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장의 미아리 고개’에 얽힌 사연

[이영훈의 노래가 품은 역사] 6·25전쟁 74주년 맞아 작사가 반야월의 가족사연 아내, 미아리 고개 넘다 딸 잃어 납북인사 수천·수만 명 넘던 고개

1951년 6월 9일 촬영된 사진으로, 고양시 인근 행주에서 M-26 탱크 옆을 지나는, 아이를 업고 걸어가는 한 어린 소녀의 모습이다. 사진 = 연합뉴스
1951년 6월 9일 촬영된 사진으로, 고양시 인근 행주에서 M-26 탱크 옆을 지나는, 아이를 업고 걸어가는 한 어린 소녀의 모습이다. 사진 =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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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동족상잔의 비극인 6·25전쟁이 일어난 지 74주년이 되는 날이다. 총성이 울리는 6·25전쟁 중에도 노래는 끊이지 않았다. 당시 우리 국민들은 고통스러운 전쟁의 상흔과 실향의 아픔을 이런 노래를 들으며 견뎌냈다.

대중가요 중 6·25전쟁을 배경으로 한 노래는 흥남철수 때 헤어진 여동생을 찾는 ‘굳세어라 금순아’(가수 현인), 부산 피란살이의 애환과 이별을 그린 ‘이별의 부산정거장’(남인수), 전선의 군인이 고향과 어머니를 그리워하는 내용의 ‘전선야곡’(신세영), 전쟁터에 나가있는 남편이 무사하기를 비는 ‘아내의 노래’(심연옥) 등이 있다.

그리고 북한군에 의해 강제 납북된 남편을 그리는 사연을 담은 ‘단장의 미아리 고개’라는 노래도 있다. 이 노래는 1956년 발표된 곡으로 수많은 전쟁 관련 대중가요 가운데에서도 손꼽히는 명곡이다. 반야월이 가사를 쓰고 이재호가 곡을 붙였으며, 노래는 이해연이 불렀다. 제목의 ‘단장(斷腸)’은 창자를 끊어내는 고통을 말한다.

6.25전쟁 발발 초기, 서울시청 앞으로 지나고 있는 북한군 탱크부대.
6.25전쟁 발발 초기, 서울시청 앞으로 지나고 있는 북한군 탱크부대.

미아리 고개에서 숨진 반야월의 딸

‘단장의 미아리 고개’ 작사가 반야월은 자신의 어린 딸을 전쟁 중 피란길에서 잃은 개인적 경험과 연결지어 미아리 고개에서의 이별이라는 주제로 가사를 썼다. 다음은 반야월의 회고다.

“6·25가 터졌을 때, 나는 소식을 들은 바로 이튿날에 홀로 피란을 갔다. 그 때 내 가족이라고는 아내와 네 살짜리 맏딸 수라가 있었을 뿐이었는데 미처 피란 갈 준비가 돼 있지 않았고 또 일이 그리 크게 벌어지리라고는 생각을 않았기 때문에 그들을 서울 수유리 집에 그냥 남겨두고 나만 피란을 간 것이다. 나는 우선 처가가 있는 김천으로 갔다.

그런데 내가 김천 처가에 도착한지 며칠 뒤에 아내가 들이닥쳤다. 그의 몰골은 말할 수 없이 초라했고 마땅히 함께 왔어야 할 귀여운 딸 수라는 보이지 않았다. 아이를 어찌하고 홀로 왔느냐는 물음에 망연하던 표정이 바뀌어 마구 소리치고 울면서 그는 두 손을 내밀었다. 내가 혼자 떠나고 미아리가 적의 손에 들어가자 아이를 데리고 수유리 집을 떠났는데 그 새 잘 먹지 못하여 굶어있던 터에 총 소리, 대포 소리가 요란해지자 공포에 질리고 무서워 떨다가 수라는 미아리 고개를 넘지도 못하고 죽고 말았다고 했다.

피란길이 너무도 화급하여 아이를 매장할 곳도 찾지 못하고 아내는 고갯길에 손으로 흙을 파고 묻을 수밖에 없었다고 했다. 그 뒤의 이야기지만 9·28 수복이 되어 서울로 돌아와 그 근처의 여러 군데를 파 보았지만 아이의 시체는 끝내 찾지 못하였다. 나는 그 때의 비통한 심정을 ‘단장의 미아리고개’ 라는 노래 속에 담았다.”

서울 성북구 돈암동에서 정릉천을 지나 의정부로 이어지는 고개인 미아리 고개는 돈암동 고개·돈암현이라고도 한다. 옛날에는 병자호란 때 청나라 군사 되놈(중국 사람을 낮잡아 이르는 말)이 이 고개를 넘어 서울에 침입했다고 해서 되너미 고개라고 불렀으며, 한자명으로는 적유현(狄踰峴) 또는 호유현(胡踰峴)이라 하였다.

겸재 정선이 그린 것으로 추정되는 ‘도성대지도’와 김정호의 ‘수선전도’에는 ‘적유현’으로 표기되어 있고, 비슷한 시기에 그린 것으로 추정되는 ‘사산금표도’에는 ‘호유현’으로 표시되어 있다. 서울 성북구 돈암동 미아리고개 정상에 위치한 소극장 미아리예술극장에 노래 가사를 새긴 ‘단장의 미아리고개’ 노래비가 세워져 있다.

이광수·정지용·최승희 등 문화예술인도 납북

오아시스레코드사에서 발표한 ‘단장의 미아리 고개’는 전쟁의 비극과 가족을 잃어버린 슬픔을 절실히 토로하여 큰 사랑을 받았고, 이해연의 대표곡이 되었다. 이후 대한민국에서 오랫동안 애창곡으로 불리고 있다.

미아리 눈물 고개 님이 넘던 이별 고개

화약연기 앞을 가려 눈 못 뜨고 헤매일 때

당신은 철사줄로 두 손 꽁꽁 묶인 채로

뒤돌아보고 또 돌아보고

맨발로 절며절며 끌려가신 이 고개여

한 많은 미아리 고개

아빠를 그리다가 어린 것은 잠이 들고

동지섣달 기나긴 밤 북풍한설 몰아칠 때

당신은 감옥살이 그 얼마나 고생하오

십년이 가고 백년이 가도

살아만 돌아오소 울고 넘던 이 고개여

한 많은 미아리 고개

가수 이해연이 부른 ‘단장의 미아리 고개’

이 노래가 너무 유명해진 나머지, 미아리 고개가 슬픔과 눈물과 한(恨)의 고개로만 각인되었다는 이유로 서울 성북구청이 한때 ‘미아동’이라는 동명을 바꾸려 한 적이 있을 정도이다.

미아리고개는 6·25전쟁 당시 서울 북쪽의 유일한 외곽도로였기 때문에 전쟁 발발 초기에 북한군과 국군 사이에 교전이 벌어진 곳이다. 북한군은 퇴각하면서 각계 인물들을 미아리 고개를 통해 강제 납북했다.

남한 납북인사들은 북한군 병사들의 인솔 아래 서울에서 평양까지는 군용트럭으로 이동했다. 북한군 지도부가 평양에서 퇴각할 때에는 그들을 따라 압록강변의 강계와 만포, 혜산까지 거의 도보로 끌려가야 했다. 이 과정에 비행기 폭격과 북한군의 학대 및 불법 사살 등으로 많은 납북인사들이 희생되었다.

납북 인사 가운데는 김규식, 조소앙과 같은 임정 요인들과 제헌 국회의원들을 비롯한 유명 정치인들은 물론 경제계와 학계, 언론, 출판, 교육, 과학, 문화, 예술 등 다양한 분야의 인재들도 포함되어 있었다. 우리가 잘 알고 있는 전설적인 무용가 최승희와 시인 정지용, 소설가 이광수와 박태원 등이 그들이다.

또 누에박사 계응상, 나무박사 임록재, 새(鳥)박사 원홍구와 함께 김일성이 생전에 가장 아꼈던 4명의 과학자 중 한 사람인 ‘비날론 발명가’ 이승기 박사도 납북됐다.

납북자 생사조차 알 수 없는 단장의 고통

‘6·25전쟁 납북인사가족협의회’가 공개한 미국 중앙정보국(CIA) 작성 납북 한국인 명단 자료를 보면 매우 상세한 내용이 담겨있다. ‘서울에서 북한인에게 체포된 사람들(Persons Arrested in Seoul by the North Koreans)’이라는 제목이 붙은 이 명부에는 납북자 653명이 영어 이름순으로 명기돼 있다.

이 명부는 표지에 ‘북한의 서울 점령 시기에 서울 인근에 거주하다가 북한 당국에 체포된 후, 1950년 10월 15일 현재 생사가 불분명한 사람들’을 기록했다고 밝혔다. 명부가 배포된 시기는 1951년 1월 19일로 되어 있다.

대한적십자사는 6·25전쟁 중 끌려간 납북자 숫자를 7034명으로 보고 있다. 그러나 ‘6·25전쟁 납북인사 가족협의회’에 따르면, 6·25전쟁 때 납북된 인사는 대한적십자사 자료의 11배가 넘는 8만2959명이라고 한다. 또 통일부는 6·25전쟁 이후 납북자도 3800여 명으로 추정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납북자 문제는 남북한 간에 여전히 해결을 위한 논의조차 제대로 이뤄지지 않고 있다.

우리 정부는 납북자 가족과 인권 운동가들의 간절한 요청에 대해 “납북자의 조기 송환을 위해 노력하고 있다”는 말만 되풀이하고 있고, 북한은 “존재하지도 않는 납북자 문제는 거론하지도 말라”며 오히려 큰소리를 치고 있다.

미국은 2018년 5월 북미 정상회담을 앞둔 트럼프 대통령이 폼페이오 국무장관을 직접 평양에 보내 미국 국적 억류자 3명을 비행기에 태워서 나왔다. 이 모습을 본 우리 납북자 가족들의 심정은 어땠을까?

여전히 생사조차 알 수 없는 가족들. 그들의 ‘단장(斷腸)의 고통’을 생각하면 가슴이 저민다.

글쓴이

이영훈 가요연구가

이영훈 가요연구가는 국제신문, 동아일보 등에서 신문기자로 20여 년간 근무하다 방송으로 옮겨 10년째 기자 생활을 이어가고 있다. 채널A 보도본부에 근무하면서 메인뉴스 편집데스크와 디지털뉴스부장을 지냈고 쾌도난마, 뉴스톱텐 등 여러 시사 프로그램의 제작데스크로 일해 왔다. 보도본부 선임기자를 거쳐 현재는 심의실에서 근무하고 있다. 저서로는 <파벌로 보는 한국야당사>, <한국정치, 바람만이 아는 대답>, <유행가는 역사다>, <그 노래는 왜 금지곡이 되었을까>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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