전시기획자, 큐레이터 등으로 활동하고 있다. 서울과 모스크바에서 러시아 그림 전문 '갤러리 까르찌나'를 운영중이다. 일반인들에게 그림 이야기를 전하는 도슨트 활동도 열심이다. 러시아 트레챠코프 국립 미술관과 푸쉬킨 박물관 전문 도슨트다. 저서로 <소곤소곤 러시아 그림 이야기>, <미술관보다 풍부한 러시아 그림 이야기>가 있다. 유튜브 채널 <갤러리 까르찌나>를 운영하며, 러시아 예술의 한국 대중화를 위해서도 애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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