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뱅크 오브 부모’ 상속주의가 삼킨 공정

[조선규의 Special Report]

구글 제미나이 생성 이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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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사라진 계층 사다리 하위 20%의 ‘1분위 탈출률’이 30%를 밑도는 경직된 구조 속에서, 개천에서 용이 나던 시대의 약속은 이미 파기되었습니다.
  • 자산 불평등의 복리 효과 부모의 자산 유무는 단순한 지원을 넘어 ‘실패할 수 있는 권리’와 ‘자산 증식 궤도’의 차이를 만들며, 시간이 흐를수록 노동 소득으로 극복 불가능한 격차를 낳습니다.
  • 구조적 기회 보장의 시급성 공정은 구호가 아닌 ‘설계의 문제’입니다. 부모의 배경이 실력을 압도하는 ‘상속주의’를 막으려면, 자산이 없어도 다시 일어설 수 있는 공적 사다리를 시급히 복원해야 합니다.

개천에서 용 안나는 사회

사다리는 사라지고, 출발선만 남았습니다. ‘개천에서 용 난다’. 한때 이 말은 단순한 속담이 아니었습니다. 한국 사회를 움직이던 하나의 ‘약속’이었습니다.

집안 형편이 넉넉하지 않아도, 부모의 학력과 자산이 부족해도, 교육과 성실한 노동을 통해 더 나은 삶으로 올라설 수 있다는 믿음 말입니다. 이 믿음이 있었기에 국가는 교육에 투자했고, 개인은 자신의 시간과 젊음을 노력에 걸 수 있었습니다. 미래가 지금보다 나아질 것이라는 확신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지금 한국 사회에서 이 약속은 점점 설득력을 잃고 있습니다. 최근 소득이동 통계를 보면, 2023년 한국의 소득이동성은 34.1%로 전년보다 0.8%포인트 낮아졌습니다. 하위 20%에 속한 사람이 다음 해 다른 분위로 이동한 비율, 즉 ‘1분위 탈출률’은 29.9%에 그쳤고, 상위 20%는 85.9%가 그대로 그 자리를 유지했습니다. 이는 단년도 기준으로 약 10명 중 7명이 이듬해에도 하위 20%에 남았다는 뜻입니다.

더 나아가 2017년부터 2023년까지 한 번도 하위 20%를 벗어나지 못한 비율도 27.8%에 달했습니다. 즉, 아래로 내려가는 것은 쉬워도 다시 올라서는 일은 단기적으로도, 장기적으로도 쉽지 않은 구조가 확인됩니다.

이 구조적 경직성은 특히 주거에서 더 선명하게 드러납니다. 2024년 6월 서울 아파트의 평균 거래금액은 12억 1천만 원 수준까지 올라갔습니다. 단순 계산만 해도 연봉 5천만 원인 직장인이 한 푼도 쓰지 않고 돈을 모아야 24년이 넘게 걸리는 금액입니다.

물론 현실의 삶은 그렇게 계산되지 않습니다. 세금도 내야 하고, 월세도 내야 하며, 식비와 교통비, 돌봄비용도 감당해야 합니다. 그래서 문제는 더 분명해집니다. 이제 집을 사는 일은 근로소득만으로 접근하기 어려운 목표가 되었고, 출발선에서 이미 가진 자원, 곧 가족 자산의 유무가 결정적 변수로 떠오르고 있습니다.

엄마, 아빠, 은행이 만든 새로운 계급선

이 지점에서 우리는 불편하지만 중요한 질문과 마주합니다. 오늘의 한국 사회는 아직도 ‘능력주의 사회’입니까. 아니면 이미 ‘상속주의 사회’로 옮겨가고 있는 것입니까.

개인의 성취를 좌우하는 핵심 변수가 재능과 노력에서 부모의 자산 규모로 이동하고 있다면, 우리는 더 이상 공정한 경쟁을 말하기 어렵습니다. 경쟁은 여전히 존재하지만, 그 경쟁에 들어가는 비용과 위험을 감당할 수 있는 사람만 제대로 출전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이 변화를 설명하는 데 유용한 개념이 바로 뱅크 오브 맘 앤 대드(bank of Mom and Dad) 즉 부모를 사실상의 비공식 금융기관처럼 활용하는 구조입니다. 영국에서는 2024년 기준 최초 주택 구입자의 52%가 가족의 자금 지원을 받았고, 평균 지원액은 5만 5천 파운드가 넘는 것으로 집계됐습니다.

흥미로운 점은 이것이 더 이상 극소수 특권층의 현상만은 아니라는 사실입니다. 주거 가격과 금융 비용이 높아질수록, 부모 지원은 예외가 아니라 표준적인 진입 경로가 되어 갑니다.

한국도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국토연구원은 청년 주거정책을 분석하며, 청년 개인의 소득과 고용 상태뿐 아니라 부모의 소득과 자산 같은 경제적 여건이 청년의 주거 기회에 중요한 영향을 미친다고 지적했습니다.

특히 부모와 함께 살며 경제적으로 의존한 채 취업 준비에 전념할 수 있는 청년과, 독립해 아르바이트로 생활비를 충당하면서 같은 준비를 해야 하는 청년은 출발선부터 다르다고 분석했습니다.

시작의 차이, 조건의 차이

같은 능력, 같은 성실성을 가정해도 한쪽은 시간을 축적할 수 있고, 다른 한쪽은 생존비를 먼저 마련해야 합니다. 이것은 태도의 차이가 아니라 ‘조건의 차이’입니다.

문제는 이 차이가 일회성 격차로 끝나지 않는다는 데 있습니다. 부모에게 전세보증금이나 주택 구입 자금 일부를 지원받은 사람은 그 자금을 레버리지 삼아 자산시장에 일찍 성장할 수 있습니다. 반면 월세로 시작한 사람은 매달 현금 유출을 감당하는 동안 종잣돈을 만들 기회 자체가 줄어듭니다.

처음의 1억 원, 2억 원 차이는 시간이 지나면서 집값 상승, 금융수익, 이자 비용 차이까지 얹혀 복리처럼 벌어집니다. 상속주의의 핵심은 단지 “도움을 받았다”는 사실이 아닙니다. 그 도움이 시간이 흐를수록 격차를 확대하는 구조적 장치로 작동한다는 데 있습니다.

이 대목에서 자주 등장하는 설명이 피케티의 공식, 곧 r > g입니다. r(Return on Capital, 자본수익률)이 g(Economic Growth Rate, 경제성장률)보다 지속적으로 높으면, 이미 자산을 가진 사람의 부는 노동소득으로 따라잡기 어려운 속도로 커집니다.

그래서 오늘의 불평등은 단순히 ‘돈이 많은 사람’과 ‘돈이 적은 사람’의 차이가 아니라, 자산을 증식시키는 궤도에 일찍 올라탄 사람과 그렇지 못한 사람의 차이로 바뀝니다. 상속은 여기서 단순한 ‘이전’이 아니라, 미래 소득과 기회 전체를 ‘재배열’하는 장치가 됩니다.

이 문제를 흔히 기성세대와 청년세대의 갈등으로 설명하지만, 실제로 더 날카로운 균열은 같은 세대 내부에서 벌어집니다. 같은 해에 태어나 같은 학교를 나오고 비슷한 연봉을 받는 두 청년이라도, 부모의 자산이 있느냐 없느냐에 따라 삶의 전략은 완전히 달라집니다.

한 사람은 실패해도 다시 시도할 수 있고, 다른 한 사람은 한 번의 실패가 생계 붕괴로 이어질 수 있습니다. 전자는 창업과 이직, 재교육 같은 선택을 실험할 수 있지만, 후자는 안정성 자체를 생존의 조건으로 받아들일 수밖에 없습니다.

국토연구원 자료는 이 차이를 구체적으로 보여줍니다. 2020년 기준 부모와 동거하는 청년가구의 자가 거주 비중은 75.1%였던 반면, 청년 1인가구는 보증부 월세가 59.4%, 순수월세가 8.2%로 월세 의존도가 매우 높았습니다.

또 청년가구 중 저소득가구 비중은 2010년 23.3%에서 2020년 31.2%로 계속 늘었습니다. 즉 청년이라는 한 범주 안에서도, 누구는 자산 축적의 기반 위에서 출발하고 누구는 주거비 부담 속에서 출발하는 현실이 점점 더 뚜렷해지고 있는 것입니다.

감정의 질서마저 바꾸는 불평등

이 격차는 경제적 결과만 낳지 않습니다. ‘감정의 질서’도 바꿉니다. 부모의 도움을 받은 자녀는 감사하면서도 의존의 감각을 떨치기 어렵고, 도움을 받지 못한 자녀는 뒤처진 원인을 자기 능력 부족으로 내면화하기 쉽습니다.

그 결과 가족은 돌봄의 공동체이면서 동시에 ‘자산 배분의 긴장’ 속에 놓이게 됩니다. 사랑과 책임의 언어 위로 ‘계산과 비교’의 언어가 스며드는 것입니다.

사회 전체로 보면 더 심각합니다. 사람들은 타인의 성취를 볼 때 실력이 뛰어나서 저 자리에 갔는가”보다 집안이 받쳐줬기 때문 아닌가”를 먼저 떠올리게 됩니다. 그렇게 되면 성취에 대한 존중은 약해지고, 노력에 대한 동기 역시 약해집니다.

능력주의 신화가 완전히 무너진 사회에서는 냉소가 상식이 됩니다. 그리고 냉소가 상식이 된 사회는 혁신도, 신뢰도, 연대도 오래 유지하기 어렵습니다.

‘기회보장의 구조’ 어떻게 만들까

상속을 비난할 것이 아니라, 구조를 다시 설계해야 합니다. 그렇다고 부모가 자녀를 돕는 행위 자체를 도덕적으로 비난하는 것은 해법이 아닙니다. 부모가 자녀에게 더 나은 출발을 주고 싶어 하는 마음은 자연스럽고 보편적입니다.

문제는 사적 애정이 아니라, 그 사적 지원의 규모와 효과가 공적 제도를 압도하기 시작했다는 데 있습니다. 이제 공정성은 “모두에게 똑같이 시험을 보게 하느냐”의 문제가 아니라, 누가 실패를 견딜 수 있고 누가 시작조차 못 하느냐의 문제가 되었습니다.

그래서 필요한 것은 상속의 도덕화가 아니라, 격차의 제도화에 대한 직시입니다. 사회이동성은 개인의 기분 문제가 아니라 경제와 사회통합 전체에 영향을 주는 핵심 조건이라고 OECD도 강조합니다. 출신 배경이 삶의 경로를 과도하게 결정하는 사회에서는 개인의 잠재력이 낭비되고, 공동체에 대한 신뢰도 약해집니다. 결국 공정은 윤리의 문제가 아니라 성장의 문제이기도 합니다.

한국 사회가 다시 회복해야 할 것은 신화로서의 능력주의가 아니라, 구조로서의 ‘기회 보장’입니다. 생전 증여와 자산 이전을 더 투명하게 관리하고, 청년 주거 지원을 실제 취약 계층에게 정밀하게 배분하며, 교육, 주거, 재도전 비용을 공적 안전망으로 낮춰야 합니다.

부모의 자산이 있어야만 실패할 수 있는 사회는 결국 도전이 줄어드는 사회이고, 도전이 줄어드는 사회는 활력을 잃습니다. 가장 좋은 아이디어를 가진 사람이 아니라 가장 안전한 배경을 가진 사람이 앞서 나가는 사회는 공정하지 않을 뿐 아니라 효율적이지도 않습니다.

결국 질문은 하나입니다. 우리는 다음 세대에게 무엇을 물려주려는가 하는 것입니다. 더 많은 자산을 물려주는 사회입니까, 아니면 자산이 없어도 다시 일어설 수 있는 구조를 물려주는 사회입니까.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냉소를 꾸짖는 일이 아니라, 그 냉소가 왜 생겼는지 인정하는 일입니다. 사다리가 사라졌다면, 개인에게 더 열심히 오르라고 말할 것이 아니라 사회가 다시 사다리를 놓아야 합니다.

공정은 선의의 구호가 아니라, 그렇게 설계될 때만 현실이 됩니다.

이 칼럼을 영상으로 · 1:55 부모님이 은행, '상속주의'가 삼켜버린 능력주의! 자식에게 무엇을 물려줄까?
글쓴이

조선규 칼럼니스트

조선규는 35여 년간 교육과 기업 경영, 그리고 지역 사회 발전의 현장에서 사람과 함께 성장해왔다. “삶의 문제는 결국 사람의 문제”라는 믿음을 바탕으로 교육을 통해 변화를 만들고, 기업을 통해 길을 열었으며, 현재는 사회 곳곳의 다양한 문제를 함께 풀어가며 더 따뜻하고 공정한 미래를 그려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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