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소년을 위한, 풀뿌리 관계맺기운동 벌이자

[김세준의 오만가지 사람마음] 지금 청소년은 외톨이다. 어른은 갈등에서 회복할 수 있지만 청소년들은 회복 탈출구 모른다. 물질만능 사회가 만들어놓은 우울증 국가 대신, 풀뿌리 자원봉사 활동을

사회적협동조합 송악동네사람들이 운영한 청청캠프.
사회적협동조합 송악동네사람들이 운영한 청청캠프.

한국은 부끄럽게 OECD국가 중 자살률 1위다. 변함 없는 부동의 1위다. 월드컵 16강으로 자긍심이 올라가고 경제적 부흥으로 자축하는 순간에도 어디선가 자살이라는 방법으로 죽어가는 사람이 많다는 사실은 우리의 어두운 그림자다. 그 가운데 청소년들의 죽음은 우리를 더 안타깝게 한다. 최근 고등학교 여학생 3명의 동반자살은 우리를 더욱 충격에 빠지게 만들었다.

우리는 누구나 청소년기를 지나왔다. 그래서 청소년 시절을 다 아는 듯 우리도 그때는 힘들었다는 식으로 말한다. 하지만 오늘을 사는 청소년은 예전 시대와 다른 시간 속에 살고 있다. 그래서 과거의 청소년과 지금의 청소년은 다르다.

우을증을 겪는 청소년들은 정작 자신이 우울증에 걸린 사실을 모른 채 짜증과 분노로 표현한다.
우을증을 겪는 청소년들은 정작 자신이 우울증에 걸린 사실을 모른 채 짜증과 분노로 표현한다.

지금 청소년은 옛날 청소년과 다르다

지금 청소년들은 관계 범위가 적다. 소수의 몇몇만 관계하고 있을 뿐이다. 가족과 친구 몇이랄까. 예전에는 형제도 많고 친척도 많았다. 물론 친구도 많았다. 관계가 많은 것이 안전망이 될 수 있었다. 하지만 지금 청소년들은 외로울 뿐이다. 외톨이다. 가족이 있지만, 이들과 한번이라도 감정적 갈등을 겪고 나면 회복할 수 없다. 어른들은 회복하고 괜찮은 척 살 수 있지만 청소년들은 회복이라는 탈출구를 모른다. 그냥 묻어두고 살 뿐이다. 그래서 게임에 빠지고 가상 세계가 위안이 된다.

청소년 우울증은 이제 넓게 퍼졌고, 깊어지고 있다. 이를 청소년 당사자들은 모른다. 우울한데 우울감을 인정하지 못하기 때문에 대신 짜증과 분노로 표현한다. 주변에서는 그 청소년의 우울은 보지 못하고 짜증과 분노을 일으키는 것만 보고 청소년기의 특징이라고 간단히 치부한다. 그래서 청소년은 감정 상태의 불균형으로 여기저기 아프고 힘들다. 그렇다고 병원에 가보았자 뚜렷한 병증은 없다.

자료=통계청. 그림= 중앙일보
자료=통계청. 그림= 중앙일보

통계청이 발표한 10대들의 자살률 추이를 보면 2001년에 10만명당 3.4명이었던게 2023년은 7.9명으로 나타난다. 20년 동안 2배로 늘어난 것이다. 최근 청소년 정책연구원에서 발표한 조사에서는 청소년 10명 중 3명이 자살을 생각한 적이 있다고 나왔다. 또한 18세 정신과를 찾았던 18세미만 아동 청소년 환자는 2020년에 비해 2배로 늘었으며(건강보험 심사평가원), 2017년에 비해 3배가 늘었다. 그 이유는 무엇일까?

청소년 자살충동 경험비율.
청소년 자살충동 경험비율.

어른들이 인정해야할 청소년 자살 이유

보편적인 이유는 학업 스트레스다. 청소년이 우울증에 걸리고 자살을 하면 부모의 책임으로 돌리는 경향이 있는데 부모에게 원인이 있을 수도 있지만, 주변과 사회 환경이 이들을 우울하게 만들고 자살로 이끌었다고 보는 게 더 타당하다. 미디어도, 친구도, 사회도 시험 성적만 이야기하는 구조에서 말 그대로 숨이 막히는 게 당연하다. 청소년이 스스로를 몰아붙이고 자신을 학대하는 심리적 구조가 형성되게 한다.

다음으로 깨진 가정이다. 사회나 학교에서 힘들면 가정이 위안이 되어야 하는데, 가정은 다양한 이유로 갈등의 온상이다. 전통적으로 가정은 심리적 안전지대였다. 청소년들이 스스로 자립할 수 있는 특성을 키워주고, 인간관계의 기초를 형성시키고, 자신을 돌보고 미래에 가족을 이끌 수 있는 심리적 물질적 지원을 했다. 하지만 이제는 가정이 전통적 따뜻함을 제공하지 못한다.

현대에는 가족의 전통적 기능이 약화되고 가족의 구조도 변했다. 이혼율의 증가는 경제, 자녀양육, 교육문제, 가사문제 등 많은 문제를 낳는다. 또한 맞벌이 부부의 증가는 자녀들이 혼자서 인터넷 사용을 생활화하게 만들었다. 또한 인터넷의 생활화는 부모와의 친밀한 관계를 어렵게 만드는 결과를 가져왔다.

이 모든 원인을 능가하는 가장 큰 원인은 ‘물질만능의 시대사(史)’이다. 미디어에서 연예인들은 소득을 경쟁하듯이 이야기하고 건물주를 대단한 위치인양 추앙한다. 초등학교 희망 직업도 건물주라고 말하기까지 하는 현상은, 대학에 진학하고 직업을 갖는 것이 자기계발과 자기발전이라는 의미 대신 끊임없는 비교로 자기를 초라하게 만드는 분위기를 만들어냈다.

이러한 변화들은 위기의 청소년들을 양산했고 급기야 국가도 이 문제에 적극적 개입하기에 이르렀다. 청소년센터를 만들고, 전문 청소년 상담사를 양성했으며, 학교에 상담 교사를 의무적으로 배치했다. 하지만 청소년들의 자살은 그런 제도적 장치와 무관하게 일어나고 있다. 줄기는커녕 심각성이 더 커지고 있다. 어떻게 대안을 모색해야 할까?

지역 청년과 청소년의 관계 맺기 운동을

이에 대해 또 하나 문제제기만 더하는 꼴이 될지 모르지만, 인식을 바꾸는 변화를 통해 새로운 시도를 해볼 수는 있다. 첫째는 국가 주도적 장치의 한계를 인정하자. 순수한 봉사활동이나 청소년 지원활동들이 제도화되면서 자발적 행위를 막고 행정적 시스템으로 전락해버렸다는 사실이다. 기쁜 마음으로 청소년 지원활동을 했던 청년들이나 성인들의 모습은 사라지고, 행정적인 청소년 지원단체나 전문가들이 점차적으로 국가 예산을 따기 위한 프로그램을 내놓고 스스로 급여를 받는 전문가로 자리잡아 가고 있다.

두 번째는 지역사회 공동체를 활성화하자. 아파트에 살면서 10년이 되고 20년이 되어도 앞집에 누가 사는지 모르는 현실이다. 예전에는 반상회다 뭐다 하면서 동네 누구 집에 어떤 자식이 있는지 알았던 때도 있었다. 다시 풀뿌리 공동체를 활성화해야 한다. 필자는 풀뿌리 공동체 운동이 청소년센터보다 낫다고 생각한다. 또는 상담실이 아닌 곳에서 청소년들이 서로의 상담자 역할을 하는, ‘또래 상담사 운동’도 하나의 방법이라 생각한다. 특별한 능력이 있는 사람이 상담하는 것이 아니다. 누구나 서로를 돕는 능력은 있다. 청소년도 있다. 그 능력을 보편화하고 활용해야 한다.

글쓴이

김세준 역할상담연구소 대표

김세준은 젊은시절 시민운동 단체와 연예 기획사에서 일했다. 이후 상담심리를 전공하고 여러 대학에서 강의하면서 20년간 상담을 해왔다. 또한 SBS 「미워도 다시 한번」, EBS「고부가 달라졌어요」,「아이가 달라졌어요」,채널A 「그여자 그 남자」등에서 드라마치료를 진행했다. 지금은 유투브「상담 만화방」을 운영하고 “역할상담연구소”라는 상담실을 운영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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