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려움 앞에 ‘너무나 인간적인’ 윤석열
이성적으로 설명 안되는 윤석열 행동 ‘순응할수록 위험 빨리 올 거’란 두려움 ‘자신 구해줄 구원자 기다리자’는 심리? ‘조금만 더 버티면 끝난다’는 희망도.. 아니면, 지지자들에게 통제당하고 있거나
옷 입고 특검팀 따라가면 됐을텐데
지난 1일 김건희 특검팀은 윤석열에 대해 체포영장을 집행하기 위해서 서울 구치소를 찾았다. 하지만 2시간 동안 체포를 위해 노력했지만 실패했다. 특검팀의 발표에 의하면 특검팀이 윤석열이 있는 독방에 들어가자 윤석열은 수의를 벗고 속옷 차림으로 강제구인을 거부했다고 한다. 이후 정성호 법무부 장관은 체포 영장 집행 과정을 구체적으로 설명하면서 “반팔 상하의를 정상적으로 입고 있다가 특검팀이 체포 영장을 시도하자 수의를 벗었고 특검팀이 나가자 바로 입었다”고 한다. 쉽게 말해서 특검팀이 가자고 하니까 옷을 벗고 땡깡 부렸다는 것이다.
이후 윤석열 측은 옷을 벗고 있는 상황에서 특검팀이 들어왔을 뿐 평소에도 체온 조절을 위해 자주 옷을 벗고 있는다고 해명했다. 그 해명을 듣고 있으면 당연히 드는 의문은 특검팀에게 기다리라고 하고 옷을 입고 따라 가면 그만인데 왜 안그랬을까 하는 것이다. 거기엔 옷을 벗었던 설명만 있을 뿐 특검팀을 따라가지 않은 이유는 어디에도 없다.
인간적인, 너무나 인간적인 윤석열
윤석열이 옷을 벗고 ‘안 갈래’하는 태도를 보인 것에서 사람들은 대통령이나 하던 사람이 그랬다고 하니까 도저히 이해를 못하고 있다. 하지만 윤석열의 태도는 인간의 매우 보편적 태도를 보여주는 것이라는 점에서, 그 행동을 이해하지 못하는 우리의 시각 역시 너무 이상적이기만 한 게 아닐까 생각하게 된다. 윤석열의 태도는 어느 점에서 그렇게 인간적이란 말일까.
먼저 생각해 볼 윤석열의 마음은, 특검의 지시에 순응하면 순응할수록 죽음의 순간이 더 빨리 온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는 점이다. 돼지들도 도살장에 끌려가기까지 얼마나 몸부림치는가? 인간은 동물과 다르다고 말할지 모르지만, 죽음 앞에서는 대단히 인간적임을 넘어서 동물적이 되어 가는 게 본능이다. 대통령이나 했던 사람이, 검찰 총장까지 했던 엘리트가 어쩜 저럴 수 있냐고 말하지만 세상의 모든 문학과 영화 예술은 그런 사회적 가면을 벗으면 똑같이 더럽고 음탕하고 본능적이라는 사실을 알려주고 있다. 다만 일반 대중은 아직도 환상을 가지고 있을 뿐.
두 번째는 윤석열 자신은 아직도 자신이 이 나라를 구하려 했다는 ‘구원자 콤플렉스’를 가지고 있을 수 있다. 자신은 국민을 위해 계엄을 했고 중국의 영향력에서 이 나라를 구원하려 했다. 자신의 행동을 지지하는 유튜브를 보며 자신을 찬양하는 소리로 들었고 거리에 모여있는 수 많은 태극기를 보며 자신이야말로 이 나라를 구원하고 있는 ‘의인’이라 생각했을 수 있다. 그런 자신이 감옥에 있는 것은, 악의 무리들에게 자신이 핍박받고 있기 때문이라고 믿고 있을지 모른다. 결국 또 다른 구원자가 자신을 구원해 줄 것이라는 믿음은 자라게 된다.
예를 들면 얼마 전 왔던 모스 탄 전 미 국무부 국제형사사법 대사처럼, 자신의 무죄와 석방을 위해 스피커 역할을 하는 사람 말이다. 모스 탄 대사가 자신을 지지하는 것은, 미국이 자신을 위해 힘을 쓸 것이라는 신념의 바탕이 된다. 그와 더불어 구치소 밖에서 “대통령님 힘내십시오“라는 구호를 외치는 소수의 지지자들도 자신의 신념을 더 굳게 만드는 기초가 된다.

정상적인 사고체계가 무너져 있을지도
세 번째는, 자신이 이제까지 지은 죄들을 계산해 보면 도저히 답이 나오지 않기 때문일 수도 있다. 결과적으로 무기징역 아니면 사형이라는 형벌을 이길 자신은 없다. 마음속으로는 수년이 지나야 사면이라도 가능하지 않을까 하는 희망을 가지기도 힘들다. 생각하면 할수록 답이 나오지 않는 상황이 되면 할 수 있는 것은, 자신만의 방법으로 저항하는 수 밖에 없다고 생각하게 될 것이다.
‘조금만 더 버티자.’ 조금만 더 거부하면 특검의 시간이 저물고 재판만 남을 텐데, 그 재판을 통해 자신을 우호적으로 대변해 줄 판사 집단을 기대할 수도 있다. 지금 자기를 죽이려드는 특검에 끌려가면 자신은 아무 희망이 없어진다. 그렇다면 조폭이 하던 짓이라 비난하든 말든 자신은 버티는 것이 생명을 연장하는 길이고, 실낱같은 희망을 가질 수 있다고 믿고 있을 것이다.
네 번째, 윤석열은 사고와 행동을 주체적으로 할 수 없는 무기체일지도 모른다. 자신이 지시하고 통제하던 법률가 집단 또는 지지 세력들이 힘을 축적하고 자율성이 커지면서, 구치소에서 상징적인 존재로만 기능하는 윤석열을 통제하기 시작했다고 볼 수 있다. 그들은 윤석열을 위해 존재하던 방식에서 벗어나 자신의 이익과 필요에 의해 윤석열을 통제하기 시작한 것일지 모른다. 누우라면 눕고 벗으라면 벗어야 하는 상황까지 온 것이다. 지금까지는 윤석열이 존재감을 드러내야 밖에 있는 세력들이 자신들이 추구하는 욕망을 확장하기에 유용하다고 생각할 수 있는 것이다.
이유가 무엇이든 옷을 벗고 드러누운 전직 대통령의 모습을 보면서 한 때 대통령으로 알고 지냈던 사람의 실체를 우리는 보고 있다. 이 모습을 통해 반면교사로 우리의 무지와 인간의 나약함의 실체를 확인하는 기회로 삼아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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