숫자에 갇힌 트럼프, 판을 바꾼 시진핑

트럼프의 불안한 눈빛, 시진핑의 대담한 제스쳐. 사진= 연합뉴스
트럼프의 불안한 눈빛, 시진핑의 대담한 제스쳐. 사진= 연합뉴스
  • 미국의 조급함과 제약 노출 이번 베이징 회담은 트럼프의 승리 무대가 아니었으며, 이란전쟁의 부담과 관세 카드의 법적 한계 속에서 중간선거용 경제 성과(보잉 구매 등)가 급했던 미국의 조급함과 구조적 약점이 고스란히 드러난 자리였다.
  • 중국의 비대칭 원칙 외교 중국은 숫자를 흥정하려는 미국식 거래판에 끌려 들어가는 대신, 대형 의전 공간을 활용하고 평등과 전략적 안정이라는 대국적 원칙을 제시함으로써 회담의 구조 자체를 자신들의 틀로 전환하는 ‘비대칭 전략’을 구사했다.
  • 한국 외교를 향한 경종 미국조차 중국 앞에서 관세를 절대적 무기로 쓰지 못하고 협조를 구해야 했던 다극화 시대의 현실을 직시하여, 한국 또한 미국의 관세 위협에 위축되어 과도한 대미 투자 부담을 떠안던 기존 협상 노선을 원점에서 재검토해야 한다.

트럼프의 승리 장면이 아니었다

2026년 5월 14~15일 베이징에서 중미정상회담이 열렸다. 겉으로는 무역, 관세, 항공기 구매, 농산물, 희토류, 인공지능, 대만 문제를 다루는 회담이었다. 그러나 실제 배경에는 이란전쟁, 호르무즈해협, 미국의 관세 카드 약화, 중간선거, 중국 공급망 의존 문제가 함께 놓여 있었다.

이 회담은 트럼프가 중국을 압박해 성과를 얻어낸 장면이 아니었다. 오히려 미국이 압박할 조건을 잃은 상태에서 열린 회담에 가까웠다. 이란전쟁은 끝나지 않았고, 호르무즈해협 문제는 미국 혼자 해결하기 어려웠으며, 관세 카드는 미국 내부의 법적 논란에 걸려 있었다.

이번 회담에서 눈에 띈 것은 두 가지였다. 첫째, 중국의 자신감과 트럼프의 정중함이었다. 중국은 최근 중미정상회담 가운데 가장 자신감 있게 자기 위상을 연출했다. 반대로 트럼프는 이례적으로 조용하고 조심스러운 태도로 회담에 임했다. 중국은 자신감을 숨기지 않았고, 트럼프는 평소의 공세적 장면 연출을 접었다.

둘째, 중국은 미국이 원하는 회담 방식에 그대로 끌려가지 않았다. 미국은 경제성과와 구매 약속을 원했지만, 중국은 회담을 단순한 거래판으로 만들지 않았다. 미국은 이란전쟁에서도 원하는 결과를 만들지 못했고, 베이징에서도 중국을 뜻대로 움직이지 못했다. 이 점은 뒤에서 볼 비대칭대응전략의 핵심이다.

시진핑은 트럼프를 홀대한 것이 아니다. 오히려 정중하고 화려한 의전을 제공했다. 그러나 그 의전은 트럼프가 회담장을 장악하는 방식이 아니었다. 중국이 설계한 공간 안으로 트럼프를 초대한 형식이었다. 중국 외교부는 인민대회당 회담, 환영연회, 중난하이(중국 최고지도부의 집무·의전 공간) 비공개 회동을 연속적으로 공개했다. 이 장면의 주인공은 트럼프가 아니라 중국이었다.

이 장면을 단순히 “중국에서 열린 회담이었기 때문”이라고만 해석해서는 부족하다. 중국은 변화한 회담의 조건과 상황을 적극 활용했다. 반면 미국은 그 변화에 충분히 대응하지 못했다. 회담의 장소만 중국이었던 것이 아니라, 회담의 흐름과 형식도 중국이 관리하는 쪽으로 기울었다.

중난하이 회동은 특히 상징적이었다. 중난하이는 중국공산당과 국무원의 중심 공간이다. 트럼프는 자신이 만든 무대에 선 것이 아니라, 중국 최고의 정치적 공간 안으로 들어갔다. 이것은 단순한 환대가 아니었다. 중국이 회담의 공간과 형식을 관리했다는 뜻이다.

미국은 성과표를 원했고, 중국은 위상을 확인했다

미국이 얻고자 한 것은 비교적 분명했다. 트럼프는 중간선거를 앞두고 농민, 제조업, 항공산업, 에너지업계에 보여줄 성과가 필요했다. 중국이 미국산 농산물을 사고, 보잉 항공기를 구매하고, 미국 기업에 중국 시장을 더 열어주는 장면을 만들고 싶어 했다. 동시에 이란전쟁과 호르무즈해협 문제에서도 중국의 협조가 필요했다.

그러나 회담 뒤 확인된 것은 압도적 성과가 아니었다. 트럼프는 중국이 보잉 항공기 200대를 구매하고, 앞으로 최대 750대까지 갈 수 있다고 말했다. 그러나 중국 정부와 보잉이 구매 합의를 분명하게 확인한 것은 아니었다. 방문단 규모는 컸지만, 들고 돌아갈 보따리는 기대보다 작았다.

반면 중국이 얻은 것은 더 선명했다. 중국은 미국 대통령을 베이징으로 불러들였고, 미국의 핵심 기업인들도 함께 왔다. 이 장면은 중국 시장과 공급망의 세계적 위상을 보여주었다. 미국이 중국을 고립시키려 한다고 말해도, 미국 기업권력이 중국 시장을 필요로 한다는 사실은 베이징에서 드러났다.

트럼프의 언어도 중국에 유리했다. 그는 시진핑을 ‘위대한 지도자’라고 불렀고, 중국을 ‘위대한 국가’라고 했다. 시진핑은 ‘투키디데스 함정’을 언급하며 중미관계를 단순한 무역분쟁이 아니라 세계질서의 문제로 끌어올렸다. 중국 외교부 발표는 양국이 “건설적이고 전략적으로 안정적인 중미관계”라는 새 비전을 제시했다고 설명했다. 트럼프는 이 틀을 거부하지 않았다.

양국 공식 발표문을 비교하면 이 차이는 더 분명해진다. 미국은 회담을 짧은 성과 목록으로 정리했다. 대두, 보잉, 펜타닐 전구체, 시장 접근 같은 항목이 중심이었다. 반면 중국은 투키디데스 함정, 건설적 전략안정, 대만 문제, 세계 안정이라는 담론으로 회담을 설명했다. 미국은 무엇을 샀는가를 말하려 했고, 중국은 어떤 관계인가를 말하려 했다.

이번 회담은 트럼프의 구상으로 시작됐지만, 결과적으로 시진핑의 구상으로 흘러갔다. 트럼프는 경제성과를 원했고, 시진핑은 회담의 틀을 바꾸었다. 트럼프는 중간선거용 장면을 원했고, 시진핑은 중국의 대국 위상을 각인시키는 장면을 만들었다.

9월 초청은 이 흐름을 더 분명하게 만든다. 트럼프는 시진핑에게 9월 24일 백악관 방문을 초청했다. 이것은 베이징 회담이 완결된 승리 장면이 아니라, 9월 워싱턴 회담으로 이어지는 후속 성과 생산 과정의 1단계였음을 보여준다. 트럼프에게 9월 회담은 중간선거 전 중국 관련 성과를 다시 포장할 수 있는 사실상 마지막 대형 무대가 될 가능성이 크다.

지치고 조급한 표정의 트럼프 대통령. 사진= 연합뉴스
지치고 조급한 표정의 트럼프 대통령. 사진= 연합뉴스

중국의 비대칭전략...’원칙의 틀’로 바꾸었다

이번 회담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중국의 비대칭전략이다. 비대칭전략은 약자가 강자에게만 사용하는 전략이 아니다. 전력 차이가 많이 날 때 쓰는 보조전략도 아니다. 비대칭전략의 본질은 상대가 정한 방식으로 싸우지 않는 데 있다. 상대가 만든 판 안에 들어가지 않고, 판의 성격 자체를 바꾸는 것이다.

미국과의 협상에서 이 점은 특히 중요하다. 미국은 늘 자기에게 유리한 의제, 자기에게 유리한 숫자, 자기에게 유리한 형식을 제시한다. 거기에 그대로 들어가면 협상은 시작부터 미국의 판이 된다. 미국이 항공기 구매를 말하면 항공기 숫자를 놓고 흥정하게 된다. 미국이 농산물 구매를 말하면 얼마를 사줄 것인가의 문제로 좁혀진다. 미국이 호르무즈해협 개방을 말하면 중국이 이란을 압박할 것인가의 문제로 끌려 들어가게 된다.

중국은 이 판에 들어가지 않았다. 중국은 미국이 제시한 의제를 거부하지 않았다. 그러나 미국의 방식으로 답하지도 않았다. 보잉 항공기 구매 질문에 대해 중국은 구체 수치를 확정하는 방식으로 답하지 않았다. 농산물 추가 구매 질문에도 품목과 규모를 제시하지 않고, 평등·존중·상호이익의 정신과 실무협력을 말했다. 중국 외교부의 답변 방식은 숫자 흥정이 아니라 원칙 제시였다.

호르무즈해협과 이란전쟁 문제에서도 같은 방식이 나타났다. 미국은 중국이 이란을 압박해 해협 재개방을 돕기를 원했다. 그러나 중국은 이란을 압박 대상으로 삼는 구도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대신 무력 사용은 막다른 길이며, 대화와 협상이 올바른 길이라는 원칙을 제시했다. 항로 재개 문제도 포괄적이고 지속적인 휴전, 지역 안보구조, 공급망 안정의 문제로 설명했다.

이것이 비대칭전략이다. 미국은 거래를 요구했지만, 중국은 원칙으로 응답했다. 미국은 숫자를 원했지만, 중국은 틀을 바꾸었다. 중요한 것은 중국이 미국의 요구를 정면으로 거부한 것이 아니라, 요구의 형식 자체를 바꾸어버렸다는 점이다.

이란은 미국과의 전쟁에서 군사적 비대칭전략을 보여주었다. 미국이 원하는 방식으로 항모전단과 항모전단을 맞세우지 않았다. 해협, 미사일, 무인기, 지역 네트워크, 지속능력을 결합해 미국의 전쟁 설계를 흔들었다. 이번 중미 정상회담에서 중국은 같은 원리를 외교적으로 적용했다. 미국의 거래판에 들어가지 않고, 회담의 구조를 바꾸었다.

트럼프는 베이징을 경제성과의 무대로 만들려 했다. 그러나 중국은 그 무대를 미국식 거래판으로 내주지 않았다. 중국은 미국의 의제를 원칙의 언어로 전환했고, 결과적으로 트럼프를 시진핑이 설계한 중미관계 관리의 틀 안에 배치했다. 정상회담은 이렇게 숫자 협상에서 관계 규정으로 이동했다.

미국의 약점, 중국의 협상력이 되다

이번 정상회담에서 두드러진 변화는 미국의 약점이 중국의 협상력으로 전환되었다는 점이다.

미국은 이란전쟁의 출구와 호르무즈 안정에서 중국의 역할을 필요로 했다. 트럼프는 중간선거를 앞두고 농산물, 항공기, 에너지 구매 같은 가시적 성과가 필요했다. 국제적으로는 전쟁의 부담이 있었고, 국내적으로는 선거용 성과가 급했다. 반면 중국은 서두를 이유가 없었다.

첫째, 미국은 이란전쟁을 의도대로 끝내지 못했다. 만약 회담이 3월 말이나 4월 초에 열렸다면 미국은 다른 태도를 취했을 수 있다. 그러나 실제 회담은 한 차례 연기된 뒤 열렸고, 그 사이 이란전쟁은 미국의 부담으로 바뀌었다. 트럼프는 이란 문제에서 중국의 역할을 기대했지만, 중국은 명확한 대미 협조 약속으로 끌려가지 않았다.

둘째, 관세 카드가 흔들렸다. 미국의 관세정책은 법적·정치적 논란에 걸려 있다. 관세는 여전히 의제였지만, 더 이상 미국이 중국을 마음대로 압박하는 절대 카드로 보기는 어려워졌다. 중국은 이 변화를 알고 있었고, 미국의 조급함을 계산할 수 있었다.

셋째, 미국 기업들은 중국 시장과 공급망에서 자유롭지 않았다. 트럼프의 중국 방문에는 미국 핵심 기업인들이 동행했다. 이 장면은 단순한 경제사절단이 아니었다. 미국 기술, 항공, 금융, 농업, 반도체의 핵심부가 중국 시장 앞에 직접 선 장면이었다. 미국 정치가 중국을 견제해도, 미국 자본은 중국을 필요로 한다. 이 모순이 베이징에서 드러났다.

넷째, 중국은 시간의 압박을 덜 받았다. 중국은 미국산 구매 가능성을 열어둘 수 있었다. 그러나 그 구매를 트럼프의 선거용 승리 문장으로 즉시 확정해줄 이유는 없었다. 보잉 200대 논란이 이 점을 보여준다. 트럼프는 성과로 말했지만, 중국은 발표의 크기와 형식을 관리했다.

따라서 이번 회담의 힘 관계는 단순히 미중 국력 비교에서 나온 것이 아니다. 더 중요한 것은 조건의 차이였다. 미국은 즉시 사용할 성과가 필요했다. 중국은 그 성과를 제한적으로 제공하면서도 자기 원칙을 지킬 수 있었다. 이 차이가 협상력의 차이를 만들었다.

미국은 강하지만, 마음대로 움직이지 못한다

회담을 한 차례 연기한 것은 결과적으로 미국의 패착으로 작용했다. 시간이 지나면서 회담의 조건은 미국이 아니라 중국에게 유리하게 바뀌었다. 미국은 변화한 조건에 능동적으로 대응하지 못했다. 그 결과 미국이 얻은 성과는 제한적이었고, 오히려 중국의 위상은 더 높아졌다.

중국은 비대칭 대응전략으로 미국의 협상전략에 맞섰다. 미국이 제시한 의제를 정면으로 거부하지 않았지만, 미국이 원하는 방식으로 답하지도 않았다. 중국은 숫자 흥정에 끌려 들어가지 않았고, 자국에 유리한 원칙과 관계관리의 틀을 견지했다.

미국은 여전히 강한 나라다. 그러나 베이징 회담에서 드러난 미국은 원하는 것을 마음대로 관철하는 나라가 아니었다. 이란전쟁에서도 빠른 승리의 모습을 보여주지 못했고, 중미회담에서도 중국을 압박해 원하는 성과를 충분히 끌어내지 못했다. 미국은 강하지만, 더 이상 일방적으로 움직이지 못하고 있다.

이 장면은 다극화 시대의 현실을 보여준다. 한 나라가 다른 나라의 요구를 그대로 수용하지 않고, 강대국도 상대를 마음대로 움직이지 못하는 시대가 오고 있다. 문제는 한국만 그 흐름을 보지 못한 채 미국의 요구를 그대로 떠안고 있다는 점이다.

한국도 이 회담에서 분명한 교훈을 읽어야 한다. 미국은 중국 앞에서 관세를 결정적 무기로 사용하지 못했고, 오히려 성과 확보를 위해 중국의 협조를 필요로 했다. 그렇다면 한국이 미국의 관세 위협을 절대 조건처럼 받아들이고 거액의 대미투자 부담을 계속 떠안을 이유도 약해졌다.

한국의 대미투자 부담은 단순한 경제협력이 아니라 관세 위협을 피하기 위해 받아들인 비용이었다. 관세 카드의 법적 안정성과 협상력이 흔들린 지금, 한국은 기존 합의를 원점에서 다시 따져야 한다.

푸틴 러시아 대통령을 관리하려는 시진핑 중국 주석.
푸틴 러시아 대통령을 관리하려는 시진핑 중국 주석.

9월 회담과 푸틴 방중...회담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트럼프가 시진핑을 9월 백악관으로 초청한 것도 이 흐름에서 봐야 한다. 그것은 여유의 표시라기보다, 이번 회담에서 충분한 성과물을 확보하지 못한 데 따른 후속 장치에 가깝다.

트럼프는 중간선거 전 자국민에게 보여줄 보잉, 농산물, 에너지, 공급망 관련 성과를 더 필요로 한다. 그러나 베이징에서 큰소리로 더 많은 보따리를 요구할 수는 없었다.

그래서 9월 회담은 트럼프에게 중국 관련 성과를 다시 만들 수 있는 사실상 마지막 큰 무대가 될 수 있다. 그러나 그 회담도 트럼프의 의도대로 흘러가기는 쉽지 않다. 이번 회담에서 확인됐듯이 중국은 이미 확보한 국가적 위상에서 쉽게 물러나지 않을 것이다. 중국은 미국과의 관계를 관리하되, 미국이 원하는 방식으로 성과를 내주지는 않을 것이다.

여기에 푸틴의 방중이 이어진다. 트럼프가 떠난 뒤 푸틴이 중국을 찾는다는 사실은 베이징 회담이 미국의 장면으로 끝나지 않았음을 보여준다. 중국은 미국과 회담한 뒤 러시아와도 전략 조율을 이어간다. 미국은 9월 성과를 계산하지만, 중국은 그 사이 다음 외교 국면을 준비한다.

베이징 회담은 미국의 힘을 과시한 회담이 아니었다. 미국이 처한 제약을 드러낸 회담이었다. 트럼프는 성과를 얻으러 갔지만, 시진핑은 회담의 틀을 바꾸었다. 결국 트럼프보다 시진핑이 더 많은 전리품을 챙겼다.

이 글은 윤현일 재미 칼럼니스트께서 페이스북에 올린 글을, 필자의 허락을 받아 전재한 것입니다.

글쓴이

윤현일 재미 칼럼니스트

글쓴이 윤현일 님은 35년전 미국 유학길에 올라 지금은 은퇴후 생활하고 있습니다. 그동안 코리아반도 평화와 통일에 관심있어 틈틈히 집필활동을 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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