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름 뚫는 용 셋, 오백 깃발이 펄럭인다?
[정훈의 ‘일본의 姓氏 이야기’] 일본인도 못 읽는 성씨의 기묘한 신화
- [1분 핵심요약]
- 기상천외한 성씨 한자 6자로 된 ‘다이토(たいと)’처럼 일본인조차 읽지 못하는 희성(稀姓) 뒤에는 버블 경제 시절의 압도적인 부(富)와 같은 강렬한 에피소드가 숨어 있다.
- 이름 속의 역사 정치학자 이오키베 마코토의 성씨 ‘이오키베(五百旗頭)’는 500개의 깃발을 뜻하며, 그 유래는 허구의 역사인 ‘삼한 정벌론’에 맞닿아 있다.
- 문화적 박물관 일본의 성씨는 단순한 호칭을 넘어 개인의 자부심과 국가적 신화가 겹겹이 쌓인 문화적 결정체다.
- [The Insight - 행간의 재구성]
- 암호화된 신분 일본의 난해한 성씨는 어쩌면 ‘지적·경제적 계급’의 암호일지 모릅니다. 어떤 특권적 지위를 공고히 하며 상징하는 것이죠.
- 허구의 실체화 ‘삼한 정벌론’이라는 허구의 역사도 성씨(이오키베)와 연결되면서 마치 부정할 수 없는 실체와 권위로 둔갑하죠.
- 박제된 정체성 억 엔의 현금(부)과 500개의 깃발(신화)이 공존하는 일본의 성씨는, 현대 자본주의 시대에도 살아 있는 ‘기묘한 정신적 박물관’의 단면이라 할 것입니다.
용 세마리, 구름 세 겹
몇년 전 일본의 최대 일간지 요미우리(讀賣) 신문에는 일본의 성씨(姓氏)와 관련, 재미있는 문제가 출제된 적이 있었다. 한자(漢字) 6개로 된 성씨(姓氏)인데 읽는 방법을 물은 것이다.

일본에는 성씨가 많은만큼 희성(稀姓)도 많은데 이날 요미우리가 질문한 이 성씨는 일본인들도 ” 이런 성씨가 있었나? ” 할 정도로 실로 기상천외했다. 그만큼 이를 제대로 읽을 수 있는 일본인도 거의 없었다.
그런데 이 성씨에 얽힌 에피소드도 실로 기가 막힐 지경이다.
증권사에 나타난 억대 청년부호..너의 이름은
일본경제의 호황기인 지난 1980년대, 동경의 닛코(日興)증권 어느 지점에 한 젊은 청년이 나타났다.그는 당시 가장 잘 나가는 회사의 주식을 억(億)엔 단위로 주문한다. 그것도 전액 현찰로. 현찰은 만엔 권으로 가방 속에 들어 있었다.
그러자 증권사 지점은 난리가 났다. 지점장 이하 모든 직원들이 일손을 멈추고 시선은 온통 이 청년을 향했다.
청년은 지점장에게 말했다.
“나는 수상한 사람이 아닙니다. 돈을 은행에서 수표로 바꿔와야 하는데 번거로워서 그냥왔다”고 설명했다.
지점장이 청년에게 성함을 묻자 그 대답에 또 한번 난리가 났다. 주식 주문용지에 한자로 성함을 쓰는데 이를 읽을 수 있는 직원이 아무도 없었다.한자로 구름 ‘운(雲)’字 3개를 위에 쓰고, 또 그 밑에 ‘용(龍)’字 세개를 써 한자 여섯개를 묶어 성씨라고 내놓았으니...
그 청년은 자신의 성씨는 ‘다이토’(たいと)라고 말했다. ‘세 마리의 용이 구름 세 가닥에 올라 승천한다는 의미’라고 친절하게 설명하기까지 했다.
후일담이지만 닛코 증권에는 백만 명에 이르는 고객 명단이 있었는데 검색결과 ‘다이토’라는 이름의 고객이 또 한 사람 있었던 것으로 밝혀졌다.
허구의 ‘삼한 정벌론’에 등장하는 ‘희성’
버블 경제의 화려함이 낳은 기상천외한 ‘다이토’가 있다면, 역사적 허구와 가문의 자부심이 얽힌 또 다른 희성(稀姓)도 있다. 바로 일본인조차 읽기 버거운 ‘이오키베(五百旗頭)’ 가문이다.
이노키베 모코토(五百旗頭眞)이라는 이름을 가진 분이 있었다. 오백기두(五百旗頭)가 성(姓)이고 진(眞)이 이름인데, 일본인들의 성씨는 대개 두개의 한자로 이루어져 있는 것을 감안하면 오백기두(五百旗頭)는 네 글자로 돼 있는 것이 특이하다. 물론 앞서 언급한 다이토라는 사람은 말할 것도 없지만.
이오키베 마코토는 정치학자로서 일본정치학회 회장, 방위대학교(3士官 통합大)총장 등을 역임, 국내의 관련 학계에도 어느 정도 알려져 있는 인물로 몇년 전 타계했다. 그 성씨의 내력은 잘 모르는 분들이 대부분이다.

‘이오키베’라는 가문은 일본 왕실과 관련이 있는 명문가이다. AD 720년에 쓰여진 ‘일본서기(日本書紀_’에 따르면 3세기경 일본의 제14대 주아이(仲哀)왕의 부인 진구(神功)왕후는 남편이 죽은 후 섭정이 되었다. 그녀는 군사를 동원해서 신라 침략에 나섰는데 신라는 조공을 바치기로 하고 화해했다.
여기에 고구려와 백제도 일본에 자진해서 고개를 숙이고 들어왔다고 했다. 이것이 바로 일본의 관변 사학계가 주장하는 소위 ’ 삼한 정벌론’으로서 완전한 허구이다.
‘이오키베’는 호족으로 진구 왕후가 출정할 당시, 5백 개의 깃발을 앞세워 행군했는데 그 공적을 기려 ‘이오키베’라는 성(姓)을 하사했다고 한다. 군사 행렬이나 재례의식 때의 소위 깃발부대로서 이오키베는 그 5백 명의 지휘관이었던 셈이다. 성씨 하나에 국가적 허구인 ‘삼한 정벌론’이 문장(紋章)처럼 박혀 있는 것이다.
이 ‘이오키베’라는 성씨를 제대로 읽을 수 있다면 일본인으로서는 대단한 유식자라고 할 수 있겠다.
이처럼 일본의 성씨는 단순한 호칭을 넘어, 누군가에겐 ‘억 엔의 자부심’이었고 누군가에겐 가문의 신화가 박제된 ‘문화적 박물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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