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인이 자율주행 레벨 0~5 개념 고쳤다
레벌 0~3 운전자가 위험상황에 개입 레벨 4~5 차량이 위험상황을 스스로 해결 한국 연구진이 국제표준 개정 주도
국내 연구진이 세계 자율주행 기술의 수준을 구분하는 국제표준 개정을 주도했다. 그동안 미국을 중심으로 이뤄져 온 자율주행 국제표준 개정 작업을 국내 연구진이 이끌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이번 개정은 자율주행 기술을 0단계부터 5단계까지 구분하는 데 그치지 않고, 각 단계에서 운전자와 자동차가 수행해야 하는 역할을 보다 명확하게 규정한 것이 핵심이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와 한국전자통신연구원(ETRI)은 정보통신방송표준개발지원사업을 통해 자율주행 레벨 국제표준인 ‘SAE J3016’의 개정을 주도했다고 29일 밝혔다. 개정판은 지난 9월 20일 공식 발간됐다.
SAE J3016은 자동차의 운전자 지원 및 자율주행 기술 수준을 레벨 0부터 레벨 5까지 6단계로 나누고, 각 단계의 개념과 용어를 정의한 국제표준이다. 2014년 처음 제정된 이후 세계 자동차 제조사와 부품·소프트웨어 업체는 물론 각국 정부와 국제기구가 자율주행 기술 개발과 관련 제도를 마련하는 기준으로 활용해 왔다.
이번 개정 작업은 ETRI 차홍기 지능정보표준연구실장이 3년 6개월간 총괄했다. 국내 연구진이 미국 중심으로 진행돼 온 표준 개정을 주도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개정의 배경에는 자율주행 기술의 빠른 발전과 그에 따른 소비자 혼란이 있다. 최근 차선 유지와 속도 조절 등 운전자 지원 기능이 자동차에 널리 적용되고, 미국과 중국 등에서는 운전자 없이 운행하는 로보택시 서비스도 확대되고 있다.
이 과정에서 운전자 지원 기능을 완전한 자율주행으로 오인하거나, 국제표준에 없는 ‘레벨 2+’와 같은 비공식 표현이 사용되면서 기술 수준에 대한 혼란이 커졌다.
특히 운전자가 계속 주행 상황을 감시해야 하는 기능과 차량이 스스로 주행을 책임지는 기능을 구분하지 못하면 안전 문제뿐 아니라 사고 발생 시 책임 소재를 판단하는 데도 어려움이 생길 수 있다.
이번 개정은 이러한 혼란을 줄이기 위해 자율주행 단계별로 운전자와 차량이 어떤 역할을 맡는지 구체적으로 드러내는 데 초점을 맞췄다.
기존 표준이 각 단계의 개념을 간략하게 설명하는 데 중점을 뒀다면, 개정판은 운전자와 자동차의 역할 및 개입 범위를 보다 명확하게 구분했다.
레벨 0부터 5까지, 무엇이 달라졌나
자율주행 레벨은 숫자가 높아질수록 운전자의 역할이 줄어들고 차량이 주행을 책임지는 범위가 넓어진다. 이번 개정은 이 차이를 운전자와 차량의 역할을 중심으로 구체화했다.
레벨 0은 자동화된 주행 기능이 없는 단계다. 운전자가 조향과 가속, 제동 등 운전에 필요한 모든 작업을 수행한다. 경고나 일시적인 보조 기능이 작동하더라도 차량이 지속적으로 주행을 제어하지 않는다면 레벨 0에 해당한다.
레벨 1은 운전자 지원 단계다. 차량이 조향 또는 속도 제어 가운데 한 가지를 지원하지만, 운전자가 나머지 주행 작업을 담당해야 한다. 예를 들어 차량이 앞차와의 거리를 유지하며 속도를 조절하더라도 운전자가 직접 방향을 조작해야 하는 경우가 이에 해당한다. 운전자는 주행 상황을 계속 감시하고 필요하면 개입해야 한다.
레벨 2는 부분 자동화 단계다. 차량이 조향과 속도 제어를 동시에 지원한다. 차선 유지와 앞차 간격 조절을 함께 수행하는 기능이 대표적이다. 다만 레벨 2 역시 운전자가 주행 상황을 지속적으로 감시해야 한다. 차량이 조향과 속도를 제어한다고 해서 운전 책임까지 차량에 넘어가는 것은 아니다. 운전자는 언제든 개입할 수 있도록 준비해야 한다.
레벨 3은 조건부 자동화 단계다. 정해진 운행 조건에서는 차량이 주행을 담당하지만, 시스템이 운전자에게 개입을 요청하거나 차량의 고장 등으로 주행을 이어가기 어려운 상황이 발생하면 사람이 운전을 넘겨받아야 한다. 따라서 운전자는 차량이 주행을 수행하는 동안에는 직접 운전하지 않더라도, 시스템의 요청에 대응할 수 있어야 한다.
레벨 4는 고도 자동화 단계다. 정해진 운행 조건 안에서는 차량이 사람의 개입 없이 주행을 수행하고, 위험 상황이 발생하더라도 스스로 위험을 완화할 수 있다. 운전자가 즉시 운전을 넘겨받지 않아도 되는 단계라는 점에서 레벨 3과 구분된다. 다만 자율주행이 가능한 장소와 도로, 기상 조건 등 운행 범위에는 제한이 있을 수 있다.
레벨 5는 완전 자동화 단계다. 사람이 운전할 수 있는 모든 조건에서 차량이 스스로 주행하며 운전자 개입이 필요하지 않다. 특정 도로나 지역, 기상 조건에 제한되지 않는다는 점에서 레벨 4와 차이가 있다.
결국 레벨 1과 2는 운전자가 주행을 계속 감독해야 하는 운전자 지원 단계인 반면, 레벨 3부터는 정해진 조건에서 차량이 주행을 맡는다. 레벨 3에서는 필요할 때 사람이 운전을 넘겨받아야 하지만, 레벨 4와 5에서는 차량이 스스로 위험을 처리할 수 있다는 점이 핵심적인 차이다.
자율주행 기술 개발과 안전·책임 기준에도 영향
이번 개정으로 자율주행 관련 기업과 기관은 기술 개발과 안전 설계에 보다 명확한 기준을 활용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자동차 제조사와 부품·소프트웨어 기업은 개발하려는 기능이 어느 자율주행 단계에 해당하는지 판단하고, 그에 맞춰 운전자와 차량의 역할을 설계할 수 있다.
규제·보험 관련 기관과 각국 정부에도 중요한 기준이 될 전망이다. 자율주행 단계에 따라 운전자의 주의 의무와 차량 시스템의 책임 범위가 달라질 수 있기 때문이다. 사고가 발생했을 때 운전자가 주행을 감시해야 했는지, 차량이 스스로 위험을 회피할 책임이 있었는지 등을 판단하는 데도 단계별 역할 구분이 활용될 수 있다.
소비자 입장에서도 자동차에 탑재된 기능을 정확하게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될 것으로 보인다. 특히 레벨 2 기능을 갖춘 차량을 완전한 자율주행차로 오인하는 문제를 줄이고, 운전자가 언제까지 주행을 감시하고 개입해야 하는지 이해하는 데 기준을 제공할 수 있다.
과기정통부 관계자는 “운전자 보조 기능이 고도화되고 로보택시 등 자율주행 서비스가 확대되면서 국제적으로 통용되는 명확한 표준의 중요성이 커지고 있다”며 “국내 연구진이 국제표준 개정을 주도한 것은 의미 있는 성과”라고 밝혔다.
이어 “앞으로도 우리나라가 자율주행 분야 국제표준을 선도할 수 있도록 적극 지원해 나가겠다”고 말했다.
이번 SAE J3016 개정은 자율주행 기술의 발전 속도에 맞춰 운전자와 차량의 역할을 다시 정립했다는 데 의미가 있다. 자율주행이 고도화될수록 중요한 것은 차량이 얼마나 많은 기능을 수행하느냐뿐 아니라, 어떤 상황에서 누가 주행을 책임지는지를 명확히 하는 일이다. 이번 국제표준 개정이 자율주행 기술의 안전성과 신뢰성을 높이는 기준으로 자리 잡을 수 있을지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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