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인·창작가 입장에서 본 하이브 이슈

[박선화의 마음탐구] 예술 재능의 비범함 못느끼는 사회 명작의 주체는 감독, 배우, 예술가 자본이 돈 대고, 예술가는 제품 찍고? 산업사회 논리로 예술가 인정 옳은가

민희진 어도어 대표가 지난 4월 25일 오후 서울 서초구 한국컨퍼런스센터에서 열린 입장 발표 기자회견을 준비하고 있다. 사진= 연합뉴스
민희진 어도어 대표가 지난 4월 25일 오후 서울 서초구 한국컨퍼런스센터에서 열린 입장 발표 기자회견을 준비하고 있다. 사진=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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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VMH의 명품은 누가 만들었나

블랙핑크의 리사와 세계적인 명품 그룹 LVMH사의 넷째 아들 사이에 핑크빛 기류가 흐른다는 기사를 접한 것이 2023년 초반 무렵이었다. 이후 데이트로 추정되는 모습이 자주 발견되다가 최근 프레데릭 아르노가 CEO로 있는 시계 브랜드 행사에서 나란히 공식일정을 소화하는 모습을 보이며 연인 관계임이 확실시 되고 있다.

프레데릭의 아버지인 베르나르 아르노는 이름만 들어도 휘황찬란한 수 많은 명품 기업들을 자회사로 거느린 명실공히 세계 최고 럭셔리 제국 LVMH의 수장이다. 한국인의 국민 가방이라 할만한 루이비통을 비롯해 셀린느, 디오르, 펜디, 마크 제이콥스, 최근 유행했던 ‘올드머니 룩’ 즉 튀기 싫어하는 전통적 부자들이 선호하는 로고없이 멋스런 로로피아나 외의 패션 브랜드들. 티파니, 쇼메, 불가리 외의 주얼리/시계 브랜드들. 모엣샹동이나 헤네시같은 주류 브랜드들까지 모두 같은 그룹 소유다.

하지만 이렇게 대단한 브랜드들을 이끄는 세계적 기업의 대표이자 대부호인 베르나르 아르노를 아는 사람들은 그다지 많지 않다. 그와 비슷한 세계를 살아가는 집단이나 셀럽계의 동향에도 관심있는 이들은 알겠지만, 보통의 일상을 살아가는 사람들이 명품을 좋아하는 이유는 경영자가 아니라 디자이너의 명성과 가치때문이라서다. 명품 소비액 세계 1위를 유지하고 있는 대한민국의 명품 애호가들도 마찬가지다. 그들이 동경하는 이름은 샤넬이나 칼 라거펠트, 비비안 웨스트우드나 톰 브라운, 이세이 미야케나 마틴 마르지엘라이지, CEO의 이름이 아니다.

나의 경우에도 명품을 소유한 사람들보다는 이를 창조한 디자이너들에게 관심과 애정을 갖고 있다. 한정된 자원으로 값비싼 상품들을 소비하는 것은 삶의 가성비가 매우 떨어지는 일이라 구매는 안하지만, 명품이 보여주는 아름다움과 재기발랄함은 늘 흥미롭고 감탄스럽기 때문이다. 최고의 상상력과 최극의 디테일, 최상의 장인들의 손길이 만나 탄생한 상품들은 때로 예술 작품에 가깝다. 지식인들이 누리는 예술품들은 위대하고, 부자들이 누리는 명품은 속물적이라는 인식 또한 편견이라고 느낀다. 상품이나 작품이 문제가 아니라 돈과 지식을 과시하는 행위가 무의미할 뿐이다.

비범한 예술을 대하는 눈이 없다

20대 무렵, 이국적이고 아름다운 창틀로 쏟아져 들어오는 은은한 빛무늬 속에서 남녀가 사랑을 나누는 영화를 보다가 다소 뜬금없는 생각을 했었다. 앞으로 내 인생에서 저토록 멋진 건축물을 만드는 일과 저런 집에서 사는 일 중 하나만 택하라고 한다면, 나는 아마도 큰 고민없이 건축물을 짓는 일에 더 매혹될 것 같다는 생각이었다. 소유보다 창작에 더 큰 매력을 느낀다는 것인데, 살아가면서 그 이상으로 지식과 소통도 사랑하는 인간이라는 것을 깨닫게 되며 조금은 다른 삶을 살아가고 있다.

하지만 창조적인 직업에 회의를 느낀 또 다른 이유 중 하나는 대한민국이 예술가나 창작자들이 살아가기엔 지나치게 관료적이고 심각하게 자본주의적인 나라라는 것을 깨닫게 되었기 때문이다.

오로지 성적 서열 위주의 사회에서 성장한 이들 상당수는 비범한 예술적 재능과 평범한 재능을 구분하지 못한다. 이와 관련된 판단기준 또한 그저 학력이나 성별, 정치적 이념이나 연고, 금력이나 권력의 유무 여부다. 어떤 이들은 주로 권력자에게 빙의하고 어떤 이들은 주로 약자에게 빙의하는 정도의 차이가 있지만, 어차피 재능에 대한 이해가 없기는 마찬가지다.

실력과 수준을 보는 눈이 없다보니 국민 세금으로 운영하는 공공의 제작물 작업도 이권 관계자나 연고자들에게 맡겨 허접하고 흉물스런 결과물들이 전국 곳곳에 널려 있는데도 심각성을 모른다. 작년 엑스포 유치를 준비한 정부의 PT 제작물이나 포스터를 보고 많은 이들이 경악했었다. 2023년도에 1980년대 수준의 수치스런 제작물들이 국가간 경쟁의 공간에 등장한 이유가 무엇인지를 아는 사람들은 다 알고 모르는 사람들은 통 모른다.

명작을 만드는 주인공은 누굴일까

최근 이슈가 되고 있는 하이브와 어도어간의 문제를 평가하는 시각에서도 이러한 현상들은 상당 부분 드러난다. 각 대표의 인격이나 사건의 전모에 대한 문제는 시간이 지나야 밝혀질 것이라 언급하고 싶지 않고 관심사도 아니다. 다만 “민희진 씨의 재능이 뭐가 그리 대단하냐”거나 “누구를 시켜도 그 정도는 하는데 분수를 모른다”거나, 하이브의 자본투자에 훨씬 많은 가치를 두는 모습들을 보며 한숨이 나왔다. 개인감정과 중요한 사실을 분별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좋은 영화를 만드는 데 제작자나 투자자의 안목과 자원은 대단히 중요하다. 하지만 사람들이 명작으로 기억하는 작품들은 감독과 배우들의 능력에 의해 결정되는 부분이 훨씬 크다. 연극이나 음악, 무용 같은 공연예술이나 출판 등도 다 마찬가지다. 우리가 영화를 선택하는 이유는 하비 웨인스타인이나 제리 브룩하이머같은 헐리웃 제작자 때문이 아니라, 크리스토퍼 놀란이나 봉준호라는 감독에 대한 신뢰 때문이고, 티모시 샬라메나 전도연이라는 배우의 매력과 연기력 때문이다.

시스티나 성당의 천장화가 세계적인 예술 작품이 된 것도 미켈란젤로라는 불세출의 화가 때문이지, 그에게 돈을 대고 작업을 지시한 교황 율리오 2세 때문이 아니다. 중세시대를 풍미한 메디치가(家)의 공로는 치하해 마땅하지만 결국 기억되는 것은 예술가들과 작품이고, 현대 미술시장을 이끌어가는 큰 손들과 큐레이터의 역할도 중요하지만 주인공은 작가다. 사람들이 사랑하고 매료되는 모든 창작의 진짜 주체는 감독이나 연출가, 작가, 그리고 드라마와 공연을 이끌어가는 예술인들인 것이다.

한류를 이끌어가는 중요한 주체가 된 케이팝(K-POP) 분야도 마찬가지다. 시장과 인재를 발굴하고 투자하는 이들의 역할은 대단히 중요하지만, 그 핵심 주역들은 창작자와 아티스트들이다. 뛰어난 예술이나 예능은 그저 돈과 시간을 많이 투자한다고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라서다. 공부 머리가 없는 사람에게 금수저 부모가 아무리 투자해도 한계가 있듯이, 타고난 재능과 끼를 가진 인재가 우선이다.

또한 그런 재능들이 안심하고 최상의 개성있는 결과물을 만들 수 있도록 컨텐츠를 보호해 줄 수 있는 시스템과 마인드 역시 중요하다. LVMH 계열의 자회사인 겐조의 디자이너가 루이비통 디자인을 비슷하게 베끼거나, 쇼메와 태그호이어의 스타일이 비슷해진다는 것을 상상할 수 없다. 저작권 이전에 창작자들의 자존심 문제고 기업의 지향성 문제라서다.

K팝의 성공 역시 아티스트들 덕분

한데 이번 사태에 대해 많은 이들이 이 점을 간과한다. 같은 계열사인데 비슷한 것이 당연한 것이 아니냐거나, 그런 일로 각박하게 군다는 의견 같은 것들이다. 중국이나 일본의 걸그룹이 비슷한 행위를 했다면 그토록 관대할 것인지 궁금하다. 나는 안무 분야엔 재능이 없는 사람이라 뉴진스와 아일릿의 안무 차이를 판단할 능력은 부족하지만, 이 분야의 전문가들이 민감해 하는 문제라면 일단 귀기울여 듣고 함부로 ‘좋은 게 좋은 것이다’라는 말을 하지는 않으려 노력한다. 그게 창작자들에 대한 예의라서다.

자신이 몸으로 낳은 자식에 대해서는 그토록 유일성을 강조하고 공정성을 외치면서, 예술가들이 영혼을 기울여 낳은 창작물이라는 자식에 대해서는 그토록 무감하게 이기심이라 비난하는 모습들이 놀랍다.

자본주의 극단과 봉건주의 잔재가 동시에 작동하는 나라에서 예술가들을 여전히 광대나 기생, 쟁이, 혹은 관료들의 하청인 정도로 바라보는 이들이 많다. 작품 구매자나 스폰서, 심지어는 팬이라는 이유로 일상을 좌지우지하려는 이들의 이야기는 흔히 듣고보는 갑질 소재고, 평소엔 구름 위로 띄우다가 정치적 이슈엔 바람막이로 여론몰이하며 일어나는 연예인들의 비극도 이런 인식이 가져오는 현상이다.

수 조원의 재산을 소유한 해외 스타나 제작자들의 파워는 선망하고 SK와 이혼소송을 하는 노소영 씨도 응원하지만, 2024년 현재 세계 최고의 그룹 뉴진스를 만들어낸 천재적인 재능과 성실함을 가진 여성에게는 분수를 모른다고, 그런 재주는 널렸다고 쉽게 말하는 것도 비슷한 시각이다. 해외 스타들의 인성이야말로 기도 안차는 경우도 많고 사는 것이 딱해서 노소영 씨를 지지한 것도 아닐텐데, 우아할 여유조차 없는 한국의 창작자가 능력을 인정받는 것은 주제넘는 일이라는 것이다.

1년전 뉴진스의 모습. 민희진의 어도어가 기획한 뉴진스는 데뷔 1년만에 K팝의 역사를 다시 썼다.
1년전 뉴진스의 모습. 민희진의 어도어가 기획한 뉴진스는 데뷔 1년만에 K팝의 역사를 다시 썼다.

청년들이 민희진의 분노에 공감하는 이유

나는 아무리 재능이 뛰어나고 많은 자산을 투자했어도 그런 이유로 소수만이 천문학적 재산을 소유하게 되는 사회에 동의하지 않는다. 성공과 유명세에는 반드시 숨은 이들의 노력과 운이 존재하기에 그렇다. 따라서 이번 분쟁에서도 누가 얼마나 돈을 더 갖는가에는 관심이 없다. 다만 타고난 귀족 엘리트나 자본가의 가치를 뛰어넘지 않는 보상 안에서만 인정되는 창작자의 가치와 역할에 대한 인식이 정당한가에 질문을 하고 싶을 뿐이다.

이번 이슈에 많은 청년들이 공감하고 함께 분노한 까닭은, 고용 노동자로서의 문제도 있지만 그들의 미래가 창작과 컨텐츠의 시대이기 때문이기도 하다. 인공지능이 많은 것을 대체하는 세상이 도래하고 예술영역까지도 침범할 수 있다고는 하지만, 지식·정보 분야보다는 인간에게 경쟁력이 있을 것이라 믿고 사회의 흐름도 그렇기 때문이다.

창작을 시설비만 투자하면 공장에서 제품 찍어내듯 양산할 수 있는 제조업 같은 영역으로 이해하고, 자본가의 관점에서만 논평을 하며, 젊은 세대의 공분과 지지를 우려의 눈으로만 바라보는 산업사회적 시각의 기성세대를 접하는 마음이 더욱 걱정스러운 이유다.

글쓴이

박선화 한신대 교수

필자인 박선화는 LG전자와 LG U+에서 브랜드 이미지를 만들고 커뮤니케이션하는 일을 했다. 업무를 통해 마케팅이 심리학임을 깨닫고, 이후 이와 관련된 공부를 하며 소통에 강한 책을 쓰고 강의도 하고 있다. 현재는 한신대학교 평화교양대학에 재직중이다. 전공과 관심분야가 다양하지만 '사람과 사람의 관계'에 대한 생각을 많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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