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 리얼리즘 풍경화 사계의 ‘그림 앨범’ ②
[김희은의 울림 깊은 러시아 예술 이야기] 4계절 러시아 대자연 위대함 화폭에 담아 자연과 인간의 교감, 계절마다의 특색 그려 “마법에 홀린 듯 황홀감을 느끼게 해” 레비탄을 비롯한 풍경화가들의 눈부신 작품
흔히 사람들은 ‘러시아’ 하면 1년 내내 추워서 어떻게 살까 걱정한다. 하지만 러시아에도 꽃 피는 봄이 있고, 맑은 여름이, 황금빛의 가을이, 그리고 새하얀 겨울이 있다. 사계절의 아름다운 섭리가 조화롭게 균형을 이루며 화려함에 눈이 부신 나라다.
그런 사계가 가져다 주는 선한 아름다움을 화가들은 자신만의 독특한 기법으로 화폭에 담아낸다. 이상향의 경치만을 그리는 아카데믹한 풍경화에서 벗어나 일상의 자연에서 얻을 수 있는 감흥을 화폭에 그대로 옮긴다. 러시아 대자연의 위대함과 작가의 눈에 비친 주관적 감흥을 더해 러시아 사계를 재탄생시킨 일련의 그림들을 ‘러시아 무드 풍경화’라 한다. 러시아만이 가진 독특한 미술 장르다.
러시아 무드 풍경화를 통해 우리에게는 낯설지도 모를 러시아 사계를 느껴 보자. 하얀 눈왕국의 겨울과 여름으로 넘어가는 간이역 같은 봄, 해가 지지 않는 초록의 여름, 그리고 노란 색의 축제 황금 가을까지, 계절마다 가지고 있는 특색이 러시아 풍경화에 그대로 배어 있다. 바로 자연과 인간이 교감하는 최고의 순간이 색채와 어우러져 예술이 된 것이다.
간이역 같은 봄
러시아의 봄은 겨우내 쌓인 눈이 따뜻한 봄공기를 만나 녹으면서 시작된다. 풀썩 풀썩 눈 녹는 소리와 물이 되어 졸졸 흐르는 소리는 마치 오케스트라 연주처럼 조화롭게 어우러져 러시아 봄을 장식한다. 그렇게 녹은 눈이 봄 홍수를 이루고 대지에 스며들면 세상은 폭죽 터지듯 초록 빛깔이 만발하면서 봄은 화려하게 시작된다.
들은 아직 흰 눈에 덮여 있는데 /강물은 다가오는 봄으로 설레고 있다
물줄기는 달리면서/ 반짝반짝 반짝이며 말하면서 흘러간다
강물은 말한다/
-저 멀고 먼 끝에까지/
-봄이 왔다, 봄이 왔단다.
- 표도르 튜체프(1803-1873)의 <봄 강물> 중에서
시작하는 봄을 잘 표현한 튜체프의 시 <봄 강물>과 언 눈이 녹아 강물을 이루는 레비탄의 <봄-홍수>는 러시아 봄 해빙의 기쁨을 노래한 대표적인 시와 그림이다.
러시아에서의 봄은 설렘 그 이상이다. 겨우내 쌓여 있던 눈덩이가 봄 햇살에 녹아 투명한 강물을 이루며 광활한 대지를 적신다. 겨울동안 눈꽃을 지탱하던 자작나무도, 드넓은 대지도 봄 홍수에 흠뻑 젖어 새로운 생명으로 탄생한다. 대지에 흡수된 봄 홍수는 한 해의 농사를 책임져 줄 비옥한 옥토를 만들고 봄꽃을 피우고 가을 열매를 맺기까지 순환하는 계절의 에너지가 되어 사계절의 중요한 생명력이 된다.
레비탄은 <봄-홍수>를 통해 지난 겨울 쌓인 찌꺼기를 말끔히 걷어내고 새롭게 시작하는 계절의 가장 깨끗한 의식을 보여준다. 화폭 전체가 수채화처럼 가볍고 밝은 빛깔로 채워져 화사한 봄 풍경의 투명함과 맑음을 선사해 준다. 그래서 우린 이 그림을 통해 평온함과 충만함을 느끼며 말없는 위로를 받게 된다. 무드 풍경화가 우리에게 선사해 주는 기쁨이다.

러시아 봄은 순식간에 화려하게 펼쳐진다. 러시아 시인 페트가 <왔다, 주위의 모든 것이 녹는다>에서 “모든 것이 온 힘으로 생명을 피우려 애쓴다/ 겨울 눈보라의 포로였던 심장은/ 갑자기 오그라드는 법을 잊는다”라고 노래한 것처럼, 겨울 눈은 아직 남아 있나 싶다가도 어느 순간 일제히 녹아 커다란 강물을 이룬다.
로마진의 <장미빛 봄>은 다가올 찬란한 봄에 대한 기대를 잘 표현하고 있다. 봄 홍수로 출렁이는 세상에 분홍 노을이 물들어 마치 온 천지가 봄꽃을 피운 듯 착각에 빠져들게 만든다. 러시아 소설가 알렉세이 톨스토이(1883∼1945)는 ‘단순 풍경화를 뛰어 넘어 마법에 홀린 듯 황홀하게 만든다’라고 작품을 극찬했다. 로마진은 통일된 하나의 색감으로 풍경의 아름다움을 전달하는 색채 풍경화의 대가로, 러시아 무드 풍경화의 새로운 길을 연 작가이기도 하다. 시를 한편의 그림으로 표현하면 바로 이런 느낌이 아닐까?

바로 위 작품은 겨울을 벗고 만물이 생동하는 러시아의 봄을 그린 대표작이다. 1954년에 그려진 사회주의 리얼리즘 작품으로, 어느 정도 겨울 추위가 가시고 모녀는 러시아 바냐(사우나)에서 겨울 때를 벗어내려 한다. 봄이 오긴 했지만 혹여 아이가 추울까 엄마는 먼저 뜨거운 사우나에서 자신의 몸을 데운 후 아이에게 달려와 따뜻한 온기를 주며 옷을 벗기고 사우나 안으로 데려가려 한다. 엄마에게 몸을 맡기고 있는 아이의 표정에는 이미 다가올 봄의 생동감이 가득하다. 겨울의 찌꺼기를 닦아내고 새로운 계절을 받아드릴 성스러운 의식 같다.
사실 이 그림은 봄의 달콤함을 노래한 그림이기도 하지만, “해빙” 즉 후루시쵸프 집권후 소련 공산사회에 분 개혁의 바람을 표현한 그림이기도 하다. 찬바람 쌩쌩 불던 스탈린 시대의 냉혹함은 이제 봄의 해빙과 함께 과거 기억으로 흘려버릴 때가 온 것이다. 사우나 주변으로 멀리 보이는 눈은 아직은 남아있는 통제, 압박을 의미하는 한편, 아이의 옷을 벗겨 따뜻한 온기를 나누려는 모녀의 다정한 모습은 소련에도 해빙이 왔음을, 새로운 세상이 도래 했음을 의미한다.
*해빙: 겨울 눈과 얼음이 녹는다는 “해빙”은 1953년 스탈린 사후에 소련에 분 민주화 경향을 일컫는 말이다. 1956년 제20차 소련공산당 전당대회에 후루시쵸프 서기장이 ‘스탈린의 개인숭배’를 비판하고, 대외적으로 자본주의 세계와의 ‘평화적 공존’을 선언했다. 정치인들의 복권이 이뤄지고 창작활동, 언론의 자유를 보장하던 1950년대 말부터 후루시쵸프가 실각하는 1960년대초까지를 지칭하는 정치 용어다.
해가 지지 않는 초록의 여름
러시아의 봄이 겨울의 흰색에서 벗어나는 계절이라면 여름은 초록 그 자체다. 밤과 낮이 공존하는 백야가 펼쳐져 밤새 환하다. 온통 푸르고 공기는 상쾌하며 햇빛은 적당하다. 러시아의 여름이 이렇게 아름다운지를 우리나라에서는 잘 모를 것이다. 러시아 하면 떠오르는 것이 추위, 겨울, 눈이기 때문이다. 신이 주신 최고의 선물이라 불려지는 러시아 여름을 무드 풍경화를 통해 만나보자. 눈과 마음이 시원해진다.

위의 작품은 러시아 여름숲의 전형적인 모습을 그려내고 있다. 러시아는 녹지율이 높고 도시 중심에도 공원이 즐비해 쉽게 이런 자연을 즐길 수 있다. 이 그림은 이반 쉬시킨을 대표하는 작품중 하나로, 오크 나무가 서있는 숲 속의 청명한 기운과 밝고 화창한 느낌이 잘 살아있다.
쉬시킨 작품속 나무는 인간 세상사 그 무엇에도 물들지 않는 순수 그 자체의 자연 같다. 그림이 아니라 현실인 것처럼 나무 향내가 바로 느껴지고 숲 속의 화사한 햇살이 내 몸을 감쌀 것 같은 착각이 들 정도로 사실적이다. 수백 년을 저 곳에서 살며 기나긴 세월을 이겨냈을 오크 나무의 당당한 위엄에 경건함마저 들게 하는 대작 중의 대작이다. 이런 무드 풍경화를 통해 우리는 자연과 대화하고 힐링하게 된다

완전히 해가 지지 않는 러시아 여름은 늦은 시간까지 노을 빛이 하늘을 덮고 있다. 그렇게 빛과 어둠이 함께 공존하는 ‘개와 늑대의 시간’인 러시아의 백야는 신이 인간에게 준 또 다른 선물이다.
<7월 저녁, 백야>는 그런 러시아의 여름을 절묘하게 그려내고 있다. 멀리 석양이 하늘에 걸려있고, 은은한 등불이 켜진 집에는 하루 일과를 마치고 돌아온 가족들이 평온을 취하고 있을 것이다. 오롯이 불 밝히고 있는 집안의 등불은 바로 그 따뜻함, 평온함을 나타내는 듯해 인상 깊다. 하나의 단어로 정의할 수 없는 러시아 여름밤의 아름다운 정취다.

플라스토프는 전형적인 사회주의 리얼리즘 회화를 그리는 화가다. <건초 베기>를 통해 노동의 신성함을 찬양하고 농촌생활의 아름다움을 화폭에 남긴다. 건강한 신체에 깃드는 건강한 정신이란 기치아래 소련 민중들의 활기찬 삶을 보여준다. 자작나무를 시작으로 서서히 밝아지는 대낮의 환한 빛의 표현은 백미 중의 백미이며, 열심히 낫질을 하고 있는 사람들의 움직임에서 강한 리듬감과 생명력이 느껴진다.
이 그림이 그려진 시기는 2차 세계대전이 막 끝나가던 즈음이라 러시아 국토가 초토화된 이후지만 그림에선 전쟁의 상흔은 찾아 볼 수가 없다. 사회주의 리얼리즘 회화에서 추구하는 이상향의 현실만이 그대로 살아있다. 일상 속에 빛나는 노동자들의 모습, 과장되지 않고 찬란한 햇빛 속에서 빛나는 삶을 엮어가는 민중들의 건강함이 이 그림의 중요 포인트다. 특히 이 작품은 소비에트시절 러시아 교과서에 수록되었으며 소련을 대표하는 그림이기도 하다.
노란색의 축제, 황금 가을
러시아의 가을은 황금빛이다. 세상이 온통 노란색으로 물든다. 황금색 낙엽이 바람에 떨어질라치면 나뭇잎 비가 장관을 이뤄 표현할 수 없을만큼 아름답다. 이때가 되면 러시아 가을의 성스럽고 숭고한 분위기 앞에 모두 시인이 된다. 지난 계절의 화려함을 가슴에 품고 다가올 겨울을 준비하는 러시아의 가을은 사계절 중 짧지만 가장 화려하고 강렬하다.
나는 러시아 여행을 꿈꾸는 이들에게 이 시기에 러시아를 방문할 것을 권한다. 러시아 자연의 아름다움을 가장 잘 느낄 수 있는 계절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너무 짧아 일정을 잘 잡아야만 황금 가을을 제대로 맛볼 수 있다.

초가을에
짧지만 아름다운 때가 있으니-
낮은 수정과도 같이 빛나고
저녁에도 햇빛 찬란하다
-표도르 튜체프(1803-1873)의 <초가을에> 중에서
러시아의 가을그림 하면 레비탄의 <황금 가을>이 대표적이다. 온 세상이 황금색으로 물들고, 바람이 불면 황금색 낙엽비가 내린다. 러시아 자연이 만들어 내는 위대한 향연이다.
겨울을 준비해야 하는 러시아의 가을은 비 오고 흐린 날이 많지만 10월 중순 즈음에 ‘바비요 레토(Бабье лето)’라 해서 화사하고 맑은 가을날이 펼쳐진다. 바람은 상쾌하고 하늘은 높고 푸르며 대지는 고요하다. “낮은 수정과도 같이 빛나고 저녁에도 햇빛 찬란한” 러시아의 ‘인디언 썸머’다. 황금색 마술 거울에 들어간 것처럼 온 세상이 노란색의 축제를 벌인다.
그 황금색의 잔치를 레비탄은 한 폭의 예술로 승화시켰다. 높고 푸른 하늘, 새하얀 구름, 드넓은 대지를 가득 채운 황금빛 자연, 바로 색채의 축제는 이런 게 아닐까?

러시아 천재화가의 일리야 레핀이 그린 딸의 초상화다. 조금씩 수그러드는 가을빛을 뒤로하고 저녁 어둠이 찾아온다. 러시아 가을은 그 화려함을 즐길 수 있는 여유를 길게 주지 않는다. 여름과는 달리 빨리 어둠의 품에 안겨 버리기 때문이다. 하루 종일 가을 들판을 헤맨 듯 여인의 손에는 들꽃다발이 들려져 있고 가슴 한쪽에 어여쁘게 가을 흔적을 꽂고 있다. 이미 가을과 하나인 양 투피스, 모자 그리고 약간 상기된 여인의 얼굴까지 온통 가을빛이다.
가을처럼 무르익어가는 사랑하는 딸의 초상화에 러시아 가을을 그려 넣어 성숙한 딸과 성숙한 계절의 아름다움을 함께 보여주는 천재화가 일리야 레핀의 초상화이며 풍경화다. 바로 이동파 최고 화가, 일리야 레핀 만이 만들어 낼 수 있는 예술 세계다.
하얀 눈왕국의 겨울
‘러시아 겨울’ 하면 살을 에는 듯한 추위, 거센 바람, 세상 모든 것을 얼게 만드는 영하의 날씨만을 생각한다. 하지만 겨울은 겨울다운 아름다움이 있다. 순백의 하얀색이 온 세상을 뒤덮고, 그 하얀 빛이 주는 성스러움이 알싸한 공기와 함께 천지를 수놓는 것이 러시아 겨울이다.
“흰색은 가능성으로 차 있는 침묵이다”라고 칸딘스키가 말한 것처럼, 러시아의 하얀 겨울은 아무 것도 없는 텅 빈 그 무엇처럼 보이지만, 고요하면서 강한 힘을 가지고 있다. 가능성으로 차 있는 침묵!! 하얀 눈 나라 러시아의 겨울은 태초의 그때처럼 장엄하고 엄숙하며 무에서 유를 만들어내는 그 처음에 서있는 듯 보인다.

“지난밤에 눈이 소오복이 왔네/ 지붕이랑 길이랑 밭이랑 추워한다고 덮어주는 이불인가봐/ 그러기에 추운 겨울에만 내리지”라고 노래한 윤동주 시인의 시 한 자락이 생각나는 그림이다
화가 쉬시킨의 겨울 숲은 포근하고 순수하다. 언제부터 어떻게 쌓였는지, 누구의 발길이 닿았는지 알 수 없지만 숲은 겨울이란 시간을 고스란히 안고 있다. “이런 하얀 눈 나라에는 나쁜 사람도, 사악한 인간도 없다”는 어느 시인의 말처럼, 숲 속의 겨울은 순백의 순결 그대로다. 그렇게 새하얀 눈이 세상을 덮으면서 온 세상의 시끄러운 소음마저 삼켜버린다. 세상은 태초의 그때처럼 장엄하고 엄숙해진다. 하얀 눈이 소복하게 쌓인 겨울 숲은 신의 영역이며, 러시아의 눈 덮인 숲 속이 바로 그곳이다.

극한의 추위가 빚어내는 자연의 아름다움, 그 속에 깃든 영혼의 빛을 작가는 보여준다. <하얀 눈>을 그린 발렌틴 시도로프는 디테일의 명장이다. 차분한 색채 속에 평온한 자연이 있다. 색은 절대 다채롭지 않다. 화려함을 모른다. 어떠한 가식도 없는 색채로, 우리 인간이 생의 마지막에 인생을 돌아보며 눈물짓는 그 마음 같은 느낌이다. 한 폭의 동양화를 보는 듯 여백의 아름다움을 지닌 이 작품은 흰색이 가지고 있는 최고의 가치를 잘 드러내고 있다. 하얀 눈이 가진 정제미를 이보다 더 잘 표현할 수 있을까!
이런 사계절의 아름다움과 예술작품을 지닌 러시아와 우크라이나가 안타깝게도 전쟁 중이다. 서로를 죽이고 파괴하는 전쟁이 빨리 끝나고 예전의 아름다움을 되찾는데 힘을 합쳐 나아가길 바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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