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영훈
가요연구가
이영훈 가요연구가는 국제신문, 동아일보 등에서 신문기자로 20여 년간 근무하다 방송으로 옮겨 10년째 기자 생활을 이어가고 있다. 채널A 보도본부에 근무하면서 메인뉴스 편집데스크와 디지털뉴스부장을 지냈고 쾌도난마, 뉴스톱텐 등 여러 시사 프로그램의 제작데스크로 일해 왔다. 보도본부 선임기자를 거쳐 현재는 심의실에서 근무하고 있다. 저서로는 <파벌로 보는 한국야당사>, <한국정치, 바람만이 아는 대답>, <유행가는 역사다>, <그 노래는 왜 금지곡이 되었을까> 등이 있다.
이영훈의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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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문화
광복 80주년, 혈서지원과 독립군가 ‘용진가’
올해 8월 15일은 광복 80년이 되는 뜻깊은 날이다. 이에 정부는 이를 국민과 함께 기념하기 위한 공식 행사로서 ‘제 80주년 광복절 경축식’을 오전 10시에 세종문화회관에서 개최한다.서울시도 보신각 타종식, 시향 기념음악회, ‘8.15 SEOUL MY SOUL’ 공연 등을 진행한다. 해방이 되기까지 일제의 압제에 의한 고통의 시간은 길고도 길었다. 일제 강점기 조국의 독립을 위해 온 몸을 던져 투쟁한 애국지사들도 있지만, 탄압에 굴종한 사람들도 많았다. 오늘은 광복절을 맞아 대중가요 분야에 있어서의 친일 이야기를 한번 해보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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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문화
“철아, 잘 가그래이. 아부진 아무 할 말이 없다이”
오늘은 1987년 6·10민주항쟁이 있은 지 38주년이 되는 날이다. 정부 주최로 오전 10시 민주화운동 관계자와 유가족 등 200여 명이 참석한 가운데 서울 용산구 민주화운동기념관에서 기념식이 열렸다. 남영동 대공분실을 ‘민주화운동기념관’으로 조성하는 사업이 완료돼 이를 기념하는 개관식도 함께 진행됐다. 남영동 대공분실은 1985년 김근태 전 민주통합당(더불어민주당 전신) 상임고문 고문 사건과 1987년 박종철 열사 고문치사 사건 등 민주인사에 대한 강압적인 조사와 인권 탄압이 자행됐던 장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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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문화
그해 여름, 그들의 선택이 세상을 바꾸다
①편에 이어 그런데 박종철 사망 후 부검을 실시해 본 결과 시신은 수많은 피멍과 물고문, 전기 고문의 흔적들이 역력했고 당시 부검의가 고문에 의한 사망임을 정식으로 확인하면서 사태는 일파만파로 커졌다. 국민들은 분노의 표시로 경적 시위를 하기도 했다. 결국 고문 경찰들을 처벌하는 것으로 사건은 일단락되는 것처럼 보였다. 한편 전두환은 “개헌 논의는 곧 있을 서울올림픽 끝나고 하자”는 4․13 호헌 조치를 발표하면서 대통령 직선제 개헌 논의를 묵살했다. 국민들의 민심은 격앙되었다. 1985년부터 야당인 신한민주당(신민당)은 대통령 간선제안(案)에 대해 ‘헌법 개정 1000만인 서명 운동’을 추진하는 등 직선제 개헌을 주장하고 나섰다. 여당인 민주정의당(민정당)에서도 이를 무시할 수 없어 대통령 간선제안에 대한 교섭을 진행하던 시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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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문화
소주 병 테러에 대마초사건...파란의 김추자
①편에 이어서 김추자는 참 많은 사건들을 겪었다. 그 중에서도 가장 큰 사건은 무엇보다도 1971년 12월, 김추자의 매니저인 소윤석이 소주병을 그녀에게 휘둘러서 얼굴이 난자당한 사건일 것이다. 김추자의 매니저였던 소윤석은 처음엔 가수 활동을 하기도 했다. 1969년 출시된 김추자의 데뷔 음반 ‘늦기 전에 / 월남에서 돌아온 김상사’는 그녀의 독집이 아닌 컴필레이션 음반(여러 가수가 부른 노래를 모은 편집판- 편집자주 )이다. 총 10곡이 수록된 이 음반은 모두 신중현의 창작곡으로 채웠는데, A면 6곡은 모두 김추자의 노래이고, 묘하게도 4곡을 수록한 B면에는 소윤석의 ‘잃어버린 친구’와 록 밴드 바보스와 샤우터스 출신인 김선의 ‘떠나야 할 그 사람’ 등이 실렸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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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문화
권위를 압도한 ‘대중문화의 전위’ 김추자
박정희 정권의 음영이 뚜렷이 교차했던 1969년. 독창적 창법과 섹시한 춤으로 가요계를 강타한 한 여가수가 나타났다. 그 이름은 김추자(金秋子). ‘가을 여자’다. 치마와 머리카락 길이조차 통제의 대상이던 그때 그 시절, 그녀는 ‘문화적 다이너마이트’ 노릇을 자임했다. 꽉 죄인 옷의 터질 듯한 곡선은 무척이나 뇌쇄적이고 관능적이고 도발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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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문화
‘유정천리’ 개사곡, 4.19혁명 불씨 지폈다
오늘 4월 19일은 1960년 4.19혁명이 발생한 지 65주년이 되는 날이다. 그런데 대중가요를 개사한 노래가 전국으로 구전되며 4.19혁명의 불씨를 지펴 올렸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다. 그 노래는 바로 ‘유정천리’이다. 1959년 남홍일 감독의 영화 ‘유정천리’가 개봉된다. 배우 김진규, 이민자, 박암, 안성기 등이 출연한 이 영화는 강원도 산골에 살던 세 식구가 시골생활이 싫어 무작정 서울로 떠나오면서 벌어지는 이야기를 담았다. 이 영화의 줄거리는 다음과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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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비추어리
항상 우릴 가르쳐주셨던 어른 이용태 회장
대한민국 정보화 혁명의 개척자이자 영남 남인 퇴계학파의 학맥을 이어온 행파(杏坡) 이용태 삼보컴퓨터 창업자가 지난 14일 92세의 일기로 별세했다. 이용태 회장은 1980년 삼보컴퓨터를 설립해 PC 대중화에 기여한 대한민국 1세대 벤처기업가이자, 영남 퇴계학파의 학맥을 이어온 대한민국 유림(儒林)의 지도자이다. 그는 한국을 대표하는 정보기술(IT) 기업 중 하나로 삼보컴퓨터를 키워내 최초의 PC를 개발했으며 서울시 교통신호체계망 구축, 행정전산망 개발 등 지금의 대한민국을 ‘인터넷 강국’으로 성장시켰다. 초고속 인터넷 서비스 두루넷도 그가 처음 설립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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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비추어리
송대관, ‘차표 한 장’ 손에 들고 하늘나라로...
‘해뜰날’의 가수 송대관이 우리 곁을 영원히 떠났다. 오늘(9일) 오전 서울대병원 장례식장에서 대한가수협회장으로 고(故) 송대관의 영결식이 치러졌다. 영결식장에는 태진아, 이자연, 배일호, 설운도, 강진, 김성환, 박상철, 김수찬, 김창열 등 후배가수들이 참석해 고인의 마지막을 배웅했다. 생전 고인과 가장 절친했던 태진아는 “형이 떠나고 제가 3일간 밥을 안 먹고 술로 배를 채웠다. 형님이 하늘나라로 가시면 방송하는 게 별로 재미가 없을 거 같다. 치매에 걸린 집사람이 대관이 형이 돌아가셨다고 하니 ‘아이고 어떻게? 왜?’라고 하더라. 아내를 끌어안고 울었다. 형이 우리와 얼마나 가까웠으면 기억을 못 하는 아내도 형을 기억해 줄까 싶었다. 대관이 형, 잘가. 아 영원한 나의 라이벌이여”라며 애통해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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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문화
우금치에 살아 숨 쉬는 녹두장군의 얼
비상계엄을 선포한 윤석열 대통령의 탄핵을 주장하면서 남태령에서 경찰과의 28시간에 걸친 대치 끝에 서울 용산구 한남동 대통령 관저 앞까지 트랙터 13대를 몰고 온 농민 집회를 주도한 단체는 전국농민회총연맹(전농) 소속 ‘전봉준 투쟁단’이다. ‘전봉준 투쟁단’은 전남과 경남에서 각각 출발한 후 공주 우금치에서 합류해 출정식을 가졌다. 우금치는 1894년 전봉준이 지휘하는 동학농민군이 조일연합군과 운명을 건 혈투를 벌인 전투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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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문화
복싱의 룰 바꾼 ‘링 위의 슬픈 노래’
1982년 11월 13일. 미국 라스베이거스 ‘시저스 팰리스 호텔’ 야외경기장에서 김득구와 레이 맨시니가 맞붙은 WBA 라이트급 타이틀 매치의 막이 올랐다. 경기 초반부터 김득구는 맨시니를 저돌적으로 공격했다. 관중들은 한순간도 눈을 떼지 못하고 함성을 질렀다. 하지만 객관적 전력에서 밀리는 김득구가 신체조건과 체력, 펀치력에서 앞서는 맨시니를 투지만으로 이기긴 힘들었다. 맨시니의 유효타가 근소하게 많은 반면에 경기 중후반으로 갈수록 김득구는 헛스윙이 많아지고 데미지가 누적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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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문화
10·26사태… 그리고 ‘그때 그 사람’
1979년 10월 26일 저녁 7시 45분. 서울 종로구 궁정동 안가에서 울린 한 발의 총성이 역사를 바꿨다. 만찬장이던 나동 안방에는 당시 유신정권을 이끌고 있는 수뇌부가 집결해 있었다. 박정희 대통령과 김계원 비서실장, 차지철 경호실장, 김재규 중앙정보부장이 그들이다. 안방과 마루를 사이에 둔 경호원 대기실에는 경호처장 정인형, 경호부처장 안재송과 중앙정보부 의전과장 박선호가, 밖의 제미니 승용차에는 중앙정보부장 수행비서관 박흥주 대령이 대기했다. 50m 떨어진 본관 1층 회의실에서는 정승화 육군참모총장이 김재규를 대신한 김정섭 중앙정보부 차장보와 식사를 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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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문화
‘여순사건’ 역사의 아픔을 노래하다
오늘, 10월 19일은 여순사건 76주년이 되는 날이다. 이날 여수시는 이순신광장에서 ‘상생으로 피운 동백, 미래의 빛으로’라는 주제로 희생자 합동추념식을 개최했다. 순천시는 18일부터 31일까지 영동1번지와 남문터광장 등에서 ‘평화와 치유의 울림’을 주제로 여순사건 주간 인문행사를 열고 있다. 여순사건을 소재로 한 대표적인 대중가요로는 ‘여수야화’(麗水夜話)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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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문화
‘유전무죄 무전유죄’… 그들이 꿈꾼 세상은?
1988년 10월 16일. 국민들은 핏발선 눈으로 권총을 머리에 겨눈 채 절규한 한 남자의 말을 되뇌이며 전율했다. “유전무죄(有錢無罪), 무전유죄(無錢有罪).” 그의 말보다 더 한국 사회의 불평등을 굵고 짧게 나타낸 표현이 있었을까? 권총을 든 남성이 비지스의 ‘홀리데이’(Holiday)를 들으며 죽음을 선택하는 장면은 할리우드 갱영화나 홍콩 느와르를 연상시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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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문화
재일동포 모국 방문… “돌아와요 부산항에”
1975년 9월 13일. 추석을 며칠 앞둔 이날, 조총련계 재일동포 모국 방문단 698명이 2주 일정으로 부산항 제1부두로 입항했다. 국민들의 가슴은 뜨거웠다. 분단 30년 만에 처음으로 모국을 방문한 조총련계 재일동포들이 그토록 그리던 부모형제와 다시 만나는 모습은 국민들에게도 고향과 혈육의 의미를 다시금 깨닫게 해주었다. 이때 부산항에는 조용필의 ‘돌아와요 부산항에’(1976년 개사 전 노래)가 크게 울려 퍼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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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문화
해방의 기쁨, 그리고 ‘귀국선’의 비극
1945년 8월 15일 정오. 라디오에서는 일왕 히로히토의 항복 선언 방송이 흘러나왔다. 느릿하고도 맥 빠진 목소리였다. 이 믿기 어려운 소식에 조선인들은 일순간 멍해졌다. 결코 망할 것 같지 않던 일본이 이렇게 순식간에 무너질 줄이야…. ‘오장 마쓰이 송가’ 등 일제 말기 친일시를 쓴 서정주도 해방 후 친일 행적에 대해 해명하면서 “일본이 그렇게 빨리 망할 줄 몰랐다”라고 하지 않았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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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문화
‘死의 찬미’...현해탄에 몸 던진 신여성의 꿈
1926년 8월 4일 새벽 4시. 일본 시모노세키 발 부산행 관부(關釜)연락선 ‘도쿠주마루’가 칠흑 같은 어둠을 뚫고 대마도를 지나고 있었다. 이때 갑자기 순찰 승무원이 선장실로 헐레벌떡 뛰어들었다. “선장님, 일등 객실에 탔던 남녀 손님 2명이 없어졌습니다.” 배에는 비상이 걸렸다. 배는 항로를 거슬러 오르며 수색을 거듭했지만 아무도 발견하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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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비추어리
‘뒷것 인생’ 살다 ‘아침이슬’로 지다
시대의 아픔을 대변한 뮤지션인 김민기가 우리 곁을 떠났다. 김민기는 지난해 가을 위암 4기 진단을 받았다. 그는 최근까지 경기 고양시 집에서 통원하며 항암 치료를 받아왔지만 암세포가 간까지 전이된 상태라 급격히 병세가 악화됐다. 고인은 눈을 감기 직전 “나는 할 만큼 다 했다”라는 말을 남겼다고 한다. 김민기와 절친했던 선배 가수 조영남은 “학전이 문을 닫는다는 소식을 듣고 전화 통화를 한 것이 마지막이다. 김민기는 내가 지금까지 본 사람 중에 결이 가장 고운 사람이었다. 아침이슬보다도 맑은 사람이다“라고 추모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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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문화
‘단장의 미아리 고개’에 얽힌 사연
오늘은 동족상잔의 비극인 6·25전쟁이 일어난 지 74주년이 되는 날이다. 총성이 울리는 6·25전쟁 중에도 노래는 끊이지 않았다. 당시 우리 국민들은 고통스러운 전쟁의 상흔과 실향의 아픔을 이런 노래를 들으며 견뎌냈다. 대중가요 중 6·25전쟁을 배경으로 한 노래는 흥남철수 때 헤어진 여동생을 찾는 ‘굳세어라 금순아’(가수 현인), 부산 피란살이의 애환과 이별을 그린 ‘이별의 부산정거장’(남인수), 전선의 군인이 고향과 어머니를 그리워하는 내용의 ‘전선야곡’(신세영), 전쟁터에 나가있는 남편이 무사하기를 비는 ‘아내의 노래’(심연옥)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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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문화
5월 광주, 바윗돌과 바위섬...’오월의 노래’
내일 5월 18일은 5·18 광주 민주화운동 44주년이 되는 날이다. 5·18 광주 민주화운동은 한때 신군부나 언론에 의해 ‘광주소요사태’, ‘광주사태’, ‘광주폭동’ 등으로 지칭되기도 했지만, 지금은 주로 ‘광주민중항쟁’, ‘광주시민항쟁’, ‘광주항쟁’, ‘광주의거’, ‘5·18의거’ 등으로 불린다. 5·18에 대한 진실이 드러나면서 많은 영화들이 만들어졌다. 택시운전사, 화려한 휴가, 아들의 이름으로, 김군, 꽃잎, 오래된 정원, 26년, 스카우트 등의 영화들이 5·18을 담았다. 그러나 5·18을 소재로 한 대중가요는 그리 많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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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문화
‘뒷것’ 김민기, 그의 삶 그의 노래
지난 3월 대학로 소극장 문화를 이끌어온 ‘학전’이 문을 닫은데 이어, 최근 ‘SBS 스페셜-학전 그리고 뒷것 김민기’ 3부작이 방송되면서 천재 뮤지션 김민기에 대한 대중의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이 프로그램에서 송창식, 조영남, 박학기, 나윤선, 장필순, 강산에, 윤도현, 정재일 등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음악가들과 ‘도비두’ 김영세, ‘노찾사’ 김창남, 임진택, 이상우, 채희완 등 김민기의 지인, 더불어 노동현장에서 김민기와 특별한 인연을 맺은 이들이 카메라 앞에 나서 ‘음악가 김민기’에 대한 다양한 이야기를 풀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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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문화
세월호 참사 10주기... ‘천개의 바람이 되어’
오늘 304명의 소중한 생명을 앗아간 세월호 참사가 10주기를 맞았지만 ‘그날의 진실’은 여전히 미궁 속이다. 세 차례의 조사위원회, 특검, 검찰 특별수사단이 참사 전후를 둘러싼 각종 의혹을 살폈지만 근본적인 사고 원인에 대한 속시원한 답조차 내놓지 못한 실정이다. 정말 안타까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천개의 바람이 되어’는 세월호 참사 때 추모곡으로 가장 많이 불리운 노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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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문화
마산 3·15의거, 그리고 김주열의 진혼곡
올해 3월 15일은 4·19혁명의 기폭제로 평가받는 ‘마산 3·15의거’ 64주년이 되는 날이다. 3·15의거는 1960년 3월 15일 마산지역 학생과 시민들이 이승만 자유당 정권의 부정선거에 항거해 벌인 규탄 시위로, 우리나라 현대사 최초의 유혈 민주화 운동이다. 시골에서 태어나고 자란 필자는 중학교 때까지만 해도 3·15의거에 대해 전혀 몰랐다. 그러다 마산에 있는 고교에 진학하면서 3·15의거와 김주열에 대해 처음 알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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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문화
“나는 꿈을 파는 사람입니다”
나훈아는 가수로서는 큰 굴곡 없이 탄탄대로 걸었지만 가정사는 파란만장했다. 그는 사실혼을 포함해 총 세 번의 결혼과 세 번의 결별을 했다. 1973년 공군에 입대하기 전 배우 고은아의 사촌동생 이모 씨와 결혼했다가 3년 만에 이혼했다. 이 씨와 이혼한 나훈아는 1976년에 당대 최고 여배우였던 11살 연상의 김지미와 결혼을 해 세상을 깜짝 놀라게 했다. 당시 김지미는 세 번째, 나훈아는 두 번째 결혼이었다. 물론 엄밀하게 따지면 두 사람은 혼인신고를 하지 않았기 때문에 ‘사실혼’ 관계다. 결혼 후 김지미는 나훈아에게 예절·서예 등 다방면에 걸쳐 많은 것을 가르쳤다. 그 덕분에 나훈아는 서예에 매우 능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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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문화
피습사건과 ‘고향역’의 탄생까지
한국 가요사에는 라이벌이 많다. 남인수와 현인, 이미자와 패티김, 혜은이와 이은하, 신승훈과 김건모, H.O.T와 젝스키스, 핑클과 S.E.S 등이다. 그러나 뭐니뭐니해도 최고의 라이벌은 나훈아와 남진이다. 나훈아를 이야기 하면서 남진을 떼놓고 이야기할 수는 없다. 1970년대 초․중반에 걸쳐 두 사람이 펼친 ‘용호상박’의 대접전은 ‘숙명의 라이벌’이라는 말이 딱 어울린다. ‘절묘하다’ 싶을 정도로 두 사람은 모든 게 대조적이었다. 나훈아는 남진과의 라이벌 구도에 대해서 이렇게 회고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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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문화
영영 사랑할 가황 인생콘서트
‘가황’으로 불리는 나훈아가 마지막 콘서트 계획을 발표하며 가요계 은퇴를 시사했다. 나훈아는 2월 27일 ‘고마웠습니다!’라는 제목의 편지에서 “마이크를 내려놓는다는 것이 이렇게 용기가 필요할 줄은 미처 생각지 못했다. ‘박수칠 때 떠나라’는 쉽고 간단한 말의 깊은 진리의 뜻을 저는 따르고자 한다”라고 적었다. 그는 편지 끝에 ‘마지막 콘서트를 준비하면서’라는 문구를 추가해 이번 공연이 그의 마지막 무대임을 밝혔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