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와르, 드디어 말레이시아 총리 되다
저항의 상징이자 진보정치의 핵심인물 ‘말레이시아인을 위한 말레이시아’ 내세워 97세 마하티르 전총리 넘어설 수 있을까
‘드디어’ 안와르 이브라힘이 말레이시아의 총리가 되었다. 지난 25년간 그는 말레이시아에서 정치권력에 억압당하는 저항의 상징이었으며 개혁을 외치는 진보정치 중심인물이었다. 말레이시아의 보수적인 기득권 세력에게 가혹한 탄압을 당하면서도 대중의 지지를 기반으로 오뚝이처럼 일어섰으며 결국 2022년 11월 19일 치러진 총선을 통해 총리가 되었다. 이는 말레이시아 건국 이래 이어져온 ‘Malaysia for Malays(말레이를 위한 말레이시아)’와 ‘Malaysia for Malaysians(말레이시아인을 위한 말레이시아)’라는 국가 비전 대결에서 후자가 승리했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말레이시아의 민주주의 여정
오늘날 말레이시아는 18세기 후반 이 지역에 진출한 영국이 말레이 반도와 보르네오 북부를 장악해 ‘영국령 말라야’를 건설하면서 만들어졌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인 1957년 말라야연방으로 독립했다가 1963년 싱가포르·사바·사라왁을 묶어 말레이시아연방으로 재탄생했다. 그리고 1965년 싱가포르를 분리해버린 후 오늘날에 이른다. 그러니 말레이시아 건국의 일등공신은 영국이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오늘날 말레이시아가 안고 있는 최대 갈등 역시 영국으로 인해 시작됐다. 영국 식민정부는 ‘영국령 말라야’를 통치하면서 중국과 인도로부터의 이민을 장려했다. 장사에 능하고 국가 관료제의 통제에 익숙한 중국인이나, 영국의 통치 스타일을 잘 알고 있던 인도인들은 말라야의 영국 식민정부 관료들이 활용하기 좋은 인력이었다. 그러다보니 19세기 후반에 중국계와 인도계 인구가 말라야 전체의 40퍼센트에 이르렀다.
중국계와 인도계 가운데 영국 식민정부의 중간관리가 되거나 사업으로 돈을 크게 번 사람들이 늘어나면서 영국령 말라야 사회는 영국인이 최상위 지배층이 되고 중국계와 인도계가 중간지배층, 본토박이인 말레이계들이 피지배 최하층이 되는 구조가 형성됐다. 당연히 원주민인 말레이계와 이주민들인 중국계와 인도계 사이에 갈등이 일어났다.
말레이시아는 이러한 종족 갈등을 독특한 방법으로 해결했다. 말레이계와 중국계 및 인도계를 대표하는 지도자들이 동맹을 맺어 하나의 정당연합을 이루는 것이다. 말레이계 정당인 UMNO(연합말레이민족기구)와 중국계 정당인 MCA(말레이중국인협회), 인도계 정당인 MIC(말레이시아인도인회의) 세 정당이 연합한 ‘동맹당’이 그것이다. 동맹당은 수적으로 우위에 있는 말레이계가 말레이시아의 정체성을 주도하는 것을 인정해주는 대신 수적으로 열세인 중국계와 인도계가 의석을 배분받아 최소한의 정치적 이익을 지켜낼 수 있도록 보장한 타협안이다. 이 동맹당은 총선에서 압승을 거두었고 훗날 더 많은 정당들을 받아들여 국민전선(Barisan Nasional)으로 확대됐다. UMNO가 주도하는 동맹당-국민전선은 61년간 말레이시아의 집권세력으로 독주했다.
말레이계가 말레이시아의 정체성을 주도한다는 것은 구체적으로 이런 의미다. 말레이어를 말레이시아의 국어로 채택하고, 말레이계의 종교인 이슬람 역시 특별한 지위를 누린다. 게다가 사회적으로 하층민을 이루는 말레이계를 위해 대학 입학과 공직 진출 등에 있어서 말레이계에게 특혜를 주는 적극적 우대조치를 실시했다. 1970년대에 들어서는 말레이계에게 경제적 혜택도 제공하는 ‘신경제정책’까지 도입했다. 말레이계에게 각종 특혜가 집중되자 자연스레 중국계와 인도계의 불만의 목소리가 높아졌다. 하지만 수적으로 우위인 말레이계를 대표하는 UMNO의 정치적 독주는 계속됐고 말레이계의 특권을 폐지하라는 야당의 목소리에는 힘이 실리지 못했다.
안와르 이브라힘의 완전한 재기
이러한 상황에서 등장한 인물이 안와르 이브라힘이다. 1947년생인 안와르는 청년 시절 열혈 이슬람주의 운동권 리더로서 농촌 빈곤 문제에 항의하는 시위를 주도하다가 체포되기도 했다. 1982년 안와르는 집권당인 UMNO에 입당하는 ‘전향’을 했다. 총리 마하티르는 젊은 안와르를 마음에 들어 했다. 이후 그는 1983년 문화청년체육부 장관을 시작으로 여러 요직을 거쳐 1993년 부총리가 되었다. 대중들은 안와르를 마하티르의 후계자로 꼽았다.
하지만 1997년 아시아 경제위기는 모든 것을 바꾸어놓았다. 당시 마하티르는 ‘서구 자본주의식’ IMF 처방에 대해 반대했다. 반면 안와르는 말레이시아가 IMF가 제시한 엄격한 경제 개혁을 실시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겉으로 드러난 대립각은 이 부분이지만, 사실 안와르는 말레이시아의 오랜 집권세력의 이권을 건드리는 개혁을 추구했고 마하티르가 여기에 분노했다는 시각이 지배적이다. 결국 1998년 안와르는 모든 공직에서 쫓겨나고 UMNO에서도 출당되었다.
잘 나가던 집권당 정치인에서 하루 아침에 재야인사가 된 안와르는 ‘말레이시아의 적폐를 개혁하기 위한 운동(Reformasi)’을 전개했다. 그가 지적한 말레이시아의 문제점은 UMNO-국민전선의 장기집권으로 인한 부정부패와 말레이계 우대 정책으로 인한 국민 분열이었다. 특히 후자는 건국 이래 종족 간 갈등을 위계적으로 해결한 UMNO의 방식을 부정하고 이에 대한 대안으로 말레이계·중국계·인도계 등 모든 종족 정체성이 동등한 대접을 받는 나라를 건설하겠다는 담대한 선언으로 이어졌다. ‘말레이계만을 위한 말레이시아’가 아니라 ‘말레이시아인 모두를 위한 말레이시아’를 만들겠다는 것이다.
‘97세의 마하티르’ 속한 기득권 깰 수 있을까
안와르가 치켜든 개혁의 깃발 아래 말레이시아의 진보세력들이 결집했다. 안와르의 도전에 위기감을 느낀 마하티르 정권은 치졸한 방식으로 그를 탄압했다. 안와르를 동성애와 부패 혐의로 구속시킨 것이다. 이슬람 사회에서 동성애라는 혐의는 ‘사회적 매장’을 의미한다. 긴 재판을 통해 결국 안와르는 2004년 무죄판결을 받고 석방됐다. 석방된 안와르가 2008년 보궐선거에서 승리하고 국회에 입성하자 또다시 안와르에 대한 동성애 시비가 일었다. 안와르의 개인 보좌관이 “안와르가 강제로 자신을 성폭행했다”며 고소를 한 것이다. 61세의 왜소한 안와르가 건장한 24세의 청년을 성폭행했다는 주장에 대해 의문을 제기하는 목소리가 높았음에도 불구하고 2015년 안와르는 5년형이 확정되어 또다시 옥살이를 해야 했다.

안와르가 두 번에 걸쳐 거의 10년간 수감되어 있는 동안에도 그가 추진했던 개혁운동은 움츠러들지 않았다. 안와르가 두 번째 구속된 직후 그의 아내인 완 아지자 완 이스마일 여사를 중심으로 새로운 야당 동맹인 ‘PH(Pakatan Harapan, 희망동맹)’가 결성됐다. 2018년 총선에서 PH는 돌풍을 일으키며 장기집권을 해온 국민전선을 무너뜨리고 집권에 성공한다. 이 총선을 앞두고 전임 총리 마하티르와 그의 측근 무히딘 야신은 국민전선에서 탈당해 신당 버사뚜(Bersatu)를 창당했는데 선거 막판에 안와르가 이끄는 PH에 합류했다. 그리하여 결국 말레이시아에서 역사적인 정권교체가 일어났다. 옥중에 있던 안와르는 마하티르와 2년씩 교대로 총리직을 수행하기로 했는데, 안와르는 마하티르가 먼저 총리직을 수행하도록 양보하는 대신 사면을 약속받았다.
PH는 애초에 DAP, PKR, AMANAH 등 다종족 정당들이 주축이 된 정치동맹이었다. 많은 국민들은 PH가 집권하자 UMNO로 대표되던 말레이계의 독주가 막을 내리고 모든 종족이 동등한 대우를 받는 새로운 세상이 열릴 것으로 기대했다. 하지만 UMNO에서 갈라져 나온 버사뚜는 말레이계의 특권을 포기하는데 반대했다. 안와르가 총리직을 이어받기로 한 시점이 다가오자 버사뚜의 실권자인 무히딘 야신은 동맹을 깨버렸다. 그리고 말레이계 정당 및 과거 국민전선 소속 정당들과 연대해 새로이 국민동맹(PN, Perikatan Nasional)을 결성했다. UMNO는 국민동맹에 참여하진 않았으나 이를 지지하겠노라고 선언했다. 그리하여 무히딘 야신은 새로운 집권연정을 통해 총리직에 오르는데 성공한다. 안와르의 집권이 임박하자 모든 기득권 세력들이 총단결해 이를 저지한 것이다. 무히딘 야신 정부는 코로나19 팬데믹을 이유로 2020년에 예정되었던 선거를 연기하고 이듬해에는 국가 비상사태를 선포해 정상적인 의회 활동마저 중지시켰다. 그렇게 구세력의 결집하에 말레이시아의 민주주의는 후퇴했다.

지난 2022년 11월 19일 말레이시아는 2021년 비상사태 선포 이후 처음으로 총선을 치렀다. 이번 선거에서도 안와르 이브라힘이 이끄는 PH가 단독 과반을 차지하지 못했으나 이번에는 과거의 정적이었던 국민전선이 안와르와 손을 잡았다. 진보와 보수의 연정이 이뤄진 셈이다.
안와르는 UMNO에서 쫓겨난 지 약 25년만에 총리가 되었다. 하지만 ‘말레이시아인 모두를 위한 말레이시아’를 꿈꿔온 안와르와 ‘말레이계를 위한 말레이시아’를 고집해온 국민전선 사이의 연대는 어딘가 불안하다. 안와르는 과연 높디높은 기득권의 벽을 넘어 모든 말레이시아인을 위한 말레이시아를 만들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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