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란과 UAE의 관계가 어떻길래
양국 분쟁의 역사 안다면 신중했어야 우리처럼 영토 분쟁에 체제 경쟁까지 종교전쟁은 1500년 돼..극도로 민감 윤 대통령, 외교 프로토콜 지키길
쓸데없는 이란-UAE 분쟁 끼어들기
윤석열 대통령이 이란을 들쑤셔 놓았다. 아랍에미리트(UAE)를 국빈 방문한 윤 대통령은 현지에 파병된 아크부대를 찾아 장병을 격려하면서 “우리의 형제 국가인 UAE의 안보는 바로 우리의 안보”라고 말한데 이어 “UAE의 적은, 가장 위협적인 국가는 이란이고 우리 적은 북한”이라며 “우리와 UAE가 매우 유사한 입장에 있다”고 덧붙였다.
자칫 이란이 한국의 적이라고 들릴 수도 있을 법한 발언이다. 이는 외교적으로 용납되기 어려운 명백한 실언이다. 하지만 이란과 UAE의 관계가 나쁜 것만은 분명하다. 두 나라는 왜 사이가 안 좋을까. 크게 세 가지로 요약해 다뤄볼 수 있다. 영토 분쟁, 체제 경쟁, 종파 경쟁.
우선 영토 분쟁. 이란과 UAE는 호르무즈 해협을 사이에 두고 마주 보고 있다. 이 호르무즈 해협에는 두 나라 사이에 영유권 분쟁이 있는 세 개의 섬이 있다. 아부 무사, 대 툰브(톤베 보르조그), 소 툰브(톤베 쿠차크)라는 이 섬들은 이란이 점유하고 있지만 UAE 역시 자국의 땅이라는 주장을 포기하지 않고 있다.

원래 페르시아와 걸프지역을 장악하고 있던 영국이 이 섬들도 관할해 왔는데 영국군이 이 지역에서 철수한 직후인 1971년 11월 30일 이란 정부가 군대를 파견해 이 섬들을 전격 점령해버렸다. 이 섬이 역사적으로 어느 나라에 속해 있었느냐에 대해서 양국의 주장은 엇갈린다. 중동 역외 국가들은 대체로 이 문제에 대해 중립적인 위치를 지킨다.
하지만 지난 12월 중국의 시진핑 주석이 사우디아라비아를 방문해 걸프 왕정 국가들과 정상회담을 가진 후 발표한 공동성명에서 호르무즈 해협의 세 개 섬들에 대한 UAE의 권리를 인정하는 내용을 포함시켰다. 오랜 기간 반미 연대로 중국과 협력하던 이란 정부는 여러 외교 라인을 통해 중국의 입장 변화에 대해 강력한 항의를 표했다. 이란의 한 일간지에는 “대만의 독립은 당연한 권리”라는 격한 반응이 실리기도 했다.
이슬람, 왕정 체제냐 공화국 체제냐
다소 지엽적인 영토 분쟁에 비해 체제 경쟁과 종파 경쟁은 이란과 걸프 왕정 사이의 보다 근본적인 적대관계에 해당한다. 체제 경쟁이란 ‘이슬람 국가’를 표방하는 나라들 사이에 무엇이 진정한 이슬람 정치 체제인가를 두고 대립하는 것이다. 긴 이야기를 간추려 보자.
애초 제1차 세계대전 시기에 영국은 독일·오스트리아-헝가리제국·오스만제국 등 ‘동맹국’ 세력과 전쟁을 벌였는데, 당시 오스만 제국의 지배를 받고 있던 아랍 국가들에게 자신을 도와 오스만 제국에 대한 반란을 일으킨다면 전쟁이 끝난 후 독립을 보장하겠다고 약속했다. 전쟁 후 이 지역에 세워진 나라들은 대체로 왕국이었다. 이라크, 요르단 등의 신생 왕국들이 탄생했고, 파루크 왕조가 지배하던 이집트나 사우드 왕가가 정복전쟁을 통해 세운 사우디아라비아 등 역시 왕정 국가였다.
하지만 시리아와 레바논에서는 공화정이 설립됐으며 이후 이집트와 이라크에서 쿠데타가 발생해 왕정이 무너지면서 중동 지역은 1950년대 후반부터 점차 왕정 대 공화정이라는 격렬한 체제 경쟁의 무대로 변해갔다. 특히 이집트의 나세르가 주도하던 아랍 민족주의 열풍이 중동을 휩쓸면서 이 국가들은 공세적으로 주변의 왕정 국가들의 전복을 시도했다. 그럴수록 사우디아라비아를 비롯한 왕정국가들은 미국을 비롯한 서구 열강의 안보 우산에 매달리면서 체제를 수호하기에 바빴다. 오늘날까지 존재하는 중동의 왕정국가들은 모두 7개국이다.
1960년대 후반까지 영국의 보호령이었던 걸프지역의 소규모 토후국들 중 7개국이 뭉쳐 UAE로 독립했는데 이 역시 본질적으로 ‘연합 왕정’이다. 사우디아라비아를 비롯해 UAE, 바레인, 카타르, 쿠웨이트, 오만 등의 6개 왕정국가들은 산유국이기도 한데 GCC(걸프협력회의)를 통해 연대하며 독자적인 이익을 추구한다. 여기에 산유국은 아니지만 왕정 국가인 요르단까지 왕정국가 대열에 이름을 올리고 있다. 그리고 이 나라들의 우두머리는 사우디아라비아이다. 사우디아라비아는 수니파 국가인데 UAE 역시 수니파가 다스리는 왕정으로서 오랜 기간 대외활동에 있어서 사우디아라비아와 행보를 같이 했다.
왕정 엎은 이란, 혁명을 수출하려
이 시기에 이란 역시 왕정국가였다. 팔레비 왕가가 지배하던 이란 왕국은 미국의 우방이었다. 따라서 마찬가지로 미국과 동맹을 맺은 사우디아라비아와 이란 사이의 관계가 나쁘지 않았다. 비록 이란이 시아파 국가이고 사우디아라비아가 수니파 국가라는 점으로 인해 갈등이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큰 틀에서 이란과 걸프 왕정들은 협력을 모색하며 공존을 추구했다. UAE 역시 호르무즈 해협의 섬들에 대한 영유권 다툼을 제외하면 이란과 적대적인 관계는 아니었다.
하지만 1979년 이란에서 이슬람 혁명이 발생하면서 이러한 질서에 지각변동이 일어났다. 대아야톨라 호메이니를 중심으로 한 이란의 혁명세력은 팔레비 왕정을 타도하고 이란에 이슬람 신정공화국을 세우는 것을 목표로 했다. 이슬람 신정공화국이란 이슬람 성직자들이 최고 결정권을 가지되 공화정의 형태를 유지하는 정치체제이다. 혁명의 열기로 가득 찬 이란은 자신들이 이룬 혁명을 주변 중동국가들에게 수출하고자 했다. 당연히 이는 걸프 왕정의 집권세력에게 엄청난 위협으로 다가왔다. 이란의 혁명이 수출된다는 것은 걸프 지역의 왕정이 무너진다는 의미였기 때문이다. 이때부터 사우디아라비아를 비롯한 걸프 왕정국가들과 이란은 공존을 포기하고 적대적인 체제 대결에 돌입했다.
16세기부터 본격화한 종파 전쟁
이란과 걸프왕정들 사이의 종파 경쟁이란 수니파-시아파의 역사적 대립 관계에 기인한다. 이 역사를 짧은 지면에 담을 도리가 없지만 간략히 소개하자면, 예언자 무함마드가 사망한 이후 누가 후계자가 될 것인가 하는 문제로 시작한 싸움이다. 무려 1500년 가까이 된 문제이다. 하지만 현재의 이란-사우디 종파 경쟁은 사실 16세기에 일어난 사건에 보다 직접적인 연원을 두고 있다.
16세기 페르시아에 사파비 왕조가 들어섰는데 왕조의 설립자인 이스마일1세가 당시 수니파였던 오스만 제국과의 패권 경쟁을 위해 수니파이거나 수피즘이었던 자국민들을 시아파로 강제 개종시킨 사건이다. 이스마일1세는 수니파로 남아있을 경우 이슬람 최고 권위 ‘칼리파’의 지위를 겸한 오스만 술탄의 신하가 될 수밖에 없다고 인식했다. 자존심이 강한 그는 시아파의 맹주가 되어 독립적인 최고 권위가 되었다. 또 페르시아(현 이란)는 국가 정체성이 시아파가 되었고, 이는 튀르크 및 아랍 지역의 다수파인 수니파와 구별되는 라이벌로 자리 잡게 되었다.
오늘날 이란과 사우디아라비아(를 위시한 걸프왕정) 간 대결은 흡사 냉전 시기 미국과 소련의 관계에 비유되기도 한다. 군사·외교·경제·문화 등 전 영역에서 힘과 동맹 그리고 첩보전을 총동원한 경쟁을 벌인다는 면에서 ‘중동판 냉전’이라는 별명이 붙기도 했다. 미국과 소련이 그러했듯이 이란과 걸프왕정들도 직접 충돌보다는 대리인을 통한 전쟁을 벌였다. 그리고 이들의 대리전장이 된 지역이 바로 예멘이다.
예멘 내전이 장기화한 배경에는 중동 양대 라이벌의 지원이 숨어있다. 사우디와 UAE는 정부군을 밀어준 반면, 이란은 후티 반군의 편에 섰다. 그로 인해 장기 전쟁으로 초토화된 예멘은 21세기 최악의 인권 붕괴 지역이라는 오명을 쓰고 말았다. 그리고 이란이 핵개발을 추진하면서 양자 사이의 긴장감은 더욱 커지고 있다.

미-이란간 관계, 우리 외교 기준될 수 없어
한국은 중동판 냉전의 당사자가 아니다. 특별히 한쪽 편을 들 이유가 없다. 미국과의 관계가 기준이라고? 미국과 이란 사이의 관계가 좋지 않다지만, 그렇다고 걸프 왕정과 미국 사이가 돈독한 것도 전혀 아니다. 사우디아라비아가 점점 중국과 협력을 늘려나가는 상황이다. 한국은 양자와 외교적 거리를 지키면서 국가 이익을 추구하는 게 최선이다. 그러니 아무리 UAE를 방문했다고 하지만 한국 대통령이 이란에 대해 적대적으로 해석될 수 있는 발언은 삼가야 했다. 대통령 본인의 실언임이 분명하다. 전문가인 외교 및 의전 참모들이 애써서 만들어놓은 외교 프로토콜을 좀더 충실히 따를 필요가 있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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