암환자·자가면역질환자에 희망 준 노벨상
노벨생리학상 수상자 3인 연구성과는 무엇? 의학계 “면역조절 핵심 메커니즘 밝혀낸 공로” 조절T세포 억제하는 면역항암제 개발 진행중
(서울=연합뉴스) 우리 몸의 면역계는 늘 전쟁 중이다. 수많은 세균과 바이러스가 끊임없이 침입하고, 면역세포들은 이를 찾아내 소탕한다.
하지만 이 강력한 방어 체계에도 치명적인 약점이 있다. 가끔은 적과 아군을 구분하지 못해 스스로를 공격하는 일이 벌어진다. 그 결과 류마티스관절염, 제1형 당뇨병, 크론병, 루푸스 등의 자가면역질환이 생긴다.
그렇다면, 우리 몸은 어떻게 이런 ‘내전’을 막을 수 있을까.
올해 노벨 생리의학상을 받은 세 명의 과학자 메리 브렁코(미국), 프레드 램즈델(미국), 사카구치 시몬(일본)은 이 근본적인 질문에 대한 답을 제시했다.
사카구치 교수는 1995년에 기존 면역학의 상식을 뒤흔드는 실험 결과를 발표했다.
당시까지만 해도 과학계는 면역세포가 오직 ‘공격’만 담당한다고 생각했지만, 그는 면역 반응을 억제하는 기능을 지닌 특별한 T세포 집단이 존재함을 처음으로 밝혀냈다. 그가 발견한 이 세포가 바로 ‘조절 T세포’(regulatory T cell·Treg)다.
이 조절 T세포는 면역계에서 CD25 단백질을 발현해 ‘면역 관용’(immune tolerance)이라는 브레이크 역할을 한다. 면역 관용이란 몸의 면역체계가 자기 세포를 공격하지 않도록 조절되는 현상을 의미한다. 쉽게 말해 면역 반응이 과열될 때 이를 식혀주는 제동장치인 셈이다. 이 덕분에 우리는 외부 침입자만 공격하고, 자기 몸은 지킬 수 있다.
이후 미국의 브렁코와 램즈델은 사카구치 교수의 연구를 토대로 조절 T세포가 어떻게 작동하는지를 분자 수준에서 추적했다. 그 단서는 ‘스커피(scurfy) 마우스’라는 돌연변이 생쥐였다.
이 쥐는 태어난 지 얼마 안 돼 온몸에 염증이 생기고 결국 죽었는데, 두 과학자는 이 쥐의 유전자를 정밀 분석한 끝에 문제의 원인이 ‘Foxp3’ 유전자 변이에 있음을 밝혀냈다.
FOXP3 유전자는 조절 T세포의 형성과 기능을 지휘하는 ‘마스터 스위치’로, 이 유전자가 손상되면 조절 T세포가 만들어지지 않아 면역의 브레이크가 작동하지 않으면서 면역세포들이 자기 조직을 무차별 공격한다는 사실이 확인됐다.
나아가 이 발견은 사람에게서도 그대로 적용됐다. 희귀 자가면역질환인 ‘IPEX 증후군’ 환자에게서 FOXP3 유전자 변이가 발견된 것이다. 이 질환은 주로 영아기에 심한 설사, 성장 부진, 피부 병변과 같은 다양한 자가면역 및 알레르기 반응으로 나타난다. 치료하지 않으면 면역이 폭주해 생명을 위협할 수 있다.
세 과학자의 연구는 시기적으로 서로 보완적이었다. 먼저 사카구치는 조절 T세포라는 개념을 제시했고, 그 뒤 브렁코와 램즈델은 FOXP3 유전자의 메커니즘과 질환 연관성을 밝힘으로써 그 개념에 무게를 실었다. 이후 사카구치는 이들 발견을 통합해 FOXP3가 조절 T세포의 분화와 기능을 통제한다는 결정적 연결고리를 제시했다.
전문가들은 이들의 연구가 ‘말초 면역 관용’(peripheral immune tolerance), 즉 면역 반응이 이미 활성화된 뒤에도 자기 조직을 공격하지 않게 억제하는 면역 조절 메커니즘의 핵심을 밝혀낸 데 의미가 크다고 평가했다.
서울성모병원 류마티스내과 주지현 교수는 “자가면역질환은 브레이크가 없는 ‘픽시자전거’처럼 속도가 붙으면 몸을 보호해야할 면역계가 우리 몸을 해치게 된다”면서 “조절 T세포와 FOXP3 유전자의 발견은 자가면역질환을 ‘면역계의 오작동’에서 ‘평화유지군의 부족 또는 기능장애’로 재정의한 것과 같다”고 설명했다.
현재 전 세계에서는 조절 T세포를 강화하거나 FOXP3 신호 경로를 조절하는 자가면역질환 치료 전략이 활발히 연구 중이다. 반대로, 암 치료에서는 조절 T세포를 억제해 면역세포가 암세포를 더 강력히 공격하도록 하는 면역항암제 개발도 진행되고 있다.
가톨릭대 의대 진단검사의학과 제갈동욱 교수는 “조절 T세포가 발현하는 수용체를 인위적으로 정상 T세포에 발현시키는 임상시험이 국내에서도 현재 진행 중”이라며 “이 임상시험이 성공한다면 난치병으로 알려진 루푸스, 1형 당뇨병, 류마티스관절염과 같은 자가면역병을 치료할 수 있는 기반이 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