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거 후 스트레스성 장애’ 극복하려면
[김동은의 오만가지 사람마음] ‘집단적 충격’에 좌절·분노 감정 잘 안고쳐져 먼저 결과에 편히 얘기하며 스트레스 풀어야 나라의 미래를 위해 ‘치유 프로그램’ 가동해야
선거후의 풍경
선거는 끝났다. 그러나 선거 이후의 이야기들은 끝나지 않았다. 집집마다 가족들이 선거 결과에 대해서, 혹은 대통령 당선자에 대해서 왈가왈부한다. 필자가 아는 집안에는 신앙이 좋은 권사님이 계신다. 그 권사님은 신앙 생활에서 모범이 되고 가정 생활면에서도 자녀로부터 존경을 받으며 살아왔다. 그런데 선거 이후에 자녀들의 태도가 달라졌다고 호소한다. 자신이 무슨 큰 죄를 지은 것처럼 자녀들이 자신을 쳐다본다고 한다. 자식들이 원하는 후보를 찍지 않고, 아는 분이 보내 준 유튜브나 즐겨 듣는 목사님의 설교시간에 알게 된 정보를 바탕으로 다른 후보를 찍었을 뿐인데, 자녀들이 자신 때문에 선거에 진 것처럼 말한다고 한다.
필자가 아는 어떤 청년은 보수 후보를 찍었다. 보수 후보는 동성애를 확실하게 반대했기 때문에 찍었다고 말하자 주변 친구들이 “넌 대통령 선거하는데 동성애가 그렇게 중요하냐”고 면박을 당했다고 전했다. 자신이 가진 중요한 가치관이라서 그 부분을 보고 찍은 것이 잘못이냐고 항변한다. 자신이 지지한 후보가 당선이 돼도 즐거워 할 수 없는 심정이라고 말한다.
떨어진 후보를 지지한 사람들은 무력감에 시달린다. 일이 손에 잡히지 않는다고 한다. 가족이든 친구든, 자신과 다르게 딴 후보를 지지한 사람이 보기 싫다. 자신이 선택한 후보가 낙선한 이유가 그 사람 탓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아무리 생각해봐도 그 사람이 대통령이 될 사람이 아닌데 대통령이 되었다고 푸념도 한다. 사무실에 가서 자신이 찍은 후보가 대통령이 되었다고 희희낙락하는 작장 상사의 거드름을 보고 있자면, 하루 종일 홧병이 나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는 하소연도 있다.
이 모든 현상이 선거후 나타나는 ‘스트레성 장애’라 말할 수 있다. 국가나 사회가 공동으로 겪게 되는 충격을 보통은 ‘역사 트라우마’ 또는 ‘집단 트라우마’라 한다. 선거가 국가의 행사임에도 사람들에게 충격을 안겨주는 측면에서 트라우마적 증세가 나타나기 때문에 ‘선거후 외상성 장애’라 할 수 있다.
왜 집단 트라우마가 생길까?
집단 트라우마가 발생하는 요인은 다양하다. 전쟁이나 식민지 피해를 겪은 국가가 대표적이다. 일제 식민지를 겪고 전쟁을 경험한 한국은 집단적인 경험을 통해 일본에 대한 반감, 북한 공산주의에 대한 반감이 크다. 독일과 이스라엘도 마찬가지다. 유대인들이 독일군에게 당한 고통은 세대를 뛰어넘어 이어지고 있다. 이 고통을 겪은 세대들에게 다양한 이유를 들면서 이해시키고 극복하라고 말해봤자 소용이 없는 일이다.
트라우마를 경험한 개인들도 마찬가지다. 베트남 전쟁을 경험하고 돌아 온 병사는 안락한 집안에서 살면서 천둥이나 자동차 크락션만 울려도 전쟁 상황으로 느끼며 공포에 떨게 된다. 폭력을 당한 사람은 폭력을 가했던 사람과 인상, 목소리만 비슷한 사람을 봐도 신체가 긴장한다. 이를 치료하기 위한 노력이 있지만 효과는 높지 않다.
긴장과 공포, 상실과 슬픔은 논리적인 설득과 이해로 완화되지 않는다. 뇌신경 가운데 감정을 관장하는 변연계가 이완되고 수정되기까지는 많은 시간이 걸린다. 학자들은 변연계의 변화를 위해서는 공명이 중요하다고 말한다. 공명이란 공감을 뜻한다. 자신의 감정을 이해하고 함께 해주는 시간이 필요하다. 그런 다음에 변연계가 수정되면서 대뇌피질의 사고기능이 활성화된다고 한다.
독일과 유태인의 화해 프로그램은 2차 세계 대전이 끝난 후 50년이 지나서야 시도되었다. 유대인으로서 수용소에서 갇혀있었던 아버지를 둔 자식이 독일과 화해를 도모하는 ‘역사의 상처 치유’라는 프로그램은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집단 학살 문제에 대한 아르메니아와 터키, 그리고 일본, 한국, 중국에서도 시도됐다. 화해와 치유 프로그램은 광주 민주화 운동에서도 시도되었다. 이는 개인과 가족을 대상으로 하는 치유와는 다른 방향이다. 문화적이며 집단적이다.
미래를 위해서
집단적 외상은 쉽게 낫지 않는다. 쉽게 아물지 않는 상처는 문화적 갈등을 낳게 된다. 가족 간의, 집단 간의 반목과 불화는 보이지 않는 분노와 사회적 비용을 낳게 마련이다. 그래서 이를 치유하기 위한 첫 단계 방법이 ‘이야기하기’다. 그냥 자신의 경험과 시각을 말하게 하는 것이다. 이번 선거를 치르는 과정에 대해서도 말하지 못하는 사람들이 많다. 자신이 특정 후보를 지지했던 이유와 다른 후보를 싫어한 이유를 언론을 통해서 알고 있을 뿐이다. 모든 사람은 저마다 선택하는 이유가 있다. 그 말을 하는 게 중요하다.
이번 선거에서는 누구를 지지해서 선택한 사람도 있지만 상대 후보가 당선되는 것이 싫어서 투표를 한 사람도 있다. 그들의 이야기를 듣는 과정은 방송이 담지 못한다. 가족간에, 친구간에, 직장안에서, 상대의 이유를 나눠들어볼 필요가 있다. 그러나 지금은 선거 결과로 인해 기뻐하거나 좌절하거나 말하지 못하는 기간이다. 이 기간이 끝나는 시간에는 각자가 말하는 시간이 필요하다. 맞고 틀리고가 아니라, 각자가 성숙한 사회를 만들기 위한 자세로서의 들어주기다.
자신이 선택한 후보가 낙선한 진영은 분노와 무기력에 사로잡혀 있을 것이다. 그러나 성숙한 사람만이 상대의 말을 들어줄 수 있다. 상대의 말을 들어줌으로써 자신과 집단의 방향을 설계할 수 있다. 좌절에서 다시 도약하기 위한 안정과 치유가 필요한 시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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