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마음의 ‘음란마귀’ 퇴치하려면

[김동은의 오만가지 사람마음] 무의식속에 왜곡 등장하는 음란증 일상생활 문제없게 고치는 방법은

과도한 결벽, 무의식 대한 반작용

자신이 감당하기 어려운 욕구나 소망을 다른 사람이 가지고 있는 것으로 착각해 책임을 회피하는 것을 ‘투사’라고 한다. 내가 사람에 대해 화가 나는 경우 그 화의 이유가 나의 것인지 상대방의 것인지 구분해 보는 일은 심리치료에서 중요한 과정이다. 분노가 심한 사람은 세상이 자신을 공격하고 있다고 말한다. 분노의 이유를 자신 바깥에서 찾는 것이다. 이처럼 내 마음을 속이고 다른 사람을 오해하는 경우는 주변에 흔히 볼 수 있다.

상담실을 찾아온 이 부장은 가정적인 사람이었다. 자녀들에게 자상하고 아내에게도 잘한다. 그런데 오래전부터 아내의 특정 행동에 대해 못마땅하게 여기기 시작했다. 아내가 휴대폰 카톡에서 아는 남자에게 인사로 하트 모양을 보낸 사실을 알고 화를 내고 부부싸움까지 가기도 했다. 그 이후로 가끔씩 카톡을 확인하는 상황에 이르렀다. 그런 남편이 못마땅하지만 어쩌지 못한 채 아내는 아내대로 전전긍긍하고 산다. 남편은 언젠가는 동네 가게 여사장과 술을 마시고 대리운전을 하고 온 아내와 또 대판 싸웠다. “대리운전을 절대 하지 마”라고 한 자신의 말을 듣지 않았다는 이유에서다.

이 부장을 필자와의 상담자리에 앉힐 수 있었던 건 자녀문제 상담 이유였다. 이 부장의 아내가 자녀를 상담하는 과정에 남편을 끌어들었다. 물론 필자의 의도도 있었다. 자녀의 마음 문제는 아빠도 함께 해야 효과가 좋기 때문이다. 겸사겸사 이 부장은 그렇게 상담을 시작했다.

그 가운데 자신의 아내를 의심하는 증상을 필자가 조심스레 꺼내기 시작했다. 이 부장은 처음에 자신의 정당성을 주장했다. 이 부장은 사실 젊은 사원들과 악수도 못한다. 여자 사원들이 조금이라도 속이 비친 옷을 입거나 레깅스 같은 복장을 입고 온 날이면 눈을 어디에 둘지 모르겠다고 호소했다.

상담 횟수가 늘면서 친밀감이 들 때쯤 여자들을 피하고 대화 자체를 못한다는 이부장에게 말을 흘리듯 “이부장님 마음에 ‘음란마귀’가 들어 있는 것 아닌가요?”라고 하자 그는 곰곰이 생각하는 모습을 보였다. 긍정도 부정도 하지 않으면서 지나갔지만 어느 정도 수긍하는 눈치였다.

‘성찰’은 심리학적으로는 무의식을 들여다본다고 말할 수 있다. 무의식이라 말하는 닫힌 의식은 나도 모르게 뚜껑이 열릴 때 반작용으로 나타나게 된다. 과도한 분노, 과도한 결벽, 상식에 맞지않는 자책과 비난 등은 자신의 무의식을 들여다보라는 신호다. 그게 ‘성찰’이다.

이후 여자와의 대화도 하려고 노력했다. 대화 내용도 하나하나 가르쳐 주어야 했다. 커피를 한잔 건네주는 것이나, 기분 정도를 물어 보는 것이나 가벼운 농담도 가르쳐 주었다. 사람들은 다 아는 것 같지만 배우지 않으면 모른다. 자신의 부정적인 감정, 자신의 부정적인 시각이 다른 사람의 말과 행동을 왜곡할 수 있다는 것을 말이다.

의식은 성관계 거부, 무의식은...

상담을 하러 온 박 모씨는 미혼의 여성이다. 언제부터 직장 동료들과 갈등이 많아지면서 도움을 받기 위해 방문했다. 직장 동료들이 자신을 험담하고 부당하게 대우한다고 생각하게 됐고, 이를 항의하면서 대립과 갈등이 잦아졌다고 한다. 먼저 그녀가 사람들에게 화난 부분에 대해 이야기 해보도록 했다. 그녀는 사내 연애를 하거나 남편 얘기를 하는 사람에게 조언을 하기 시작했다고 한다. 그런데 그녀는 말 끝에는 ‘남자는 믿을 게 못돼’라는 식의 결론으로 이끌어 갔다고 한다.

남자는 성적인 것만 밝히는 더러운 존재라는 생각을 주입시키려 노력하는 듯 보였다. 상담을 하다보면 그녀는 아버지의 외도를 보고 자랐고 커서는 연애의 실패를 겪으면서 남자에 대한 불신을 쌓아갔던 것이다. 그러나 상담하면서 자신도 남자에 대한 환상과 그로부터 위로받기를 원하고 성적인 관계도 꿈꾸는 면이 있다는 것을 발견하게 됐다. 자신의 무의식은 남자를 원하지만 의식 속에서는 거부하는 이중적 사고를 하고 있었다.

청년들 중에도 유사한 경우가 있다. 성적인 문제는 극구 부인하고 자신을 억압하는 모습을 보인다. 성적인 욕망은 자연스럽다고 얘기해줘도 받아들일 수 없는 청년들이 적지 않다. 더 나아가 “그런 욕망이 없으면 결혼을 어떻게 할래?” 라고 놀려도 그런 욕망에 대해 죄책감을 갖는게 올바르다고 믿는 친구들이 있다.

내면의 욕망을 현실에서 자연스럽게 해소하는 것을 ‘승화’라고 심리학에서는 말한다. 그런데 욕망 자체를 부정하고 좋은 에너지로 승화시키지 못하면, 부정적 에너지가 의식을 지배하게 된다. 인간은 적당한 음란함을 갖고 있는 게 당연하다. 오래전에는 ‘음담패설’이라고 했지만 요즘은 ‘쎅드립’이라고 하면서 성적인 이야기를 나누기도 한다. 문제는 밸런스다. 무엇이든 과도하면 문제가 발생한다. ‘적당히’가 정신건강에 중요한 이유다.

지나치지 않으면 건강한 ‘음란마귀’

오래전 이야기가 있다.

스님 두 분이 다정하게 이야기하다가 강을 만났다. 그래서 강을 건너려는데 처녀 한명이 강을 건너지 못하고 전전긍긍하고 있었다. 그러던 중 스님 한 분이 “내 등에 업히시오” 하면서 처녀를 등에 업고 강을 건너주었다.

강을 다 건너고 처녀와 헤어지고 난 후 스님 둘은 아무 말도 없이 길을 걸어갔다. 그러던 중 참다 못한 한 스님이 입을 열었다.

“자네, 어떻게 처녀를 등에 업고 강을 건널 수 있단 말인가?” 듣고 있던 스님이 말한다.

“자네는 아직도 마음에 처녀를 업고 왔는가? 난 강을 건너고 나서는 마음에서도 내려놓았는데.”

청소년들에게도 자위에 대해 상담할 때가 있다. 필자는 그가 30분 동안 자위를 했다면 그 때만 생각하는 게 건강하다고 말한다. 그런데 일상에서 자위에 대한 죄책감을 계속 가지고 있거나 항상 야한 생각만 하는 것은 병일 수 있다는 말이다. 마음에 짐으로 가진 감정들은 숨어 있다가 드러나게 된다. 아주 교묘하고 다양하게 드러난다. 그런 습성 때문에 주변이 고통 받는다. 내 가족이 고통 받을 수 있다.

누구나 야한 생각이 들 수 있다. 그렇다고 실행에 옮길 경우 문제가 생긴다. 새가 머리위에 날아 다니는 것은 어쩔 도리가 없다. 그런데 새가 내 머리에 둥지를 트는 것은 순전히 나의 책임이다.

글쓴이

김동은 심리상담사

필자인 김동은 심리상담사는 젊을 때는 시민단체와 연애 기획사에서 일했다. 이후 상담심리를 공부하고 10년간 대학에서 심리치료를 가르쳤다. 지금은 심리치료를 하며 치유적 공동체, 빅패밀리를 꿈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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