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정폭력의 풍경...자녀들이 따라한다면

[김동은의 오만가지 사람마음] 폭력행위 남편들, 대화로 해결하는 방법 몰라 “당신의 자녀는 어떻게 대처할까”에 흔들려

가정내 폭력은 처음에는 사소한 다툼에서 시작한다. 사진= 연합뉴스
가정내 폭력은 처음에는 사소한 다툼에서 시작한다. 사진= 연합뉴스

저 나라나, 이 나라나

영화배우 윌 스미스가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코미디언 크리스 록의 빰을 갈겼다. 모두가 알다시피 자신의 아내의 머리를 가지고 농담을 한 것이 화근이었다. 이후 윌 스미스는 폭력의 대가를 톡톡히 치루고 있다. 윌 스미스 입장에는 크리스 록이 자신의 폭력을 부추겼다고 할 것이다. 자신의 분노 버튼을 눌렀다고 말이다.

가정에서도 폭력이 일어나는 장면은 이와 비슷하다. 남편이든 아내든 언성을 올리면 상대는 피하거나 화를 낸다. 그 화가 폭력으로 번지면서 가정폭력이 시작된다. 그 폭력적 상황은 한 번에 끝나지 않고 오랫동안 지속되기 때문에 문제가 심각하다. 심지어 자녀에게까지 대물림되기도 한다.

수강명령을 듣는 남편들

가정폭력이 일어나면 예전에는 가정 안에서 끝나지만, 요즘은 경찰이 출동하고 심지어 형사처벌을 받는 시대이다. 이 형벌 가운데 수강명령 처분이 있다. 가정폭력 예방에 관한 강의를 일정시간 듣게 하는 처벌이다. 상담하는 사람이나 변호사등 전문가들로 구성된 강사들이 이들에게 다양한 내용의 교육을 하게 된다. 필자도 이 강의를 몇 번 해 본 경험이 있다.

강의실에 들어가면 남성들이 교실 한 쪽에서 웅성웅성 모여 있다. 강사가 와도 강의를 들으려 하지 않는다. 그들은 모두 자신이 왜 여기서 이런 강의를 들어야 하는지 모른다. ‘재수가 없어서’ ‘못된 아내’ 때문에 끌려왔다고 생각할 뿐이다. 강사인 필자는 그들을 설득하고 꼬시고 아양을 떨면서 억지로 강의를 해야 한다. 잠을 자도 딴 짓을 해도 마땅히 제재할 권한은 없다.

강의는 보통 몇 주씩 계속 이뤄지는데, 어느 정도 농담할 만큼 스스럼없어질 때쯤, 필자는 역할극을 제안한다. 4~5명이 함께 가정 폭력이 일어났던 상황을 만들어 보는 작업이다. 그들은 자신의 억울함을 호소하듯이 열심히 역할극을 만들고 발표하기 시작한다. 남자들이 아내역도 맡고 자식 역할을 맡기도 하면서 말이다.

한 팀이 발표한 내용은 다음과 같았다. 피곤하게 일하고 들어온 남편에게 아내는 잔소리를 한다. “너는 너의 집만 중요 하냐, 우리 집에는 한 번도 안 찾아가보고...”라며 사소한 잔소리가 시작된다. 보통은 아내가 잔소리를 하면 남성은 “에이, 씨”하고 배란다로 가서 담배를 피러 나간다. 그런데 어떤 하루는 잔소리하는 아내의 얼굴을 발로 찬 것이다.

남성들은 이 정도의 일로 자신이 잡혀 올 일이냐고 하소연 한다. 그 하소연 속에는 ‘우리 부모님들도 그리 살았다’, ‘아버지는 엄마를 그리 때리고도 경찰서 잡혀간 적 없다’는 말이 깔려있다. 세상이 변한 것은 모르고 자신의 입장, 자신의 고정관념에 사로잡혀 사는 남성들이다.

실제 어떤 부부의 이야기다. 아내는 자장면을 시키면서 남편에게 먹을 거냐고 물었다. 남편은 안 먹는다고 했다. 아내는 배달된 자장면을 먹고 있는데 남편은 한 입만 달라고 하면서 젓가락을 가지고 달려들었다. 아내는 자장면을 가지고 화장실에 가서 자장면을 변기에 버리고 내려버렸다. 남편은 잠긴 화장실 문을 부쉈고 아내는 경찰서에 신고했다. 보기에는 코미디 같은 한 장면이다. 부부싸움은 이렇게 간단한 일로 일어난다. 하지만 근원은 복잡하고 실타래처럼 얽혀있다. 폭력으로 나타났을때만 주변에서 알 뿐이다. 자신들도 그 원인과 해결방법은 모른다. 그런 상황에 대해서도 강의를 듣는 남성들의 결론은 자신들이 억울하다는 것이다.

다음 단계의 강의는 그런 상황에서 다른 말과 행동을 만들어 보라고 유도하면 어느 팀이든 힘들어 한다. 대안을 만드는 등 다른 대응방법을 생각해내지 못한다. 이러 상황의 대체에 대해 배우지 못했고 경험하지 못한 사람들이 다른 방식으로 해결해 나가지 못하는 것은 당연하다. 그때 필자는 웃으며 “당신들의 자녀가 이런 상황에 처하면 어떻게 반응할 것 같습니까?”라고 묻는다. 이 말 속에는 ‘당신들이 대안을 만들고, 해결책을 고민하지 않으면 당신의 자녀도 가정폭력 문제로 이런 강의를 들으러 여기 다시 오지 않겠느냐’는 의미가 깔려있다. 이때부터 강의를 제대로 들으려고 노력하는 모습이 나타난다.

분노의 나라

분노는 누구나 일어나는 자연스러운 반응이다. 하지만 분노를 전부 폭력으로 표현하지는 않는다. 분노를 폭력으로 표현하는 것은 ‘어떤’ 배움의 부족과 습관의 문제이다. 분노의 상황을 타협과 협상의 상황으로 만드는 일은 쉽지 않다. 어쩌면 영어 수학보다 어려운 일이다. 그런데 어느 곳에서도 이를 가르쳐 주지 않는다. 모든 폭력에는 내용을 들어보면 타당한 이유가 있다. 그러나 그 폭력이 정당화되는 것은 아니다.

폭력은 폭력을 낳을 뿐이다. 아직도 언론에는 심심치 않게 남편의 폭력에 시달리다 남편을 죽였다는 아내의 기사가 나온다. 아직도 우리 사회에는 가정폭력의 그림자가 드리워져 있다. 어디 가정 폭력뿐이겠는가? 이 사회가 폭력 공화국임을 강조하는 기사들과 사실은 차고 넘친다. 그러나 모든 폭력의 시작점은 가정폭력이다. 가정폭력은 질기고 영향력이 크다. 아내뿐 아니라 자녀들의 삶에도 오랫동안 영향력을 발휘한다.

국가도 그런 가정폭력의 희생자들이 도망칠 곳으로 ‘쉼터’를 마련했다. 하지만 외형적 건물과 제도가 폭력의 뿌리를 잘라내진 못한다. 대화의 기술, 사고와 감정, 행동에 대한 전반적인 훈련이 필요한 때다.

글쓴이

김동은 심리상담사

필자인 김동은 심리상담사는 젊을 때는 시민단체와 연애 기획사에서 일했다. 이후 상담심리를 공부하고 10년간 대학에서 심리치료를 가르쳤다. 지금은 심리치료를 하며 치유적 공동체, 빅패밀리를 꿈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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