속도라는 장르
[박민설의 촌철심쿵]
- 삶이라는 서스펜스 어둠과 속도로 관객을 압도하는 영화처럼, 우리 삶 역시 이미 눈부신 찰나와 기승전결의 긴장감으로 가득 차 있다.
- 간격이 주는 주체성 결과만 쫓는 성급한 속도에 끌려가지 않고, 삶과 서늘한 간격을 두어 빛을 바라볼 때 비로소 자기 삶의 주인이 된다.
- 속도를 향한 질문 돌이킬 수 없이 매 순간 상영되는 이 엄숙한 서스펜스 앞에서, 당신은 속도를 장악하겠는가, 아니면 끌려다니겠는가.
속도라는 장르
액션신(Scene)을
어두운 곳에서
빠르게 처리하는 것은
얼버무리는 것이다.
뻔하다는 의미에서
클리셰(Cliché)라고
할 수도 있다.
관객의 눈이 따라가는 속도보다
배우 액션이 지나치게 빠르다면
프레임 덜어내고
장면 잘게 토막 내서
속도감 조작했다면
그게 연출의 특별한 문법일까?
어둠을 십분 활용했는가?
아니라면, 의존했다면 타성이다.
공포를 어두침침하게
표현하는 것도 마찬가지.
어둠은 공포의
필요충분조건이 아니다.
영화 위커맨(1973)이나
미드소마(2019)는
화사하고 눈부셔서
오히려 소름 끼치는 스릴러다.
공포를 어둡게만 표현한다면
연출자의 상상력이
한계를 맞았다는
반증일 수 있다.
공포든 사이코패스의 그것이든
호들갑 떨지 않는,
뭉근한 공기가 더 잔인하게
다가온다.
심드렁한 터치가 소름 돋는다.
대개 블록버스터는 속도로
밀어붙인다.
인간의 눈을 따돌리는
절묘한 방법을 쓴다.
관객에게 숨 쉴 틈 주지 않는다.
마치 관객이
생각을 하게 해서는 안
된다는 듯
조바심을 낸다.
다그치며 다가온다.
그럴 때 관객은 자신을
온전히 내어주게 된다.
저는 사라지고 가슴 쿵쾅거리는
속도만 남는다.
영화가 끝났을 때
참았던 숨 몰아쉬게 된다.
장면전환이 빠른 영화는
관객 휘어잡으려는 의도를
노골적으로
드러내 보이는 것이다.
인간을 압도하겠다는
의지 피력한 것이다.
영화와 관객 사이
그 선선한 간격이 없다.
그것은 성급한 프러포즈와 같다.
스피드로 승부 보려는
계산과 같다.
상대가 정신 차리지 못하도록
밀어붙여
마침내 항복 받아내려는
구애의 과정과 같다.
정신 차려보면
두 사람은 이미 결혼식장에
서 있다.
속도로 밀어붙이는 영화는
호르몬 통제하려는
의도 들키고 만다.
아드레날린 쏟아지는 영화가
나쁘다는 얘기는 아니다.
다만 일회용이다.
반면 에너지 요동치는
영화가 있다.
그러면서도 관객과 조금쯤
떨어져
서로를 볼 수 있게 하는 영화.
영화와 관객의 관계가 대등한
영화.
시퀀스(Sequence)마다
기승전결 있으면서도
이야기 느리게 전개되는 영화.
지루하다, 기괴하다 말들 하지만
환각제가 아니라 각성제인 영화.

영화뿐 아니라 세상 모든 일에
속도라는 장르가 있다.
간격이라는 진실 있다.
속도로써 호르몬
장악당하는 것을
사람들은 재미라고 부른다.
클리프행어(Cliffhanger)로써
납치되고 감금되는 것을
서스펜스라고 부른다.
우리 생의 영화도 매 순간
크랭크인(Crank in)된다.
우리 가슴이 스크린이다.
때로 저 하늘에 상영된다.
그 어떤 장면이 있어도
상영금지 가처분 조치는
내려지지 않는다.
음산한 먹장구름은
바로 다음에 올
시원한 소나기 장면을
예고하는 복선이다.
폭풍은 미세먼지와 녹조,
적조가 사라진다는 암시다.
구름과 해와 달과 별은
미장센(Mise-en-scène)이다.
새들은 지나가는
행인1, 행인2다.
순간은 우리를 노려보고 있다.
한 방향으로 흐르고 있다.
이 순간은 지나고 나면
다시 돌아오지 않는다.
이 얼마나 잔인한 진실인가.
우리의 ‘순간’은
이미 서스펜스 (Suspense)로
가득 차 있다.
삶을 지루한 아날로그로
생각할 때
따로 서스펜스를 찾게 되는 것.
에너지가 꼭 속도에서
나오는 것만은 아니다.
그때 거기 그대 삶의 기승전결이
통째로 촘촘히 연결되어
있었는가가 중요하다.
결과만을 숭상하는
족속들 사이에서
높고 고독한 ‘원인’의 포지션에
서 있었는가가 중요하다.
깨달음이 고향처럼 내내
함께 가는가가 중요하다.
우리 생은 돌이킬 수 없는
전략 게임.
숨 막히는 서스펜스다.
매 순간 GG* 난다.
서늘한 간격을 두지 않는 한
빛과 나란히 걷지 않는 한
속도를 장악하지 않는 한!
속도에 끌려다닐 것이냐
장악할 것이냐.
그림자를 볼 것이냐
빛을 볼 것이냐.
* ‘Good Game’의 줄임말로 “좋은 게임이었다”는 뜻. 멀티 플레이 게임에서 게임이 불리해져서 이길 가능성이 없을 때 패배를 인정하고 게임을 포기한다는 의미로 쓴다. 보통 “GG 친다”고 한다. 승패에 상관 없이 수고한 상대에게 수고했다는 의미로 쓰는 스포츠맨십의 표현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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